Re..“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


 

하루 생활비였던 가난한 과부의 헌금!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고

그래야 정성이 들어가는 봉헌이 되는 것임을 되새겨 봅니다.

가난한 과부가 하루 생활비를 모두 봉헌함은 사랑이 없었다면

아마 그리할 수 없었을 겁니다.

먹는게 우선이었을테니까요.

어제 주일엔 몽골 선교사 신부님께서 오시어 후원의 손길을 청하셨답니다.

\”동냥하러 왔습니다.\”

간단한 한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 2층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손이

갑자기 분주해 지기 시작하였답니다.

1차헌금에 넣었던 돈을 바로 옆으로 옮기는 것이었지요.

펼치면 좌,우로 헌금을 넣게 되어있는데 그것을 옮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다시 넣는 사람보다 옮기는 사람이 거의였습니다.

미리 공지가 되었었지만…

옆을 돌아보는게 미안할 정도로…

산만한 가운데 감실을 바라보느라니 어찌나 죄송한 마음이 들던지요….

기쁨이 남아야 함인데 저의 살길을 먼저 계산하느라

오늘도 제 손은 주머니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아버지!

분수에 맞지않는 과한 봉헌을 원하심이 아님을 압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그릇의 양만큼을 겸손스레 내어 놓아야 함임도 압니다.

하지만 아버지께 드리는 것은 깍고 또 깍아내리는 \’되\’가 되어

저울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봅니다.

아주 예전에 친정 엄마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잠시 눈을 피해 건너마을에 사시는 외할머니 댁에 잠깐 들렀는데 쌀이 없더랍니다.

가슴이 미어지면서 행주치마에 달린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아주 조금의 돈이 있었다고..

부잣집 막내 며느리였지만 머슴보다 못한 삶을 살다보니 돈을 만질 일이 없었는데

아버지께서 근근히 남의 일을 해서 받으면 엄마에게 주셨다고..

바로 그돈이었는데 눈물을 흘리면서도 동생들을 뒤로하고

만지작 거리던 손을 슬며시 빼고 그냥 발길을 돌렸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었지만 엄마에겐

또 다른 사랑이 있었으니까요.

저희가 언제 아플지도 모르니 그것만큼은 쓸수가 없었다고…

엄마 생애에 그게 가장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순서가 그렇게 바뀌어 지는 것을 그때 느끼셨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이들\” 의 얼굴리 떠올라 내놓지 못했다고…

그냥 내어 주면서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뵈면

기쁘면서도 살짝은 마음이 무겁기도 하거든요.

그때 \”제가 잘 살아 베풀면서 살겠습니다.\” 라고

누군지는 몰라도 그냥 그렇게 약속을 하셨다고…

그런 이유로 지금도 베풀면서 살아가시나 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정성이 담긴 봉헌을 할 수 있고

그것이 기쁨이 되는 것인데

전 지금껏 진정한 기쁨을 안고 봉헌하였는지 돌이켜 봅니다.

제게 만약 하루생활비만이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그 과부처럼 다 넣지 못했을 겁니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저울질을 하고 있었을테니까요.

지금도 보면 할 만한 이들은 천원 이천원,

참 어렵게 사는 분들은 되려 오천원 만원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깊은 마음으로 하시는 분들은 침묵을 사랑하면서

행동도 일치하는 사람들입니다.

드러나기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주어지는 일에는 제일처럼 하는 이들이

진정한 봉헌의 삶을 사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시간을 만들어서 봉사하고, 부모에게 맛난 것을 사드리는 사랑스런 자식의 마음으로

겸손되이 내미는 손에서 사랑이 움트고

따스한 체온이 전해지는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께 받았으니 아버지께 드림은 당연함인데

그것을 자꾸 되로 저울질 하면서 세상의 이익에는 상당히 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저가 아니었는지요.

아버지!

진정한 행복을 노래하는 가난한 저가 되어

주어진 삶을 기쁨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렙톤 두 닢을 넣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라고..

어찌나 죄송하던지요.

저는 늘 배부르게 먹고 좋은 것을 쓰면서 부모에겐 그 반도 하지 않는 제게

깨우침을 주시는 것같아 가슴 깊이 와 닿았습니다.

있는 이로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봉헌을 하면서 고개를 으쓱거리진 안았는지요.

그녀는 하루생활비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다 넣었습니다.

그녀에겐 아버지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었음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걸 보면 사랑한다고 하지만 진정한 사랑속에

기쁨과 행복이 들어있는 사랑인지 되돌아 보게 됩니다.

당연한 것을 꾀나 많이 하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교만의 고개를 들고

허리도 굽히지 않는 거드름으로 아버지 앞에 서진 않았는지요.

아버지께서 주신 오늘이건만 그 모든 것이

제가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닌지요.

시간이 없어서…. 몸이 좋지 않아서… 일이 바빠서… 경기가 좋지 않아서..

라는 많은 핑계를 들어 저의 부족한 사랑에 대한 합리화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봅니다.

아버지!

믿음에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이 있음에 기쁨이 있고

그 기쁨으로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저가 되게 하소서.

주어진 오늘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가난한 저가 되어 사랑의 물살이 넘실거리는 내일의 풍요를 만들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 삶에 있어서 아버지를 첫 번째로 모시게 하시어

마음을 다하는 사랑스런 자식의 모습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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