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눈먼 사람 둘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외치는 눈먼이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사랑에
한없이 작아지는 저입니다.
간절함이 담긴 그들의 외침이 제게도 있을까요?
믿는 대로 되라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저를 비춘다면
전 과연 눈을 떨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제게 그런 간절하고 애절한 믿음이 있는 것인지요.
고백은 하지만 진정한 확신이 담긴 것이었는지 돌이켜 봅니다.
한순간에 어떠한 기적을 바라기보단 한결같은 믿음으로 때를 기다리며
사랑의 자세로 주어진 삶에 임하는 모습이라면
언제 어느때든 아버지께서 보실 것이라는 희망으로
도피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저였어야 했는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부족했던 저를 반성해 봅니다.
거스름이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더 멀리 나아가 아버지께 믿음을 고백하는 저였어야 했는데…
그렇지요?
당신들은 부족한 부모라 늘 뒤로 빠지시려 하지만
그 모습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우리 부모님이라 여기며 자랑하고
천진스럽게 웃는 아이의 모습에서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신것처럼…..
제겐 그랬으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부모님이었으니까요..
오늘 눈먼 사람 두명이 확실한 믿음을 고백한 것처럼…
근데 세상의 비를 맞고 자란 저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얼만큼의 간절함이 담겨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바래지 않고 처음 그대로의 색을 머금고 있는지….
시간이 지남에 무뎌짐이 저의 색을 바래게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저는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볼 것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불행한 삶을 살아가면서
간절함과 애절함이 빠진 고백을 하면서
형식에 저를 묻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가슴으로 사랑을 담고 살아가는 저라면
보는 것을 보는 눈으로 진리를 향해 움직이는 삶을 살아감이겠지요.
매일매일 전례중에 바치는 \’자비송\’에 절박한 마음을 담아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고백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겠지요.
하지만 오늘의 전 어떤 모습인지요.
볼 것을 보지 못하는 우메함과 봐야 할 것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리는
의롭지 못한 모습으로 공동체에서 분열을 주진 않았는지요.
공동체에서 눈뜬 소경으로 많은 이들을 어둠으로 인도하는 그런 저는 아니었는지요.
정신이 번쩍 듭니다.
아버지!
제 삶에서 아버지께서 빠진다면 전 하루살이에 불과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머금고 살아가기에 오늘로 끝나는게 아니라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음을 가슴에 새기며 사랑의 간절함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늘 기도해야 함을 다짐해 봅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눈을 부비며 엄마를 찾는 것처럼
그렇게 아버지를 향한 더듬이를 세우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눈먼 두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외치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냐고 물으시자
그들은 그렇다고 답합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라고…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라고 하신 이 말씀이
저의 믿음을 돌아보게 하시는 것같아 깊이 와 닿았습니다.
만약 제 믿음대로 한다면 저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눈을 떠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늘 무언가를 청하면서 사랑의 간절함과 애절함이 빠진 채,
저의 형식과 욕심만이 담겨졌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그러면서 그럴수가 있냐고 등을 돌려버리는 저는 아니었는지요.
제 믿음대로 되는 것인데
전 차별로만 생각한 적은 없었는지요.
결국 제가 가지 그릇만큼 받는 것인데 전 다른 이를 탓하며
억울해 하진 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라고 하신 말씀처럼
제 믿음의 울타리를 새로 다듬어 그 안에 온전한 사랑을 담게 하소서.
간절함으로 마음아파하고 사랑으로 가슴저미는 저가되어
아버지께 향하는 저의 믿음이 형식이 아니라
저의 작은 삶으로 고백하게 하소서.
제 마음의 창만큼 햇살이 들어옴을 깨닫게 하시어
믿음으로 사랑의 창을 넓히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 창으로 사랑의 더듬이를 내보내어 아버지만을 향하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