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려고 긴장하였던게
불과 잠시전인 것 같았었는데 하루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다짐으로 부풀었던 가슴에서 벌써
다짐의 공기가 빠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 봅니다.
송년미사를 보내면서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였었답니다.
서운했던 일들.. 아쉬웠던 일들… 기뻤던 일들…
가슴아팠던 일들… 감사했던 일들… 등등..
새해에 대한 설레임보다 살짝 살짝 미리 세웠던 일들에 대한 다짐이 무너질 것을
먼저 두려워한 것은 아닐런지요. 그러면 안되는데….. ㅎㅎ
친정 아버지께 전화로 새해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새해엔 너무 많은 욕심부리지 말고
주어지는 것에 대해 감사만 드려라.\” 라고 하시더군요.
\”그런게 어딨어?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해야지.\” 라고 하자
\”아직은 젊어서 그렇다. 나이들면 내 이야기를 이해하겠지.
감사가 빠진 삶은 빛이 없다.\” 라고 하셨습니다.
웃었지만 가슴 한켠에 턱하니 자리를 잡았습니다.
삶의 진국을 내는 법을 아시는 친정 아버지의 말씀이 한참동안 자리잡았었지요.
\”감사\” 주어진 삶을 바쁘고 분주히 살긴 하지만
그것에 따른 감사가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감사하며 살아갈 때 겸손도 사랑도 용서도 행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초벌구이가 바로 겸손임을…
그 초벌구이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 어떤 유약을 발라도
색이 잘나지 않음을 또다시 깨달았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세례자 요한이
아버지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지요.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자신은 아버지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말하는
요한의 모습에서 가슴뜨거운 겸손을 보았습니다.
제게도 그런 겸손이 바탕이 되어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지…
요한이 그렇게 아버지를 증언하는데 전 무엇을 하고 있는지요.
아버지 오실 길을 미리 준비하며 길을 닦으러 온 세례자 요한!
아버지께서 오시기에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없애버리고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선포하면서
그저 묵묵히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벗어나지 않고
겸손되이 준비하는 그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공동체에서 저의 모습은 어떤지…
겸손되이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자세로
그렇게 오늘을 감사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는 저인지요.
누가 봐 주어야만 움직이고,
누가 인정해 주어야만 함께 하면서
저의 자리가 빛나는 곳에만 서 있으려 했던 저는 아니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가장 초라한 모습을~ 가장 보잘것없은 모습을 제가 그리고 있으면서
누군가를 핑계대며 헛된 오늘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가 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누군가 제게 \”당신은 누구요? 무엇 때문에 그리 하는 것이요?\” 라고 묻는다면
전 무엇을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런지요.
아버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적절하지 않은 옷을 입고 서성인다면 지금이라도 벗어던지고
제게 맞는 옷을 입고 아버지께 순명하면서
겸손으로 사랑을 더하는 저가 되려 다짐해 봅니다.
세례자 요한의 겸손을 제 삶의 바탕에 깔고서 오늘을 보내는 저가 되렵니다.
누가 뭐라든 그저 묵묵히 아버지의 일을 하는 저가 되어
보든 봐주지 않든 그저 제 일을 하면서
기쁨의 환호를 지르듯 그렇게 아버지의 길을 가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말씀에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증언합니다.
유다인들이 보낸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당신은 누구요?\”
라고 묻자 자신은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라고…
요한의 이 말이 가슴깊이 와 닿았습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이의 겸손이 제겐 없음을 다시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알아주어야 하고 저를 드러내기 위해서
빛을 덮었던 것은 아닌가를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신앙인의 겸손은 기본이어야 하지만 겸손보단
자만과 이기심으로 저를 드러내기에 급급하였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먼저 인사하기보다 인사 받기를 바라고 먼저 인정받기를 바라면서
정작 저는 누군가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퇴색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지요.
아버지!
겸손되이 고개숙이면서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으로 아버지를 증언하며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빛을 더하는 저가 되어
요한처럼 묵묵히 사랑의 길을 준비하며 잔잔히 소리없이 흐르는 강이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종의 종으로 살아가는 지혜로 늘 진리안에서 더 깊은 겸손의 꽃을 피우며
사랑의 바람에 널리널리 전하는 겸손의 꽃가루를 많이 만들게 하소서.
아멘.

누구세요?
…
이렇게 물어본다면 저는 뭐라고 대답할까요?
…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식하고 삶을 살아갈 때
어떤 시련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이끄심을 굳게 믿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요.
주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녀에게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정도는 이겨내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가 이 정도는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부모의 마음 아닐까요?
모든것을 다 해결해 주면, 아이는 이 다음에 시련이 주어질 때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요.
부모의 마음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