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다
예수님을 알고 있는 나는 변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습니다. 나 또한 신앙인들의 기도 모임에서 상대방의 말에 몹시 놀라서 하느님을 찬미해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유창하게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과 성경에 대해 달변가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합시다.
21 그들은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는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습니다. 유다인들은 안식일마다 회당에 가서 신앙고백, 기도, 모세 오경과 예언서 봉독, 설교 순으로 진행되는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서나 예언서의 말씀을 봉독하시고, 그것을 참석한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알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하는 소리가 뭔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매우 놀라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 사람이 가르치면 무척 쉽습니다. 아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는 매우 쉽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가르칠 때는 정말 어렵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것을 가르치려 하기 때문에 자신도 어렵도, 듣는 이도 어려운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본 것을 가르치는 것과, 보지 않고 전해들을 것을 가르치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이 초심자들 또는 비신자들에게 가톨릭 교리에 대해서 가르칠 때의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정확하게, 시원하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런 말하기를 회피하거나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도 신앙에 있어서는 족집게 강사처럼 그렇게 시원하게 가르쳤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자주 읽고 묵상해야 하겠지요.
어떤 공동체에 별명이 “메기”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비자였습니다. 그가 “메기”가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예비자 교리를 받으면서 이런 저런 것들이 궁금해서 신앙인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신앙인들이 그를 슬금슬금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비자가 물어보는 것에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들이 메기를 피하는 것처럼,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처럼, 그 공동체에서 그 예비자(메기) 때문에 덩달아서 교리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그런데 그 예비자에게 무척 부끄러웠겠지요?^*^).
갑자기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 소리를 지릅니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24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회당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경배를 드리고, 하느님의 말씀과 지켜야 할 계명들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다는 것은 놀랍습니다.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다시 한번 드러나고 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 모여 기도하고, 봉사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 모여 기도하고, 봉사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입으로만 신앙생활 하고, 내 깊은 내면은 순수하지 못함이나, 죄로 물들어 있을 수 있고, 어떤 조건이 성립되면 그것이 튀어나와 반응하며, 하느님께로 가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공동체를 분열시킬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좀더 의로운 사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마음가짐 잘못하여 다른 이들을 죄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서 이렇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악령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대항하기 위해서 발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이름을 불러 주문을 거는 행위”로 마귀를 쫓아내었는데, 마귀가 오히려 예수님을 이름을 부르며 예수님께 대항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드러나게 됩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예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말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러 오신 분이시라는 것을 모르기에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예수님께서는 그를 향하여 이렇게 꾸짖으십니다.“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마귀를 쫓아내는 구마자들처럼 “이름을 불러 주문을 거는 행위”를 하지 않으십니다. 즉 주술적인 말마디라든가, 주술적 수단을 가하지 않고 행동하십니다. 그저 나가라고 명령하실 뿐입니다. 하지만 악령들은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와 같이 “효력 있는 말씀”은 하느님의 힘이 작용하고 계시다는 표지가 됩니다.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그러자 더러운 영은 그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습니다. 말씀 한마디에 악령이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창세기에서 말씀 한 마디로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저 뿐인 듯 합니다. 세상 모든 만물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 저만 오로지 그분의 말씀을 거스르고 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주술적인 주문을 외우시지도 않고 그저 명령만 하셨는데 악령들이 복종하니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앞으로 더욱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모르고 있습니다. 구세주이심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욱 놀라겠지요.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나도 신앙인들도 예수님의 놀라운 소식들을 온 동네에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좋은 소식들을 전해야 합니다. 신앙의 기쁨을 전해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② 나를 하느님께로 멀어지게 유혹하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나는 그 유혹을 어떻게 물리쳤습니까?
③ 마귀 들린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혹시 마귀를 쫓아내어 보았습니까?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말이 없습니다.그렇다고 벙어리가 아니라 침묵을 사랑하면서 고요를 깰때는 확실히 깨는 그런 사람….
그리고 부정적인 말과 질타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이고 꼭 해야 할 말을 구분하여 합니다. 알고서도 가슴에 묻고 있지요.
그런 사람이 진정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지도 못하면서 한사람을 운운하고 정작 그와 말을 해 본 것처럼 겁없이 말을 하는 이들을 보면 사실 겁이 납니다. 그런 경험있지 않으세요?
정작 당사자는 침묵하고 있는데 내 말이라고 떠돌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황당한지.. ㅎㅎ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만약 사랑하는 내 가족이라면 듣고만 있을까요? 시비를 가리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평화의 인사땐 천사의 미소를 지으려 하지요. 너무 심한가요???
사실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요. 이렇게 말과 행동으로 말씀을 담고 살아가는 사람과 역행하면서 형식의 거드름을 피우는 이들을 구분합니다.
그들도 이것을 알겠지요.
네 있습니다. 바로 봉사자들입니다. 함께 했던 봉사자들…. 신앙단체만 아니면 그들을 그냥.. 하하^*^
이젠 웃으며 말할 수 있으니 그것도 행복이고 또한 좀더 넓은 마음을 가졌기에 감사하지요.
하루에도 몇번씩 “나가지 말까?” 를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없었던 것이 제겐 있었습니다.
처음엔 중요함을 모르고 했던 것인데 그것이 저의 버팀목이자 힘의 원천이 되어주었습니다. 말씀~~
말씀을 다 이해하고 안다는 것이 아니라 수다를 떨면서 저의 얘기를 털어 놓고 또 멍하니 있으면
아버지의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웃을 수 있었고 성체성사를 통해 아버지를 뵐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보다 더 기쁠 수 있고, 더 행복할 자신이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저를 밀어낸다지만 언젠가는 외롭고 소외받은 어르신들의 지팡이가 되어 드려야 하니까요.
그래야 저도 나중에 지팡이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ㅎㅎ
네. 많은 것을 경험했지요? ㅎㅎ 구역모임에서 보면 꼭 있습니다.
신앙공동체에서 사람들은 세상의 모습을 찾는 듯이 줄을 섭니다. 옳은 말을 하여도 지금의 봉사자가 아니라 하면
그쪽으로 힘을 합세합니다.
예비자도 있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날 복음말씀으로 비유를 들어 한방 먹였지요.
그들에게 비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한 순간 저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하고서 놀랐습니다.
그날 참석한 사람들중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구역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엉망이었다고…
참석하지 못한 이유는 시간을 자기들 마음대로 바꿨더군요. ㅎㅎ
이게 말씀이 빠진 이들이 단체를 끌고 갈때의 모습입니다.
제가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가 될 수도 있고 또 말씀안에 머물지 않으면 그것을 물리칠 힘도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
그 모습이 내 모습이 되면 어려운데…
그런데 잠깐 방심하면 그렇게 되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