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과 기도와 단식의 자세
-재의 수요일-
1.말씀읽기: 마태6,1-6.16-18
2.말씀연구
인간의 가장 큰 욕망 중의 하나가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내가 한 것을 자랑하고 싶고,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없다면 과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의 참된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그 참된 자세는 바로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내 삶의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부분이 아니라 해야 할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자선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참 쉽지 않습니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남을 도와주는 것은 많이 봅니다. 저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볼 때와, 누가 보지 않을 때의 행동이 다르면 안 되는데…,
이스라엘에서는 일정한 단체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단체는 매 토요일 마다 회당에서 예식이 끝난 다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부금을 거두었고, 기부를 한 사람들의 이름을 공포하였습니다. 유다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은인이라고 불러 주는 것을 더할 나위 없는 영광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기부한 금액이 많을 대에는 회당에서 회당장이라는 명예 있는 좌석에 앉게 된다는 특전까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릇된 목적을 위하여 자선을 베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선을 베풀지 말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조심하여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자선을 베풀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칭찬받으려고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받을 상을 다 받았다.”는 말씀은 참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사실 저는 무엇인가를 잘하면 그것에 대해서 보상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열심한 유다인들은 그들의 자선이 사람들에게는 드러나지 않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드러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러한 보상에 대한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라고, 그래서 “보상해 주시면 좋고 안 해주신다 할지라도 전혀 마음 쓰지 말자.”는 마음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이 보니까 선행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선의 방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자선을 베푼다는 것은 경건한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은 내가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선은 어떤 조건을 전제로 베푸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선을 베풀어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끔” 자선을 베풀 수 있을까요? 오른손이 하는 일이 왼손이 모를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자선을 당연히 해야 하고, 자발적으로 해야 하고, 다른 이들의 시선을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하고, 자신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열심한 유다인들은 하루에 두 차례(아침 9시경, 오후 3시경)에 반드시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2세기 경부터는 그 밖에 저녁 기도라는 또 하나의 기도가 규정되었습니다. 저녁기도 시간이 되면, 집에 있거나 노상에 있거나, 밭에 있거나 침대에 있거나, 반드시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선과 마찬가지로 이 “기도”까지도 허영심의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기 위해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일부러 사람들이 보는 장소를 택하여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 시간에 회당이나 길에 나가 있으려고, 일부러 그 시간을 맞추어서 외출하는 사람까지도 있었다고 합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이들보다 더한 이들이 네팔에 있다고 합니다. 네팔 절간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담긴 원통(기도물레)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고 합니다. 신도들이 예불하러 와서는 기도물레들을 빙빙 돌립니다. 한 번 돌릴 때마다 원통들 속에 적혀 있는 무수한 기도를 다 바친 셈이라고 합니다. 이거 성당에서 팔면 잘 팔릴 것 같습니다.
기도할 때 남이 안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남에게 보여주려고 기도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리고 남 때문에 기도를 못해서도 안 됩니다. 남이 보든 말든 내가 할 기도는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식에 대해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바리사이들은 단식할 때 단식하고 있음을 표시 내었다고 합니다. 그래야 “아하! 저분은 단식하고 계시구나!”하면서 존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단식해서는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들의 존경과 칭찬으로 그 상을 벌써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에서는 받을 상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신앙인 보다는 하느님께 칭찬받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래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반석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단식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구약성경에서 명한 단식일은 일년에 단 한 차례 속죄의 날 뿐입니다(레위 23,26-32;16,29). 그 밖에 온 나라에 불행이 닥치면(요나서 참조) 거국적으로 단식하는 수가 더러 있었습니다. 공적으로 단식하는 날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목욕하지도 화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단식은 열심한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자주 하는 단식을 의미합니다. 바리사이들은 개인적으로 매주 두 차례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을 했고 그리스도인들은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단식을 하는 것이 뭐 자랑하거나 뭔가를 요구하기 위해 한다면 차라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단식할 때의 자세를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단식하고 있는지, 안 하고 있는지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릴 필요도 없습니다.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유다인들 중에는 24시간 음식을 먹지 않고, 옷도 아무렇게나 걸치고, 면회나 인사까지도 사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수도 하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창백하고 슬픈 얼굴로 “나는 오늘 단식중이유!”하고 광고하고 다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조작된 슬픈 듯한 얼굴과 허름한 옷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내가 단식한다는 것을 남에게 굳이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모두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단식을 하였습니다. 오늘 재를 이마에 받게 됩니다. 어떤 마음으로 사순시기를 보내고 싶으십니까?
② 경건하게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하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칭찬해 봅시다. 그들의 삶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그들에게 주어지는 어려움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희는 오전과 저녁 미사가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하기 위해 저녁 미사에 참례할려고 합니다.
이번 사순시기에는 저만이 아니라 소외되고 외로운 이들에게 저의 손을 내밀려고 합니다.
그들옆에는 사람이 없거든요.
봉사자 옆에는 많은 이들이 있지만 그들옆에는 누군가 그들을 위로해 주고
말을 걸어 주는 이가 단 한명도 없습니다.
그들의 존재를 알기나 할런지요….
그래서 전 사순시기에 저의 부족했던 사랑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그들과 함께 웃으려 합니다. ㅎㅎ
교만이 아니라 많진 않습니다. 하지만 있긴 있지요.
당당하고 아닌 것에 화합하지 않는 모습은 정말 멋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지요.
보이기 위한 모습보다는 “어유 ~당연하지요” 라는 말을 참 많이 하기도 합니다.
늘 잔잔한 바다같이 평온하게 흘러가는 그 모습이 신앙을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어려움은 많이 있다고 봅니다.
관계안에 들지 않기에 밀어내고 자신들이 손을 내밀지 않았으면서도
모든 것을 그에게 돌리는 것을 보면 참…
그래도 그들의 허물을 탓하는 것또한 원치 않는 이들이기에 세월에 돌리는 것 같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자연스럽게 기도하고 선을 행하는 일이
저의 가장 큰 기쁨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