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1. 말씀읽기: 루카9,22-25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시다 (마태 16,21-23 ; 마르 8,31-33)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마태 16,24-28 ; 마르 8,34)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젊은 남편이 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된 아내가 남편에게 그 사실을 말해야 할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말씀하실 때 마음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인들에게 주어지는 어려움과 고통은 주님과 함께 이겨낼 수 있고,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하늘에 살다가 종말에 세상을 심판하러 내려올 초월적 존재이며, 심판하시는 분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내려오신 분이요, 우리를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당하실 고통을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라는 말로 표현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준비하시면서 성목요일 밤에는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십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들에게도 그 슬픔 후에 있을 부활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나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뿔뿔이 흩어졌다는 것은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먼저 수난과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다보면 많은 유혹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주님을 몰랐더라면 더 자유로웠을 것을…,”하면서 후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야 구원을 얻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처럼 신앙생활해서는 구원과는 거리가 있게 됩니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당신을 따르는 이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 두 가지.
하나는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니.
둘 중의 하나라도 해보고 싶지만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어찌할까? 내 처지를,
어찌할까? 내 마음을…
신앙인은 죽어야 삽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내 안의 불의를 죽여야 합니다. 성령께서 나를 이끄시게 하기 위해서는 악으로 기울어져가는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나를 통해서 역사하실 수 있고, 그래야 구원의 도구가 되어 하느님 나라를 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밝히는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후손인 우리들. 우리가 받은 신앙은 피로써 물려받은 신앙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시며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비록 현세에서는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것이 영원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굳게 믿고 있던 그분들은 박해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가끔은 어려움에 처하면 “아닌 것처럼 ” 행동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죽기까지 변함없는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죽기까지…
성인들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순교자들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열심한 신앙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나를 버리고, 유혹에 빠져드는 나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만을 바라볼 수 있고, 잘 죽을 수 있습니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 양심을 버리고 주님을 저버리는 삶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의로움을 위해서, 신앙을 위해서 포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나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 나를 버리는 것이고, 그렇게 할 때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들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요,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요, 그것이 의로운 삶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주어지는 모든 시련을 기쁘게 이겨내며, 하느님께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없는 것들을 버리고, 장애되는 것들은 물리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시는 것처럼 “나는 이미 율법의 손에 죽어서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위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단호해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온전한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 그 마음과 그 삶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따르는 이들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하지만 갈등하거나 포기하려는 마음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이때 힘을 내라고 해 주시는 말씀이 바로“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입니다.
주님! 절 죽여야 하겠지요?
어떻게 죽여야 할까요? 미운형제 떡 하나 더 주고,
꼴 보기 싫은 사람에게 상냥한 미소를 날려야 하겠지요. 만나기 싫은 사람 밥 한 끼 더 사주고, 두들겨 패고 싶은 사람 이해하고 예뻐해 줘야 하겠지요.
아이고~~넘 힘듭니다.
자존심 상하고, 속에서는 부글부글 합니다.
그런데도 해야겠지요? 마음을 비우고 그들을 사랑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지요?
다시 살고 싶으면 말입니다. “자존심과 교만, 판단과 위선” 이 모든 것들을 움켜잡고 주님께로 나아가려 하니 어렵습니다. 또 이것을 버리려고 하니 너무 고통스럽고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해야 되는 것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렇게 하면 비록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엄청난 이득입니다.
더 큰 이익을 위해서 작은 것들은 접을 수 있는 내가 되어 봅시다. 이 사순시기에 작은 것 하나라도 성실하게 실천해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만일 제자들 중 하나로서 예수님의 수난예고를 듣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이젠 떠날 때가 된 것 같다.”고 했을까요?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하고 말씀드렸을까요?
② 예수님을 참되게 따르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앙생활하시면서 형제자매들 때문에 불편한 것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습니까?

떠날 준비를 하진 않을까요? ㅎㅎ ㅠㅠ
하지만 사랑했다면 아니겠지요.
예수님을 진정 사랑으로 따랐다면 최후까지 함게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랑은 그 무엇에게도 눌리지 않으니까요.
그 옛날 순교자들이 그렇게 사랑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앙을 고백하면서 무엇이 기쁨인지를 물어보고 싶습니다.
공동체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고 경계하면서 어떤 기쁨이 있을까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 개인의 사적인 감정을 누르고 합집합의 테두리에 들어가야 아버지를 따르는 사랑스런 자식이 되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큰 무엇을 행하는게 아니라 부모의 마음에서 행하는 삶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일상적인 삶안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반성하고 그것으로 더 큰 기쁨을 안고 하루를 엽니다.
어떻게 보면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경계심입니다.
전 어떤 것도 하지 않았는데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는 그들의 눈을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요.
자신들의 직원으로 사람을 채용한다고 하면 어떤 사람을 뽑겠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이익이 결여되고 자신을 능가할 수 없음이지만, 공동체에선 다르니까요.
공동체에선 그런 사람에겐 물어보지도 않지요. 이 무슨… ㅎㅎ
그들의 그런 시선에 제가 불편함은 사실이지만 제가 안갈수도 없는지라 꿋꿋이 … ㅎㅎ
그래도 내집을 찾는 그들을 위해 기도할때가 행복합니다.
전 성당을 내집이라 생각하니까 주인의 마음이 되더라구용. ^*^
주인의식? ㅎㅎ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이겨내기 위해서는 제가 변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크다면 모든 것을 다 넣고 닫아버리면 되니까요.
저의 성숙이 깊고 맑은 소리를 낼 수 있고
저의 성숙이 더 큰 십자가도 기꺼이 질 수 있으니까요.
말씀하셨지요?
다 죽일수야 없지 않냐고…
그러니까 제가 그 위에 서는 것밖에요.
죽일 수 없다면 미워할 수 없다면 제가 그것을 능가하는 내적 성숙이 있으면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