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을 지키는 사람
1. 말씀읽기: 마태 5,17-19
예수님과 율법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이 하는 것과 같은 안식일이나 정결례”, 즉 사랑이 빠지고, 근본 정신이 바뀐 안식일이나 정결례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의 근본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은 그런 예수님을 “율법을 위해서라면 없어져 버려야 할 분”으로 생각했고, 질서를 무너뜨린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말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없애러 오신 분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근본정신을 바로잡아 주시고, 하느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야지,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귀찮거나 두려워서 멀리해서는 안됩니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없애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자전거를 가지고 싶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늘 자전거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모님께서 멋진 자전거를 사 주셨습니다. 그 아이에게 이제 자전거 사진은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멋진 자전거가 자신에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역사는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이 됩니다. 율법이나 예언서들도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들을 없애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완성하셨고, 예언서의 말씀들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 점”은 히브리말 중 가장 작은 글자인데 그것마저도 없어지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은 예수님을 통해서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그 불완전함이 보충되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완전함을 갖추게 된 율법은 더 이상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된 율법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또 그렇게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뭐~ 이런 것 쯤이야~”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작은 죄들이 모여서 큰 죄를 이루고,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하지만 작은 선행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규정들을 기쁜 마음으로 성실하게 지켜 나갈 때, 어느 순간 의로움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한 지키는 것을 떠나서 지키도록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학자들의 모습을 통해 형식적으로 살아가고,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삶이 얼마나 위험하고, 멸망을 확실하게 예약하는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학자들은 계명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지켰습니다. 그래서 그 본질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게 된 것입니다. 안식일 규정이 그렇고, 정결례 규정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제자들은 가장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지키고, 다른 이들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인들이 참되게 예수님을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가장 작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도 턱걸이라도 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의미”보다는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면, 좀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소죄라 할지라도 그것을 범하는 사람이 누구냐가 벌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그것을 범하는 것과, 또 그것을 범하도록 가르치는 것과, 모르는 사람이 실수로 범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어머니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기도할 수 있도록 챙겨주고, 단식과 금육을 할 수 있도록 챙겨주고, 신앙생활을 격려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어머니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기도하기도 힘들뿐더러 단식과 금육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평일미사나 주일미사에 참례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부모가 덕이 부족하다면 서로가 큰 소리를 내게 될 것이고,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작은 행동으로 부모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사제나 수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이 있고,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손 하나 움직이지 않고 입으로만 살아간다면, 그래서 결국 말만 하게 된다면 그도 안 지키게 되고, 남도 그 모습을 통해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그마한 것 하나에도 마음 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덕을 실천할 때, 주님 마음에 드는 사람,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 와 닿는 말씀은 무엇이고, 왜 와 닿습니까?
② 내가 지키는 계명 중에 나도 모르게 남을 어기도록 만드는 것도 있고, 고의로 어기게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지키기 어려운 계명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또 형식적으로 지키는 계명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③ 형식적으로 계명을 지키며, 바르게 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바르게 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형제자매들을 바라보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4. 실천사항
①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서 다시 배우기
② 지킬 것은 지키기
③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존중하고, 따라하기
④ 성찰 잘 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하늘 나라에서의 가장 작은 자” 라 하신 말씀이 와 닿았습니다.
저를 덮고 있는 교만의 그림자를 보게 하셨지요.
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칭 큰 사람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늘 작은 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생활한다면 겸손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의 부족때뭄에 모르는 사이에 어둠으로 빠지게 하는 경우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적당한 합리화를 만들어 그조차도 살짝 가린 적은 없는지 돌이켜 봅니다.
조용히 머물 때면 잘 보인답니다.
그래서 하루를 마감하면서 늘 부족함을 고백하게 되고 잘 행하려 다짐합니다.
하지만 지키는게 우선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야 하는데 그것을 느끼지 않고
마치 학생들이 숙제를 하는 것처럼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사랑이 빠진 ~~ 즉 마음이 빠진 그 모습에 아버지께선 얼마나 서운하실런지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사랑”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주체성을 잃은 형식적인 고백은 아니었는지요.
그리고 행하지 못하는 것은 “이웃 사랑” 이라 생각합니다.
한 울타리안에서 형제라 부르지만 진정한 사랑이 있는것이지 돌이켜 봅니다.
그또한 형식적인것은 아닌지요.
바로 기본을 깨닫지 못했기에 그런것은 아닌지…
아이들이 왜 숙제를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기보단 주어진 결과만 생각하기에 억지로 하게 됩니다.
눈앞에 현실만 보지, 앞을 바라보지 못하기에 그런것처럼….
아버지께서 힘들게 하시려 내려주신 것이 결코 아니니까요.
더 멋진 삶을 위한 사랑의 지침임을 망각하기에 그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상처를 받게 되면 정말 속상합니다. 하지만 공동체에서마저 그들의 소리가 먹혀들어가는 것을 볼 땐,
정말 많은 고민에 빠집니다.
그런 그들은 또 넓은 그물을 쳐서 관계의 맥을 형성한 답니다.
그안에 포함되어 있는 이들도 불쌍하고 그러한 그들의 눈에 들려고 애써는 이들도 불쌍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미워한다면 도리어 그들보다 더 못난 사람이 되는 것이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ㅎㅎ
단 한가지 방법은 “할 소리를 하는 것” 이랍니다.
늘 말씀안에 머물면서 제삼자가 아니라 말씀안에서 비유를 들어 구역모임이나 성당에서 의로움의 칼로 지릅니다.
그들의 미움을 사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자식은 되기 싫어서지요.
뭐엔 뭐라고 하지만, 그들때문에 제안에 어둠이 드리워진다면 그들보다 더 불쌍한 이가 저니까요.
아버지만 아시면 되지요. 뭐~~~
그래야 나중에 저의 잘못을 몇개는 빼달라고 하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