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다. ”


 

\”건강해지고 싶으냐?\”

참 정겹게 와 닿는 말씀입니다.

서른여덟 해나 앓았던 그가 듣기엔 어땠을까요?

소문을 들었지만 자신을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그의 말이

길었던 인내의 시간을 대신해 주는 듯이 가슴이 저며왔습니다.

그 인내가 사랑의 기적을 안을 수 있게 하였나 봅니다.

정해진 율법의 기본 정신인 사랑을 몸소 보여주신 아버지!

사람을 위한 안식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독서에서도 성전에서 흐르는 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은총을 상징하는 물!

그것마저 다스리시는 분이 아버지신데…

제안에는 그런 물이~~ 벳자타의 못이 있을까요?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간절한 맘으로 하염없이 기다리며 살아간다면

아마도 그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아버지?

제안에 분명 있을꺼네요.

무뎌진 제가 느끼지 못해서 그럴 뿐, 분명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을 다스리시는 아버지심을 깨닫지 못하는 우메한 저가

비로소 그 진리를 조금이나마 담아 보는 시간이랍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아버지의 크고 깊은 사랑에 저의 모든 것을 묻고 따른다 하지만

언제 어느때 바리사이들의 모습으로 변할 지 사실 긴장을 멈추지 않는답니다.

서글픈 현실이기도 하지만 환경에 묻혀 자신의 색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서

손가락질을 하기보단 저라도 색을 잃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늘 깨어 기도하며 믿음의 성화에 불을 붙인다면

저도 반생을 그리 살아온 이의 마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처해진 환경을 탓하기보다 그 자리에서 겸손되이 기다리는 것 또한 사랑임을

새삼 깊이 새겨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쳐주십니다.

많은 이들이 누워 있었지만 서른여덟 해나 앓고 있는 한 사람에게

\”건강해지고 싶으냐?\” 라고 물으십니다.

늘 사랑 그자체로 곁에 계신 아버지를 잊고 살아온 저는 아니었는지요.

한결같으신 아버지의 그 음성이 지나온 저의 무딘 생활을 돌아보게 하시어

가슴깊이 와 닿았습니다.

성경에 자그맣게 \”신앙생활 열심히 해 보고 싶으냐?\”

라고 적어 놓은 글씨가 보였습니다.

언제나 제가 선택할 기회를 주시고

제가 깨달음의 시간을 가지도록 사랑의 놀이터를 만들어 주심에도

전 늘 바리사이가 되어 휘젓고 다니진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인내의 기다림이 사랑의 은총을 안고 일어서자

그들은 따지지요.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

바로 제 모습은 아니었는지요.

정해진 율법이나 규정이 우선이 아니라 그 기본은 사랑임을….

그래서 사람을 위한 율법이고 사랑이 기본이 되어야만 하는 규정인데

교만의 형식을 안고 그것을 무시하며 신앙생활을 해 온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

제안에도 분명 은총의 물이 흐르고, 벳자타 못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간절한 마음으로 그 어떤 인내도 감수하며 사랑을 보존하며

아버지만 바라보게 하소서.

그리하여 간절하고 애절한 믿음을 고백하며 기쁨이 넘치는 사랑의 쉼터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깊고 깊은 벳자타 못을 만들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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