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전례

 

성탄 전례


서방 교회에서 성탄 축일은 네 번 미사를 드리는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성탄의 네 미사는 교황청 전례에 기원을 둔 것으로, 로마의 여러 교회에서 행하던 지역 예배와 관련된다.


성탄 날, 처음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낮미사 한 대만 드렸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인정한 에페소 공의회(431) 이후 이를 기념하여 로마의 에스뀔리노 언덕에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건설하였다. 그 다음 세기에 사람들은 베들레헴의 구유 유물을 모시기 위해 대성당 곁에 구유 경당을 건설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경당에서 베들레헴에서 행하던 것과 비슷한 밤전례를 지내기를 원하였는데 이것이 밤미사이다. 한편 로마에서는 12월 25일에 성녀 아나스타시아 성당에서 성녀 기념을 지냈다. 이는 성당 곁에 있는 왕궁에 살던 비잔틴 권력자들이 드리던 것이었다. 이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교황은 성탄 미사를 드리러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가기 전에 성녀 아나스타시아 성당에서 성녀 기념 미사를 지냈는데, 여기에 예수 성탄에 관한 기도문들을 사용하면서 새벽미사의 기원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12월 24일 저녁에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밤에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 구유 경당에서, 새벽에는 아나스타시아 성당에서, 낮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전례를 거행함으로써 온전한 네 대의 미사가 형성되었다.


성탄 전례는 낮미사 때 요한 복음 서언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서 거처하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를 낭독함으로써 그 절정에 달한다. 다른 모든 독서들은 이에 대한 준비이거나 반향이다. 미사나 시간전례의 기도문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7세기까지는 빠스카만이 8일 동안 전례를 지내는 특권이 있었다. 따라서 성탄은 그러한 영예를 기대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8일째 되는 날은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경축하기 위해서, 그리고 주님의 할례를 기념하기 위해서 축일로 삼았다. 이 축일은 마리아 축일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성탄 다음의 3일도 인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그 날에 성 스테파노, 성 요한 및 무죄한 어린이들을 기렸기 때문이다. 성탄 다음 주일에는 예수와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가정 생활의 모범을 그렸다. 이 축일은 비교적 늦은 1921년에 제정되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동굴과 구유를 보여주는 구유 장식은 서방 교회의 성탄 축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구유 중 가장 크게 공경을 받는 것은 당연히 베들레헴의 구유이다. 그 다음으로 오래된 것은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있는 구유이다. 구유가 좀 더 대중화된 것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그 회원들에 의해서였다. 1223년 성탄 때 프란치스코는 Greccio에서 성탄행사를 좀 더 잘 지내고자 하였다. 그래서 짚으로 가득 찬 구유를 놓은 다음 그 곁에는 당나귀와 황소 한 마리씩을 놓았다. 교황의 허락 아래 이 구유를 제대 위에다 놓았으며 사제는 여기서 미사를 드렸다. 이렇게 예수탄생의 소박하고 비천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된 구유를 꾸미는 관습은, 이미 예로니모 시대에 사람들이 베들레헴의 흙으로 된 구유를 은으로 대치한 것에서 예견되었듯이 점차로 화려하고 호화스럽게 변하였다.




이 글은 카테고리: 전례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