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하느님 나라

 

현대문명 안에서 회개가 왜 절실히 필요한 것일까?


                                   – 반생명문화와 상품문화




그렇다면 이제 현대문명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위한 회개가 왜 절실히 요청되는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날은 어떤 시대입니까? 인류는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아직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달나라도 가고, 비행기 타면 다른 나라도 옆집처럼 훌쩍 갈 수도 있고, 겨울에 김장을 담지 않아도 사시사철 김치를 사서 먹을 수도 있으며, 빨래,집안 청소,설겆이, 심지어 밥을 짓는 것도 전자제품을 이용하여 편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가히 황홀할 지경입니다. 인류미래의 꿈을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사실 이렇게 나열한 수많은 예들은 현대문명이 주는 편리함의 아주 적은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은 정작 행복하십니까?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가고 계십니까? 갈수록 더해가는 각종 흉악한 범죄들, 사고들, 그리고 정신없이 지나쳐가는 바쁜 하루 하루의 삶 안에서 다람쥐 체바퀴 돌 듯해야 하는 이유들은 무엇입니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 보다 더 즐겨야 하니까.’ 하지만 이런 대답은 우리들에게 더욱 더 공허감만을 안겨줄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세상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반생명 문화, 바로 이기주의와 비인간화를 촉진하고 있는 상품문화인 것입니다. 심지어 인간의 性과 생명, 종교마저도 상품화되어버린 세상이 바로 오늘날의 세상입니다. 그리고 이는 반생명 문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 본래의 마음을 잃어 버리고, 점차 황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 ‘회개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의미는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자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살라고 만드셨으며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원래가 살게 마련이다”라는 지혜서 1장 13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오늘날 세상을 이렇게 진단하셨습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저지른 생명에 대한 폭력을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민족간의, 그리고 사회 계층 간의 불의한 자원 배분 때문에 가난, 영양실조, 기아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 그리고 무분별한 생태계 균형 파괴에 의해서, 범죄적인 마약의 확산에 의해서, 또는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생명에 대한 심각한 위험성까지 내포하고 있는 어떤 유형의 성행위에 대한 조장에 의해서 야기되는 죽음의 확산은 어떻습니까? 인간 생명에 대한 위협들의 방대한 목록을 다 열거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 명백하거나 은밀한 형태로 나타나는 이러한 위협들은 무수히 많습니다!”1) 계속해서 교황님은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을까요?”라고 물으시면서, “그 배경에는 근본적인 문화의 위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2)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나와 너, 인간과 자연간의 “연대성을 거부하고, (…) 죽음의 문화를 취하는 (…) 문화의 출현”때문이라고, 그리고 그 배후에는 “강력한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경향들이” 있다고 진단하십니다. 즉, “지나친 효율성”이 강조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약자에 대한 강자의 싸움”이요, “생명에 대한 음모”인 것입니다.3)




그렇다면 과연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삶은 무엇이겠습니까?


나와 내 가족만 편하고 행복하면 되었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물질주의, 이기주의, 황금만능주의가 자리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설사 남은 상관 없다고 하더라도, 그런 여러분 자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물론 과거보다 훨씬 우리는 더 편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나이 드신 자매님들은 이를 더욱 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딘가 그 무엇이 빠져 있다고 느끼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지금 잠시 우리의 내면을 살펴봅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많은 인생들입니다. 그래서 항상 하느님께 용서받고 치유받아야 할 인간들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매순간 용서받아야 할 가련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뉘우치고, 그래서 내 가슴을 치며 통회합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정작 무엇을 회개하였습니까?


세상은 여전히, 아니 갈수록 더욱 더 반생명으로, 상품화로 흐르고 있는데, 여러분은 무엇을 회개하였습니까? 어쩌면, 우리 자신들이 이런 상품 문화의 공범 내지는 주범일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과연 무엇을 회개하였습니까? 세상은 이렇듯 혼란하고 타락해 가고 있는데, 우리의 회개와 우리가 바라는 하느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의 혼란과 혼동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기쁜 소식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전례시기인 대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는 참으로 의미있는 하느님 나라가 하루빨리 도래하기를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특별한 시간을 통하여 하느님 안에서 잃어버린 신앙의 참모습을 회복하고, 좀더 새롭게 변화된 모습 속에서 ‘주님의 오심’을 나의 현실로 받아들이기 위해 여기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와 하느님 나라는 우리들의 신앙안에 깊이 침투되어 더이상 분열과 고통의 연속이 아니라, 참으로 하느님 나라를 앞당겨 “지금 여기에” 구현하는 모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들은 내적으로 더욱 자신을 성찰하고 하느님 안에서 인간의 본래적인 모습을 회복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을 지향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를 체험하게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변하여 탐욕과 욕구를 충족시키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미가 숨쉬는, 다시 말해서 창조질서가 새롭게 구현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4. 회개를 통한 하느님 나라의 기다림




이제 회개는 더 이상 나 혼자만의 천당행을 위한 회심이나 회두의 행위가 아님이 확실해졌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들의 노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없는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건설되는 세상인 것입니다. 즉 십자가의 희생과 인간의 협력을 통해 ‘지금 여기에’ “새 하늘과 새 땅”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실천하여야 하는 인간의 협력으로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관계 안에서의 근본적인 변화(회개)입니다. 이 변화는 세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첫째, 하느님과의 관계의 근본적 변화(하느님 관점을 선택하기)입니다.


회개는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 앞에서의 근본적인 회심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어떠했든 지금부터는 하느님의 관점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회개하는 사람은 자연히 과거의 죄와, 그 죄에서 얻을 수 있었던 어떤 만족들과 결별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참으로 회개하는 이는 이렇게 과거의 죄와 그 죄의 만족을 혐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게 됩니다(갈라 2,20). 왜냐하면, 그리스도만이 내 생의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웃과의 관계의 근본적 변화(연대성과 관계의 인간화)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이렇게 회심을 하게 되는 사람은 자연히 다음으로 이웃에게 눈을 돌리게 됩니다. 이제까지의 이웃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합니다. 그를 그저 타인으로만 생각하여 오지는 않았는지에 대하여, 그와 나의 관계는 혹 종속적이거나 지배적이지는 않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온갖 거짓되고 위선적이었던 그와의 관계를 이제는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안에서, 인간화, 형제화, 동료화, 수평화하도록 우리를 일으킵니다. 이제 그는 나에게 타인으로 남지 않게 됩니다. 이제 그는 내 자신의 이익과 필요를 위한 존재로 남지 않게 됩니다. 이제 그와 나는 하느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회개 이전에도 그와 나는 한 가족이었습니다. 단지 과거에는 이를 인식치 못하였던 것입니다.




셋째, 자신에 대한 태도의 근본적 변화(자신에 대한 인정과 자기 사랑하기)입니다.


진실로 회개하는 자는 자신에 대한 이제까지의 태도에서 변화를 갖게 됩니다. 자신의 불만스러운 모습에 대한 불인정과 이로 말미암은 어떤 종류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죄인이었고, 그런 자신이 하느님의 가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자녀였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회개한 자는 그래서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이웃에 대하여 자유롭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 의미와 이유를 이제는 명확히 알게 되었고, 그리고 이를 향해 온 정열을 쏟게 됩니다. 새로운 자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회개를 하고자 합니다. 더 이상 이전까지의 나로 머물러 있고 싶지가 않습니다. 더 이상 이전까지의 나의 어리석은 만족에 멈추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느님 나라를 위한 행동을 개인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에서까지 하고자 합니다. 이럴 때 회개를 통한 하느님 나라의 기다림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 절정을 이루었던 실재적인 삶에로 우리들 모두를 이끌고 갈 것이며, 2천년이 지난 오늘날 또다시 회개의 삶을 통해서 인간의 참가치를 회복하게 할 것입니다. 또한 창조질서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여 인간 자신의 고귀한 품위를 더불어 회복하는 과정속에서 우리들에게 선사되는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 곧 오실 아기 예수님을 전례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이 대림시기에, 그리고 궁극적으로 오실 예수님을 전례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이 대림시기에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회개와 하느님 나라”의 의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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