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찰하다(혹은 세밀하게 읽다)
\”대충 눈으로 읽지 말고, 주의 깊게 모레 안에서 보석을 찾듯 그렇게 읽어보십시오\”
독서는 중대한 요소를 부각시키면서 성경의 한 페이지를 읽고 또다시 읽는 일로 이루어진다. 연필을 손에 들고 읽을 것을 권고한다. 이리하여 연필로 인상적인 말씀에 밑주를 긋고 혹은 지적된 표시를 통해 동사, 주어 그리고 열쇠가 되는 단어를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주의력은 자극을 받는다. 이때 독자의 지성, 상상력, 그리고 감수성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또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고 여겨졌던 복음의 한 단락이 아주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된다.
①독자인 나는 이 독서 행위에서 주로 어떤 것을 기억에 담았는가? 어떤 단어, 어떤 표현을…
②이 말씀은 믿는 신앙인에 의해 쓰여졌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떤 믿음을 표현하고 있는가?
③(만일 구약성경의 이야기에 관련되어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셨으며,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계신가?
④(만일 신약성경의 한 이야기가 연관되어 있다면) 파스카 신비의 빛 아래에서 쓰여진 이 말씀은 어떻게 주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표현하는가?
2. 묵상하다.
묵상은 이야기가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가치에 관해 곰곰이 따지며 반성해 보는 일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한다.
①이 이야기는 무엇을 나에게 말씀하고 있는가?
②읽고 있는 이 단락 안에서 어떤 말씀이 구체적으로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제안되어 있는가?
③행동, 말씀, 테마 안에 표현되어 있는 신앙을 통해서 나는 어떤 자극을 받고 있는가?
④이 이야기를 쓴 분들의 신앙적 발걸음이 오늘날 믿는 이들의 신앙적 발걸음과 어떻게 서로 만나고 있는가?
3. 기도하다. 혹은 관조하다.
관조는 사랑을 마음속에 품고 말씀 안에 머물러있는 것이다. 그래서 관조를 하는 사람은 말씀과 그 가르침으로부터 성경의 각 페이지 안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분께 대한 응시(凝視)로 옮겨간다. 결국 관조는 내 기도의 최종적인 대상인 주님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흠숭과 찬미와 침묵의 행위인 것이다.
좀더 많이 자기의 주의력을 끌었던 이야기의 단어나 표현을 관조 때 다시 사용한다. 방금 묵상했던 내용이 어떻게 자기 안에서 자신의 믿음을 다시 일깨우고 혹은 새로운 믿음을 불러 있으키는 가를 그 이야기의 단어와 표현을 구사함으로써 주 예수님께 말씀드리는 시도(자유기도)를 한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시간적 순간은 엄격하게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성경말씀과 친숙해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유익하다. 성경의 구체적인 한 말씀을 눈앞에 둔 우리가 어떤 날에는 그 말씀에 대한 묵상에 더 길게 머물러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날에는 아주 빠르게 관조로 옮겨가기도 하는 일은 아주 자연스럽게 발생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