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7주일
하늘 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제 1독서: 1열왕 3,5.7-12
제 2독서: 로마 8,28-30
복음: 마태 13,44-52
마태오 복음사가에 의한 소위 ‘비유적 담화’를 끝맺는 세 개의 비유 가운데서 ‘온갖 물고기를 끌어올리는 바다에 친 그물의 비유’는 다른 독서들(제 1독서와 제 2독서)을 통해 발전되고 있는 담화의 ‘총체적’ 내용에서 약간 벗어나고 있는 듯하다. 사실 비유적 담화의 전체적 관심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 또 우리가 처해 있는 모든 상황을 포기해야 할 만큼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하늘나라’ 또는 주님의 ‘말씀’ 집중되고 있다. 우리가 그 어떤 것을 잃는다 해도 하늘나라를 잃는 것만큼 큰 손실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물의 비유도 좀더 근본적인 점에 있어서는 이러한 관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비록 내용상으로는 우리가 이미 살펴본 가라지의 비유(마태 13,24-30. 36-43 참조)와 유사하면서도 실제로는 선과 악의 ‘결정적’ 구분과 선택에 관한 종말론적 상황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 “천사들이 나타나 선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는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처넣을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 그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마태 13,49-50).
이것은 복음을 읽는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심판의 판결이 떨어지기 전에 제때에 그리스도를 ‘철저히’ 선택하라는 경고이다.
“당신이 말씀하신 법은 값지나이다”
우리는 성서 메시지의 총체성이 하느님의 ‘나라’ 또는 주님의 ‘말씀’의 가치를 지향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말씀’이 ‘하늘 나라’를 선포할 뿐만 아니라 만들고 있다는-그리스도를 통하여 정확히 입증되고 있듯이-의미에서 본다면 결국 매우 유사하다.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듯이 주님의 ‘법’과 ‘계명’에 대한 감동적 찬미가라고 할 수 있는 시편 118 가운데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몇 구절을 읽어보라 :“당신이 말씀하신 법이야말로, 수천의 금은보다 나으니이다. 그러기에 나는 당신의 법을 황금보다 순금보다 더 괴나이다. 그러기에 계명을 낱낱이 따랐삽고, 거짓된 길이면 모두 미워하나이다. 말씀을 밝히시면 빛을 내시어, 우둔한 사람도 깨달음을 얻나이다”(시편 118,72.127-128.130).
“당신 종에게 명석한 머리를 주시어 흑백을 잘 가려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혼란스러운 다윗 왕조가 끝난 후 솔로몬 왕조가 시작될 무렵 솔로몬 자신이 바친 기도 역시 모든 사람의 생활에 있어서, 특히 다른 사람들을 지도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느 사람들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 즉 ‘지혜’와 ‘분별력’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재력과 권력은 다스리는 사람 또는 지배하는 사람의 품위를 높여주지 못한다. 오히려 만일 그러한 ‘능력’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지혜와 덕망을 함께, 아니 먼저 갖추지 않는다면 그르 보다 더 혐오스러운 존재로 만들 뿐이다. 이러한 일은 흔히 일반 시민 사회의 역사에서, 또 불행한 일이지만 교회의 역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무엇이든지 바라는 것을 청하라는 야훼의 말씀에 이렇게 간구한다 :“나의 하느님 야훼여, 당신께서는 소인을 제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으로 삼으셨습니다만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으므로 어떻게 처신하여야 할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소인은 수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당신의 백성 가운데서 살고 있는 몸입니다. 그러하오니 송인에게 명석한 머리를 주시어 당신의 백성을 다스릴 수 있고 흑백을 잘 가려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감히 그 누가 당신의 이 큰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1열왕 3,7-9).
그 다음 구절에서 야훼께서는 솔로몬이 “장수나 부귀나 원수 갚는 것”(11절)을 청하지 않은 것을 칭찬하며 그에게 “슬기롭고 명석한 머리”를 주실 뿐만 아니라 그가 청하지 않은 다른 것들도 무수히 베풀어주신다(12-13절).
솔로몬의 기도는 과연 임금의 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생활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을 꿰뚫어 본 기도이다. 그 모든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온다. 특히 ‘선과 악을 가려내고’, 우리 형제들에게 유익하거나 소용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명석한 머리”는 더더욱 그렇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평가해줄 올바른 척도는-특히 우리가 교회 안에서나 또는 밖에서 어떤 책임을 맡고 있는 입장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 그들의 성장 그리고 그들의 행복이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께서 특별히 바라시는 것이며 우리가 필사적으로 추구해야 할 최상의 것이다(마태 6,33 참조). 그 외의 다른 것은 별의미가 없으며 아예 하느님의 나라에서 제외 될 수 있는 것들이다.
오늘의 본기도도 바로 이러한 사고를 배경으로 하여 변화무쌍한 이 세상살이에서 결코 눈을 돌리지 않으시는 하느님께 영원히 멸하지 않는 행복을 청하고 있다 :“주께 바라는 모든 이를 보호하시는 천주여, 당신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없사오니, 우리에게 자비를 풍성히 베푸시어, 우리로 하여금 주의 섭리와 인도로 지금 현세의 사물을 사용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영원한 세상에 둘 수 있게 하소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찾는다는 이유로 세상을 멀리하거나 이웃에게 무관심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즉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현세의 모든 사물을 현명하게 사용하여 어디에서나 그분의 발자취를 발견하고 또한 솔로몬이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의 백성을 위해 청했듯이 우리도 우리 형제들을 도와 그분을 ‘따르기’ 위해 청하기를 바라실 뿐이다.
“하늘 나라는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 다니는 것에 비길 수 있다”
이제 오늘 복음을 보자. 오늘 복음은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내용을 더 밝히 비춰주는 한 쌍의 비유 즉, 감추어진 보물의 비유와 값진 진주의 비유를 제시하고 있다 :“하늘 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또 하늘 나라는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 다니는 것에 비길 수 있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면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44-46절).
일반적으로 생각해서, 마태오복음에만 있는 이 두 개의 비유는 하나의 동일한 가르침을 반복이라는 기술을 통해 그 내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두 개의 비유에는 다같이 값진 보물을 찾자마자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팔아버리고 그 보물을 얻으려 애쓰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 짧은 두 개의 비유가 가르치는 있는 바는 정확히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주인공-적어도 첫장면의- 이 위험부담이 매우 큰 그 일을 하게 되는 ‘기쁨’의 측면에서 보고자 한다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44절). “결정적인 요점은 그 비유의 두 주인공들 편에서 가진 것을 다 팔려고 내놓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결정하게 된 동기이다. 즉 그들이 발견한 것의 엄청난 가치에 압도되었다는 점이다. 하늘 나라가 곧 그럴 것이다. 하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기쁜 소식은 모든 것을 압도하며 가장 큰 기쁨을 주고 또한 모든 생명을 가장 감동적인 봉헌으로 이루어진 하느님의 공동체의 완성에로 안내한다”(J. Jeremias, Le Prabole di Gesu, Paideia, Brescia 1967, p.238).
이처럼 모험적 행위가 가져다 주는 ‘기쁨’의 근거를 고려해 본다할 지라도 비유의 초점은 분명히 엄청난 가치를 발견하고서 그 앞에서 하게 되는 모험을 무릅쓴 결정의 ‘용기’에 있다. 그 엄청난 가치는 바로 그분 곧 자신의 현존으로써, 자신의 육체적 구원의 활동으로써, 자신의 가르침으로써 또 자신을 따르라는 권고로써 자기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시는 그리스도이시며 또한 ‘하느님의 나라’(마태 12,28 ; 루가 17,21 참조)이다.
그러므로 가치로 볼 때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에 비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분명할 진대 기다리거나 망설이거나 할 수가 있겠으며, 잃어버리느냐 벌어들이느냐 하는 것을 계산하고 있을 수가 있겠는가? 그분 때문이라면 생명조차도 버릴 수 있지 않겠는가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태 10,39).
하느님의 ‘배타성’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야기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그 ‘좋은 기회’(2고린6,2 참조)가 지금 주어지고 있으며, 다시 또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염려 때문에 그러한 결정의 절박성이 야기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그런점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절박성은 내가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풍요로운 ‘부’ 즉 가장 농도 짙은 구원의 기회 때문에 야기외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선뜻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나의 그러한 의지를 강인하고도 용기있게 실현시켜 나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하찮은 일들을 포기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오직 찰나적인 어떤 순간만을 기다린다거나 우리 자신의 것들도 함께 가지고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그렇게 한다면 훨씬 더 좋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착각하는 것은 이미 하느님의 나라를 경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배타적인 분이시다. 그러나 그 배타성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행사되지는 않는다. 하느님은 존재론적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의 존재를 위해 다른 피조물을 배제해야 하는 식으로자리를 차지하는 창조된 실체가 아니시다. 하느님의 현존은 인간적인 것을 축출하지 않고 오히려 거기에 들어가 그것을 변모케 한다. 그러나 이때 인간의 편에서는 하느님의 그러한 활동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말하자면 그분께 온전히 자신을 내 맡겨야 한다. 배타성을 지닌 하느님의 현존은 죄에 물들지 않은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여 새롭게 변화시켜준다.
이처럼 하느님은 인간을 거부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의 손길이 거부되고 있는 인간적 ‘부’는 실제로 하느님께 대해 배타적이다. 그렇게 되면 가장 좋은 것이 가장 나쁜 것으로 되고 만다. 그 결과 배타적인 인간 중심적 삶을 고집하며 살게 되고 인간적 부에 대한 무한한 향락은 마침내 유일한 진주를 얻을 기회를 잃어버리게 할 것이다. 하느님의 자리에 인간이 들어서게 할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다른 모든 것을 거부할 때 만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Y. De Montcheuil).
비록 모든 것이 하느님의 나라로부터 배제되는 것은 아니나 모든 것은 ‘새롭게 변모’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오늘 복음이 말해주고 있는 보물이 감추어져 있는 밭 또는 값진 진주가 묻혀 있는 밭을 사기 위해 ‘가진 것을 다 팔기를’ 지극히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지혜’이다. 오늘 복음 마지막 부분에서는 참된 제자의 모습을 다음과 같은 짤막한 비유로 표현하고 있다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는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52절). 주석가들은 보통 이 구절에서 마태오 자신의 자서전적 체험을 발견하다. 즉 마태오는 이와 같은 식으로 자기 자신의 개인적 체험뿐만 아니라 자기의 복음 저술 활동의 의미도 서술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의 복음은 지극히 아름다운 구약성서의 모든 내용(‘낡은 것’)이 그리스도라는 근본적인 ‘새로운’빛에 비추어 재해석되어 모아진 무한한 가치를 지닌 보물이다.
이 짤막한 비유의 내용을 주님의 모든 제자에게 적용시킨다면 그것은 예수 자신에 의해 그리고 초세기 그리스도 신자들에 의해 유산으로 남겨진 복음의 무한한 ‘부’를 더 깊게 하라는 권고 일 뿐 아니라, 그 복음의 빛과 힘이 우리에게 거듭거듭 제시해줄 새로운 생활 체험과 복음을 합쳐 나가라는 권고일 수도 있다. 이 방법이야말로, 모든 세대가 처음부터 발굴해서 세상에 드러내야 할 ‘보물’의 진가를 발견하고 또한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이다. 이로써 그리스도 신자들이 매일매일 써 나가야 할 그 유명한 ‘다섯번째 복음’이 이루어질 것이다 :“나에게 다섯 번째 복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사람들이 현재 쓰고 있고 또 마지막 구원의 순간까지 써 나가게 될 영원한 복음이라고 대답하겠다”(M. Pomilio, Il quinto Evangelio, Rusconi, Milano 1975, pp. 89-90).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사도 바울로에 의한 지극히 짧으면서도 압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제 2독서도 크리스찬적 생활의 진가에 대해 깊이 사고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주시는 절대적 사랑의 선물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으로부터 생각하셨고(에페 1,3-14 참조) 모든 것-생명과 죽음, 슬픔과 기쁨, 건강과 병, 성공과 실패 등-을 우리의 ‘선익’을 위해 마련하셨으며 또한 ‘미리 정하셨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활을 통해 “그분의 아들의 모습”(로마 8,29)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만이 하느님의 나라가 확장되며 또한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에게 전달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불러주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로마 8,28-30).
보다시피, 하느님께서는 이미 당신 계획 속에 우리를 ‘영광스럽게 해주실’ 계획까지도 세워놓으셨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우리를 영원으로부터 사랑하신 분을 ‘다시 깊이사랑하는 것’이다!

연중 제17주일
1. 김정진 신부(가)/ 2 2. 김창린 신부(가)/ 3
3. 최기산 신부(가)/ 4 4. 강길웅 신부(가)/ 7
5. 김몽은 신부(가)/ 9 6. 김몽은 신부(가)/10
7. 조순창 신부(가)/10 8. 최인호 작가(가)/11
9. 교구 주보(가)/13 10.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가)/14
1 연중 제17주일 마태 13,44-52 (가) 보물과 진주를 얻은 기쁨
김정진 신부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자주 말씀하신 것을 복음 성서를 통하여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주일의 밭에 묻힌 보물 또는 장사꾼의 진주에 관한 비유 말씀도 하느님 나라에 대한 좋은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는 마치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 같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다시 묻어 두고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고 간단명료하게 천국에 대하여 설명하십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비유에 나오는 사람은 아마도 어떤 대농가에 고용된 가난한 품팔이 꾼이라 생각됩니다. 어느날 그는 파종된 밭을 갈려고 겨릿소를 몰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밭을 갈다가 갑자기 소 한 마리의 다리가 푹 빠졌습니다. 그 가난한 일꾼은 웬일인가 하고 살펴 보았습니다. 그는 처음엔 자기의 눈을 의심하였ㅈ디요. 소의 발이 빠져 있는 그 구멍에서 무엇인가 이상하게 반짝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까이 가서 안에 손을 넣어 만져 보니 그것은 금화가 가득 차 있는 단지였습니다.
그는 하도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지요. 어려서부터 그를 따라다니던 가난과 근심은 이제는 영영 이별을 고하게 되겠구나 하며 어떻게든지 그 보물을 손아귀에 넣어 보려고 궁리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나는 이 밭을 반드시 내 소유로 만들어 저 보물을 몽땅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그 구멍을 재빨리 손으로 다시 메우고 기쁨에 벅찬 설레는 가슴으로 겨릿소를 몰고 저녁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그는 이웃사람들이 이상히 여기는 중에도 자기의 가난한 소유물 전부를 팔아가지고 이런 사정을 까맣게 모르는 밭 주인에게 가서 그 밭을, 또한 그 보물도 함께 사버렸습니다. 그는 일약 부자가 된 것입니다.
다음 예수님은 즉시 또 하나 다른 비유를 이에 덧붙여서 말씀하십니다. <또한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꾼과 같다. 이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고. 앞의 보물의 비유에는 가난한 사람을 다루었으나 이번에는 부유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희랍말의 장사꾼이라면 부자의 상인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 돈 많은 진주 상인은 각 도시를 두루 다니면서 값진 진주를 사려고 하던 차, 그는 갑자기 어떤 상점에서 생전에 처음 보는 귀중하고도 멋진 진주 한 개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이 진주가 자기 눈으로 본 어떠한 진주보다도 귀중한 것이며 또한 자기의 전재산보다도 더 값이 나간다는 것을 즉시 알았습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는 이 진주를 내 소유로 해야겠다고 단단히 결심한 그는 즉시 예약을 한 후 설레는 마음으로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의 전재산을 매각하고 그 진주를 구입합니다. 이제 나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호가 되었구나 하며 그는 매우 흡족하는 빛이었습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이 두 개의 비유가 본시 의도한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교훈이란 간단히 말해서 자기 일생에 가장 귀중한 보물이나 진주와 같은 하느님 나라를 찾아 얻은 이들이 맛보는 최고의 기쁨이나 만족감입니다. 가난한 고용이건 돈 많은 상인이건 하등의 구별 없이 하느님 나라를 찾아 얻은 기쁨은, 일생에 지녔던 모든 것을 그것이 제아무리 큰 부귀이거나 아무리 좋았던 영화일지라도 허무하고 무가치하게 보이게 하며 가장 귀중하게 여겼던 것이라도 무조건 버리게 하며 조그마한 미련도 가지지 않게 합니다.
<하느님 나라>라고 하는 저 보물이나 진주 앞에는 빈지와 부자의 차이는 하찮은 것이어서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는 우리 생에에 가질 수 있는 모든 것보다도 더 귀중하고 더 가치 있는 것이며, 일생 동안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큰 기쁨과 희열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그 고용인이나 돈많은 상인이 보화나 진주를 얻어 만났을 적에 느꼈던 저 굉장하고도 압도적인 기쁨이 우리의 마음을 가득히 채워줄 것이며, 아니 그 이상의 행복감을 안겨다 줄 것입니다.
신자여러분! 우리는 과연 밭에 묻힌 값진 보물을 찾아내기 위하여 또한 진주를 구하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며 정성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팔아서 즉 세상의 온갖 부귀와 영화를 희생하면서 <하늘나라>라는 우아하고 아름답고 값진 보배와 진주를 찾아 얻어야만 하겠습니다. 하늘나라는 가장 값진 것입니다. 그리고 값진 진주와 보물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만큼 큰 희생을 치루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2 연중 제17주일 마태 13,44-52 (가) 어떻게 하면 천국에 들어갈까?
김창린 신부
오늘 주일 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천국에 대하여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즉 “하늘 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습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가지고 그 밭을 삽니다”(마태오 13,44).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서 보물이 묻힌 그 밭을 사는 것과 같이 우리는 재물에 욕심을 버리고 모든 정성을 다하여 하느님을 공경하고 섬겨야만 천국을 얻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몇 가지만 생각해 봅시다. 물욕이 있어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든가, 또 하느님을 섬김에 있어 무성의하다든가 해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마태오 5,3)하심과 같이 가난을 원망하지 않고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업에 아까운 맘없이 즐겁게 바칠 수 있는 가난한 마음을 간직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마태오 7,21)라고 하신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여, 우리 이웃에 사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알고 믿게 되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즉 전교를 많이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죄수 중 하나는 “우리가 한 짓을 보아서 우리는 이런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저분이야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냐? 그리고 나서 그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루가 23,41-42)하고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해두지만 오늘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오”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며 고백성사를 타당히 받고 죄의 사함을 받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시오”(루가 13,24)하고 예수께서는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바쁜 가운데도 빠짐없이 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아침 저녁기도를 늘 바쳐야 합니다.
이상 몇 가지 생각해 본 바와 같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주일에나 겨우 미사에 참여하고 그나마도 열심없이 덤덤하게 참여하고 가끔 빠지는 것을 예사로 해서는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마음 한 뜻으로 우리 주 하느님을 정성을 다하여 섬기며 적극적인 자세로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가면서 교회 활동에 심혈을 기울입시다.
3 연중 제17주일 마태 13,44-52 (가) 가고 싶은 하느님 나라
최기산 신부
스위스는 은행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각 국의 부호들이 안정성을 이유로 어마어마한 돈을 맡겨놓았단다. 일부 은행에는 독재자들이 국민들의 피와 땀을 쥐어짜서 마련한 돈이 가득하다는 말이 들리니 말하자면 장물아비 은행이 있다는 것이다.
은행의 기능은 남의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여 주는 곳이기에 공공의 금고인 셈이다. 그러나 요즘은 돈뿐만 아니라 귀중품이나 땅문서 등도 맡아서 잘 보관해 주는가 보다.
2000년전 이스라엘에는 은행이 없었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이나 귀중품을 앞마당이나 뒷마당에 묻어두었다. 그때나 이때나 도둑은 활개치고 다녔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도 강도를 만나서 다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유다도 슬금슬금 공금이 들어있는 전대 주머니를 열고 돈을 꺼내 썼다는 기록이 있다. 어쨌거나 돈이나 보물을 허술한 집에 보관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땅을 파고 묻어두었다. 그러다 갑자기 온 가족에게 변고가 생기면 그 보물은 그대로 오랜 동안 묻혀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화재가 나서 모두 생명을 잃는다든가 혹은 갑작스런 폭우에 온 가족이 몰살되거나, 때로는 강도가 들어와서 가족을 죽일 수도 있다.
가난한 자의 횡재 어떤 가난한 사람이 남의 집에 가서 일꾼처럼 일을 해주게 되었다. 배운 것 없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어서 가난하게 근근이 남의 일을 해주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소망이 있다면 그저 몸이나 건강해서 남의 일이라도 열심히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병이라도 나면 입에 풀칠을 할 수도, 부인과 자식들을 먹여 살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날도 그는 남의 밭을 가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갈다가 무엇인가가 보습에 걸려서 쟁기가 더 이상 나가지 못했다. 이게 웬일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자루 같은 것이 보였다. 그것을 나무 꼬챙이로 헤집고 보니 보물이 가득하였다. 때마침 주인이 멀리서 소리쳤다. ꡒ무슨 일이냐?ꡓ 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땀이 났다. 그는 얼른 보물을 덮으며 소리쳤다. ꡒ아무것도 아닙니다. 주인님.ꡓ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는 그 보물을 가져 올 수가 없었다. 그 보물을 가져오려면 그 밭을 사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며칠 뒤 동네에 소문이 돌았다. 주인이 그 밭을 팔려고 내놓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인이 욕심쟁이라서 비싸게 내놓았다는 것이었다.
이 일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밭을 사기로 결심했다. 집안에 있는 것은 모두 내다 팔았다. 머리칼도 돈이 나간다면 짤라서 팔 판이었다. 그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사돈의 팔촌까지 찾아다니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애원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말했다. ꡒ그 친구 정신나간 거 아냐? 그 쓸모 없는 땅을 비싸게 사서 무얼하려고 그래. 무엇에 씌웠나봐.ꡓ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 밭의 가치를 그 일꾼은 알고 있었다. 그는 그 땅을 꼭 사야 했다. 그 땅을 산다는 것은 그에게 행복의 보증과 같은 것이었다. 해방과 같은 것이었다. 남의 집에 가서 일꾼으로 일하며 설움 받고 사는 자신에게 그 땅은 가난으로부터 해방, 업신 여김받음에서의 해방과 같은 것이었다. 그 땅은 그에게, 그의 가족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귀한 것이었다.
복음의 메시지 여기서는 윤리적인 면을 따지지 않는다. 그것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일꾼이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해줬을 때 발견한 보물을 주인에게 말했어야 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그 일꾼이 밭에 묻힌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있는 힘을 다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선 하느님 나라의 귀함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하느님 나라는 보물과 같은 것이다. 그 보물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있는 것을 다 팔아 밭을 사는 것처럼 있는 수단을 다 동원하여 그 나라를 차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가치를 깨달은 자의 노력이 정신나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이란 저 일꾼이 걸어갔던 인생의 역정처럼 그렇게 힘들고 희망이 없어 보인다. 돈 있는 자도 결국은 늙고 병들고 나름대로의 고난이 가득하다. 명예있는 자에게도 고난은 함께 한다. 희망이 없어 보이던 일꾼에게 보물이 나타났듯이 우리에겐 하느님 나라가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어둠에 빛을 선사하셨다. 이제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오직 하느님 나라에만 희망을 두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사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 보물을 발견했다는 것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완전히 내 것으로 쟁취할 때까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자신이 세속에서 가졌던 것들을 가치없게 여기며 그것들을 내다 팔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지금 소유한 것들에 가치를 두게 되면, 진정한 보물을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하느님 나라는 내 인생 전체를 걸고 꼭 사야 할 보물이다. 그것보다 가치있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가고 싶은 하느님 나라 만세!
4 연중 제17주일 마태 13,44-52 (가) 하느님의 보물은 인간
강길웅 신부
제1독서 Ⅰ열왕 3,5.7~12 (너는 지혜를 달라고 청하였다)
제2독서 로마 8,28~30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다)
복 음 마태 13,44~52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있는 것을 다 팔아 그밭을 산다)
귀한 보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며 그리고 대단히 흐뭇한 일입니다. 보물이란 값진 것이기 때문에 보물을 소유함으로써 자신도 값지게 되는 착각도 합니다. 또한 보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불안한 일입니다. 그것은 너무도 좋기 때문에 남들이 탐을 내게 되며 잃어버릴 염려와 뺏길 위험도 있습니다.
옛날 예수님이 사셨던 팔레스타인 지방은 전쟁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물을 집에 두지 않고 자기만이 아는 땅속에다 묻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나 필요한 때에 몰래 꺼내 쓰곤 했습니다. 그런데 보물을 감춘 사람이 갑자기 죽거나 무슨 사고를 당하게 되면 감춰진 보물은 임자 없이 묻혀져 있다가 그것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에게 소유권이 돌아가곤 했습니다.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고 이것은 법으로도 보호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남의 밭에서 일하다가 땅속에 묻힌 보물단지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냥 갖는다면 남의 땅에 있는 재산을 훔친 셈이 됩니다. 그래서 얼른 도로 파묻고는 집에 가서 재산을 다 팔아서는 그 밭을 비싼 값으로 삽니다. 왜냐하면 그 보물은 자기의 전 재산보다 훨씬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다 나은 것에 삶을 투신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수입을 위해서 부지런히 땀흘리고 있으며 더 높은 자리를 위해서 또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의 소중한 보물을 재물과 권력과 명예에서 추구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실상 대단히 가치있고 의미있는 보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보다 더 위대한 보물도 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솔로몬은 ‘너에게 무엇을 해 주면 좋겠느냐’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명석한 머리’를 달라고 청했습니다. 명석한 머리란 문자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 머리를 말합니다. 또한 ‘지혜’라는 단어는 구약에서는 자주 하느님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독서를 이해할 때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어서 하느님을 구하게 되면 나머지 것은 덤으로 그냥 다 얻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하느님의 나라를 얻지 못한다면 그는 불행합니다. 우리가 세상 진리는 다 안다고 해도 하느님의 진리를 모른다면 그는 불행합니다. 참으로 불행합니다. 영원히 사는 진리, 참 생명을 가진 삶이 아니라면 세상 것은 헛됩니다. 차라리 온 세상을 다 잃는다 해도 하느님의 나라를 얻을 수만 있다면 바로 그가 행복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참 보물을 얻기 위해서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께서도 하늘 나라를 보물에 비유하여 이 보물을 찾는 사람은 가진 것 모두를 팔아서라도 그것을 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관장 자캐오(루가19,1~10참조)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이런 그가 우연히 주 예수님을 만난 뒤로는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자기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했으며 나머지로는 자기가 속였던 사람들에게 네 갑절로 갚아 준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 때문에 하느님 나라의 보물을 발견하고 나서는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팔았던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된 보물을 얻기 위해 자신의 생애를 희생했는지 모릅니다. 바오로 사도도 ‘내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필립 1,21)라고 판단하여 그리스도를 위해서 나머지를 모두 버렸으며 많은 성인 순교자들이 진정한 보물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도 똑같이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보물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인간입니다. 인간은 실로 하느님께서 포기할 수 없고 취소할 수 없는 놀라운 보물입니다.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위대한 보물이라는 사실조차도 모릅니다. 하느님께선 바로 우리를 얻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파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며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사시기 위해서는 그 아들마저도 아낌없이 파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얻기 위해 여러분의 생을 아낌없이 바치고 있습니까? 우리가 자주 잘못 판단했던 보물은 참 보물을 얻는 데 아주 큰 방해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열심히 수고하고 땀흘려서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해야 하지만 그러나 진정한 보물은 하느님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만이 여러분의 보물이요, 하느님의 나라만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얻어야 할 보물입니다.
5 연중 제17주일 마태 13,44-52 (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리라
김몽은 신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여러 영역이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태어나 부모 슬하에서 교육을 받으며, 많은 경험을 겪어가면서 살아간다. 친구와 우정도 나누고 갖가지 사업과 여러 방면에 종사하며 살아나가고 있다. 이렇게 살아나가는 것을 평범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삶 속에서도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부르심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영광을 받는 것이다., 그러한 구원된 삶이 가장 가치 있는 보물이다.
그 보물은 어떤 밭에 묻혀 있는데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는 것은, 곧 평범한 삶에서부터 새로운 삶, 아주 풍요롭고 보람있는 삶으로 전환한다는 것을 뜻한다. 곧 하늘나라를 위한 삶은 회개하는 삶이요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삶이다.
이 비유에서 배울 점은, 보물은 우연히 찾은 것이 아니라 그날 그날의 일을 성실히 하다가 찾는 것이다. 가장 값진 것을 위해 자기 존재를 남김없이 바치며 매일의 생활을 열심히 살아갈 때 참된 행복, 즉 하느님과의 일치된 생활이 얻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은 하느님의 손길 아래에 있으며, 모든 것은 하느님께 돌아가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아무도 피할 수 없음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말의 날에 우리의 삶이 완전히 판명되어, 택함과 버림을 당하는 것이다. 교회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포용하나 그물을 물가로 끌어낸 후, 좋은 고기와 잡스러운 것을 가르기 시작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선악의 식별을 하실 때가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하겠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과도 같은 것이며 “값진 진주”라고도 했으니, 이것은 하늘나라가 얼마나 황홀하게 아름다운 곳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고로 이 말씀을 잘 알아듣는다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6 연중 제17주일 마태 13,44-52 (가) 영생에의 언약
김몽은 신부
콩심은 데 콩 나고 팥심은 데 팥 난다. 인과응보란 선행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오늘의 노력은 내일의 성과를 약속한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을 찾아보자.
어느 병원에 지독한 구두쇠가 간암으로 입원했다. 그는 “선생님 제 병을 고쳐 주시면 거액을 드리리다”하고 애원했다. 의사는 웃으며 말했다. “당신 생명을 얼마에 살 수 있습니까? 돈으로 못 사는 것이 생명입니다. 현대 의학으로도 간암을 치료할 방도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부자는 화가 나서 되돌아갔다.
지상 생활을 인생의 최고 보람으로 착각한 그는 마침내 귀중한 생명이 간암으로 좀먹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년이 지나 다시 병원을 찾은 부자는 “선생님, 1억을 드리리다. 살려주시오”라고 애원했다. 의사는 냉정히 말했다. “금액이 적은데요. 생명은 하나 뿐이잖습니까?” 부자는 화가 나서 “내 일생에 당신 같이 지독히 욕심 많은 사람은 처음이요!”라고 했다. 의사가 대꾸했다. “10억이라도 결코 비싸지 않아요. 고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나면서부터 언젠가는 하느님께 돌아갈 언약을 했다. 그러나 이 언약은 영원한 생명, 곧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영원히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언약이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마태오 7:7). 여러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청하기도 전에 벌써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마태오 6:8)
7 연중 제17주일 마태 13,44-52 (가) 영생의 보화(복음)위해 최선을 다하자
조순창 신부
학교의 방학이나 직장의 휴가로 시원한 산이나 물가로 휴가 떠나는 분들이 많아서, 한여름에 성당도 한산합니다만, 그것도 그림의 떡인 양 매일 땀흘려 일해야 하는 서민 대중이 더 많습니다. ‘휴식의 참된 진미는 일하는 사람만이 안다’는데, 제대로 대우도 못 받고 일에 지친 우리들이지만, 그대로 열심히 일하는 중에 잠시의 휴식은 황금 같을 것입니다.
옛날에 때때로 크고 작은 전란을 견뎌야 했던 불안한 시절에, 돈이나 보화를 안전하게 맡길 곳도 없는 때에, 값진 보물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땅에 숨겨 묻어 두는 예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 보물은 발견한 사람이 주인이 되던 때라, 이상한 지도를 하나 얻으면, 일하지 않고 평생 호강하려고, 보물섬을 찾아, 평생 갖은 고생을 하는 ‘보물섬 얘기’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어느 가난한 소작 농부가 제 직업이 천직인 줄 알고, 매일 부지런히 땅을 파며 일하다가, 우연히 보물을 발견하고, 기쁨에 가득 차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물론, 그 밭 주인에게 알리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이지만, 여기서 중점적으로 교훈하려고 하는 것은, ‘보화를 발견했다’는 사실과,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데에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한 소작 농부는 우리들이요, 밭 주인은 하느님이요, 보물은 복음이요, 기쁨은 하늘나라의 복음대로 삶으로써 얻는 행복이요, ‘가진 것을 다 팔았다’는 것은, 신앙을 위해서 재물이나 명예나, 학식이나 시간이나, 내게 소중한 모든 것, ‘목숨까지도 바친다’는 것을 말하며,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는 것이 영생의 보화를 얻는 방법임을 명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영생의 보화인 복음을 발견했으나, 그 보화가 완전히 내 차지가 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을 다 바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상태입니다.
보화의 진가를 모르면, 신덕이 부족한 탓입니다. ‘다 바치면 나는 어떻게 사나?’하고 불안해하면, 망덕이 부족한 탓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줄 모르고, 봉사할 줄 모르고, 자선할 줄 모르고, 헌금도 능력 있으면서 충분하지 못하고, 아깝게만 여기면, 애덕이 부족한 탓입니다.
“주여! 우리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주옵소서! 하느님 뜻대로 살아가는 참행복을 주옵소서!”
8 연중 제17주일 마태 13,44-52 (가) 가짜 목걸이
최인호 작가
소설가 모파상(1850-1893)은 프랑스의 노르망디에서 태어났습니다. 12세부터 별거한 어머니 밑에서 문학적 감화를 받고 자랐으며 청년 시절에는 플로베르에게 지도를 받아 작가로 성장했습니다. 30세에 쓴 「비계덩어리」가 처녀작인 그의 장편소설 「여자의 일생」은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인」과 함께 사실주의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신경질환으로 고통을 받다가 자살을 기도, 정신병원에서 43세의 한창나이에 어두운 일생을 마친 천재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 중 「목걸이」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단편소설일 것입니다.
마틸드는 호화로운 생활을 꿈꾸며 사는 여자였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남편과 함께 장관이 주최하는 파티에 초대되었습니다. 남편은 아껴두었던 돈으로 옷을 사주었습니다. 친구인 프레스체 부인에게서 진주목걸이(원작에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려 치장하고 파티에 참석한 마틸드는 누구보다 아름다웠습니다. 파티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서 그녀는 목걸이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그들 부부는 전재산을 처분하고 모자라는 돈은 빚을 얻어 빌렸던 목걸이와 똑같은 것을 사서 프레스체 부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러고나서 두 사람은 빚을 갚기 위해 10년이나 고생하게 됩니다. 더러운 곳에서 먹을 것도 못먹고, 마틸드는 빨래일을 하면서 고생을 하는 동안 그 아름답던 얼굴은 비참하게 되었으며, 머리카락은 반백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빚을 다 갚았을 무렵, 우연히 프레스체 부인을 만나게 되자 다소 자랑스레 그간의 일을 고백하게 됩니다. 얘기를 다 들은 프레스체 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돌려준 그 목걸이 값을 갚느라 10년이나 고생을 했단 말이예요? 이를 어째! 마틸드, 그 목걸이는 싸구려 가짜였어요.”
주님은 하늘나라의 신비를 가르쳐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십니다. 주님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하늘나라를 설명하시는 것을 시작으로 가라지, 겨자씨, 누룩 등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로 비유하시다가 마침내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보물’, ‘진주’의 비유로써 하늘나라를 설명하십니다. “하늘나라는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에 비길 수 있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면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마태 13,45-46).
우리들의 인생이란 주님의 말씀처럼 좋은 진주 하나를 찾아다니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찾아다니는 진주는 대부분 모파상의 소설처럼 가짜인 것입니다. 그 진주는 가짜이므로 오히려 진짜보다 더 화려하며 하룻밤의 무도회에서는 샹들리에 불빛 아래서 눈부시게 반짝일 것입니다. 가짜 목걸이에 몰려드는 인기와 갈채야말로 우리들을 황홀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 하룻밤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짜 목걸이에 취해서 아까운 인생을 허비하며 가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진짜 진주목걸이입니다. 주님의 진주목걸이야말로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모두 팔아 그것을 살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천상의 보물인 것입니다.
9 연중 제17주일 마태 13,44-52 (가) 하느님의 사랑에 매료되어
교구 주보
오늘 마태오 복음(13,44-52)에는 하느님 나라와 관련된 예수님의 3가지 비유(보물, 진주, 그물)가 나오는데 각 비유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보물과 진주 장사꾼의 비유(마태 13,44-46)
이 비유는 ‘하늘나라는’으로 시작된다. 하늘나라는 밭에서 우연히 보물을 발견하고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과정 전체와 같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선 전쟁이 잦아 밭에 보물단지를 숨겨 두고 피난하는 수가 있었는데 피난간 사람이 죽은 경우에는 보물단지가 그대로 있게 된다. 그런데 소작인이나 품꾼이 남의 밭을 갈다가 우연히 보물단지를 발견하면 그 보물단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자기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그 밭을 산다. 그러면 밭에 묻힌 보물단지는 합법적으로 그의 소유가 된다. 진주 장사꾼의 비유도 보물의 비유와 흡사하다. 다만 보물의 비유에서는 보물을 우연히 발견하지만 장사꾼의 경우엔 진주를 찾아다니다 발견하는 점이 다르다.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사신 분이시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다스림, 즉 사랑이신 하느님(1요한 4,8.16)의 보살핌이다. 예수께서는 감춰진 보물과 진주와 같은 하느님의 사랑에 매료되어 사랑을 외치고 몸소 그 사랑을 보여주는 일에 헌신하신다. 이 비유에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면 다른 모든 것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담겨있다. 예수께서는 실제로 그렇게 사셨고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그렇게 투신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이루는 데 투신해야 한다.
2. 그물의 비유(13,47-51)
이스라엘에선 금기식품법이 있어서 물고기를 잡으면 식용과 비식용으로 가린다. 물고기 중에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은 바다에서 사는 것이든지 개울에서 사는 것이든지 먹을 수 있지만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절대로 먹어서는 안된다”(레위 11,9-12; 신명 14,9-10). 어부가 물고기를 가리듯이 하느님께서도 종말 심판 때 선인들과 악인들을 가리신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가라지의 비유”(마태 13,24-30) 경우에는 종말 심판의 판가름이 있기 전에는 선인들과 악인들이 공존하는 법이니 섣불리 단죄하지 말라는 교훈이 들어있다. 종말 심판 때 심판관인 인자(사람의 아들)가 자비를 행한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무자비한 이들에게는 영원한 벌을 선언한다(마태 25,31-46).
3. 맺음말(13,52)
52절은 마태오 복음서 13장 비유설교 전체의 결어이다. 여기서 “새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이요, “낡은 것”은 구약성서와 율법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율사(51절: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사람)는 예수님의 언행에 비추어 구약성서와 율법을 풀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복음을 익혀서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발견하고 거기에 모든 것을 바쳐 투신해야 한다. 한마디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해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영생(永生)에 이르는 길이다.
10 연중 제17주일 마태 13,44-52 (가)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신앙인의 참 행복
얼마 전에 대학을 다니다 군대에 간 청년신자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안부의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삶에 대해서 솔직히 써내려 갔다.「‥‥신부님, 집을 떠나니 모든 게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밤늦게 들어가도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맛있는 식사, 추울 때 몸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방, 목마를 때 시원하게 마시는 한 잔의 맥주, 늘 일상적인 것이 그렇게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부모님께도 너무 잘못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곳 전방에서는 몇 달씩 미사도 볼 수 없고, 고백성사도 보고싶어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보초를 서면서 꼭 묵주기도를 바치는 데, 그 시간이 저는 제일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기도 중에 저는 주님이 항상 가까이 계시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부모님, 친구들을 위해서도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밤에 보초를 서는 게 힘들다는 데, 저는 오히려 행복합니다. 주님을 알고, 믿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지,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신앙인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보물과 진주 그리고 그물의 비유
오늘 복음도 하느님의 나라를 보물과 진주, 그리고 그물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보물과 진주의 비유에서는 우연히 가치 있는 보물을 발견했을 때의 큰 기쁨과 행복을 주제로 삼고 있다. 즉 인생사에서 발견된 보물의 가치는 세상에 모든 것을 초월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상의 모든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나에게 귀중하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대가와 희생을 치르고 라도 그것을 차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마치 하느님의 나라가 이런 것이다. 인간의 구원에 대한 기쁜 소식은 모든 삶의 가치를 초월하는 것이다.
또한 그물의 비유는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종말론적 비유이다. 즉 그물에서 먹을 수 있는 고기와 그렇지 못한 것을 추려내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고이다. 지금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참고 기다리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느님의 때가 오면 그물에서 고기를 추려내듯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구분될 것이다. 그 일을 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보물을 찾는 눈과 마음
세상을 살면서 중요한 것은 가치질서를 바르게 알고 깨닫는 것이 아닐까? 보물과 진주가 소중한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문제는 보물과 진주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눈이 아닐까. 돌에 섞여있어도 빛나는 진주와 보물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다면 엉뚱한 것을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실수 할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우리 일생에서 비일비재하다. 전혀 가치 없는 것을 뒤쫓아 허송세월하고 돌멩이를 진주인양 착각하고 부둥켜 안고 살수도 있다.
그것의 진정한 가치가 밝혀지는 날 얼마나 실망하고 낙담하겠는가.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모두 가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제일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가치질서를 올바르게 알고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생명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되찾아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주님을 통해서,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이루어진다.
우리는 예수님을 삶의 최고 가치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의 눈이 떠지고 올바른 가치결과를 회복할 수 있다. 과연 나는 무엇을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살고있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올바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수가 많다. 늘 우리주위에 있는 가족, 친구, 은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늘 우리주위에 일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어느 시간이 오면 홀연히 우리의 곁을 떠나고 없어질 귀중한 존재들이다.
또한 내가 지니고 있는 신앙 역시,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절실하게 깨닫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주님을 알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인가?
연중 제 17 주일
제 1 독서 : 1열왕 3, 5.7-12
제 2 독서 : 로마 8, 28-30
복 음 : 마태 13, 44-52
제 1 독서 : 기브온에서 솔로몬이 하느님을 만나는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왕은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중재자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느님께서는 왕을 통해서 백성을 다스리고 왕은 그분의 도구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왕과 판관으로서 솔로몬이 주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단순히 혈통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의해서 왕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솔로몬은 왕으로서의 자기 직무를 개인적인 특권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일하는 일꾼으로서 스스로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 개인적인 요구를 하지 않고(11절) 백성의 선익을 위해 자기 직무를 잘 감당할 능력, 즉 지혜를 청하였다. 공동번역에 “명석한 머리”(9절)라고 번역된 단어는 지혜를 뜻한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의 어원(byn)은 분별을 의미한다. 즉 선한 것과 악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잘 가려내는 능력을 말한다.
제 2 독서 : 구원에 있어서 인간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구원의 시작은 하느님의 선택과 부르심에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사랑으로 택하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모습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계획하셨다. 그리스도는 하느님 아버지의 완벽한 모상이다(골로 1, 15 참조). 아버지께서는 당신 아들의 모상을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새롭게 창조하신다. 하느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모상을 지니도록 하는 것은 내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며(2고린 3, 18 참조) 결국 마지막 때에 이르러서야 충만히 완성될 것이다.
30절은 이 점진적인 과정을 말해 준다. 즉 선택과 부르심, 의화라는 역동적인 과정을 거쳐 영광에 이르게 된다. 이 영광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입었고 그분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이런 과정의 종점은 영광이라는 것이 분명한데,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영광의 첫 선물에 이미 참여하고 있다. 데살로니카 후서 2장 13-14절과 에페소서 1장 11-13절에 따르면, 그 영광의 첫 선물은 주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복 음 : 불구덩이에 처넣을 것이라는 두 개의 위협적인 언사(42절과 50절)가 테두리 역할을 하는 가운데 “묻혀있음과 발견함”이라는 주제가 기쁨으로 표현된다.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가진 것을 모두 팔아야 한다는 비유이다.
늘상 다니던 길옆에 있는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다는 비유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환경, 내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처지, 날마다 내가 해야 하는 반복되는 일들, 날마다 내게 생기는 일들이 바로 내가 삶의 보배로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하느님을 만나야 하고 또 그분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곳은 내가 두 발로 서 있고, 일상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그곳뿐이다. 모두들 인생의 진주를 찾아다니지만(45절) 그 진주는 내 안에, 내 삶 속에 감추어져 있다. 바로 여기서 그 진주를 발견하지 못하면 불구덩이에 처넣어져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지난주에 이어 하늘나라에 관한 비유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귀한 보물을 발견하고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발견(Finding)은 깨달음, 파는 것(Selling)은 결단, 사는 것(Buying)은 결단을 실천에 옮기는 행동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이르는 과정은 이 세 단계를 거치는 데 사람에 따라서 이 과정의 속도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빨리 발견하여 무언가 깨닫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생의 마지막에 진리를 발견하고 깨닫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팔고 사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결코 세속적인 지식이나 지혜에 의해 깨달아지기보다는 어느 날 우연히 은총의 선물로서 각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학식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속에 묻혀 살게 되면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헛되이 생을 보낼 수 있지만,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도 무언가 참된 삶을 추구하고 진실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성공과 부귀 영화 가운데서 참 생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실패와 좌절, 역경 속에서 생의 진실과 하느님을 찾을 수 있기도 합니다. 평범한 일, 일상적인 일 안에서 이 신비는 우리에게 다가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내리시는 고유한 선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크라코우 지방에 예직이라는 랍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성전을 짓는 것이 꿈이었으나, 그는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하루 빨리 성전을 지어야 할 텐테——.’ 이런저런 걱정에 잠겨있다가 겨우 새벽녘에 잠이 든 예직은 이상한 꿈을 꾸고는 깜짝 놀라 일어났습니다. 꿈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프라하의 왕국으로 가는 다리 밑에 보물이 숨겨져 있으니 그리로 가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며칠 동안 갚은 꿈을 꾸게 된 예직은 프라하를 향해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프라하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예직은 굶주림에 시달렸고 밤이면 드넓은 광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피해 바위틈에서 쪼그려 새우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렇게 걸어서 프라하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프라하의 다리에는 두명의 병사가 밤낮없이 다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리 밑을 파볼 기회를 엿보았으나 병사들의 감시를 뚫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리 밑을 어슬렁거리는 예직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경비 대장이 다가와 도와줄 일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직은 경비 대장의 얼굴이 선해 보여 그에게 꿈 이야기와 왜 먼 나라인 이곳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경비 대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습니다. “그까짓 꿈 때문에 당신 신발 가죽이 다 닳도록 여기까지 왔소? 내가 만일 당신만큼 그렇게 꿈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크라코우로 가서 예직의 날로 밑에 있는 보물을 찾았을 거요.”
어리둥절해진 예직이 다시 물어볼 틈도 없이 경비 대장은 모래 바람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멍한 표정으로 한동안 서있던 예직은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난로를 들어내고 그 밑을 파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진짜로 보물이 들어있었습니다. 예직은 그 보물을 팔아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이른 아침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보물이 먼 곳에 있지 않고 늘 자신이 서있는 곳, 그가 있는 어느 곳에서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경비 대장으로 나타난 신에게 감사를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보물을 발견한 후 예직은 그것을 팔아 성전 건축에 봉헌하였고 천상의 진리, 주님께서 늘 자신과 함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터득한 것입니다. 하느님이 늘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영원 불변의 진리를 깨닫는 보화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제1독서 열왕기에서 솔로몬이 하느님께 부귀나 장수나 명예를 청하지 않고 하느님의 지혜를 청했던 슬기로움과 일맥 상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닫게 해달라고 그 지혜를 주십사고 청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농부가 보물이 묻혀있는 밭을 사기 위해 가진 것을 모두 파는 단계는 결단의 시기인데 이는 사도 바오로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3장 9절에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라는 정신을 드러냅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기꺼이 버릴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은 가난한 마음이요, 해방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초월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포기할 수 있는 자유의 마음인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이란 학자는 인간이 소유로부터 해방될 때에 진정 자유로워진다고 했는데 사실상 이는 예수의 정신과도 일치되는 것입니다. 재물이나 권세나 명예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이에 얽매일 때 인간은 추해지고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 깨달음과 결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행동의 간계에 이르게 됩니다. 칼로 잘라버리듯이 세속적인 인연이나 미련, 애착을 끊어버리고 밭을 사는 실천의 단계에 다다른 것입니다. 이제 농부는 완전한 기쁨 속에 머무르게 되고 세상의 그 누구를 부러워하지 않는 행복한 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던 것을 다 얻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랑의 신비요 환희의 신비인 것입니다. 지복직관(至福直觀) 즉 하느님을 직접 바라보면서 한없는 기쁨 속에 사는 행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참된 행복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닫고 이 신비 속에 온전히 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완전히 자유로워진 해방의 삶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선물로서 주어지지만 이를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지닌 자에게 내려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