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새해 첫날 강론

2002년 새해 첫날 강론

2002년 새해 첫날 강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복집 아주머니는 이렇게 인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드세요. 올해 하시는 모든 일, 아무런 시련 없이 잘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가정안에서도 싸움과 다툼보다는, 불평과 불신보다는 사랑과 신뢰와 웃음이 넘쳐날 수 있도록 해보시기 바랍니다.

운명은 노력하는 자에게는 우연이라는 다리를 놓아준다고 했습니다.

내가 내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한다면 더 나은 가정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이요
내가 하는 일 또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다면 훨씬 더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해의 첫날을 교회가 성모님의 축일로 지내며 게다가 모든 신자들의 의무축일로 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럼 객관식으로 하겠습니다.
1번, 천주교는 성모님을 믿는 종교이기에
2번, 한 생을 예수님을 향한 성모님처럼 그렇게 삶을 예수님께로 향하라고.

교회는 성모님께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당신의 동정 품안에 잉태를 하시어 아버지와 본질이 같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고 교회는 엄청난 칭호를 드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목자들의 경배를 받고 있는 아기 예수님 옆에는 성모님께서 계십니다. 언제나 그분과 함께 하십니다.
성모마리아는 聖母領報를 통하여 결정적으로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루가1,28 참조)라는 천사의 말씀에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1,38)라고 승낙을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신앙안에서 자신을 무조건 하느님께 내맡기셨으며 “주님의 종으로서 아드님의 구원 사업에 당신 자신을 온전히 바치셨습니다.”
그러나 성서에 나타난 성모님의 일생을 돌아본다면 천사가 말한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여!”라는 말은 인간적인 관점에서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않은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두고 보시오. 이 아기로 말미암아……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라는 시메온의 예언대로 고통의 어머니로써 일생을 사신 분이었습니다.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하느님의 아들이, 즉 자신의 아들이 어느날 미쳤다는 소문을 들었어야 했을 때부터 그리고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이 적으로 몰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부터 성모님의 고통은 시작된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했던 수많은 군중들의 분노의 외침을 들었을 때 어머니의 마음은 군중의 숫자만큼 천갈래 만갈래로 갈기갈기 찢겨져야만 했습니다. 빌라도가 누구를 놓아주었으면 좋겠느냐라는 질문에 군중들이 “바라빠를 놓아주시오!” 라고 외칠 때 성모님은 그들 가운데서 “예수요!” 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셨을 것입니다. 빌라도의 “예수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군중들이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고 외칠 때 우리의 어머니는 결국 주저앉아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울면서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온몸에 폭행을 당하시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그리고 무거운 십자가에 짓눌리어 넘어지시며 십자가의 길을 걸으실 때, 성모님은 눈물로서 예수님의 발자국 발자국을 적시면서 그 길을 함께 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차라리 제가 저 십자가를 지겠습니다.”라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셨을 것입니다.
망치소리와 함께 커다란 못이 아들이 손과 발에 박혔을 때 어머니는 귓전에 울리는 망치소리를 들으며 굵은 못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박히는 듯한 고통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 고통에 못이겨 “차라리 나를 못박아주시오!”라고 속으로 외치셨을 것입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앞에서 그 아들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 보아야만 했던 어머니. 세속적인 관점에서는 불행하다고 밖에는 말할수 없는 어머니. 아니 비참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어머니. 아들의 죽은 시신을 받아안은 어머니는 이제까지 살아있는 아들앞에서는 보이지 못한 대성통곡하시면서 하느니께 외치셨을 것입니다. 하느님! 당신은 너무도 잔인하십니다. 어떻게 낳아서 기른 어미에게 아들의 처절한 죽음을 볼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까!…..
이렇듯 성모님은 주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한 인간의 어머니로써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감수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모님이 특별한 은총을 입었기에 그렇게 초인적인 고통을 감당할 수 있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처절한 고통으로 말미암아 미쳐버렸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이었던 성모님, 그러나 신앙인의 눈으로 본다면 그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받아들였고, 예수님의 고통을 함께 나누셨으며 예수님을 따르려는 모든 이들에게 충실한 길잡이가 되시는 어머니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한해가 시작하는 이 날 우리 신앙인들은 신앙의 모범이신 성모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새해 첫날 성모 마리아가 자신의 온 생애를 하느님께 바치셨듯이 우리도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고 주님만 바라고 살아가기로 결심한다면 아마 가장 훌륭한 한해 계획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주님의 평화가 우리 안에 넘쳐 흐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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