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축일

 

오늘은 성가정 축일입니다. 이날은 신자들이 나자렛의 성가정을 기억하고 본받아 모든 가정이 행복이 넘치는 성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특별히 노력하라고 제정된 날입니다.


오늘 1독서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부모를 평안케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독서에서는 주님과 함께 사는 가정생활은 부부사랑과 자녀사랑이 필수조건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복음은 성가정의 에집트 피신 사건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성가정을 이루기 위한 조건이 먼저 자녀사랑과 부부사랑과 부모공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동화책의 얘기를 기억합니다. 아빠는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아침에 일찍 일을 나가고 아이는 아빠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항상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아이를 설득시킵니다. 아빠는 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거란다. 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야 네가 원하는 것을 다 사줄 수 있지. 그러자 아이는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럼 집에 일찍 들어와서 놀아주고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아빠를 사달라고 할까? 아이의 졸업사진에 아빠는 거의 없습니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만 가정행복의 절대기준이 재화의 많고 적음이라고 생각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돈도 중요하지만 사랑도 중요합니다. 관심이 중요합니다.


지금 내 아이가 학교에는 잘 다니고 있는지, 나쁜 친구는 사귀고 있지 않은지, 술담배는 하고있지 않은지, 기도생활은 하고 있는지, 성당에는 잘 다니고 있는지, 성당에 가면 미사책은 가지고 갔는지 관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주일학교 어린이들 중에 반 정도는 어린이 미사책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학생미사때 학생들은 약 40명 정도 참여 합니다. 나머지 아이들은 부모님들의 무관심과 냉담속에 신앙밖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평가기준이 한 학기에 2번 날라오는 통지표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열심히 일해서 아이들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재물이 세상의 전부라고 교육시킬 수 있습니다.


도박자금을 위해서 부모를 죽이고 집에 불을지른 한약재상의 아들. 돈을 위해서 아버지를 죽이고도 아닌것처럼 뻔뻔스럽게 아버지의 영정앞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던 모대학 교수. 그리고 수없이 많이 양로원이나 관광지에 버려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버려졌지만 연고자가 있어서 국가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노인들.




가치기준을 세상의 재물에 두었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자식에게 사랑보다는 가족보다는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하고, 오로지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해라.


이런 강요는 부모도 필요없다. 종교도 필요없다. 오로지 너 성공해라.


이렇게 가치관을 형성시켜 준 것이기에 양로원에 가도, 관광지에 버려져도 할말 없는 것입니다. 죽어도 누구하나 연미사 하나 드려줄 사람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자기 자식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구하는 것을 주님께서 들어주리시라 말씀하십니다.


어찌보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나를 위한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를 위해서 헌신적인 노력을 합니다. 오줌 똥묻은 기저귀도 더럽다고 생각않고, 아이들이 먹다 흘린것도 주워먹고,  추울까봐, 더울까봐 노심초사 하면서 아이를 사랑으로 키웁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어른이 되면 그 늙은 부모를 사랑받은 만큼 공경하지는 않습니다.


노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입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해서 광대노릇을 서슴치 않고 합니다. 아이를 웃기려고, 재미있게 해주려고 별의별 노력을 다 합니다.


그러나 자식은 늙은 부모를 홀로 버려둡니다. 병든 부모를 냄새난다고 싫어하고, 방도 안방이 아니라 안방에서 떨어진 곳에 부모를 모십니다.


서로 모시기 싫어하고 형제지간에 서로 싸웁니다. 니가 큰형이니까 모셔가라. 큰형이라고 뭐 더해준거 있냐? 니가해라.


이걸 보고 자녀들은 그대로 배웁니다.


그래서 결혼을 시킬때는 서로 그 가정을 보고서 결혼을 시키는 것 같습니다.


살기 힘들어서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깊은 산속에 버리고 오던 사람이 아들이 그 지게를 주워오자 나무랬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이 다음에 아버지 늙으면 이 지게로 갖다 버릴려구요.


아이들은 이렇게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지극히 공경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내가 부모님을 작은방에 모시고, 냄새난다고 가보지도 않고, 쓸쓸하게 노년을 보내게 한다면 나도 그렇게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대접받을 것입니다. 이건 당연한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께서는 부부간의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요즘 일본에서는 공항에서 막내아이 결혼시켜 신혼여행 보내놓고 남자들이 부인이 무슨 말을 하나 두려워 한다고 합니다.


부인이 남편에게 여보 할말있어요. 라고 말을 하고는 이혼하자고 한다고 합니다.


막내가 결혼할 나이면 남자는 정년퇴직한 상태고 이혼시에는 재산을 반으로 나누기 때문에 정년퇴직 이후에 여자들이 참고 있다가 이혼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여자들이 이혼을 하고 싶어하지만 경제적인 능력이 없기에 이혼을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매일 얻어맞고 욕먹어도 그저 참아야 하느니라! 하고서 사는 이유가 사랑때문이 아니라 아이들과 경제적인 능력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돈많이 벌어서 이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더욱 사랑해서 혼인때의 약속을 지켜가며 평생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부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먼저 배우자의 취향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개와 고양이가 사이가 안좋은 이유는 서로의 표현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개는 반가우면  꼬리를 세우고 흔드는데 고양이는 화가나가거 공격을 하려고 하면 꼬리를 세웁니다. 개는 화가나거나 무서우면 꼬리를 내리는데 고양이는 반가우면 꼬리를 내립니다. 이렇게 표현 방법이 다르니 길가다 우연히 만나면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부부간에도 서로의 습관이라든지 취향을 알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여자만이 남편의 취향을 알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에게도 그 의무가 있습니다.




둘째로, 무드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연애시절에는 어떻게든 내 사람으로 만들려고 총력전을 펼친다.


분위기도 찾고, 멋도 찾고, 예술도 찾는다.


결혼하기전에 여자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대야! 이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는 어떤 바다인지 아니!


그럼!


뭔데?


그건 사랑 해(海)지.


그러나 결혼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변합니다.


여보! 이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가 어떤 바다인지 아세요!


모른다. 밥먹자.


아이! 여보 생각해 보세요.


애들은 뭐하나?


여보! 생각해 보세요.


그거야 뭐 불바다 아이가!




이렇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이런말을 하면 “살아보슈! 그게 되나!”


그런데 혼인때 그걸 하겠다고 하느님앞에 맹세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대화하는 시간을 늘리십시오.


1년 TV보는 시간을 하루 2시간만 잡으면 1100시간입니다. 하루가 24시간이니까 일년에 50일 정도를 움직이지 않고 TV앞에 앉아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부부간에 진지한 대화를 하시는 시간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참고로 미사가는 시간은 일주일에 한번씩 1시간 잡으면 55시간정도 됩니다. 하느님 보는 시간이 TV보는 시간에 비하면 조족지혈입니다.


하루에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과 TV보는 시간을 빼면 가능한 시간이 나옵니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진진한 얘기를 하고 살아가시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상대방의 감정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같이 산 기간이 긴 사람들의 이혼율이 증가하는 이유는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은행에 저금해 놓은 돈이 없으면 돈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부부간에서 사랑을 저금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는 부도가 납니다. 내가 배우자가 좋아하는 것을 했으면 1점 예금한거고, 내가 배우자가 싫은 것을 했으면 2점 찾아서 쓴 것입니다.


예금보다 인출이 많으면 부부관계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나는 감정예금이 많은가 인출이 많은가를 생각해 보시고 인출이 많으신 분은 오늘부터 부지런히 예금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로, 모든일에 있어서 서로좋은 것을 추구하십시오. 부인에게도 좋고 남편에게도 좋은 것을 추구한다면 어려운 일앞에서도 싸우기 보다는 대화를 먼저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부의 사랑은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결혼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말씀 더드린다면 아내를 구타하는 것은 최대의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여성의 쉼터에 많은 매맞는 여성들이 온몸에 처절한 상처를 입고서 피해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상처가 아물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갑니다. 그 남편을 사랑해서 돌아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때릴 권리가 어디있겠습니까? 힘이 있는자가 힘이 없는자를 때리거나 죽일 권리가 있다면 우리중에 하루라도 멍들지않고, 살아남을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남편은 아내를 때릴 권리가 없습니다. “내 사람” 이라는 개념은 내꺼니까 마음대로 할 수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람이니까 내가 더 사랑해 주고, 보호해 주고, 아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때리기 시작한 사람은 계속 때리게 됩니다. 한번 맞으면 계속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때린 다음날 미안하다며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맹세를 합니다. 그리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 가구도 새로 사줍니다. 그러면 여자는 내 남편의 모습은 저런 모습인데 어제는 뭔가 귀신에 홀렸거나 술 때문에 실수한걸꺼야! 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때리는 남편을 만들게 됩니다.


부인을 때린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이 사람은 엄격하게 따진다면 정신과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고 혼인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가정폭력은 보통 3단계로 나눕니다. 첫째단계는 간간히 때립니다. 둘째 단계는 너무 시하게 때려서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때립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자들은 부끄러워서 병원에 가지 못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죽을 지경이어서 누워있으면 온 가족을 총 동원해서 “앞으로 다시는 안그럴꺼다! 너 없이는 못살 사람이다.” 온갖 회유를 합니다.


그러면 여자는 또 넘어갑니다. 그러면 이 세단계가 죽을때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런경우에는 본당신부님께 상담을 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성가정을 이루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가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하느님께서는 원하시고 있습니다.




219.249.0.66 이헬레나: 오늘의 강론 너무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성가정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부님께 보답하는 마음으로라도 저희가 행복하게 사느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12/29-01:26]

이 글은 카테고리: logos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