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일 강론

 

부활 제2주일


<서론>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골방에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입니다. 부활의 기쁨이 우리안에 넘쳐 흘러야 하는 이 시기에 우리안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얼마만큼 채워져 있는지 돌아보면서 내 안에 평화가 없다면 부할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듬뿍 받으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게 되면서 너무도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있지 않았던 제자는 다른 동료들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지도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토마스의 행동을 나의 행동에 비추어서 “나의 믿음”에 대해서 돌아보고 나의 믿음이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에 대해서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본론>


먼저 토마스의 행동을 나의 행동에 비추어서 나의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던 토마스는,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라고 동료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또 나타나셔서 토마스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라고 말씀하시자 그제서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오늘 토마스 사도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일 수가 있습니다.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을 전해들은 우리들은 토마스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토마스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지 못하고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직접 보지 못하고 전해들은 사람으로서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못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사실 토마스 사도가 믿지 못했던 것도 인간이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믿으라고 하는데 그것을 쉽게 믿기는 어렵습니다. 내 안에서는 “황당한 소리”라고 들리는데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찌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아무 의심없이 믿는 사람들이 더 이상한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보고 믿는 것과 보지는 않았지만 믿는 것 과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보고야 믿는 사람인가? 나도 토마스처럼 “당신의 손과 발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믿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예수님께 뭔가 징표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마음의 나에게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겠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로 그렇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있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믿음을 드러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토마스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눈으로 뵙는 순간 그 동안의 모든 의심이 사라지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은 입으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고백이 오늘 1독서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소유로 내놓고 필요한 만큼 나누어 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믿는다는 것은 다른 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내어 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것만을 움켜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수 있다는 것. 즉 믿음은 공동체 생활을 가능하게 하고, 믿음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오늘 2독서에서도 선포되고 있는 것과 같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자녀를 사랑하고,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자녀들은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있으며,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가? 사실 우리도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흩어졌다가 평일과 주일미사시간에는 모두 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진 것을 내어 놓아서 가난한 사람들도 도와주고 본당도 운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공동체안에서 내어 놓은 것은 진정으로 무엇인가? 무엇을 내어 놓아야 하는가?


믿고 있는 우리들이 더 내어 놓아야 할 것은 바로 우리의 닫혀진 마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가 닫힌 마음을 열어 놓을 때 비로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고, 사랑이 시작되며,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문을 닫고 그져 형식적인 공동체 생활을 한다면 우리 용전동 공동체는 신앙을 증거하지 못하는,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그런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토마스 사도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초대 교회 신자들처럼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내어 놓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닫힌 마음이 열리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사랑할 때 우리 공동체는 부활의 결실을 맺는 공동체로서 세상에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마음의 증표를 요구하는 마음을 몰아내고 그분의 부활을 믿으며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을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내 마음을 열어서 내 형제 자매들에게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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