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제 21주일 강론

 

나해 연중제 21주일


오늘은 연중제 21주일입니다. 우리는 몇 주 동안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심을 들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그러나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 사람은 목수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부모가 누구인줄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을 믿으라는 말인가?


아니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 줄 수 있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들이 등을 돌리고 떠날 때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오늘 우리는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응답해야 하겠습니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떠나간 이유는 결국 믿지 못해서입니다. 아니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이 아니면 예수님께로 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예수님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가?


그들이 믿지 못한 이유는 그들의 판단 기준이 이성과 오관에 너무 충실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과 오관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성과 오관으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거부할 것인가? 부정할 것인가? 그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는 이러이러해서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고, 이러이러해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라고 설명해 주시지 않습니다.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저 믿을 뿐입니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압니다.”


베드로 사도는 믿는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지 못하면 결국 예수님을 떠날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날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따르던 군단이 데모를 했습니다. “월급을 인상해 주던지 안그러면 우리는 제대하겠다” 그러자 카이사르가 그들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연단에 서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민 여러분 나는 여러분의 제대를 허락합니다.” 그리고는 연단을 내려왔습니다. 카이사르의 총애를 받던 군인들은 카이사르가 “전우 여러분”이라고 말하지 않고 “시민 여러분”이라고 말한 것에 무척 놀랐습니다. 그들은 제대할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카이사르와 함께 싸우면 결코 전쟁에서 지는 법이 없음을 오랜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기에 카이사르에게 휴식과 좀더 높은 급료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시민 여러분 여러분의 제대를 허가합니다”라는 그 말에 풀이 죽어 버렸습니다. 물론 그들 중에서 제대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카이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적은 인원으로 아무리 많은 군대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결코 패패가 없다는 것을 믿고 있었고, 또 알았기에 그들은 카이사르를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믿고 있기에 알고 있기에 그들은 카이사르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 또한 예수님을 믿고 있었고 또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나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자! 너도 떠나겠느냐?”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오늘 1독서에서 여호수아는 세겜에 온 이스라엘 지파들을 소환하여 이렇게 묻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은 백성들에게, 다른 것에 취해 있는 백성들에게 여호수아는 선택을 강요합니다.


“만일 주님을 섬기고 싶지 않거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여러분이 오늘 택하시오. 야훼 하느님을 택하든지, 이방의 신을 택하든지. 결정하시오. 그러나 나와 내 집은 주님을 섬기겠소.


만일 이 질문이 오늘 나에게 던져지는 것이라면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대답해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무엇을 선택했다하면 그것에 투신을 해야 합니다. 내가 내 배우자를 선택했다면 그 배우자에게 투신해야 하고, 내가 어느 직업을 선택했다 하면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도박판에서 돈을 거는 것과 같이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이 선택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말씀이 바로 오늘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우리가 선택을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할 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1번이 맞은 답이라면 2번 3번 4번 5번은 틀리다는 것입니다.


양다리를 걸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하느님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좀더 지켜본 뒤에, 하고 싶은 것 다 한 뒤에 선택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지금 선택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비오는 날 커다란 우산을 가진 사람에게로 가겠습니까?


아니면 찢어진 우산을 든 사람에게로 가겠습니까?


아니면 우산도 없는 사람에게로 가겠습니까?


내가 비를 맞지 않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로 가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누구를 따라야 할지. 결정된 것입니다.


우리모두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라고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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