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제27주일
오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접근해서 예수님을 시험해 보려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신명기 24,1절의 말씀에 비추어서 말을 합니다.
“누가 아내를 맞아 부부가 되었다가 그 아내에게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이 있어 남편의 눈 밖에 나면 이혼 증서를 써 주고 그 여자를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
즉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모세는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져서 이 법을 제정해 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을 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점에 있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셨습니다. 이 모세의 법은 하느님의 뜻을 표현하는 데에 일보 후퇴한 것입니다. 그것은 죄인인 인간 조건을 고려해서 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세기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혼인의 불가 해소성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태초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짝이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부부가 한 몸이 된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먼저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사람은 그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사실 서로 다른 둘이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한쪽이 기쁘면 다른 한쪽도 기쁘고
한쪽이 슬프면 다른 한쪽도 슬퍼해야 합니다.
한쪽이 아파하면 다른 한쪽도 아파하는 것
이것이 서로가 한 몸이 되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처음에는 그런 것 같다가 나중에는 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되는 것 같습니다.
한쪽이 슬프던, 아프던, 자신에게는 별로 다가오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졌다는 증거이며 이제는 서로가 한 몸이 아니라 두 몸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한 마음이 아니라 두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가 상대방을 자신의 틀에 맞추려 하다보니 어려워하게 되고 한몸이 아니라 두 몸이 되어 버리는 듯 합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다보니 남의 감정은 생각못하는 것이
나 위주로 생활하다보면 그렇게 두 마음 두 몸으로 갈라지는 듯 합니다.
또한 둘이 한 몸, 한 마음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부사이를 가장 많이 방해하는 것이 시부모와 자녀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부부를 한 마음 한 몸이 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부부가 가장 많이 싸우는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시부모와 자녀 문제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얼마나 많은 방해를 주변으로부터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보다는 부모가 많은 영향을 끼치는 듯 합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런줄도 모르고 남이 못한다고만 생각하는 것. 얼마나 큰 죄일까요?
그러므로 부부는 서로가 한 마음 한 몸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만 주변에서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하느님의 말씀처럼 둘이 한 몸을 이룰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혼을 합니다.
사랑이 없다. 성격차이가 너무 난다.
모두에게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혼인성사에 대한 의미를 잘 알고 있다면 가정생활이 서로를 갈라놓는 쪽으로만 흐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혼인은 두 남녀를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셨으니까 두 사람 사이에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선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용서하시는 분이기에
부부사이에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두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선함, 자비로움, 용서입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헤어져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용서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혼을 하고 있는가?
또 한가지 덧붙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과연 이혼이라는 것이 둘 만의 문제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혼인이라는 것은 그들 둘이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격히 말한다면 둘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한 몸을 이루어서 가족과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혼이라는 것이 둘 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도 있고, 형제들도 있고, 자녀들도 있고.
그러나 왜 그들의 입장은 생각해 주지 않는 것인가?
오늘 복음을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둘이 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 어린이와 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어린이가 하느님이 주시는 나라에 쉽게 들어간다는 것은 어린이들은 베푸는 사람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내어 맡길 줄 알기 때문인 것 처럼 부부가 서로를 신뢰하고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내어 맡길 때 그들은 이미 한 몸이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