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내 이익만을 바라고, 내 주장만을 바라고, 남이 나에게 맞춰 주기를 바라고, 내가 드러나기를 바라는 마음. 내 안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회개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말은 쉬운데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어려운 것”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배려해 주는 것, 더 생각해 주고, 더 사랑해 주는 것. 이기심을 버리고 함께 하려 하는 것. 하지만 말은 쉽지만 사실 가족 안에서도 이것이 이루어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남에게는 더더욱 어려우리라 생각이 됩니다.
1 바로 그 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는 갈릴래아 사람들의 일을 예수께 알려 드렸다. 사실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에 의해 지정된 결단의 시기로서의 이 시대에 해한 의미를 말씀하고 계실 때에, 갈릴래아 사람인 듯한 어떤 사람들이 로마인 총독 빌라도의 학살소식을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빌라도가 성전 뜰에서 희생물을 드리던 갈릴래아 사람들을 학살하여 그 흘린 피가 제물에 물들었다는 것입니다.
갈릴래아 사람들, 특히 열성당원들은 투쟁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무력에 의한 정치적 혁명을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아마도 로마에 적대적이던 갈릴래아 사람들이 어느 축일을 이용하여 성전 안에서 폭동을 일으켰으나 빌라도에게 진압되고 그 곳에서 살해되었고, 그들의 피는 희생제물의 피에 섞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빌라도는 가혹하고 난폭한 통치자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폭동 때문에 빌라도는 성전에서 가까운 안토니오성에 언제나 진압부대를 대기시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예수님께서 충격을 받으시고 또 어떤 말씀을 하실 줄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하느님께서 희생 제사들 드리고 있던 그 사람들이 살해당하도록 허락하셨을까 하고 의아스러워 했습니다.
2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저 갈릴래아 사람들이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들이라서 그런 변을 당한 줄로 생각합니까?
3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여러분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와같이 멸망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의 행동을 판단하지 않으시고, 또 백성의 행동을 변명하지 않으시고, 단지 청중의 모든 마음속에 있던 말없는 질문에 대답을 하십니다. 유다인들은 사람에게 일어나느 모든 화가 개인적인 죄에 내리는 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는 벌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고통이 하느님의 벌이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이 덕의 길을 향해 씩씩하게 달려 갈 수 있도록 하려고, 착한 사람에게 주시는 시련의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가장 죄가 무거운 자를 징벌하신다는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죄인은 당연히 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정의의 벌을 벗어나기 위한 단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말씀은 기원 70년에 이루어지고 맙니다. 예루살렘이 마지막으로 포위되고 공격받을 때, 많은 유대인이 성전 안으로 피난하였는데 그곳에서 로마인들의 칼에 쓰러졌기 때문입니다.
4 또한 실로암에 있는 탑이 무너지면서 깔아 죽인 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빚을 진 이들이었다고 생각합니까?
예루살렘의 남쪽 성벽은 실로암의 우물까지 뻗어있습니다. 아마 그 곳 성벽 안에 탑이 세워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수도 공사 도중에 이 탑이 무너졌으리라 추측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 재난은 사람들의 마음에 생생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그 재난은 사람이 직접 개입하여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개입하셔서 그 사람들을 벌하셨다고 추측하는 것이 더욱 그럴 듯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이 벌이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사건은 모든 사람에 대한 경고였음을 말씀하시면서 회개하라고 호소하십니다.
5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여러분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저항하고, 편견에 사로잡히고, 소경이 된 완고한 사람들은 실로암 탑이 무너질 때 그 돌에 생매장 당한 것처럼 그렇게 명망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려고만 하는 사람들.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가정은 파괴되고, 이웃은 분열될 것입니다. 그렇게 이기심의 바위 밑에 깔려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의 비유를 들어서 또 말씀하신다.
6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습니다. 그 후 가서 그 나무에서 열매를 찾아 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너그러우신 인내를 가지시고 죄인의 회개를 기다리시지만, 회개를 위하여 주신 시기에도 환고하게 마음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가 받게 될 벌이 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느님을 말합니다. 무화과는 바로 유다 백성입니다. 특별히 하느님께서 돌보아 주셨으나 열매를 맺으려 하지 않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7 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말했습니다. ‘보다시피 삼 년째나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아 보지만 발견하지 못하니 이것을 잘라 버리시오. 무엇 때문에 땅만 썩이겠습니까?’
팔레스티나에서는 사람들이 포도원에 나무를 심기 좋아한다고 합니다. 무화과는 팔레스티나에 흔한 나무이고, 포도밭에도 심어졌습니다. 포도나무와 마찬가지로, 그 나무들을 가꾸는 일은 포도원 주인이 고용한 포도원지기에게 맡겨집니다. 포도원은 토양이 가장 좋았으며 특히 무화과 나무에 알맞았습니다. 따라서 그 포도원 주인이 자기가 심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열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은 삼년이나 기다렸습니다. 삼년이면 무화과는 충분히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제 주인의 인내심에 한계가 왔고 드디어 쓸모없는 나무를 베어 버리라고 포도원지기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삼년은 이스라엘의 회개를 위해서 하느님께서 주셨던 오랜 시기를 의미합니다.
8 그러자 포도원지기는 대답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렇게 하면 아마 내년에는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주인께서 이것을 잘라 버리시지요.'”
포도원지기는 이 나무에 정성을 들여 가꿀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마지막 인내와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다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그 나무는 베어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은혜로이 제공하신 마지막 유예 기간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포도밭이요, 포도원지기는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은 포도원지기와 마찬가지로 하느님 백성을 회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이 열매를 맺도록 하게 하는 것입니다. 3년은 이스라엘이 회개하기를 기다려 주셨던 시기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 간청을 했습니다. 일년만 더 시간을 달라고…
어찌 보면 오늘이 그 일 년의 마지막 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좀더 잘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의로운 사람이기에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의로운 사람이지만 하느님께서 주시는 시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2. 무화과를 돌보는 사람처럼 내가 진정한 신앙인이 될 수 도록 나를 격려해주고 이끌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마음에 어떻게 응답을 하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