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 말과 행동이 같으신 분, 그리고 그렇게 주님의 길을 준비하신 분입니다. 나 또한 세례자 요한처럼 그렇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삶이 내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겸손하게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복음”은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처음 사용했는데, 바오로 사도는 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에 관한 전갈을 일컬어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르코 복음사가는 복음의 내용을 넓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적까지도 복음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예수님 친히 하느님 나라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관해 선포하신 복음이기도 하고 또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죽음과 부활과 재림에 관한 복음이기도 합니다. 곧,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시는 주체이시며, 복음의 내용으로 선포되는 객체도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 그리고 예수님의 활동과 수난과 부활에 관한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활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이 말씀은 원래 유배지에서 귀환하던 사람들에게 건네졌던 메시지가 새롭게 해석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바빌론에서 구해 내어 고국으로 인도하시면서 앞장서서 행진하셨습니다. 그 길이 나 있던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에게 왕의 행차 길을 준비하도록 촉구하였습니다. 요한은 그리스도를 알리는 그 선구자로서 사람들을 회개시켜 예수님을 받아들이도록 마음을 바로 잡아 줄 것입니다.
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기록된 대로,
소아시아의 관습에 따르면 위대한 인물이 올 때에는 특별히 그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한 전령이 일행에 앞서서, 사막의 길을 닦고 작은 길을 평평하게 고르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막에서 외치는 이는 전령이며, 바빌론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히브리인의 기쁨을 나타냅니다. 이 히브리인의 해방은 예수께서 사람을 악령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줄 구원의 징조였습니다. 요한은 그 해방을 위하여 오시는 예수님을 고하는 전령이며 사람의 마음을 회개하게 하고, 곧게 잡아 주는 사명을 띠고 있습니다.
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난 때는 아마도 기원 후 27년인 듯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세례는 28년 1월 즈음이라고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광야는 아무도 없는 곳, 버려진 곳이지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이 광야는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요르단 강 동부에 위치한 베다니아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요세푸스가 의롭고 자비로운 교사들의 목소리라고 인정했던 사람이다. 대부분의 유다인들은 요한을 비정치적인 가르침을 준 義의 설교가일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요한은 로마에 대한 봉기를 요구하지 않고 정의로운 삶, 정의로운 행동, 경건한 헌신을 촉구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헤로데 안티파스가 요한을 사형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요세푸스가 그린 요한의 초상은, 당시의 카리스마적 교사들 가운데는 비정치적인 가르침을 전하면서도 당국자들에게 두려움을 갖게 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 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것처럼,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세례자는 이전 시대에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위대한 인물들이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는 광적인 묵시주의자들이나 인본주의적인 지혜교사들, 또는 바리사이적인 엄격주의자들, 랍비적인 전통주의자들, 그리고 왕국을 꿈꾸고 있던 열심당원들의 계열이 아니라 예언자들의 계열에 속했다. 세례자는 하느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그 말씀에 봉사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말씀이 요한의 일생을 지배하는 힘이었다.
“ 선포하다”와 “선포”는 본디 심부름꾼이 심부름 보낸 이의 이름으로 중대한 내용을 공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스도 공동체에서는 사도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을 외치는 것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러난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리스도교의 선포 내용을 넓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까지도 포함시켰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세례자 요한이 “자기보다 더 강한 분이 자기 뒤에 오실 것을” 선포했고,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예수님의 선포활동에 가담했고, 예수님께 치유 받은 이들과 목격자들도 치유사건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과 선포는 그 내용이 같은 까닭에 둘을 합쳐서 “복음 선포”라고 합니다.
5 그리하여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모두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당시 유다교인들은 속죄의 날에, 그리고 유다교 계통의 쿰란 수도자들은 계약 경신의 날에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죄를 대충 고백했는지 아니면 낱낱이 고백했는지는 밝힐 수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의 특징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상으로 각자에게 한번씩 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임박한 심판을 예상하고 백성을 회개시키려고 세례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죄 사함, 회개, 세례”의 관계는 이렇습니다. 하느님을 등지는 행위는 죄요, 범죄한 인간이 하느님께로 되돌아서는 방향전환이 바로 “회개”이다. 이처럼 회개한 인간은 “죄 사함”을 받아 그분과의 관계가 정상화된다. 그리고 요한의“세례”는 인간이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고,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참된 회개는 언제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라는 물음을 던지게 됩니다. 이 물음은 한 인간의 회개의 진실성 여부를 보여줍니다. 인간이 생활 태도를 바꾸고 진심으로 회개하였음을 보여 주는 행동은 순수한 마음으로 자선을 베풀고 가진 것을 나누는 데서 드러납니다.
6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요한은 사막의 유목민처럼 입고 먹었습니다. 아울러 요한의 의복은 엘리야 예언자의 의복과 같습니다.(2열왕 1,8; 즈가13,4). 엘리야는 죽지 않은 채 승천해 있다가 세말에 다시 온다고 되어 있는데(말라3,23-24), 바로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였습니다.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빵도 먹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아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마태11,18; 루가7,33; 루가1,15).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온 몸으로 표현하는 세례자 요한. 그의 메시지는 그의 삶이었습니다. 그가 입은 옷은 가난뱅이와 예언자의 옷이기도 했습니다(열왕기 하1,8; 즈카르야13,4; 히브리서 11,37). 그리고 그가 먹은 음식은 힘겨운 고행의 음식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가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 수야 있겠습니까? 요한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는 말씀을 미리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먹는 것, 입는 것 또한 한번 돌아볼 때가 아닐까요?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있는지를…,
7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세례자 요한이 먼저 주님의 길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이나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스승 요한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로 사람들이 향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고,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종이 그 신발 끈을 풀어주는 법인데,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 그런 일을 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가 부모님의 자녀라는 것. 한 사람의 배우자라는 것. 선생님의 제자라는 것. 한 직장에서 어떤 사람을 모시고 누구와 함께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 이것을 기억한다면 매 순간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명확해 집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반성하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물로써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세례를 받았지만,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하느님의 자녀라고 당당히 고백하지 못하는 나를 성령께서는 당당하게 고백하게 만듭니다. 내가 바로 하느님의 자녀임을, 그렇게 부르심을 받았음을…,
사도들도 그랬습니다. 성령강림 대축일에 성령을 받고 골방에서 뛰쳐나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성령께서는 내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게 합니다. 내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고백하게 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고백하게 합니다. 그래서 죄로부터 멀어지고, 회심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세례자 요한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2. 복음을 전하면서 내가 전하는 것을 내 삶으로도 보여주고 있습니까? 세례자 요한처럼 내 삶이 내가 전하는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