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주일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로 임금이신 그리스도의 개선을 예고하면서 그분의 수난을 선포합니다. 교회는 오늘 성지가지 축복과 성지 행렬의 전례를 거행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이 종려나무와 올리브 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환영한 데서 비롯합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환호하는 군중들과 천진난만하게 기뻐 뛰는 어린 아이들에게 둘러 싸여 성대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을 기념하면서 기쁨에 충만해 있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환호의 장면은 일순간에 지나가고 모든 것이 수난과 죽음을 향하고 있는 비탄스러운 분위기를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하여 진정으로 예수님을 환호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만일 예수님이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겠는가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거룩한 성주간을 시작합시다.
먼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호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수많은 관중들이 환호하게 됩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왕으로 세우려고 합니다. 유다의 배반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메시아와 다르기에 예수님을 유다인들에게 은전 30냥에넘겨 버린 것이고, 위험앞에서 달아나는 제자들 또한 자신들이 생각했던 스승님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성서가 예고한 메시아로서 당신의 진정한 사명이 백성을 다시 뭉치게 하여 구원하려고 당신 생명을 바치는 데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예수님의 사명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면서 “바라빠를 놓아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나 또한 나의 만족과 내 가족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예수님을 찾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고, 내가 기도해도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나 역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바라빠를 놓아 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으로 변할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나 또한 예수님을 내 틀대로 가두어 놓으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내 틀에 벗어나면 가차 없이 예수님을 거부하는 아니,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은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다 알고 계셨지만 죽기까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사랑과 자비와 구원을 베풀었지만 우리는 그분께 모욕과 고통과 죽음을 안겨드렸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입맛에 맞을 때는 그분만을 따랐지만 내가 원하는 분임이 아닌 것을 알은 즉시 그분께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만일 예수님이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난의 그 잔을 받아 마셨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고, 유다의 배반과 함께 제자들도 뿔뿔이 도망가게 되는 것. 죽음을 무릎쓰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하던 제자도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을 아신 예수님. 과연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셨기에 더 괴로우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분께서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들을 너무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이난 집속으로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뛰어 들어가는 어머니처럼 사랑이 없이는 행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는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비록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어려울지라도,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어려울지라도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수님께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편할 때, 시간 날 때만, 내가 원할 때만 기도하고 바쁠 때, 어려울 때는 등을 돌리는 신앙인이라면 오늘 예수님을 환호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체포 속에서 도망가는 제자들과, 부인하는 제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까지 예수님을 부인했다면 베드로처럼 닭 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나약함을 눈물로 용서를 청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그렇게 예수님께 용서를 청하고 죽기까지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과연 나는 온 마음으로 예수님을 환영하고 있는가? 아니며 내 이익이 되면 반기고 나에게 손해가 오면 부정하는 그런 관계는 아닌가를 깊이 생각해보고 만일 내가 후자라면 그분께 용서를 청하고 다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반과 모욕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그 길을 알면서도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 또한 그렇게 살고자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