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미사 강론 ———-이계창 신부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지난 3년 여 동안 암으로 고생하시다가 그저께 돌아가신 고 ○○○회장님의 고별식을 갖기 위해서 이 성당에 모였습니다.
우리 사람에게서 가장 불확실한 일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 죽을까하는 것일 것입니다. 제가 홍 회장님과 살아계실 때 몇번인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만 막상 하느님 대전으로 가신 분을 마지막으로 뵙게되고 보니 인생의 무상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돌아가시던 날 오후 5시 조금 넘어 회장님께 병자성사를 드렸는데 그 때는 이미 의식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분께서는 간혹 의식이 있을 때 저와 자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자주 찾아 뵙고 영성체를 드리기 전에 마음에 조금이라도 걸리는 일이 있으면 진정으로 뉘우치고 영성체를 모시라고 말씀드렸을 때, 회장님은 마음에 꺼리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영성체를 모시고 난 후에는 당신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하시는 것을 늘 덧붙이셨습니다. 저는 신부로서 이 분을 통해서 많은 감명을 받았고, 저 또한 그분께 제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죽을 때 마음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 때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또 우리는 신자건 신자가 아니건 간에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상선벌악의 말씀을 다같이 믿고 있으며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착하게 잘 살았느냐 잘 못살았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원칙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말씀에서 상선벌악에 대한 내용을 들었습니다. 매우 평범한 말씀이라서 평소에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던 아주 쉬운 내용의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안하려고 하고 죽음이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착각속에 사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서양의 공동묘지 입구에는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라고 써 있다고 합니다.
정말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말이라고 보겠습니다.
오늘은 다른 사람이지만 언젠가는 내가 가야할 차례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가까운 일가친척이나 친구들의 장례식에 참석해서도, 어느 곳에서 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거나 할 때 나는 그런 일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착각을 가져보지 않았는지 우리는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생에 대한 애착이 너무나 많은 것이 인생이지만 죽는다는 변할 수 없는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야 하겠습니다.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는 자명한 원리 앞에서 우리의 생활을 반성해 보고, 더 착하게 살아 보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돌아가신 회장님께서도 직접 말씀은 못하시지만 “너희는 이 세상에 있을 동안 잘 살아달라”고 가족들에게 부탁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를 빌어 죽음을 어떠한 자세로 맞이할 것인가 잘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자 아닌 분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 예절이 약간 지루하더라도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끝까지 경건한 자세로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