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일 마태 17,1-9 (가) 예수의 거룩한 변모
경갑룡 주교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오늘은 사순 제 2주일입니다. 여러분이 조금 전에 들으신 바와 같이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천상적 광경을 보고 너무 좋아서 그러한 환경에서 영원히 머물러 지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 제자들은 그러한 휘황찬란한 천상 광경을 보기 직전까지 예수님의 그 뛰어난 권능과 권위를 직접 본 반면에, 캄캄하고도 답답한 시련을 많이 겪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제자들이기 때문에 타볼산에서 예수님의 변모를 보고 더 이상 지상에 내려가지 말고 시련과 불행이 많은 이 지상으로 더 내려가지 말고, 여기서 예수님을 모시고 영원 무궁토록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램을 자기도 모르게 표했던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간 틈을 내서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남해 낙도인 흑산도에 다녀왔습니다. 이 흑산도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목포에서 8시간 정도 여객선을 타고 가야 할 곳이었지만 얼마 전부터 “수중익선”이라고 하는 쾌속정이 생겨서 약 2시간만에 흑산도에 당도 할 수 있었습니다. 약 9,000명 정도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조그만 섬이고, 또 섬사람들은 대부분 고기를 잡는 어민들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약 10년 전에 최초로 골롬반회 신부님이 그곳에 들어가서 본당을 설립하고 많은 외국 원조를 받아서 낙도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도 짓고, 또 주민들의 생활을 돕기 위해 조그만 조선소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신부님들의 그 눈부신 활동으로 흑산도 도민들은 반 수 이상이 영세를 하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이 골롬반회 신부님들이 그 흑산도에서 철수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처음으로 방인 신부님들이 그 흑산도를 인수받게 되었습니다. 한국 신부님들이라 외국 원조를 받을 수 도 없어 맨 손으로 그 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섬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방인 신부님들로부터는 더 이상 물질적인 어떤 혜택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까 신자들은 다 교회를 등지게 되었습니다.
학교는 더 이상 학교로서의 구실을 못할 뿐만 아니라, 제가 가보니까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다 깨져서 산산조각이 나고 그야말로 황폐할 대로 황폐한 상태였고, 바로 성당 밑의 조선소는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 그런 상태에 있었지요. 그래서 광주 대교구의 교구장님은 할 수 없이 그 본당의 신부님을 철수 시켰습니다. 그래서 약 반 년 동안 본당 신부님이 없이, 그야말로 내버려진 본당으로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신부가 없게 된지 6개월만에 그 곳의 몇몇 교우들이 주교님을 찾아갔습니다. 아마 주교님께 눈물로서 호소를 했던 것 같습니다. 참 신앙의 재건을 해 보겠으니 우리에게 목자를 보내 달라고 교우들은 호소했겠지요. 주교님을 세 번 찾아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당을 비운지 6 개월만에 젊은 신부 한 사람이 선발되어서 그것에 부임했습니다. 그분이 현재 본당 신부로 있는 고 야곱이라는 아주 젊은 신부였습니다. 그곳에 부임한지 약 7-8개월 되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곳에 가 있는 동안 아침에는 미사가 없었습니다. 어민들인지라 아침에는 일하러 나가야 되기 때문에 저녁 미사가 있었는데, 그 섬에는 전기가 없었습니다. 초롱불과 촛불로 어둠을 밝히고 지내는 미사에 7-80명의 교우들이 참례하러 왔습니다.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성가책을 손에 들고 아주 우렁차게 성가를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도 흐뭇한 분위기 속에서 미사를 드려 본 일도 그리 흔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처음으로 흑산도 교우들은 참 신앙의 뿌리를 박기 시작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어느 날은 미사가 끝나고 난 후에 그곳 사목위원 18명이 전원 참석해서 저에게 지금 흑산도 교회의 현황과 자기들이 꿈꾸고 있는 어떤 미래의 계획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곳 남자들에게 당신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한 사람도 자기의 직업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이 없답니다.
그 만큼 일정한 직업이 없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일거리가 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술이나 먹고, 이것이 하루의 소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난할 수밖에.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들은 매일 미사에 참여하는 등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에 신앙이 저나된 지 10여 년만에 비로소 참 신앙의 뿌리가 박히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그 사목위원들이나 일반 교우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제가 느낀 것은 “저들은 더 이상 교회에서 물질적인 무엇을 기대하지 않는구나” 하는 것과 저들 자신의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그 지역 사회에 교회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 야곱과 베드로와 요한은 타볼산에서 이 지상에서 볼 수 없었던 화려한 광경을 보고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어둡고 암담한 시련이 많은 이 지상에서 내려가지 말고 그만 거기서 영원 무궁토록 안주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들을 타볼산에 데리고 올라가시기 전에 저들이 예수님의 무수한 기적과 권위를 보고 우쭐할 때마다 장차 자신이 악당들의 손에 붙잡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되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믿기를 원했습니다. 십자가 없이 오늘의 복음에서 나오는 것처럼 찬란한 타볼산의 믿음을 갖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부활이 없는 십자가도, 또 십자가가 없는 부활도 참된 의미에서 있어서 믿음의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을 믿는 것도, 그렇지 않으면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참된 의미에서 있어서의 크리스천의 믿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셨을 때, 좌․우편에 도둑 두 사람이 똑같이 못 박혀 있었습니다. 좌편의 도둑은 예수님께 말하기를 “당신이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당신도 살리고 나도 살려 주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을 믿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조건으로서 자기를 살려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십자가 발 밑에 있던 무수한 군중들도 예수님에게 “당신이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오.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 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십자가 아래에 있는 무수한 군중들이 자기를 믿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신 채 그대로 십자가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현대에 사는 우리 많은 크리스천들 가운데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베드로와 야곱과 요한과 같은 믿음을 가진 분들이 많다고 하면, 지나친 단정이 될까요?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일본․한국 기타 여러 나라에서 우후죽순처럼 많은 종교가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종교가 신생되고 있습니다. 새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똑같은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종파의 그리스도교가 있습니다. 열 집 건너 교회가 있고, 무슨 교회 무슨 교회 이루 그 이름을 다 헤아릴 수 가 없을 정도로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 모든 종교들마다 그 종교에 출입하는 교우들에게 아름다운 약속을 합니다. 무슨 약속을 합니까?
바로 오늘 타볼산에서와 같은 그런 믿음을 약속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병이 없어지고 집안에 우환이 없어지고, 원하는 모든 일들이 다 성취된다는 그러한 약속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신자들까지도 그러한 약속을 하는 종교로 전향하는 그런 신자들도 있습니다. ‘나에게 무엇을 약속해 주신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 나를 살려 주신다’ 하며 그리스도 좌편에 있던 도둑과 같이 나를 살려주시는 그리스도만 믿으려 합니다.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 부활이 없는 그리스도는 참된 의미에 있어서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지내고 있는 이 사순절은 한 마디로 말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체험하는 기간이고, 또한 우리 믿음의 뿌리가 십자가라면, 그 뿌리에서 솟아난 결실과 꽃이 바로 부활입니다. 우리가 이 꽃인 부활을 맛보기 위해서, 부활을 체험하기 위해서 뿌리를 키우는 것이 바로 사순절입니다. 처음 낙도의 도민들은 타볼산의 그리스도만을 믿었던 것입니다.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를 믿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뿌리가 없는 믿음이었기에 그 믿음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여러분도 좌편의 도둑처럼 십자가 발 밑의 군중과 같이, 여러분을 살려주는 그리스도만을 믿는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참 믿음이 못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있기 위해서는 내가 짊어지고 가는 십자가를 너희도 같이 져야 한다고.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갈 때만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우편에 있던 강도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나를 살려달라 하지 않고 주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주님을 있는 그대로의 주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 당신이 영복소에 가시거든 저를 잊지 말고 저도 데려가 달라.”고 하였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있는 그대로의 그리스도를 믿었기에 우편에 있는 강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복소에 갔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뿌리입니다. 이 뿌리를 우리는 사순절 동안 키워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