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암 (해방받은 여인 : 출애 15,21)
김종성
미리암이란 이름은 히브리인의 고유명사로서 그 어원이 확실치는 않으나 아마도 “살찐 여인” 이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흉년과 식량난에 허기지며 역사를 이어가던 당시의 풍속에서는 여인의 몸매가 마르거나 여위거나 햇볕에 탄 것이 미(美)로 여겨진 것이 아니라, 포동포동 살이 찌고 부드러운 빛깔로 호감을 주는 희 얼굴을 아름답게 여겼기 때문에, 미리암은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서는 미리암이 물가에 버려진 모세를 구해준 왕궁의 시녀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동시에 모세의 누이, 여예언자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모세의 특출하고도 헌신적인 누이 미리암은 고대 사회에 있어서 여성 해방의 전위대에 속하는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모세와 그의 형 아론과 더불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인도해 내어 해방시킨 인물입니다. 그들이 홍해 바다를 건널 때 파도치던 물결은 양편으로 갈라져, 그들이 무사히 건너가게 하고, 전차와 기병대를 거느린 파라오가 뒤따라 올 때는 바닷물이 다시 합쳐지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이 해방의 때에, 미리암은 젊고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야훼를 찬양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기마와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다”라고 미리암이 소고를 치며 노래하였습니다(출애 15,21 참조). 환희로 충만한 미리암의 영은 이스라엘의 다른 여인들까지도 감동하게 만들었습니다.
불의한 파라오에게 오랜 동안 억압을 받다가 마침내 해방을 받은 미리암은 여인들을 위한 새로운 종류의 해방의 상징이었습니다. 그의 지도력은 모든 여인들이 남자들과 함께 일어나서 그들의 해방을 선언하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때를 알리는, 즉 사람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미리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미리암의 체험은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 고귀한 여인으로서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수 십 년 후에, 미리암의 성격은 이상하게 비뚤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흑인이었을지도 모르는 여인과 결혼한 모세를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모세가 어린 아기였을 때, 또한 젊은 청년으로서 그의 백성을 해방시켜 승리로 이끌었을 때 미리암은 모세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했지만, 이때부터 미리암은 공공연하게 모세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너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내고, 시내 산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받고 이스라엘의 종교법과 민법을 처음으로 제정하던 때에는 열렬한 지지를 보내던 미리암이 완전히 반대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미리암이 모세를 비난하고, 모세의 사생활의 심판자가 되려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 있어서 모세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미리암 아론과 함께 다음과 같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였습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만 말씀하시고 우리(미리암과 아론)에게는 말씀하시지 않으시는 줄 아느냐?”(민수12,2) 이에 대하여 하느님께서는 미리암과 아론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나 야훼의 모습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나의 종 모세에게 감히 시비를 걸다니, 두렵지도 않느냐?”
이런 일이 있은 후에 미리암은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이론이 그의 누이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려 눈처럼 하얗게 된 것을 보고, “우리가 어리석어서 저지른 이 잘못을 벌하지 마십시오. 미리암이 죽게 내버려두지 마십시오”하고 모세에게 간청하였다. 이에 항상 마음이 너그럽고 도와주기를 즐겨하는 모세는 “하느님, 미리암을 고쳐 주십시오”하고 야훼께 기도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미리암의 문둥병은 고쳐졌습니다. 미리암은 이를 통해서 홍해를 건넜을 때처럼 하느님은 진노의 하느님이 아니고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것을 다시 배웠습니다.
미리암이 고난을 당할 때, 그는 아마도 자기가 동생을 사랑하지 않았고, 지혜롭게 행동하지 못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또 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그렇게 가까이 하신 하느님 보다 더 자기를 내세운 자신의 교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미리암의 이런 새로운 깨달음은 자기는 자기 자신의 포로가 되어 있다던가, 모세를 자기에게 속박시키려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미리암은 자기 동생을 헐뜯다가 자기가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는 그의 백성들과 함께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양하던 때로 돌아가서 하느님을 가까이 모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리암은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계약이요, 율법 중의 하나인, 모세에게 지시하셨던 윤리적인 교훈 즉 “너희는 근거 없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라는 말씀을 되새겼을 것입니다. 미리암은 그의 생의 만년에 이르러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고 자만했고, 하느님의 사람 모세를 미워하기까지 했다. 노예적인 속박과 해방을 경험했고, 하느님의 관대하심을 경험했던 그는 다시 노예적인 속박 속으로 자신을 몰아 넣었습니다. 그를 이스라엘의 젊은 영웅으로 만들었던 영적인 신앙, 용기, 자유 등은 그녀에게서 사라졌다.
이러한 미리암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의 삶을 보게됩니다. 미리암으로부터 우리가 알게되는 것은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곧 하느님 편에 서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미리암의 갑작스러운 몰락은, 우리는 항상 우리 마음을 가다듬지 않으면 우리도 어느 날 갑자기 노예적인 속박 속에 놓이게 되고, 우리 자신만이 아니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삶의 환경 즉 삶 자체가 노예적 속박에 놓이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모세를 물가에서 건져내어 왕궁에서 기름으로써 슬기로운 여인의 본보기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하느님의 지도자로서의 모세를 도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해내는 데에 한 몫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미리암의 모습은 가정과 국가가 환난을 당할 때에 슬기로운 여성은 가정도 구하고 동시에 민족도 살릴 수 있다는 여성으로서의 지혜로운 힘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리암은 그의 만년에는 참다운 성취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질투와 교만에서 나온 모세에 대한 도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교만은 곧 지도자에 대한 교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교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질투와 교만은 미리암의 총명함과 지혜로움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이러한 미리암의 생애는 우리에게 언제나 우리 자신 안에서 도사리고 있는 질투와 교만의 덫을 보게 해줍니다. 미리암의 실패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버리고, 이웃을 위해서 우리의 지역 사회를 위해서, 나라와 가족을 위해서 살지 않으면 우리의 생의 충만함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교훈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 안에서 충실히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자신의 알맞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미리암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들의 모습이 하느님께 드리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예배임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생의 충만한 성취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여성신학적 관점에서 바라 본 미리암 ###
미리암은 성서에 나타난 훌륭한 여성을 논하는 데에 있어서 빠짐 없이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미리암은 희랍어로 ‘마리암’(Μαριαμ), 라틴어로는 ‘마리아’(maria)라고 하는데, 성서에 등장하는 여성 이름 중에 가장 흔한 이름이다. 그러면 예수의 어머니의 이름이기도 한 마리아, 즉 미리암에 대해서 구약성서는 무엇을 전해 주고 있으며, 또 여성신학에서는 그를 왜 자주 언급하는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구약성서 속에 나타난 미라암의 모습은 무척 혼란스럽다. 미리암은 보통 모세와 아론의 누이로 알려져 있고(출애 15,20-21; 4,14; 6,20 민수 26,59 등 참조), 미가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출해낸 민족의 지도자로 불리고 있으며(미가 6,4), 출애굽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 곧 출애굽 사건을 최초로 노래한 여예언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출애 15,20-21).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미리암은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하느님의 벌을 받고 문둥병에 걸렸던 반역의 인물로 전해지고 있기도 합니다(민수 12,1-16). 그밖에 신명기(24,9)와 민수기(20,1)에서도 미리암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리암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혼란스러운 것은 미리암에 얽혀 있는 설화들은 모두 단편적이고 그녀에 대한 미리암에 대한 평가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서는 왜 그녀를 한편에서는 무척 긍정적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부정적으로 서로 다르게 언급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이제 미리암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성서본문들을 통해서 이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리암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가 모세의 누이라는 점에서 출발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모세의 누이로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독자적으로 유명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후대에 모세와 아론의 누이로 족보를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미리암과 관련된 구절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출애 15,20-21에 의하면 미리암은 여성 예언자(האָיꔩꗺ)입니다. 이미 잘 아려진 대로 여기에 나타나는 ‘미리암의 노래’는 출애굽 사건에 대한 가장 오래된 보고입니다.
구약성서를 보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군인들을 환영하면서 여인들이 노래하고 춤추었다는 보도들을 몇 군데 찾아볼 수 있다(판관 11,34; 1사무 18,6 참조). 그런데 이 미리암의 노래는 다른 승리의 노래들과 비교하여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판관기나 사무엘서에서 여인들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투 대장이나 장군들을 칭송했던 것과는 달리, 미리암은 출애굽기에서 오직 야훼만을 찬양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미리암이 야훼의 위대한 구원의 행위가 반복해서 찬양되고 노래되는 곳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담하고 있음을 볼 때, 우리는 미리암이 이스라엘의 제의(祭儀)에서 확약하던 지도자였음에 알 수 있습니다. 미리암에게 붙은 여예언자라는 칭호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미리암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미가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냈다.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앞장세워 종살이하던 데서 너희를 해방시켰다.”(미가 6,4) 이러한 내용들을 토대로 볼 때 우리는 미리암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여성 지도자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위대한 민족의 여성 지도자 미리암에 대한 전승이 왜 폭넓게 성서 안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애매 모호하게 전해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민수기에서 전해지는 미리암에 대한 내용을 통해서 찾아질 수 있습니다. 민수기 12장에는 지도자인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와 동등한 자격을 주장하다가 미리암만 야훼께 벌을 받고 문둥병에 걸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이야기의 중심 내용은 아주 분명합니다. 야훼는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다른 예언자들과는 달리 특별히 취급하시고, 이에 대한 불만이나 도전은 문둥병으로 처벌하실 만큼 단호히 거절하신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남성 중심적 해석에 따르면, 이 설화는 여성 지도자였던 미리암 조차 말이 많고 질투가 심하다는 것을 주장해, 여성은 ‘어쩔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설화로 이해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설화는 지도자에 대한 도전이나 수직적 위계질서에 대해 대항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절대로 허용될 수 없으며, 이는 반드시 하느님의 단호한 처벌이 뒤따른다는 경고를 담은 설화로 해석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들은 지극히 남성중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서가 전하는 미리암에 대한 내용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구약성서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보도가 야훼 하느님을 평등, 해방, 자유의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느 것에 반해 민수기 12장의 설화자가 야훼를 편파적이고 여성 억압적인 하느님으로 증언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이를 위해서 우리는 민수가 12장의 설화자의 의도를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민수기 12장에서의 저자의 핵심이 지도자로서의 모세의 완벽함과 특별함을 강조하려는 데 있고, 이에 대한 어떤 비판도 허용치 않으려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는 뜻밖에도 독자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모습을 훼손시킬, 곧 저주의 하느님, 불평등한 하느님의 모습을 전해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똑같이 모세에 대항한 아론에게는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고 왜 미리암만이 문둥병에 걸렸겠습니까? 이러한 사고는 참으로 가부장적 인 것입니다.
민수 12장의 전체 흐름을 보면, 이 이야기는 아직 모세의 권위나 특별함이 확고해지기 이전에 생겨났음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가 형성될 당시에는 모세와 겨룰 수 있는 지도자들이 여럿이 있었으며, 당시의 가부장적 상황 속에서 여성인 미리암은 제거 당했으며, 반역자로 낙인찍히고 그와 관련된 긍정적 설화들은 그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채 단편적으로만 남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요컨데 미리암과 관련된 전승들은 남성 중심적 사고에 의해 그대로 전수되지 못했고, 모세 전승이 풍부해지는 것과는 반대로 점점 더 단편적이고 짤막하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성서를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공해 줍니다. 미리암 설화는 여성들로 하여금 여성 억압의 성서 본문들을 어떻게 계속 참다운 하느님의 메시지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과제를 제시해 줍니다. 우리가 성서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하느님은 남성중심의 왜곡된 하느님의 모습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사랑하시는 하느님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모세의 권위에 장애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미리암이 백성들 사이에서 존경받고 사랑 받던 존재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나마 전해주고 있습니다. 민수기 20,1에 나오는 미리암의 무덤에 관한 언급도 모세의 권위를 위해 희생된, 그러나 백성들 가운데서는 여전히 종경과 사랑을 받던 미리암의 위치를 잘 드러내 줍니다. “광야에 이르러 백성들이 자리를 잡은 연후에 미리암이 죽어 땅에 묻혔다.”(민수 20,1)고 성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평생을 주님께 봉헌한 미리암의 신앙을 볼 수 있다. 문둥병 환자가 되기까지 모세의 과오에 진노하며 정의를 부르짖었던 미리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로서, 지치고 넘어지고 주저하는 백성을 이끌어 홍해를 건너는 행진의 노래를 선창했던 미리암은 할 일을 다 마침으로써 자신의 생명조차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느님께 봉헌하며, 가나안 복지가 바라보이는 땅에 묻혀 죽음으로써, 이집트에서 가나안 복지로 탈출하는 민족의 과월을 위해 한 마리 번제의 양이 되었다.
그리하여 미리암은 속죄의 양이 되시어 그 피의 값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적 존재로서 모세가 아득한 옛날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할 때, 시작에서 끝까지 하느님과 모세와 동족을 위해 자신을 봉헌했던 모습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