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성 마리아 대축일(1.1.) <루가 2,16~21> (다해) 여러분은 자녀입니다
강길웅 신부
제1독서 민수 6,22~27 (내가 이 백성에게 복을 내리리라)
제2독서 갈라 4,4~7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 서 나게 하셨다)
복 음 루가 2,16~21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보았다.)
“여러분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오늘 2독서에 나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가지고 새해 첫 날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하느님께선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주어진 처지에서 가장 기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세상이 불공평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누구는 부자로 태어나고 누구는 가난하게 태어납니다. 누구는 죄없이 병으로 고생하며 누구는 또 애매한 십자가를 평생 짊어지고 갑니다. 그래도, 어떤 처지에서고 하느님께선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한 고등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공부도 잘 하고 기타를 잘 쳤으며 또 명랑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묻기를 혹시 다리 때문에 불편한 적이 없느냐고 했더니 그는 자기 다리가 안 보인다고 했습니다. 왜 안 보이느냐고 하자 그 학생이 대답하기를, 세상엔 봐야 할 더 좋은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그 말은 보석처럼 제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못난 사람은 평생 못난 것만 붙들고 징징거리며 고달프게 걸어갑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고달픈 것을 결코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가치있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러니까 인 생 자체가 다릅니다. 세상은 우리가 살기에는 너무도 아름답고 소중한 곳입니다. 정말 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종이 아닙니다. 종이라면 미래도 없고 자유도 없습니다. 그저 끌려다니고 이용당하는 노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녀이고 자유인입니다. 위대하신 하느님의 아들이고 딸이며 그리고 그 분 나라의 상속을 우리가 이미 보장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떳떳하고 당당해야 합니다. 긍지를 가지고 힘차게 살아야 합니다.
제가 누군가를 한동안 미워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그 미움을 아주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철저하게 저주하고 배척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신앙 안에서마저 누군가를 계속 미워하자 내 자신이 바로 그 사람의 종이 되어 끌려다니고 있다는 사 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었습니다.
기도를 해도 그 사람 미운 생각이 제 머리를 덮고 있었으며 말 을 할 때도 기회만 닿으면 그놈 밉다는 말이 계속 튀어나왔습니다. 잠을 잘 때도 어떻게 복수를 할까 궁리를 했으며 그 사람이 뭔가 잘 못되기를 속으로 바라고 또 바라곤 했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끌려다니면서 꼭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언젠가 그가 다시 미운 짓거리를 했을 때 저는 정말 그를 사랑 할 수 있었습니다. 그를 위해 진정한 애정으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제가 비로소 자유인이 되었고 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가 있었습니다. 원수는 참으로 우리가 갚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갚을 자격도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해서 복이 오는 것도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합니다. 참으로 좋은 인사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도 그런 내용 이 나옵니다. 먼저 하느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복받는 길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복을 받으려면 먼저 남의 복을 빌어 줘야 합니다. 아무리 미워도 복을 빌어줘야 합니다.
말이 좀 어패가 있는 듯하지만 후손이 편안하려면 먼저 돌아가신 조상들을 편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그분들이 구원받아 천국에서 평화의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분들을 위해서 우리 가 기도를 해 드리고 할 수 있으면 미사도 봉헌해 드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평화를 얻으려면 우리가 먼저 이웃의 평화를 빌어 줘야 합니다.
오늘은 특히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새해를 주님의 이름으로 열면서 또한 그의 모친 마리아를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오늘은 ‘평화의 날\’입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새해를 주님의 이름으로 마리아 와 함께 평화를 기원하면서 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복받는 길입니다.
우리가 새해를 또다시 맞이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이며 은총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남에게 복을 빌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축복이며 또한 우리가 부를 수 있는 주님이 계시고 찾을 수 있는 천상의 어머니가 계시다는 그 자체가 은총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올해도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지금의 처지에서 기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 우리를 어여삐 여기소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소서\” (시 66).
12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 <루가 2,15-21> 가까이 있는 작은 행복
강영구 신부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희망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에는 하느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이 하시는 일마다, 또 여러분의 가정마다 풍성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1991년을 역사의 뒤안으로 흘려 보내고 희망의 새해 1992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먼저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시다. 우리에게 밝은 미래를 약속하시고 이렇게 좋은 새날을 맞도록 안배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시다. 교회는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인 새해 첫날을 평화의 날로 정하고 모든 사람의 가슴마다, 온 가정에, 그리고 전 세계에 하느님의 평화가 넘쳐흐르기를 기원하고 있고, 특별히 모든 하느님의 자녀들이 평화를 심는 평화의 일꾼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 모두가 평화의 사도가 되기를 바라면서 몇 가지 여러분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덕담(德談)이라고 하지요.
첫째는,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찾으며 살자는 것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살아 있다는 기쁨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오늘 하루를 허락하셨다는 기쁨과 행복을 매일 맛볼 수 있습니다. 아침에 잠을 깨면 가슴에서 생명이 박동하고 생명의 희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창문을 통해서 찬란한 햇빛이 온 방에 가득하고, 그래서 억겁(億劫)의 흑암을 걷어 제치고 이 세상에 광명을 끌어들이던 천지 창조의 첫째 날의 환희를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만끽할 수 있습니다. 방문을 열어젖뜨리면 싱그러운 아침 공기가 얼굴에 마주치고, 가난한 사람도 돈 걱정 없이, 가슴을 열고 그 신선한 공기를 맘껏 들이마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팔다리를 상하 좌우로 움직여 보고 힘이 온몸에 흐를 때, 어찌 우리가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바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을 향해 뛰어 보고 땅을 힘차게 굴러 보고, 주먹을 휘둘러보아도 거칠 것이 없는 자유, 그것이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니며 행복이 아닙니까?
이 세상에는 갖가지 신체적인 부자유에 속박되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이런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도 별로 감사히 여기지도 않았고, 사소한 불편에도 불평하며 찌푸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매일 변함 없이 자애로우신 부모님의 모습, 사랑스러운 아내의 모습, 믿음직한 남편의 모습, 귀엽고 사랑스러운 자식들, 정다운 형제자매가 만들어 내는 화목한 분위기를 누릴 수 있지 않습니까?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서 기도를 바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행복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출근을 하면, 그 또한 큰 행복이 아닙니까?
매일같이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나면, 찾아갈 안식처 가정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사랑스러운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의 환영을 받으며 집에 돌아와 서로 그 날 있었던 일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저녁을 먹노라면 “서로 미워하며 소고기를 먹는 것보다 서로 사랑하며 채소를 먹는 것이 낫다.”는 잠언의 성경 구절이 그대로 들어맞는 행복 아닙니까?
비록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하루였으나, 어떤 분들에게는 셋방살이 고달픈 하루였으나, 하루를 지켜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기도를 바치고, 따뜻한 잠자리에 들면 왕후장상(王侯將相)이 부러울 것 있습니까?
이렇게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지극히 가까운 데 있습니다. 크고 엄청난 일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일에 행복이 있습니다. 작은 일에서 행복과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큰일에서도 행복을 찾지 못합니다. 밝아 온 새해에는 이렇게 가깝고 작은 곳에서 행복을 찾고 감사하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둘째로는,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보면서 사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나날의 삶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늘 기쁨과 행복 그리고 감사할 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살이라는 것이 그렇지 못합니다. 때로는 병이 들어 아프고, 아내는 바가지 긁고, 아이들은 시험에 낙방하고, 어린 자식놈들은 매일 얻어맞고 울며 들어오고, 하는 일은 뜻대로 되지 않고 걱정 근심 끊일 날이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도 합니다.
세상살이란 이렇게 밝고 어두운 면이 서로 엇갈리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보고 밝은 면을 추구하면서 사는 사람은 항상 밝게 웃으면서 살 수 있고, 인생을 소극적으로 어두운 면만을 생각하면서 관심 걱정만 하는 사람은 항상 우울하고 어둡게 살수밖에 없습니다.
장미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장미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만을 생각하지 그 꽃에 가시가 있다는 것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장미나무가 한낱 가시나무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 것입니다. 장미꽃의 가시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장미의 아름다움과 그 향기를 즐기지 못합니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살이는 한 송이 장미꽃입니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면을 생각하고 추구하는 사람에게 인생살이는 행복한 일, 감사할 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나 가시에 찔릴 것을 걱정하는 사람은 인생살이의 고달픔, 괴로움을 생각하면서 항상 우울하고 불행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짚신 장수 아들과 우산 장수 아들을 둔 어떤 어머니의 우화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두 아들을 두고 있었는데, 하나는 짚신 장사를, 하나는 우산 장사를 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이 어머니는 매일 근심 걱정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날씨가 화창하게 개인 좋은 날에는 우산 장수 아들이 돈을 못 벌어서 걱정이고, 날씨가 궂고 비가 오는 날에는 짚신 장수 아들이 짚신을 팔지 못하니까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날씨가 맑아도 걱정, 비가 내려도 걱정, 걱정이 끊일 날이 없었습니다.
늘 우울하고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사는 이 어머니의 모습을 보다 못한 이웃집 노인이, 이렇게 하면 기쁘고 행복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짚신 장수 아들이 우산을 팔 수 있어서 좋고, 개인 날에는 짚신 장수 아들이 짚신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으니 좋지 않느냐. 매일 좋은 일만 생각하라.” 이 노인의 충고를 들은 두 아들의 어머니는 매일같이 기쁜 일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비가 오는 날도 좋고 개인 날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늘 행복했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 인생살이에는 양지와 음지가 엇갈리게 마련 아닙니까? 적극적이요 긍정적으로 밝은 면을 보고 사는 사람은, 인생을 보람되게 기쁘게 살며 늘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소극적으로 살며 부정적이고 어두운 면만을 보는 사람은, 항상 우울하고 관심 걱정에 사로잡혀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을 왜 어둡고 우울하게 살 것입니까? 기쁘게 보람되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우리는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모든 것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늘에 나는 새들을 먹이시고 들의 꽃들을 솔로몬보다 더 화려하게 입히시는 하느님을 믿는 우리가 무엇을 걱정하고 염려하겠습니까?(마태 6,5 이하). 우리 신앙인들은 더욱더 기쁘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새해에는 이렇게 밝은 면만을 보면서 인생을 긍정적이요,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갑시다. 하느님께서 한 송이 장미와 같은 새로운 한 해를 선물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선물 주신 이 새로운 한 해를, 가시는 생각하지 말고, 장미의 아름다움과 향기만을 생각하면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참된 행복은 받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는 데 있습니다. 가장 완벽하고 차원 높은 삶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삶입니다. 샘물은 계속 퍼 써야만 맑은 물이 샘솟게 됩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사해가 그야말로 죽은 바다가 된 것은, 강물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물을 흘려 보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생살이도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가족들에게 이웃과 형제들에게 행복을 나누어주는 사람은, 언제나 기쁨과 행복이 샘솟을 것입니다. 사도 행전 20장 5절에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행복해야 하고,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안에 사는 사람, 아버지이신 하느님 안에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들이고, 그 사람 안에 행복이 가득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나누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밝아 온 새해에는 이웃과 형제들에게 빛을 비추며 행복을 나누어주는 생활을 합시다.
사도 바오로는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4장 4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희망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골 한 해는 여러분 모두가 참 행복을 누리는 한 해, 진실을 말하며 정의를 실천하는 한 해, 서로 사랑 나누는 한 해가 되기를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풍성하기를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13 천주의 모친 마리아 대축일 <루가 2,16-21>
그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
변희선 신부
5년 전쯤에 미국의 보스턴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나에게 여동생이 편지를 보내왔다. 이 편지의 내용들은 매우 아름답고 영적이었다. 그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오빠! 얼마 전에 우리 둘째 아이 용수가 손을 다쳤어요. 그래서 저의 마음 고생도 많았지만 새삼 오빠가 손을 다쳤을 때에, 엄마께서 얼마나 힘드셨는지를 조금은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엄마의 크신 사랑을 더욱 깨닫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요. 저도 용수를 더 잘 키우려고 매일 그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어요」
나는 이 아름다운 편지를 읽으면서, 내 동생 벨라뎃따가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섭리와 구원 경제학을 깨우쳐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이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음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성서와 그분의 구원 경제학을 묵상하고 연구하다보면, 하느님은 이 세상을 한꺼번에 완성하실 계획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인간들을 당신 구원 경영의 동반자로 초대하시고, 서서히 세상구원을 완성하시려는 그분의 거룩한 구원 의지를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의 가장, 구체적이고 명백한 증거는 바로 성모 마리아님이시다.
곧 2천년 대희년을 맞이하는 성교회는, 그 동안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성모 마리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경륜에 대하여 깨우친 바가 크게 4가지가 있다.
하나는 성모님의 원죄 없으심이고, 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동정으로 잉태하심이며, 셋은 성모님의 영혼과 육신의 승천이며, 넷은 성모께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올림을 받으신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구원 의지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전적으로 협력하셨기 때문임도 잊지 말아야한다.
성모님은 당신의 일생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무엇보다도 기도를 통하여 깨닫고 협력하셨다. 몇 가지의 예를 들어보자. 성모님께서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믿기 어려운 성령으로 인한 잉태 소식을 전해듣고 기도로 응답한다. 그녀의 응답은 하느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는 기도였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장 38절)」
마리아께서 사촌 엘리사벳의 문안 인사를 받고서 보인 반응도, 역시 감사와․찬미의 기도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이 설레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루가 1장 46-48절)」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목동들이 주님의 탄생을 경배하러 왔을 때 마리아의 반응도 역시 기도였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였다.(루가 2장 19절)」
마리아의 이러한 기도는 예수님을 잃고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삼일만에 찾았을 때도 계속된다.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루가 2장 49절)」 마리아의 이러한 관상적 기도를 루가 복음사가는, 「그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2장51절)」라고 전한다.
이러한 예들은 성모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인 구원 경제학에 대한 우리의 자세와 협력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2천년 대희년을 1년 안에 맞이하는 새해의 첫날에 우리는 다음의 사실들을 묵상 해보자.
▶ 하느님께 나를 이 세상에 부르셔서 사람이 되게 하셨다 ▶ 하느님에서 나에게 무한한 자유와 지성과 감성을 부여하셨다 ▶ 하느님께서 나에게 여러 가지 재능들을 주셨다 ▶ 하느님께서 나에게 부모님을 비롯한 여러 친구들을 보내 주셨다 ▶ 하느님께서 나에게 신앙을 주셔서 당신을 깨닫고 찬미하게 하셨다 ▶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다.
이 모든 하느님의「선물들은 결국 우리가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에 어떻게 협력하느냐에 따라서, 그 값어치가 결정된다는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자. 「성모. 어머님! 저희 모두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14 천주의 모친 성마리아 대축일 <루가 2,16-21> 신앙인의 모범이신 어머니
유영봉 신부
묵상 : 교회는 초세기부터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으로 불렀다. 마리아에게서 나신 예수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신앙인의 모델이며, 교회의 모델이다. 마리아처럼 하느님 중심으로 살 때 우리는 평화의 사도가 들 수 있다.
1. 마리아는 일치의 걸림돌인가?
오늘 축일이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이다. 한 인간인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이라니, 놀라운 호칭이다. 보통 축일도 아니고 대축일이고, 한국교회는 이 축일을 주일이 아닌데도 의무축일로 지내고 있다.
게다가 오늘은 새해를 시작하는 1월1일이다. 새해 첫날을 마리아의 축일로 시작하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신자들 입장에서 보면 “가톨릭은 역시 ‘마리아교\’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하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거치면서 교회일치운동이 활발해지자, 마리아에 대한 가톨릭 신자들의 신심은 교회일치운동의 걸림돌인 양 생각되기도 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는 ’마리아론\’이라는 과목이 없어지고 ‘교회론\’에서 간단히 언급하는 경향도 있었다.
우리는 이 축일을 지내면서 마리아에 대한 우리의 신심을 새로이 조명해봐야 하77다,
2. 신․구약의 연결고리 마리아
오늘로서 구세주의 성탄을 축하하는 8일 동안의 축제기간이 끝나게 된다. 구세주의 탄생에 가장 깊이 참여한 마리아의 축일로 성탄축제의 끝을 장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다시피, 구약은 신약에로 인도하는 빛이며, 구약의 모든 예언과 예표(豫表)는 구세주의 탄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 탄생으로 완성된다.
마리아는 인류의 역사를 기원전․후로 구분하는 분기점에 서 있으며, 구세사 안에서 볼 때 구약의 끝이면서 신약의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다. 마리아의 탄생으로 인류에게 구세주 탄생의 서광이 비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묵은 해를 접고, 새해를 여는 1월1일을 성모님의 축일로 지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3. 어떻게 ‘천주의 모친\’인가?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향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하며 인사하였다. 교회는 초세기부터 마리아에게 \’천주의 모친\’이라는 엄청난 호칭을 부여하였다. 교회사를 보면, ‘예수그리스도는 뛰어난 인간일 뿐, 결코 신 (神)은 아니다\’고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주장이 있었다. (아리우스 이단) 그러자 325떤 전 세계 주교들은 니케아에 모여 이 주장을 이단(異端)이라고 단정하였다.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과 인성(人性) 두 위격(位格)이 있다\’고 주장하는 설도 있었다. (네스토리우스 이단)
또다시 주교들은 431년 에페소에 모여 이 주장을 이단으로 단정하였다. 그리고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으로 선언하였다.
교회는 이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한 위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함에 조화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제2위 성자이심을 분명히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그 예수가 바로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면, 그를 낳은 마리아는 당연히 \’천주의 모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마리아의 위상(位相)은 항상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가 어떤 분인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으로 공경하는 신심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임을 명심하자.
4. 신앙인의 모범, 교회의 어머니
어떤 이들은 \’마리아는 우연히 구세주의 어머니로 선택되어 만인의 공경을 받는 \’운 좋은 스타\’라고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예수의 잉태를 수락한 그 순간부터 마리아의 일생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꿈처럼 지나간 가브리엘 천사와의 만남, 처녀 임신, 요셉과의 말못할 결혼, 이집트로의 피난, 예수의 가출, 방랑설교가가 된 예수, 선동가로 몰린 아들의 체포와 죽음 등, 끝없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예사롭지 않게 태어난 예수님은 마리아에겐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이었다. 사흘만에 성전에서 찾은 예수는 “어머니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하였다, 그러나 부모는 아들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였다.(루가 2,49-50)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
하느님은 왜 나를 이 일에 끌어들이셨는가? 이 일이 장차 어떻게 된 것인가?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마리아는 끊임없이 하느님의 시선을 응시하면서 묵묵히 \’당신 뜻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fiat)\’를 계속하였다.
이런 면에서 마리아는 일생 하느님의 뜻을 찾고 쫓는 신앙인의 삶을 사셨다. 그래서 마리아는 신앙인의 모범이며, 교회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15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 (루가 2, 10-21)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성모님은 우리 모두 본받아야 할 대표적인 인물이다. 구세주를 낳으신 어머니이시자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여성 중의 여성이며 어머니 중의 어머니시다.
성서는 우리를 루가복음 1,26-38과 교회의 신심으로 안내한다,
우선 준비기도를 드린 후 마음을 가다듬고 복음을 한두번 읽어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한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라는 소식을 전하자,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주저하다가, 결국에는 완전한 자유와 신앙으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내용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천사의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는 마리아의 심정으로 들어가 본다.마리아는 처음에는 대단히 놀랐다. 왜 놀랐겠는가?
왜냐하면 자신은 이미 요셉이라는 남자와 약혼한 몸이었기 때문이다. 요즈음 같으면 약혼이란 혼인을 올리기 전까지 쉽게 파기할 수도 있는데, 유다 풍습의 약혼은 바로 혼인이나 다름없었다. 그 나라에서는 약혼도 혼인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약혼한 처녀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으면, 혼인한 여자와 똑같은 처벌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은 중죄로서 사형으로 다스려졌다.
마을 사람들이 동구 밖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이기도 하고, 화형에 처하기도 하였다.
이스라엘 여성인 마리아가 이 사실을 모를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매우 놀란 것이다.
신앙인의 모범 성모 마리아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계신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인사하였다. 천사의 모양이 태양처럼 찬란히 빛나고, 그 빛 속에서 분명히 돌려온 목소리를 들은 마리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골에서 순진하게 자라온 그녀에게 ‘은총을 가득히 받았다\’는 말은 이해도 안되거니와 대단히 놀라운 일이라,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을 것이다.
그런 인사는 구약의 위대한 판관이었던 기드온이나 위대한 예언자들에게 천사가 한 인사가 아니었던가? 더구나 은총이란, 하느님께서 경건한 자나 고생하는 자 또는 특별히 간택하신 이들에게 주시는 선물이 아닌가?
그러니 시골 처녀 마리아에게는 생소하고 너무나 이상한 광경이었던 것이다. 비천한 나에게 은총을 가득히 받았다는 이 인사는 도대체 어떤 뜻일까? 성서는 처녀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그대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몸이오. 그대에게서 이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예수는 \’하느님이 구원하신다\’는 뜻)가 성령의 힘으로 태어날 것이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란 없소. 그대의 친척 엘리사벳을 보시오. 그 늙은 나이에도 하느님의 능력으로 아기를 가진 지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소. 그러니 놀라지 마시오—. ”
이렇게 말하는 천사의 말에 압도된 마리아는, 곰곰이 생각한 후 결정을 내렸다.
즈가리야는 아기 탄생(세례자 요한)의 증거를 달라고 천사에게 도전하지만, 마리아는 하느님의 호의에 대한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알린 다음, 온전한 자유와 신앙의 행위로 모든 것을 전능하신 하느님께 맡기고 “저는 주님의 여종이오니,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한 것이다.
온전한 순명과 겸손의 응답
마리아의 그 응답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 놓았다. 권력과 악령의 지배하에 있던 인류에게 광명의 빛이 비친 것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시게 된 것이다. 과연 마리아는 그 응답으로 “세세대대에 만세가 복되다\”라고 일컬을 위대한 어머니이자 성모가 되신 것이다.
교회는 역사를 통하여 마리아의 이 응답을 끊임없이 묵상하면서 생활에 적용시켜 왔다.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마리아가 그것을 깨닫고는 즉시 “주님의 뜻대로 이루머지소서\”라고 한 그 응답(fiat)은 우리 신앙의 모범이다. 순명과 겸손 그리고 온전한 위탁의 정신이 여기서 나오지 않는가? 그러므로 올바른 자세로 신앙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마리아처럼 하느님께 응답하며 순명과 겸손과 위탁의 정신으로 살아가게 된다.
나는 어떠한가? 나도 성모님처럼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주소서\”라고 기도하며, 교회 안에서 순명과 겸손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주님 안에 머물면서 성모님의 정신을 배우는 방법을 알아보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청하고 이런 시간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 후 묵상을 마친다.
16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 (루가 2, 10-21)
“인간의 행복은 물질적인 것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에 의해 좌우”
98년은 암울한 한해였다. 흥청망청 돌아가던 경제가 파탄에 이를 뻔했다. 시골에서도 계를 들어 동남아 여행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모두가 1등 국민이 된 느낌으로 살았다. 더군다나 정치판에서 돌아가는 돈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1억원이란 돈이 보통사람에겐 어마어마하지만 정치판에서는 코흘리개 과자 값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나라의 빛이 도대체 얼마인지 알지 못했다니, 암울한 한해가 아닐 수 없었다.
뒤돌아 본 한해
지난해의 장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악몽처럼 여겨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농사를 망쳐서 가슴 아픈 이들이 많다. 이런 상처가 조금씩 아무는가 했더니, 군에서 터진 여러 사건들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건들도 하나씩 역사의 뒤편으로 잠들기 시작했고, 오늘 우리는 새해의 태양을 바라보게 되었다. 참으로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다. 새해가 밝았으나 수많은 시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과거의 모든 문제들이 말끔히 해결된 채 새해를 맞았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시련들을 떠안은 체 새해를 맞이한다. 특히 경제적인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경제적인 고통으로 많은 가정들이 흔들리고, 결국 파탄으로 가는 가정들도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해서 생겨나는 수많은 문제들은 지난해보다 늘어날 기미다.
정신적인 면에서도 불확실성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못잡고 소위 데카당식 인생을 살아갈 가능성이 많다. 이로 인해 될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성 범죄가 늘어날 가능성이 잦다. 사회 불안으로 서로가 경직되고 살벌해지는 메마른 사회가 되기 쉬운 것도 예상된
다.
새해의 만만찮을 도전
종교적인 면에서 1999년은 특별한 해다. 그 어느 해보다도 신흥종교들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종말이 다가왔다고 사람들을 현혹할 것이다. 이미 노스트라다무스라든가, 에드가케이시, 제3의 비밀 등이 1999년을 멸망의 해로 예견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종말을 대비하느라 부산할 것이다. 이렇게 여러 집단이 종말이 왔다면서, 일도 안하고 소리내어 기도만 하고 있다든지, 기도가 중요하기에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함께 기도하는데 보낸다면 문제는 심각하게 된다.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데 일은 안하고 천지개벽만 외치고 있다면, 사회는 점점 불안해질 것이다,
새해가 되면 장밋빛 계획으로 부풀어 있는 것이 예사였으나 올해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성모님께 한해를 맡긴다면 우리의 한해도 문제없다, 교회는 특별히 새해 첫날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낸다. 마치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어린 아이가, 어머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듯이,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새해 첫날을 봉헌하는 것이야말로 어린 아이처럼 우리 자신을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 내맡기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머니가 있는 한 안전하다. 우리도 성모님이 계시는 한 안전하다.
사도 바오로는 “이 시대는 악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술 취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야 합니다. 또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십시오\”(에페 5, 16-20참조)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주님에게서 강한 힘을 받아 굳건해져서 악신들과 싸워 이기라고 말한다.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외로 가슴에 무장을 하고, 평화의 복음을 갖추어 신고, 믿음의 방패를 잡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언제나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라고 말한다,
늘 깨어 기도하라고 거듭 말한다. (에페 6,10-20 참조)
믿음만이 살길이다.
새해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모님께 자신을 다 바치는 것과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는 것이 승리의 한해를 살아가는 길인 듯 싶다.
덧붙여서 자신이 어디에 있든 자신이 있는 거기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그곳을 거룩한 곳으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 한해가 된다면, 행복이 넘치는 한해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우리 선조들은 전등이 없었다. 자동차도 없었다.
그러나 그분들의 집안에는 웃음이 있었고, 행복도 가득했었다. 그러므로 행복이란 세상의 어떤 것들이 있고 없고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행복은 물질적인 것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에 의해 좌우된다. 특히 믿음은 그 무엇보다도 행복의 잣대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