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의 밤

 

\”어머니의 은혜“

나(낳으) 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부모님의 사랑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님의 사랑을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나의 부모님께서는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으십니다. 사랑했기에 나를 낳으셨고, 사랑했기에 행복하셨고, 사랑하시기에 지금도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어느 분이 이런 글을 올리셨습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 어머니는 원래 그래야 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논밭에서 허리가 부러지도록 힘들게 일하셔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당연히 그러셔야 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찬 밥 한 덩이로 부뚜막에 앉아 대충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생선을 구워 주실 때 머리만 드시며, “생선은 머리가 맛있는 곳이란다.”라고 말씀하실 때, 생선 머리는 어머니 몫이라는 것을 늘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생선 머리는 떼어서 어머니를 드려야 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한겨울 얼어붙어 잘 나오지도 않은 수돗가에 앉아, 맨손으로 온 식구들의 빨래를 해도, 저는 그것이 어머니의 당연한 모습으로만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손이 안 시려운 분이신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당신 스스로는 정작 말없이 두 끼를 굶으셔도, 어머니는 응당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따로 뭔가를 드셨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떨어진 속옷을 꿰매서 입으셔도, 다 떨어진 속옷을 입으셔도, 발뒤꿈치가 다 헤어진 양말을 여러 번이고 꿰매 신으셔도, 나의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가끔씩 외할머니가 생각난다고, 어쩌다가 이미 세상을 떠나신 외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저는 그저 어머니의 넋두리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찬 서리 내리던 어느 날, 한 밤 중에 주무시다 깨시어 외할머니를 부르시며 소리 죽여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본 후론  그제야 어머니는 그러시면 안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눈물을 흘리시며 성모님 앞에 촛불 켜놓고 묵주기도를 바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는 그러시면 안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어머니께 이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어머니에게 받으려고만 할 때, 어머니의 사랑을 당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때, 어머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행복해 하셨습니다. 하지만 못난 자녀인 나는 그것을 너무도 당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어머니를 두 글자로 표현한다면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자녀들을 사랑하셔서 자녀들에게 사랑밖에는 모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랑하시기에 지금도 나의 어머니는 “건강 조심해라, 차조심해라, 신앙생활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일 저녁만 되면 “미사참례 했냐?”고 물으십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나는 이해 못하고, 짜증을 내고, 내 필요한 것들만 부모님께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그렇게 안하셨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성모님께서도 그런 어머니셨습니다. 아기예수님을 키우시면서 그렇게 사랑으로 키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생을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사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하시면서 어머니께 다른 자녀들처럼 해 드릴 수 없었기에 어머니께 더 큰 축복 “천상 모후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릴 적 어머니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많은 사랑을 드렸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생활을 하시면서는 인간적으로 본다면 고통만을 드렸습니다. 아들이 먼저 처절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 그 어머니에게 예수님께서는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고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맡기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없었다면 어머니 마리아는 미쳐 버렸을 것입니다. 마치 최양업 신부님의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가 젖먹이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잠시 실성하여 배교를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성례 마리아는 다시금 감옥으로 돌아와 순교의 칼날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도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렇게 자녀들을 잘 키울 수 있겠습니까? 축복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축복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의 자녀는 다르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교회가 성모성월을 정한 것은 인간 구원을 위하여 간구하는 성모 마리아의 사랑에 감사하기 위한 것이고, 어머니 마리아에게 사랑을 드림을 통해서 하느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또 모든 성인 성녀들이 성모님을 공경하였던 것처럼 마리아가 하느님께 때한 순명과 사랑을 본받기 위한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 오월에 성모님의 믿음을 기억하면서 성모님께 사랑을 드리기 위해 모인 이 밤에 우리 신앙인들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라는 응답을 통해서 구원역사 안으로 들어오시는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말없이 부르심에 응답하고, 한 생을 침묵 속에서 기도하시며 예수님의 뒤를 따르신 어머니의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응답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어머니 마리아의 신앙. 성모님은 모든 신앙인들의 믿음의 본보기이십니다.

“예”하고 응답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이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 부모님께서 심부름을 시키시면 즉시 응답하는 아이들이 있고, 짜증을 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 노력하는 아이는 즉시 부모님의 말씀에 응답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버린 아이는 부모님의 말씀을 귀찮게 여깁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 주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모님께서 그렇게 사셨습니다. 성인들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렇게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하셨습니다.




 이 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고자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의 신앙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어머니께서 “예”하고 응답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에 언제나 “예”하고 응답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이 밤 함께 기도합시다.

어머니! 당신의 믿음을 본받아 끝까지 당신 아드님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제가 걸어가게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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