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교황주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1.말씀읽기:마태16,13-19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다 (마르 8,27-30 ; 루카 9,18-21)

2. 말씀연구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물어보십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하냐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물으실 수 있습니다. ①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와 ②사람들이 너를 통해서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입으로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삶은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내 입이 아니라 내 삶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이 동네 사람들은 빵신(神)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네아스>라고 불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헤로데 안티파스의 이복 동생인 헤로데 필립보가 기원전 2세기경에 세운 도시입니다. 그 후 카이사르 아우구스토를 숭앙하기 위해 카이사리아라고 개명하였습니다. 헤로데 대왕이 세운 또 하나의 카이사리아와 구별하기 위하여 보통 필립보의 카이사리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그러자 제자들은 그동안에 자신들이 들었던 이야기들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이라는 신앙고백을 통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믿는 이들에게나 믿지 않는 이들에게나 공통된 생각은 ‘특별하신 분“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엘리야라고 생각했는데 엘리야는 사람들의 지대한 존경을 받았으며 하느님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들어 높여졌기 때문에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다시 오리라고 기대되고 있었습니다(말라4,5-6). 그리고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라는 추측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높이 평가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언자보다 더 높은 명예를 거의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더 높은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분명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분이 바로 메시아인줄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귀 두목의 힘을 빌어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내 주변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역사의 인물 중에서 위대한 성현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 말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이 질문을 예수님께서 나에게 하셨다고 생각해 봅시다. 내 삶이 멋지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뭔가 다르구나!”하는 소리를 들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그리스도로 고백할 것입니다. 하지만 내 삶이 그저 그렇다면 “예수쟁이들이 또 떠드네!”하면서 외면할 것입니다. 입만 살아서 움직이고, 일치보다는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모욕을 당하시게 될 것입니다.

내가 생각한 것이 내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나는 주님을 누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요한 금구 성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일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면 계시는 없었으리라. 베드로가 예수님도 다른 사람의 아들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칭찬받을 가치는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나는 성경을 읽는 사람이어야 하고,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가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살과 피는 자연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자연인간은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초자연적인 것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계시를 해 주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계시를 받았기에,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존엄성과 그분의 위격의 신비에 대한 지식은 아래에서부터 나오는 것(인간의 지식)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계시)이기에 이 “앎”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심오한 신비를 아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복된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가 복된 사람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 선언을 살펴보면 “안다는 사람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신비를 보여 주셨다는 예수님의 감사기도”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자신들의 머리로 파악하려는 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려고만 하는 이들은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르요나는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한 1,42;21,15에선 베드로를 요나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요한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십니다. 베드로라는 말은 아람어의 게파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으로 “반석, 바위”라는 뜻입니다. “너는 베드로이다”라는 말씀의 주요한 의미는 시몬이 이제 반석이 되어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바위는 하느님 자신을 가리켜 자주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바위시며, 성채이시고, 확실한 지주시며 영원한 기반이시며, 영원불변하고 굳건한 보증이십니다. 폭풍이 일거나 홍수가 골짜기로 밀어닥칠 때 사람들은 바위로 피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석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모레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마태7,24-27).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머무르실 거처로 바위 하나와 집 한 채를 특별히 뽑으셨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이 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를 뜻합니다.

지옥문은 죽음이 정복한 자들에게 활짝 열려 있으며 이미 이 죽음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망칠 수 없도록 굳게 닫혀져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해 죽임이 더 이상 맥을 못 추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공동체에 대해서도 죽음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지만(로마5,12)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몸값으로 당신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를 정복하실 것입니다(속량). 그리고 이 반석은 죽음에 의해 억눌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력은 더 이상 죽음에 의해 정복될 수 없습니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문에 의해 보호되는 도시나 현관문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집에 비유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닫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합니다. 열쇠는 권한을 부여받은 수위나 청지기가 갖고 있는데 베드로는 바로 이런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엄청 큰 권한을 갖게 되는 청지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풀다와 매다”는 것은 ①“옳다, 그르다”를 판정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그리고 ②누군가를 공동체에서 제외시키거나(파문)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권한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무엇이 올바른 교리인가 하는 결정과 누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받아들여짐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을 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풀고 매는 권한은 구원의 중개에 대해서나 그러한 중개가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양식에 있어서 포괄적인 위임인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이 선언은 하느님 앞에서 유효합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몸소 선언하신 것처럼 선언되는 그 순간에 유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엄밀히 말한다면 신적인 사명을 수여 받은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의 판정은 이러한 힘과 신적인 유효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교회에 부여되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의 열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앞에서 유효한 사도들의 성스러운 사법권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누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일은 마지막 날의 심판관에게 유보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양과 염소를 갈라놓으실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행사되는 사법권에 의한 예비적인 판결들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뽑힌 선택된 자들의 이름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감추어져 있지만, 최종적인 하느님 나라를 위해 준비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구원의 공동체에 누가 속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베드로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한이 인간들이 만들어 낸 제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신적인 질서라는 것,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말입니다.



3.나눔 및 묵상

1. 나의 주변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주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2. 베드로 바오로 축일을 맞이하여 축일을 맞이한 형제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해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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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교황주일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교황주일


    1. 정 대주교 메시지 / 2                 2. 변기영 신부 / 3 

    3. 성민호 신부 / 4                       4. 심영택 신부 / 6

    5. 박효종 신부 / 8                 6. 조순창 신부 / 12

    7. 주보 (작자 미상) / 13 


    1.               교황주일 <마태 10,37-42>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 만들기

                                                                            정진석 대주교


      교형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지 일년이 되었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언제나 곁에서 저의 사목에 협조해주신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1. 지구장 제도를 통한 교회 운영


      우리 교구는 매우 큰 교구로서 전부터 지구장 제도를 운영해왔지만 이제 교회법에 규정된 대로 더 강화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 저는 교령을 통하여 현재 15개 지구에 3개 지구(경기 북부지구, 경기 서부지구, 경기 동부지구)를 추가로 설정하였습니다.


         2. 주님께서 맡기신 선교사명


    저는 금년도 사목교서에서 복음화율 18%를 내세웠습니다. 교회의 일차적인 사명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전파에 열의를 가질 때 이 목표는 도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구의 모든 교우들이 전교에 박차를 가하고 그에 따라 본당을 신설하도록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3. 소공동체를 통한 교회 공동체의 활성화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 상호간의 친교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황을 비롯한 모든 교우들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한 형제자매인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교계 제도적인 친교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이 교계제도 안에서 맺는 친교를 말합니다 이 같은 친교가 제대로 되려면 소공동체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소공동체를 통한 교회 공동체의 활성화에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4. 교회의 미래인 유아 및 청소년 교육의 중요성


    이제 우리는 교회의 미래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신앙교육에 큰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서울교구의 신자 비율이 10%를 넘었다고 하지만 주일학교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특히 유치원 교육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신앙교육은 인생의 어느 시기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5. 가정의 복음화는 사회복음화의 밑거름

    가정은 우리 인생의 가장 핵심적이며 중요한 터전입니다. 가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우리들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신자들의 가정은 모범적이고 거룩한 가정이 되도록 불림받았습니다. 가족간의 대화, 예를 들어 부부간,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가정 안에서 병자들과 노인들, 장애인들이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받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6. 이 시대가 바라는 사제상


    몇십 년 전만 해도 가톨릭 성직자는 최고의 지성인 그룹에 속하였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사제는 최고의 지성인 그룹에 속합니다만 평신도들도 사제 못지않게 배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제 지적(知的)인 측면에서는 사제의 우월성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제는 영적(靈的)인 분야의 전문가로서 그 위치를 확고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성직자와 수도자의 부모님께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습니다.

    또한 저는 평양교구의 교구장 서리로서 북한 형제자매들을 잊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곳에도 복음을 전하고 교구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진석 대주교/서울대교구 교구장


    – 위 말씀은 지난 6월21일 교구장 착좌 1주년 기념 회견(가톨릭․평화신문) 내용을 홍보실에서 요약 게재한 것임 –






    2.             교황주일    그리스도의 대리자

                                                                             -변기영 신부


    교형자매 여러분, 오늘은 사도 성베드로 대축일 동시에 교황주일입니다.

    오늘과 내일의 교회예절이 의미하는 바를 묵상하면서 우리 가톨릭의 성직제도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선 교황성하에 대해서 사람들은 흔히 전 세계 가톨릭을 통치하는 행정적인 최고 상관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성직자들의 대표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황성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 천상교회의 신전이 지상 교회로 전달되는 중추적이며 중심적인 최상의 성직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상의 모든 신자들에게 천상 신비를 전달해 주며 하느님의 은총을 관리하고 분배하는 목자들의 목자로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 세계 도처에 당신의 대리자이며 협력자를 임명하여 세우고 다스리며 하느님의 교회를 유지 발전시켜 나아가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도 성베드로에게 맡기신 모든 의무와 권리를 후계자로서 다 물려받아 행사하시는 분이 바로 교황성하이십니다.

    일부 신교파에서는 교황의 수위권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에게까지만 그리스도의 대리자 직무와 그 권리가 주어지고 그 후부터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서를 올바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까지 만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면서 의무만을 후계자들에게 물려주시고 그 의무 수행에 필요한 권리를 다 빼앗아버리는 무리한 일을 하실 수는 없으십니다.


    늙으신 가장이 집을 떠나거나 세상을 떠나면 그 후계자인 큰아들이나 혹은 합법적인 상속자가 가산과 모든 식구와 기물을 관리하는 것이 당연한 사리입니다. 만일 상속자인 큰아들에게 집안식구와 가산을 관리하라는 의무만 남기고 모든 등기권이나 일체의 권리는 물려주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없지만 있다면 이것은 정말 경우에 맞지 않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0억 이상의 신도들과 전 세계 인류를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다스리는 교황성하께서는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사도 성베드로의 후계자로서 만인에게 존경과 순종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다가 당신의 직무 대리수행자를 세워 주심은 얼마나 감사하고 위로가 되는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고 은총을 받고 그리스도를 만나뵙기 위하여 천상에 가볼 수 없으므로 (육체를 가진 지상인으로), 이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리자와 일치되어 있는 협력자이며 동시에 지역에서 교황을 대리하는 교황대사나 또는 소속 교구장인 주교님들 나아가서는 주교님들의 협력자이며 본당 내에서 주교님을 대리하여 우리에게 성사를 거행하며 우리를 돌보아주는 사제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교황께 존경과 순종과 감사의 정을 바치면서 모든 성직자들을 위하여 다 같이 열심히 기도드립시다.






    3.                   교황주일       비바빠빠! 교황 만세!  

                                                                               성민호 신부



    6월 29일은 우리 교회의 두 기둥이신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이며, 이 대축일에 가까운 주일을 교황주일로 지냅니다. 온 성교회의 발전은 물론 세계평화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계시는 교황님의 노고에 대해 감사를 드릴 뿐 아니라, 그분의 영육간 건강을 위해 기도드리며, 그분께 존경과 순명을 다짐하는 주일입니다

      

    성서를 보면, 그리스도께서 산에 올라가 밤을 세우시며 하느님께 기도하신 다음날 제자들을 불러 그 중에 열둘을 뽑아 사도로 삼으셨습니다(루가 6,12참조). 사도들을 선택하는 일이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밤세워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특별한 사명과 권한을 부여하시고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다”(요한 22.23).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28,17-20).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마르 22.19).

      

    사도들에게 주어진 권한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도권과 지도하는 사목권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을 분배하는 성사권으로서, 이 권한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서 인류 구원사업을 위하여 행사하신 권한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열두 사도들의 대표자를 임명하지 않고 동등한 권한과 직책을 주셨더라면 그리스도 교회는 머지않아 열두 파로 나누어져버렸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기도하신 주님께서는 분명히 열두 사도 중 으뜸 사도를 선정하지 않을 수 없으셨습니다. 그가 바로 베드로 사도입니다. 그는 사도들 명단에서 언제나 첫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제자들 중에서 대표자의 역할을 다하였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신 예수님께, 역시 베드로 사도가 대표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여러 제자들 앞에서 그가 당신을 대리하여 교회의 총 책임자임을 공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교회의 기초가 어디에 있는가를 명시하셨고, 베드로사도의 수위권을 분명히 밝혀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교회는 시초부터 하나의 제도적인 조직체로 출발하였습니다. 조직체에는 언제나 최고 책임자가 있는 법입니다. 한 나라에는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이나 왕이 있고, 어느 단체나 공동체도 그것을 이끄는 장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교회에도 최고 지도자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택하여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하시면서, 교회 전체를 이끌어갈 사명과 권한을 주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대리하여 사람들에게 천상신비를 전달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관리, 분배하는 목자들의 목자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베드로 사도에게 맡기시려고 반석이라는 뜻을 지닌 새 이름까지 지어주셨고 중요한 일에는 꼭 참석시키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구원받아야할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고 동일하게 존속해야 합니다. 따라서 베드로 사도에게 주어진 직책과 권한은 당연히 그 후계자에게 계승되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대를 이어 모든 것을 물려받아 행사하는 후계자가 바로 교황입니다.

      

    주님은 당신 교회를 다스릴 지상 대리자인 교회를 정점으로 하나의 교회를 원하셨기에 “한 떼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교황은 일치의 상징이고 믿음의 길잡이이며 신앙의 지표일 뿐 아니라, 사랑과 평화의 사도입니다.

    우리 교회의 자랑은 역시 지상에서부터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있다는 것과, 또한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를 두 번이나 한국에 모시는 영광을 가졌습니다. 그때의 감격스러운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게 머리에 떠오릅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오시듯 사랑과 평화의 사도로 우리나라를 방문하신 그분을 뵙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행사장에 모인 수많은 군중들은 “비바 빠빠! 교황 만세!”를 외치며 열렬하게 환영하였습니다. 비신자나 타종교인들까지도 그분의 자상한 행동과 평화스런 용모에 넋을 잃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교황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성하의 만수무강을 빌면서, 그리스도께처럼 존경과 순명과 사랑을 바칩시다. 그리고 주님의 간곡한 소망대로 전체교회는 교황님을, 각 지역교회는 주교님과 신부님을 중심으로 일치 단결된 교회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줍시다. 교회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교회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신자가 되어 우리 교회를 더욱 빛내고 발전시킵시다.






     4.                교황주일 교회와 인류구원 위해 받은 사명 다하자

                                                                             -심영택  신부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1347-1381)는 쟌다크 성녀가 자기 조국 불란서를 멸망에서 구출한 것처럼, 우리 가톨릭 교회를 구해내고 교황의 위치를 확보케 한 장한 교회박사입니다.

     지난 번 카타리나 성녀 축일(4월 30일)과 그 전날 저는 생활반성과 묵상기도 중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거룩한 젊은 처녀는 수세기가 흐르면서도 각 세대의 신앙인들 양심 안에 생생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특히 신앙의 현실화 내지 근대화 문제에 있어 현대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흔연한 교회정신이 풍기고 초자연적인 매력이 생동하지 않는가!

     확실히 성녀 카타리나는 그 시대 교회의 얼(정신)이었음이 그의 생애에 역력히 담겨져 있습니다.

    성녀야말로 교회는 죽음의 힘이 쳐들어오거나 피치 못할 투쟁이 밀려와도 결코 눌리지 않을 것이요, 어둠이 결코 있을 수 없음을 입증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모든 신앙인들이 바로 교회임을 성녀는 여러 번 우리에게 확신해 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날 한 교회 안에서 상처에 찢기고 아파하는 그리스도교를 알아듣고 사랑하며 다시 조립, 정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카타리나는 우리와 똑같은 피조물로서,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구세주의 심장을 닮아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활활 타올랐으며, 교회를 위한 열애로 자기 일생을 온통 불살랐습니다.

     성녀의 신앙생활 신조는 두 마디, 곧 “불과 피”라고 하겠으나 성녀의 본 임무는 아비뇽에 계신 교황을 로마로 다시 모시는 굳건한 사업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 – 성직자건 수도자건 평신도건 간에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교회에 대한 사랑이 없거나 희미하다면 또한 교회의 차원이 바로 전 인류의 구원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산다면, 우리 안에는 이미 우리 웃어른들 안에 계신 하느님과의 핏줄이 벌써 끊겼거나 맥이 빠져 직업화되고 말았거나, 아니면 세속적이고 습관적인 신앙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교회 안에 모든 문제들이 싹이 트고 자라서, 불만이 나오고 분열과 상처가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와 그리고 인류구원을 향한 사랑에 찬 신앙생활이라면, 우리는 누구든 간에 교회의 필요 – 뜻에 따라 개인에서 공인으로 살아갈 줄 알아야겠고, 경우에 따라서는 교회공직이나 정치에도 스스로 임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이 나라 대통령의 정치를 따라 살 줄 아는 신앙인이 되어야겠다는 말도, 결국 대통령 자신을 사랑해서보다는, 그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조국과 인류를 사랑하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되어야 겠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교회 안에 우리 장상이나 주교님들과 교황성하와는 바로 교회를 사랑하는 신앙에서 하느님을 공경하며 살아가야 마땅할 것입니다 .급기야는 하나의 같은 교회 안에서 살고 있는 형제들의 분쟁과 불안을 서로 나누어지고 함께 살아가는 신앙인이 돼야만 하겠습니다.


    이러한 참된 신앙인에게는 온 교회가 교황성하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기까지는 결코 안일한 생각이 있을 수 없을 것이며 자기 교구나 수도원이 웃어른들을 돕고 협력하여 하나가 되기까지는 언제나 마음이 아플 것이고 지방교회에서도 주임사제와 일치 단합하여 서로 협력하지 않는 한 양심 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다운 신앙 혁신가는 예외없이 자기에게 내려진 영감이나 특은 까지도 언제나 교회의 장상에게 예속시킬 줄도 알고, 그 가르침에 성실히 따를 줄도 아는 법입니다. 그러나 거짓 개혁자는 차디찬 비판 끝에 자기 오류를 교회에 뒤집어 씌우고는 갈라져 떠나버립니다.

     성녀 카타리나는 짧은 그의 생애를 통해 주님의 뜻을 거룩히 따르고 R회를 위하여, 인류의 안녕과 평화를 위하여 공헌한 오롯한 교회박사 성녀입니다.

    우리도 성녀와 같이 하느님께 받은 사명을 충실히 이행키로 결심하고 생활실천에 진력합시다. 이것이 곧 교회와 인류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 사랑으로 항상 걱정하시고 아파하시는 교황성화와 함께 사는 참된 신앙입니다.


     “하느님, 내 생명을 희생하여 당신이 사랑하시는 교회에 바치나이다.”(성녀 카타리나)





    5.              교황 주일 마태 16,13-19 교회와 하느님 백성

                                                                             (박효종 신부)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베드로 사도의 입을 통해 고백받는 장엄한 순간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거처하신 예수께서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려주시고 그 진리를 수많은 당신의 기적으로 뒷받침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를 비롯한 많은 민중의 마음은 더욱 더 굳게 닫혀졌고 폐쇄되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을 기꺼이 믿고 따르던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기가 일수였습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착찹하셨습니다. 그런데 필립비의 가이사리아 지방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로부터 공적인 고백을 듣게 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대답하시며 당신의 교회를 명명백백히 그 위에 세우십니다. 이 교회는 죽음의 힘도 감히 범접할 수 없도록 견고한 반석 위에 세워졌고 또한 맺고 추는 최고의 권한이 그에게 주어집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에 의해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한 지체가 되었음을 생각할 때 이 교회의 창립은 우리에게 참으로 중대하고 오묘한 진리가 되는 것이니 이에 대하여 겸손되이 묵상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당신의 무한한 인자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의 기관인 교회에 거저 불러주신 우리 주 예수께 지극한 감사를 먼저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교회가 무엇인지 숙연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성서에 오래 전부터 기록되어 있는 약속된 왕국이 임했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때가 찼으니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도다.”(마르 1,15) 이 하느님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현존 안에서 우리 인간에게 나타나게된 것입니다. 즉 예수의 말씀을 믿음으로 듣는 사람은 주의 양떼(루가 12,32)이고 하느님 왕국을 받아들입니다. 이 말씀은 씨앗과 같아서 스스로 추수 때까지 자라납니다.


    또 예수님의 기적은 이 세상에서 이미 하느님의 왕국이 임하였음을 밝혀 주었으니 말씀하시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악마들을 내쫓으면 이미 하느님 나라가 너희들에게 온 것이다” 하셨습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왕국은 봉사하고 많은 이들을 수속하기 위하여 당신 목숨을 바치기 위하여 오신(마르 10,45) 하느님의 아들이며 사람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상에 정사하시고 부활하신 후 주이시며 그리스도요 사제로서 영원히 왕하시고 성령을 제자들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이로써 우리 교회는 창립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지고 그의 사랑과 겸손과 극기의 계명을 충실히 따르면서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왕국을 지상의 극변까지 전파할 사명을 받고 이 땅에서는 그의 왕국의 씨앗과 시작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교회는 차차 자라나 하느님의 왕국이 완성되기를 열망하며 그 왕과 영광 중에 결합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성서에서부터 이 왕국이 비유로 묘사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며 더욱 신약에도 교회의 내적인 본질이 여러 가지 상징으로 나타나 있음을 봅니다. 이 상징을 묵상하며 교회의 신비를 궁구해 봅시다.


    먼저 이 교회는 양 우리입니다. 이 우리로 통하는 유일하고 필요한 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양 우리는 비록 인간인 목자들에 의해 다스려진다 하더라도 양들을 위하여 당신 목숨을 바치신 착한 목자이시며 목자들 중에 으뜸이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양육되는 것입니다. 우리늬 구원에로의 유일한 인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이로써 우리는 구원으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이외에 그 누구도 오직 이리이며 몰래 양 우리에 들어와서 마음대로 양들을 약탈하는 도둑입니다.


    그분만이 우리가 오직 한가지 믿음으로 전존재를 바쳐 따라갈 대상입니다.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고, 우리의 기호를 맞추며 우리의 취향에 쉽게 영합하는 가지각색의 거짓된 인도자는 유혹자일 뿐으로 우리를 종국적으로는 멸망으로 이끌고 맙니다. 이는 어느 구체적인 고집스러운 사상일 수도 있고, 허영과 쾌락으로 줄달음치고 있는 배금주의일 수도 있고, 하느님과 전적으로 등진 탕아가 절망적으로 느끼고 있는 허무주의나 부조리일 수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의 유일한 문이 그리스도인지, 또한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는지 조용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권한을 위임받아 우리를 다스리고 지도하는 인간 목자들에 대하여 전적으로 승복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네들의 인간적 나약이나 약점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크게 동요된다면 이는 그들을 통하여 우리를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교회는 하느님의 밭입니다. 이 밭에서는 오래된 올리브 나무가 자라났으니 이 나무의 뿌리는 우리가 알다시피 구약의 성조들입니다. 바로 이 밭에서 유대인들과 우리가 포함된 이방인들과의 결합이 이루어 졌습니다. 이 밭을 갈고 가꾸시는 분은 아버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에게서 생명력과 풍요함을 받습니다. 그분 없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가지가 나무를 떠나 존재할 수 없듯이 우리의 삶 역시 그분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서는 영위할 수 없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에게는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고 아궁이의 뗄감으로 밖에 필요가 없습니다. 현대는 흔히 자율의 시대라 하고 죽음보다도 자유를 귀중히 여기는 사상이 널리 힘있게 전파되었습니다. 우리도 본능적으로 100% 자유로워지려고 합니다. 그것도 모든 것으로부터입니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나무에서 자유로워진 가지의 운명은 비참이요 허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자유는 이런 오도된 자유가 아니고, 죄에서의 자유, 욕정에서의 자유이며 이는 그리스도께 대한 종노릇을 의미합니다. 이 종노릇이란, 나무와 가지가 한 생명력으로 상통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뜻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머무릅시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길이요, 생명이심을 다시 한번 고백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교회는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친히 집짓는 자들이 내버린 돌로 비유하셨습니다(마태 21,42). 이 머릿돌 위에서, 이 기초 위에서 교회는 사도들에 의해서 건설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웁니다. 하느님의 집이며(디모 3,15) 성령 안에 있는 하느님의 거처이고(에페 2,19-22)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처소이며(묵시 21,3) 또한 거룩한 성전입니다.


    전례에서는 거룩한 도읍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적절한 표현입니다. 요한은 이 성읍을 묵상하면서 신랑을 위해서 치장한 신부처럼 꾸며져서 하느님에 의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건축하는 사람들이 쓸데없다고 포기해 버린 돌이었으나, 그러나 신비롭게도 머릿돌이 된 예수님의 기반 위에 든든히 서 있는 것입니다.


    왜 집짓는 자들이 무용하다고 버렸겠습니까? 이는 바로 십자가의 어리석음 때문이었습니다. 지혜를 찾는 희랍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오직 스캔들, 걸려 넘어지는 돌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기묘하게도 십자가의 신비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부터 영광스러이 부활시키셨습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이제 가장 듬직한 머릿돌이 되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머릿돌에 기반을 둔 우리에겐 십자가의 어리석음이 우리의 지표요, 앞길을 밝히는 지표가 됩니다. 모두가 합리성을 찾고 향락을 갈구하고 즐거움을 만끽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발버둥치는데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욱 고통 당하고, 더욱 불행에 빠지며 타인이 보기에는 실패자이며 낙오자가 되고 맙니다. 권모술수를 배격하고 폭력을 배제하고 자기 이익을 물거품처럼 보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항상 소외자가 되고 낙후자가 되며 제일 아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실로 세속의 자식은 땅의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역할을 찬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께서 설파하신 십자가의 신비는 어디까지나 어리석음이며 이는 20세기 후반에 사는 우리에게 하나의 예외 없이 해당되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바로 지금 이 장소에서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역시 내침을 받고 버림을 받는다고, 그래서 현실이 괴롭다고 해서 우리의 버팀목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되겠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 이 걸려 넘어지는 돌은 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친히 말씀하신 “내가 높이 세워지면 많은 사람들을 내게로 끌리라” 하신 예언이 우리에게 실현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교회의 풍부한 신비를 잠깐 일별해 보았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처해있는 이 특권적인 복된 위치를 재삼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쓰디쓴 지상의 삶을 이끌어 가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보고 있으니 이러한 순례자는 너무나 행복한 것입니다.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은은 우리에게 사실 벅찬 것입니다. 또한 너와 나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지체로 한 형제라는 사실이 우리의 믿음을 깨우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하나의 성사이고 이는 일치의 성사이고 사랑의 성사입니다. 이 형언할 수 없는 당신의 신비에 불리움을 받은 우리는 이제 베드로 사도와 함께 감격에 차서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미리 세우신 계획에 따라 뽑혀서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증 받게 되었으며 그분의 피로 죄가 씻겨진 사람들입니다. 아멘.”




    6.              교황 주일 마태 16,13-19 교황 성하의 뜻이 바로 하느님의 뜻

                                                                                     (조순창 신부)


    오늘은 ‘교황 주일’이며, ‘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입니다. 구세주 예수님을 맞이하도록 선구자로서 그 길을 닦으신 세례자 요한과 같이, 오늘의 온 이류가 구세주를 맞이하여 구원받도록, 선구자다운 사명을 밭은 분이 ‘교황 성하’라고 할 수 있다면, 오늘의 교황 주일은 또 다른 뜻이 있을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울로 2세는 1920년에 폴란드 ‘바로비치’에서 출생하여, 1946년에 사제가 되셨고, 철학박사와 신학박사 학위를 받으셨으며, 1964년에 ‘크라코프’ 대주교로 임명되시고, 1967년에 추기경으로 선임되셨으며, 지난 해 10월 22일에 사도 베드로 정통 계승 264대 교황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요한 바울로 교황 성하께서는 3월 15일에는 첫 회칙인 “인간의 구원자”를 반포하셨고, 지만 1월 25일에는 중남미를 8일간 순방하셨으며, 6월 2일에는 공산 치하의 모국 폴란드를 방문하셨습니다.


    교황 제도는 예수님께서 세우신 제도입니다. 교황은 전세계 7억 가톨릭 신자들의 착한 목자이시며, 복음을 전파하고 신앙 진리를 수호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시며, 세계 평화의 수호자이시고, 고통받는 모든 이들의 대변자로서, 그리스도 사랑의 증거자이십니다.

    오늘 ‘교황 주일’을 맞이하여, 교황 성하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집안을 이끌어 가기도 쉬운 일이 아니라면, 한 단체나 한 나라가 아니라, 전세계의 신앙인의 모임, 신도들의 착한 목자로서의 맡은 임무가 막중하시기에, 물론 훌륭하신 인품과 덕과 능력을 갖추신 분을 뽑기도 하였으나, 항상 건강케 하시고 필요한 은총을 내려 주시도록, 신자된 도리로서 열심히 함께 기도드립시다.


    우리는 생전에 교황 성하를 직접 뵈올 날이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보도를 통하여 그분의 인품과 덕망과 가르침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14일 일반 알현에서 교황 성하는 “언제나 어디서나 진리를 증언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교황 성하의 가르침은 교회의 가르침이요, 바로 하느님의 교훈으로 알고 받들어 따르는 것이 신자된 우리의 의무입니다.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이 복음 전파이고, 말과 모범과 생활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하느님을 믿는 신자가 되라.”는 말씀을 따라, 복음의 정신으로 살고, 복음을 전파하며, 한국 교회 선교 200 주년을 앞두고, 신자 배가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모두 하나인 교회를 이루어 갑시다. 에페소서에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하느님도 한 분이다.”(에페 4,4)고 하셨으니, 우리도 하나로 일치하여, 화목하고 친절하고 다정한 교회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교황 성하는 바로 이 일치를 위한 표지이십니다.


    또 우리는 평화롭고 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신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교황성하께서는 지난 1월 1일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무기 경쟁으로 평화를 위협하는 오늘, 서로 대화로 무력 행사를 막아야 한다.”고 호소하셨습니다. 또 사순절 메세지에서는 “나눔의 실천으로 의와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셨고, 월남 난민을 공해로 추방하는 비정한 현실에 교황 성하께서는 몇 차례 국제 회의를 제의하셨습니다.


    교황 성하의 뜻이 바로 하느님의 뜻임을 믿고,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며, 일치를 이루고, 평화롭고 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이룩하는 데 한 몫을 하는 신자가 됩시다. 그리고 교황 성하의 일에 물질로 돕고자 하는 2차 헌금이 오늘 있으니, 적극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믿는 이의 착한 목자이신 주여! 교황 요한 바울로 성하를 위하여 기도하오니, 늘 건강케 하시고, 그 덕화(德化)가 날로 만방에 처지게 하시며, 모든 일에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7.            교황 주일   마태 16,13-19



    오늘은 우리 성교회의 볼 수 있는 으뜸이신 교황성하를 공경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오늘과 같이 굳건한 발전을 가져온 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계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의 창조자이시지만 당신의 권능을 직접 행사하시지 않고 인간을 통해서 행사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을 세계가 끝나는 날까지 계속토록 하기 위하여 세우신 당신의 권능을 행사(대행)하는 유형한 두령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강생후 67년 네로가 로마제도의 황제로 있을 때에 성 베드로는 네로의 신앙박해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못박혀 죽임을 당하여 순교를 하였고, 그후 몇세기 동안이나 견디어 온 무수한 온갖 박해와 장애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의 죽음으로 종결된 것이 아니고 2천년을 면면히 계속하여 왔고 앞으로도 세상이 끝날 때까지 더욱 더 발전을 계속한다는 이 엄연한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피로 자랐습니다. 교회는 피로 관계되고 심어졌나봅니다.


    교회는 피 흘림 없이는 존립할 수 없나봅니다. 이러한 박해 중에도 2천년동안 베드로에게 수여된 교회 통치의 수위권이 세세대대로 그 후계자들에게 계승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맡기신 신성한 사명을 완수하여 갖가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교회의 최고지위와 통치권을 이어 받아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 베드로 때부터 하나의 교회, 하나의 신앙을 보존하기 위하여 파란곡절을 겪어야 했음에도 승리를 거두었다 함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입니다.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쇄신이라는 거대한 작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온갖 정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다른 어느 때 보다 과도기에 처해 있으므로 교황의 중책은 더 한층 가중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또한 교황 성하께서는 성직자들과 신자들의 내적성화를 위하여 항상 전념하시고 계실 뿐 아니라, 온 인류의 구원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불면불휴의 고심을 하시는 교황이시니 오늘의 교황은 7억의 가톨릭의 수령만이 아니요 전세계 지도자로 클로즈업 되고 있어, 우리는 교황에 대한 존경과 충성을 다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오늘 세계는 얼마나 평화를 갈망하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세계는 지금 큰 혼란을 이루어 역사상 일찍이 보지 못했던 어려운 고비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말하기를 이데올로기의 갈등이라고 합니다. 즉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싸움이란 말입니다. 사상적 대립 「군비의 경쟁」 등 냉전과 질투 속에서 평화를 찾으려고 하고 있으니 이는 마치 산에 가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의 존중을 내세우고 공산주의는 재산의 균배에 의한 가난의 소멸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결함과 죄악이 가득히 차 있는 것은 두 가지가 모두 선의 근거를 미약한 현실에만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인간의 육안에만 비치는 저속한 하부세계입니다. 거기에는 자연히 오류로 충만해 있습니다. 이 세계는 이른 바 과학문명의 발달에 발을 맞추어 더욱 인간의 어리석은 신뢰의 도가 증가해 갑니다. 그러나 인간이 예상한 것과는 반대로 인류 사회에는 황혼 이후의 공간처럼 음울한 불안의 검은 장막이 더욱 짙어갑니다.


    여기서 먼저 민주주의 사회를 살펴봅시다. 이 사회에는 확실히 인권의 존중과 그에 의한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온갖 오류와 죄악도 그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다시 말하면 온갖 죄악과 혼란은 자유라는 아름다운 베일에 싸여서 박테리아처럼 나날이 번성해 갑니다. 인심은 나날이 각박해 지고 사람들의 마음은 헛된 재물과 영화에만 굳세게 끌려갑니다.


    다음은 공산주의 사회를 봅시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오직 한가지만을 주장합니다. 그것은 물질입니다. 그들은 재산의 분배만 엄격히 통제하면 인류사회에는 곧 행복이 초래될 줄로 생각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인간까지 목숨 없는 한낱 물질로 간주합니다. 그들에게서 애정이나 의리를 찾는 것은 수전노에게서 정서를 찾기보다도 헛된 일입니다. 그들은 의혹에 쌓여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폭력입니다. 그들은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고, 남편이 아내를 투옥시키며, 동지가 동지를 숙청합니다.


    순결한 소년에겐 아버지를 고발시키고 국가의 최고훈장을 수여했다는 것은 인류 문화의 일대 수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윤리를 잃고 짐승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지구 위에 이러한 흐름이 있는 선(善)이 건재하기는 힙듭니다. 치밀한 계산으로 경제를 영위하고, 예리한 두뇌로 과학을 발전시키며, 냉철한 판단으로 사물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현대인이 치밀, 예리, 냉철해도 한 가지의 누락 때문에 우리는 치명적 타격을 모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신덕입니다. 참다운 평화가 이뤼지기 위하여 신덕이 필요합니다. 신덕이 있으므로써 천주께 대한 사랑이 생기고, 형제애가 있는 곳에 성화, 즉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황 성화께서 뜻하시는 바 인류의 성화와 평화가 하루 속히 이루어지기 위하여 외교인들에게 그리스도적 신앙에 입각한 사랑을 전파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전교하며, 교황께서 염원하시는 바 열교인이 귀화하며, 이교인이 귀화하여 진리를 찾아 얻도록, 특히 교회 일치를 위하여 온갖 희생과 기도를 바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보십시오! 불우한 전재민들의 구호를 위하여, 기아에 허덕이는 빈민구제를 위하여, 자부적인 구원의 손길을, 한편 성직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 원조, 포교사업을 위한 전교 지방의 원조등 실로 다각적인 성업을 하고 계심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포교지방에 중심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현 교황의 배려라고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누구보다 교황 앞에 충성을 바쳐야할 것 같습니다.


    무릇 교회의 발전은 교황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므로 오늘날 무서운 세속사조의 소용돌이 속에서 교회가 맡은 의무가 중대한 그만큼 우리는 교황을 위한 기도와 희생을 게을리 할 수 있습니다. 성신의 교도를 받는 교황이지만 오늘 교황주일을 정한 교회정신을 따라 교황의 성업이 더욱 융성히 빛나도록 우리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교황성하께 절대적인 순명을 다시 새롭게 합시다. 예수께서 베드로 종도에게 주신 수위권과 치교권에 추호의 그릇됨이 없으시기를 항상 기구할 것이며 신령이 강태하시고 덕화가 날로 융성하기를 특별히 기구합시다.

    그리고 그의 만수무강과 그 덕화가 날로 융성하여 그가 맡은 교회가 나날이 눈부신 발전이 있기를, 특히 그의 뜻하시는 바 세계평화와 교회 일치 사업이 하루 속히 이루어지기를 다함께 두손 모아 빕시다.

  2. user#0 님의 말:

     

    ◈ 가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


    1. 제1독서 주석 : 사도 12,1-11


      1-3절 : “그 즈음에 헤로데 임금이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치려고 했다.”는 표현은 물려받은 본문에 대한 저자의 수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에즈라 1서 9,20절의 내용과 일치한다. 또한 “칼로 쳐 죽인다.”는 표현은 당시 살인자와 타락한 도시의 사람들은 참수에 의해 처형당해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부정사와 함께 쓰이는 ‘좋아하다’라는 표현은 70인 역에서 자주 나오는 어법이라고 할 수 있다.


      4-6절 : “감옥에 가두었다”라는 표현도 70인 역의 문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를 백성 앞으로 끌어낼 작정이었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합법적인 재판과정에서는 백성들이 결정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부분의 서술은 아마도 수난사를 모범으로 했을 것이다.


      7-11절 : 이제 천사가 나타나 모든 행동을 시작한다. 베드로의 구출은 자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께 소급된다. 베드로는 천사의 명령에 따라 행동을 하며 파수병들을 지나 거리로 나오게 된다.


    2. 제2독서 주석 : 2디모 4,6-18


      6-7절 :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려지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와 “떠날 때”라는 표현은 인생의 종말을 나타내고 있다. 죽음이 가까웠다는 의식을 반영해 주고 있는 6절에 이어 7절에서는 바오로의 생애를 회고하는 승리적 선언이 나오고 있다. 이 선언은 세 개의 평행 귀절로 되어있는데 그 중 두 구절은 코린토 전서 9,24 이하로부터 잘 알려진, 그리고 경주장 으로부터 나온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믿음을 지켰습니다.”라는 표현은 “신실성을 유지한다”는 데 대한 ‘확정된’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8절 : ‘기다리다“라는 표현은 동방의 왕들이 어떤 사람을 인정하여 추천하는 칙령 가운데서 거의 전문용어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아마도 그 말은 본래 그런 영예를 얻은 자들의 이름이 나라의 역사 기록에 나타나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또한 이 표현은 순교의 용어를 상기시키고 있다.


      9-12절 :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던 바오로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 버림받음은 바로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13절 : 책들은 두루마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책들”이라고 했을 때, 저자는 아마도 이런 “두루마리들”, 또는 파피루스 책들을 뜻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 기록하기 위해 사용했던 일반적인 재료는 파피루스였다.


      16-18절 : 이 본문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바오로가 이제 두 번째로 로마에 투옥당해 있으면서 첫 번째의 투옥과 그의 성공적인 석방을 회고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 경우 “사자”는 네로황제를 가리킨다. 하지만 바오로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데 대한 설명은 바오로에 대한 초대교회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경우 “사자”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3. 복음 주석 : 마태 16,13-19


      13절 : 예수는 사람의 아들로서의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써 사람의 아들 칭호만이 마르코 복음 8,31의 수난예고에서부터 앞으로 당겨졌다.


      14절 : 엘리야와 더불어 예레미야는 부가적으로 지칭되었다. 아마도 예레미야가 많은 성경 가운데 첫 번째 예언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사야과 함께 하느님의 사자로서 마지막 때가 오기 전에 파견될 것이라는 기대는 그리스도교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 당시 표상에 의하면 그는 신약 시대 동안에는 하늘에 멀물고 있다고 생각되어 졌다.


      16절 : 베드로의 고백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표현이 첨가됨으로서 확대되었으며, 이와 같은 표현은 신약성경 중에서 여기에서만 나타난다. 마태오에게 있어서 사람의 아들과 하느님의 아들은 대립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의미에서 사람의 아들이 이해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만이 제기된다. 마태오는 그리스도 칭호와 하느님의 아들 칭호를 통해서 분명하지 않은 사람의 아들 칭호를 설명하며, 이 하느님의 아들 칭호는 바로 예수수난을 통해서 그것의 궁극적인 성취를 발견한다. 마태오의 주된 관심은 특별히 따르라고 부르면서 그 안에서 구원하는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고백이다.


      17절 : “바르요나” 즉 요나의 아들이라는 말은 기이하다. 왜냐하면 시몬의 아버지는 요한 1,42에 ‘요한’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나는 ‘요하난’ 즉 요한의 축소형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고유 명사로서의 요나는 이 이름을 가진 예언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전 세대와 예수 후세대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18절 : “반석”은 베드로 자신이며, 그의 고백이 아니다. 베드로의 특수한 지위는 예수께서 주신 것이며, 베드로는 그의 강한 성격이나 신앙 때문에 찬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선사받은 자로서 찬양받는다. 베드로는 믿음의 이적을 경험한 최초의 사도로서, 그가 걸림돌로 변할 때조차도 “반석”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위에 교회가 지어지는 주춧돌이다. 그리고 죽음의 모든 세력이 공동체를 끝내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19절 : 이제 베드로는 지상에서의 하늘나라의 관리인이다. 이 기능이 “매고 푼다”는 표현으로 상세하게 해석되어진다. 이제 죄의 용서는 더 이상 바리사이파적인 율법학자들의 말이 아니라, 죄의 용서를 위한 열쇠와 권능은 예수를 따르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4. 이 주일의 초점


    1) 나도 교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준다.

    2) 세상의 기준이 아닌 예수님의 기준을 따를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3. user#0 님의 말:

     

    모든 것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 교황님은 누구시죠? ◈

    교황은 이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교회를 세우신 다음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 가운데 베드로를 사도들의 으뜸으로 삼아 교회를 다스리도록 위임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들이 곧 교황입니다.

    교황은 1059년부터 추기경단의 비밀 투표로 선출되었으며, 새 교황은 착좌할 때 관습에 따라 새 이름을 스스로 선택합니다. 1978년에 교황직에 오르신 요한 바오로 2세는 264대 교황입니다. 그리고 2005년에 교황직에 오르신 베네딕도 16세 교황은 265대 교황이십니다. 교황은 로마의 주교,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서방 교회의 최고 지도자, 바티칸 시국 원수 등 여러 가지 직함으로 불립니다.

    교회는 해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에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내면서, 교황이 전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을 훌륭하게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1. 명칭과 직위

    교황이라는 명칭의 어원 Papa(아버지)는 본래 지역 교회의 초고 장상(주교, 대수도원장, 총주교)를 부르던 말이었는데 중세 초기부터 차츰 로마의 주교에게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교황은 로마교구의 교구장 주교이며 세게 주교단의 단장으로서 현세 교회의 통괄적 최고 사목자입니다



    2. 교황직의 교리적 내용

    ①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교황의 수위권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선택하시고 그들 중 시몬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약속(마태16,15-19)을 하십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다른 형제들을 부탁하십니다(루가22,31-32). 베드로사도에게 양들을 맡기셨습니다(요한21,15-17). 베드로 사도는 개신교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열두 사도중의 한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베드로를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우실 의향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베드로 사도는 마티아로 하여금 유다의 빈 자리를 채우도록 보궐선거(?)를 했고(사도1,15),최초로 공개 설교를 하였고(사도2,14 이하), 유대원로원에서 사도들의 활동을 변호하고(사도4,8;5,29), 이방인 개종자 문제(사도10,24-28)와 구약율법의 문제(사도15,7-22)등에 있어서 단장격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에서 선교하다가 로마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갔는데(사도12,17) 역사의 증언에 의하면 42-43년에 로마에 가서 로마교회를 창설하였고, 네로의 박해 때인 64년에 로마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후계자인 로마의 주교는 당연히 베드로의 권위와 책임을 계승한 것으로 확신하였고 교회도 그렇게 인정하였습니다. 1세기 말에 베드로의 3대 후계자 즉 4대 교황인 성 클레멘스 1세는 멀리 고린토교회의 분쟁을 조정하였고, 2세기 초에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와 2세기 중엽에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는 로마의 주교가 전 교회의 으뜸이라는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2세기 말에 교황성 빅토리오 1세는 동방의 부활축일 논쟁에 개입 조정하였고, 3세기 중엽에 성 스테파노 1세 교황은 재세례를금하는 조처를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 주교들에게 내렸습니다.

    이와같이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은 이론적으로 정립되기 저에 이미 고대 교회에서 실시되고 있었습니다.



    ②교황은 세계 주교단의 단장

    교황의 수위권이아무리 확고하고 강력할지라도 각 지역 주교들의 고유한 사목 권한을 배제하거나 축소하거나 대행하지 않습니다. 주교들은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사도들의 후계자가 되고, 위임된 지역교회의 완전한 사목자가 되며, 로마 교황과 더불어 한 주교단을 이룹니다. 베드로 사도가 단장이었던 것처럼, 교황님도 주교단의 단장입니다. 따라서 교황을 제외한 주교단이나 주교단과 유리된 교황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교회헌장22). 그러므로 주교단 안에서 각 주교들은 그들의 사목권을 교황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고 주교서품을 통해서 하느님으로부터 받기 때문에, 자기에게 위임된 지역교회(교구)안에서는 교황의 대리가 아니고(교회헌장 27)고유하고 직접적이고 통상적인 사목자이며(교회헌장23), 세계 교회에 대해서는 교황과 함께 한 주교단으로서 전반적 최고 사목권의 주체가 됩니다.


    3. 교황의 직무

    교황의 직무는 교회의 직무내용처럼 진리를 가르치는 예언직과 이에 상응하는 교도권, 인간을 성화하는 사제직과 신품권, 교회를 다스리는 왕직과 통치권으로 크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①교도권

    구원의 계시 진리를 가르치는 책임을 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부여받은 주교들이다”(교회헌장 25). 주교들의 통상 권위로 가르치는 것을 통상 교도권이라고 하고, 주교들이 세계 공의회를 통하여 가르치는 것과 교황이 교황직위를 발동하여 가르치는 것을 장엄교도권이라고 합니다.

    교황의 통상 교도권 행사는 일반 주교들처럼 공식 설교, 교리해설, 사목교서, 교구회의 등으로 하고, 교황청의 행정부서의 율령이나 법원의 판결같이 간접적으로 행사하기도 합니다.

    교황의 장엄 교도권은 세계 공의회를 통하여 행사하기도 하고, 교황 스스로 “교좌에서의 선언”에 의하여 행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황이 장엄 교도권으로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최종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절대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신앙입니다. 교황의 이 특은을 무류지권(無謬之權)이라고 한다.



    ☞교황의 무류지권

    교황이 교좌에서 선언한 것이 무류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이 채워져야 합니다.

    ㉮전체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공식으로 선언합니다. 따라서 교황도 로마 교구장의 자격이나 개인 학자의 자격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류하지 않습니다.

    ㉯계시 진리를 최종적으로 정의하려는 의도를 밝혀야 합니다. 따라서 교황의 자격으로 할지라도 통상적인 지도, 권유, 해설, 반박, 경고 등은 무류하지 않습니다.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문제에 국한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과학, 예술, 사회, 경제, 정치,기타 문제에 관한 선언은 무류하지 않습니다.



    ②신품권

    교황의 신품권은 다른 주교들의 신품권과 같습니다. 모든 주교는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완전한 신품권을 받아서 칠성사를 집전하고 모든 전례를 주관합니다. 그래서 어떤 주교가 교황으로 선출되어도 더 큰 신품권을 받은 것이 아니며, 주교 아닌 사람이 교황으로 선출되면 즉시 주교품을 받아야 로마의 주교가 되고 세계 교회의 교황이 됩니다. 따라서 교황이 집전한 성사나 주교가 집전한 성사나(자기 권한 내에서) 신부가 집전한 성사의 객관적 가치는 완전히 동일한 것입니다.



    ③통치권

    교황의 통치권은 그의 수위권 때문에 모든 성직자들의 통치권을 능가하고 포괄합니다. 교황의 통치권은 주교를 포함한 모든 신자에게 미치고, 교회의 사명 수행에 직접 관련되는 모든 사항에 해당됩니다. 교황의 통치권은 교회를 지도하기에 필요한 입법권과 사법권과 행정권을 포함한 것입니다. 교황은 이러한 삼중 통치권을 행사할 때에 여러 가지 보좌기관(법원, 행정부서, 회의 등)을 이용하지만 최종 결정권자는 교황 자신입니다. 그래서 현대 국가의 삼권 분립제도는 교회나 교황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황의 통치권에 의한 결정 중에서(장엄교도권과 직접 결부된 신조선언이 아닌) 일반 명령이나 지시는 그 자체로서 무류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황의 지시를 존경과 순명으로 받아 들이면 충분하고, 교황의 현세적 조건(정교조약, 재산관리 등)에 대한 교황의 결정은 비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4. 교황의 법적지위

    ①교황은 로마 교구의 교구장입니다. 로마 교구의 주교좌는 바티칸이 아니고 라테라노 대성전입니다. 교황은 로마 교구 사목을 위하여 총대리 추기경의 보좌를 받고 있습니다.

    ②교황은 로마 관구의 수도 대주교입니다. 로마 교구와 그 주변 7교구를 합한 로마 관구의 관구장이며, 7개 속교구에는 전통적으로 주교급 추기경을 두고 있습니다.

    ③교황은 이탈리아의 수좌 대주교입니다. 이탈리아의 모든 교구 중에 수석 교구의 교구장으로서의 명예직입니다.

    ④교황은 서방 교회의 총주교입니다. 역사적으로는 로마를 모교회로 하여 발전한 라틴식 전례를 가진 모든 교회들을 총괄하는 대주교를 뜻하는데 현재로서는 명예직입니다.

    ⑤교황은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입니다. 187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교황의 영토는 몰수되고 교황의 주거지인 바티칸 언덕과 몇 개 기관들만 교황의 관할로 남았었는데, 1929년 비오 11세와 이탈리아 정부 사이의 라테라노 조약에 의하여 바티칸시는 독립된 주권국가로 인정되었고, 교황은 국가원수로서 불가침 특권과 외교특권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황이 파견한 교황대사는 주재국에 대하여 교황의 전권대사이며, 주재국의 교회에 대하여 감독과 연락의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4. user#0 님의 말:

     



    – *♥* 나의 주님, 나의 그리스도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은 생활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용서를 실천하고,

    가족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작은 일 하나하나에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평화를 건설해 보셨습니까?

    그래서 한 주간 내내 가정에 웃음과 평화가 넘쳤습니까?

    그 평화가 계속 유지되길 바랍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는 교회의 두 기둥입니다.

    그런데 두 분은 완전히 대조가 될 정도로 다른 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무식한 어부 출신으로 성격이 급하고 거칠었습니다.

    그리고 나서기를 좋아해서 쉽게 실수를 하고 후회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많은 교육을 받은 로마 시민권 자였고

    차분하고 계획성이 있고 자제할 줄 알고 자신을 낮추면서

    예수님을 향한 사랑에 끝까지 항구한 분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적인 판단에 따르면

    오히려 바오로 사도가 교회의 반석이 될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묻는, 예수님께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 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베드로를 반석으로 하여 당신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선택하신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베드로의 고백 위에 서있습니다.

    즉, 우리도 똑같이 믿음을 고백한다는 뜻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런데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 곧, 구세주로 고백을 한다면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인터넷에 이런 글이 있더군요.

    “천국에 가서 쇼핑을 했다.

    세상에 나가 살려고 하면 필요한 것들이 많아서 쇼핑을 하는데,

    우선은 사랑이 필요한 것 같았다.

    천국백화점 1층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사랑을 카트에 실었다.

    기쁘고 평화롭게 이웃들과 사는 것이 중요해서 코너 옆쪽에 있는 평화와 화해도 실었다.

    때로는 참지 못할 일도 있을 것 같아 차곡차곡 쌓여있는 오래 참음도 하나 올렸다.

    너무 강퍅하지 않게 자비를 베풀 일도 있을 것 같고,

    착하고 충성되게 살아야 할 것 같아, 자비와 양선과 충성도 충분하게 담았다.

    부드러우면서 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 온유는 꼭 필요했다.

    온유도 싣고 나오는데,

    아무래도 욕심이 생기면 스스로 절제하는 것도 꼭 필요하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절제도 한 묶음 실었다.

    이제는 세상에서 얼마든지 행복하고 넉넉하게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산대로 가서 너무 비싸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산하는 천사에게 조심스럽게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천사가 하는 말이 모두가 공짜라고 한다.

    아니 이 귀한 모든 것이 어떻게 공짜냐고 했더니,

    천사가 하는 말,

    ‘이미 예수님께서 다 지불하셨어요.’”


    형제 자매님,

    예수께서 우리가 살아야 할 값을 다 지불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잘 났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분을 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께 참된 신앙으로 고백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28일)은 제가 17년 전에 사제서품을 받은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혼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 앞에서

    지난 17년간의 사제 생활을 조용히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지금 예수님께 어떤 신앙고백을 드리고 있나?’

    ‘내가 서품을 받으면서 드렸던 그 뜨거운 고백을 아직 간직하고 있나?’

    깊이 반성을 해보았습니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선택해주셨기에 사제가 된 몸이니까

    사제직을 수행하면서 받는 모든 영광을 그분께 돌려드려야 하는데,

    나를 통해서 이루신 일들로 얼마나 그분께 영광을 돌려드렸는지 반성해보면

    많은 경우 나의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리기 보다는

    제가 차지한 경우가 많았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서품 때 드렸던 주님을 향한 사랑과

    그때 결심했던 첫 마음을 다시 되찾을 수가 있었답니다.

    그러면서 새롭게 “예수님 당신은 저의 그리스도이시고 제 모든 것의 주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해드렸습니다.

    그래서 서품 축일에 혼자서 조용히 미사를 드린 것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지요!


    형제 자매님,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사랑을 가득 담아서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구신학교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5. user#0 님의 말:

     

    8.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성민호 신부



    오늘은 우리 교회의 두 기둥이며 주춧돌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두 분 다 교회 초창기에 절대적인 업적을 남겼으며, 네로 황제의 박해 때 로마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처음에 어부였던 베드로 사도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는 주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과 열렬한 사랑 때문에, 열두 사도 중 으뜸 사도로 선택되어 장차 교회를 이끌어갈 특별한 사명과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사도들 명단에서 첫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였습니다.

      

    성서를 보면, 새로운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새로운 사명이 부여되었음을 뜻합니다. 만민의 아버지라는 뜻을 지닌 아브라함 성조나, 구세주라는 뜻을 가진 예수님이나, 다 하느님이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대리하여 사람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목자들의 목자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베드로 사도에게 맡기시려고,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새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신 예수님께 역시 베드로 사도가 사도들 대표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을 들은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들 앞에서, 그가 당신을 대리하여 교회의 총 책임자임을 공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있을 것이다.”

    열쇠는 통치권의 상징이며, 맺고 푸는 권한은 절대권을 의미하기 때문에, 주님은 이 말씀으로 교회의 기초가 어디에 있는가를 명시하셨고, 베드로 사도의 수위권(首位權)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후 주님께서는 당신께 대한 사랑을 고백한 베드로 사도에게 “내 어린양들을 잘 돌보아라.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당신 대신 전체교회를 이끌어갈 책임을 주셨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후 베드로 사도는 사도들 대표로 군중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는 그의 말을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하루에 삼천 명이나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후 그는 여러 곳을 다니며 전도하였고 많은 박해도 받았지만, 사도들의 모임에서는 언제나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였습니다. 마침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67년경 네로 황제의 잔인한 박해 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무덤이 있는 곳엔 지금 각국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졌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교양과 학문을 겸비하였고, 뛰어난 재질과 정열적인 성품을 지닌 분으로서 초대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다하였습니다. 처음엔 앞장서서 신자들을 박해하였지만, 개종한 이후에는 여러 번 먼 곳까지 전도여행을 함으로써, 많은 이방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였습니다. 그는 말로써뿐 아니라 14편이나 되는 편지를 통하여 주님의 가르침을 자상하게 전해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오로 사도의 서간입니다.

      

    사도행전이나 그의 서간을 보면, 그가 신자들을 박해한 사실에서부터 그의 개종경위, 그리고 그의 눈부신 활동상이나, 박학한 교리를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많은 박해를 받았지만 매번 주님의 특별한 보호로 무사했음을 아울러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그도 67년경 악명 높은 네로 황제의 박해 때 로마에서 참수치명을 당하였습니다. 치명한 곳에는 지금도 그 유적이 남아있으며 멀지 않은 곳에 바오로 대성전이 세워졌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스라엘의 사도였다면,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였습니다. 두 분 다 주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과 확고한 믿음을 가진 분들이었으며, 초대교회를 궤도에 올려놓은 장본인들이었고, 두 분 다 주님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로마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인간적인 약점이나 실수가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세 번씩이나 주님을 배반하였고,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을 박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참회하였고 주님의 부르심에 과감히 응답하여 한평생 주님의 뜻을 따르는 데 열과 성을 다하였기 때문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으며, 많은 이들로부터 공경과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두 분의 대축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도 사도들의 모범을 따라 주님이 부르실 때에는 언제나 주저하지 말 것이며, 그분의 뜻을 따르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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