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서 더 반기는 비발디의 <사계>

동양에서 더 반기는 비발디의 <사계>
우리 나라에서는 마치 비발디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명곡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부제가 붙어 있는 표제음악적인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곡은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 일본 등 극동의 나라에서 더욱 환영받아 특히 이탈리아 실내악단의 극동 순연에서는 단골 메뉴가 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비발디의 작품 8은 ‘화성과 창의의 시도’라는 곡명이 붙은 전 12곡으로 된 협주곡집이다. 제1번부터 4번까지 차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부제가 붙어 있어 이 네 곡을 <사계>라고 칭한다. 부제가 붙은 곡은 더 있어 제5번이 ‘바다의 폭풍’, 제6번이 ‘즐거움’, 제10번이 ‘사냥’이고 나머지는 부제가 없다. <사계.가 너무나도 유명하다 보니 나머지 여덟 곡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푸대접을 받고 있는 듯하다. <사계>의 네 곡은 각기 3개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어 당시의 협주곡 스타일을 엄격히 지킨 흔적이 보이며, 확실치는 않지만 비발디가 50세 무렵에 작곡한 것 같다. 각 곡은 표제음악적 특징이 뚜렷하다. ‘봄’은 신록을 연상케 하는 기쁨이 넘치는 악상이며, ‘여름’은 이글거리는 열기가 넘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나른하고 낮잠이나 청하고 싶은 달갑지 않은 계절로 묘사되고 있다. ‘가을’은 수확의 기쁨을 나누며 농주에 얼큰히 취해 춤추고 떠들썩한 농민들의 쾌활한 모습이다. ‘겨울’은 미끄러운 얼음판 위를 뒤뚱거리며 우스꽝스럽게 걸어가는 모습, 그런가 하면 난로 옆에 앉아 창밖에 내리는 겨울비를 보고 있는, 좀 의외의 광경도 그려진다.
비발디는 당시 음악 도시로서 전유럽에 이름을 날렸던 베네치아에서 이발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임신 7개월 만에 태어난 칠삭둥이였지만, 인큐베이터도 없었던 시대에 어떻게 살아 남아 당시로선 장수에 속하는 63년의 생애를 보냈는지 모를 일이다. 아래로 차남, 3남의 동생들은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이발사가 되었고 비발디는 25세 때 서품을 받고 사제가 되었다. 그러나 미사를 태만히 보기 일쑤여서, 한찹 찾아다니면 성덩 저 뒤편 으슥한 곳에서 바이올린이나 켜고 있는 ‘나이롱 사제’였다고 한다.
비범한 바이올린 솜씨만은 인정받았던지 사제가 된 해 9월에 베네치아의 피에타 여자 양육원의 바이올린 교사로 취임했다. 그 곳에서 그는 실기 지도와 지휘뿐만 아니라 피에타 여자 관현악단을 위해 많은 작품을 쓰기도 했다.
베네치아는 항구도시이기에, 세계 각처로부터 모여드는 선원들이나 상인들의 씨를 받은 사생아와 고아들이 우글거려 시에서는 14세기경부터 병원 안에 고아원을 만들었다. 피에타 여자 양육원도 그런 것 중의 하나로서 여자아이들에게 교육도 베풀었다. 특히 음악 교육은 훌륭해 그 ㄱ소 악단은 일요일이나 축제일에는 정기 연주회를 열어 호평을 받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솜씨와 작곡 능력은 워낙 유럽 각 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었으므로, 여기저기서 초청받아 연주 여행도 많이 했다. <사계>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갔을 때 그 곳에서 작곡한 곡이었다. 그러나 협주곡만 해도 4백 50곡이나 헤아리는 그의 작품은, 그게 그것 같은 곡들이어서 오래 가지 않아 사람들이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마지막에 그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극도의 빈곤 속에 객사했으며 유해는 빈민 공동묘지에 묻혔다. 사후에도 약2백년 동안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다시 소생해 지금은 많은 애호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렇게 된 데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실내악단 ‘이 무지치’의 공로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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