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탈나서—슈만 작곡의 <교향적 연습곡 작품 13>

손가락이 탈나서— 슈만 작곡의 <교향적 연습곡 작품 13>
슈만의 피아노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에 속할 뿐만 아니라 변주곡의 역사에서도 획기적인 위치에 있는 곡이 <교향적 연습곡 작품 13>이다. 슈만의 나이 24세 때의 작품으로 연습곡 앞에 ‘교향적’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만 보아도 상당한 야심작임을 알 수 있다.
주제와 12개의 연습곡이란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주제에 관해선 슈만이 초판에서 ‘어느 아마추어의 작곡에 의한 것’이란 주석을 붙였다. 그 아마추어란 음악을 좋아하고 예쁜 딸을 갖고 있는 폰 프리켄 남작이라는 귀족이었다. 그의 작곡에 의한 주제를 채택한 데는 한때 연정을 쏟았던 남작의 딸 에르네스티네로부터 점수를 따두자는 심산도 있었으리라. 또한 끝곡인 연습곡 제12번은 독일 낭만파 가극작가 하인리히 마르쉬너의 오페라 <성당 기사와 유태인 여인> 중의 선율에 바탕을 두었다고 하니, 머리와 꼬리는 남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셈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슈만의 체취가 강한 걸작이다.
구태여 ‘교향적’이라고 거창하게 나온 것은 피아노의 순수한 음을 추구한, 즉 그보다 약 5개월 전에 출생한 소팽에의 대항의식도 작용한 듯하다. 쇼팽이 ‘피아노의 시인’이란 찬사를 들으면서 비단결 같은 섬세한 피아노 음악을 만들어 낸다면, 나는 피아노로 교향적인 복합적 음향 효과를 창출해 내리라는 그런 야심이었던 것 같다.
슈만이 24세였을때 스승 비크의 딸 클라라는 16세였으니 이제는 처녀 티도 완연할 무렵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슈만이 클라라를 사랑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각하기 1년 전이었다. 다시 말해 다감한 슈만이 아직 클라라에게 미치기 이전의 일이었고 오…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대성하리라는 청운의 뜻만 품고, 피아노 연주에 온 정신을 쏟고 있었을 때였다.
그는 ‘피아노 속달기’라는 스스로 고않나 특수 장치를 손가락에 부착하고 손가락 단련을 맹렬히 했다. 거기서도 슈만 본래의 기질이 노출되어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거의 미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몰입하는 연습광이었다. 그런데 훈련이 지나쳤던지 오른쪽 약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치명적인 결함이 생겼다. 속달기가 그만 훼손기가 된 셈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매독이 원인이란 설도 있으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클라라를 알기 전의 슈만의 품행도 모범생급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런 결함이 생긴 이후로는 그렇게도 열망하던 피아니스트로의 지망을 포기하고 작곡가로서 또한 음악평론가로서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오히려 그쪽이 후세의 우리들에겐 더 고마운 결과가 되었는지도 모르겠고 하니, 속달기 아니면 매독균에 심심한 사의를 표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그런 이야기다. 우여곡절 끝에 슈만이 클라라와 결혼에 골인한 것은 그로부터 6년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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