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쇼생크 탈출’ 배경음악입니다(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에서
Che soave zeffiretto(저녁바람 부드럽게) *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수용소 전체에 울려 퍼지던

곡으로 모든 수감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입니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Andy역의 팀 로빈스는

이 모차르트의 곡을 방송실 문을 잠그고 전 쇼생크

수용소에 틀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감상하죠(위의

사진). Red역의 모건 프리먼은 그 곡을 회상하며

“아직도 난 그 여자들 (오페라 가수)이 무엇을

노래했는지 모른다.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곡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중

제3막 백작저택의 넓은 방에서 부르는 노래인데요.

이 오페라에서 백작부인과 스잔나는 백작을

불러내는 편지를 써야만 했습니다. 부인이

부르는 대로 스잔나가 받아쓰는 2중창「저녁

바람이 부드럽게(Che soave zeffiretto )」를

노래하는데요. 편지를 봉하는 데에는 부인의

핀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편지

뒤에는 회답대신「이 핀을 돌려주세요」라고

씁니다.

이 오페라는 보마르세가 1775년에 발표한

『세빌리아의 이발사(Le Barbier de Seville)』가

그 전편입니다. 세빌리아의 거리에 피가로라고

하는 이발사가 있었는데, 이 거리의 왕이라

할만한 알마비바 백작은 극히 방탕한 바람둥

이였는데요. 그는 바르톨로라는 의사가 돌보아

주는 아가씨 로지나에게 눈독을 드리고 있으며,

이발사 피가로에게 중개의 역할을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하여 피가로는 능숙한 수완과

재치로 의사 바르톨로의 눈을 피해 마침내

백작과 로지나가 통하게 되자 그녀는 백작의

부인이 되었죠. 지금까지의 줄거리가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이야기이며, 이것이 오페라로

작곡되기는 1816년 이탈리아의 저명한 작곡가

롯시니에 의해서였다. 로씨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1부인 셈이죠. 이 이야기는 2부가 먼저 나오고

1부가 시간적으로 뒤에 나온 셈이죠.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세빌리아의 이발사』

다음 줄거리가 이『피가로의 결혼』인데요. 백작은

피가로의 공로를 생각하여 그를 자기의 시종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피가로는 백작부인의

하녀인 스잔나와 서로 상통하게 되어 결혼하게

되는데요. 두 사람은 행복스럽게도 결혼 준비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한 사건이 벌어졌죠. 방탕한

백작이 또 스잔나에게 <마음이 쏠리게 된 사실입니다.

피가로가 그만큼이나 모험을 감행하면서 백작에게

열어 준 로지나 백작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와서는 그의 부인에게 어딘가 부족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젊고

싱싱한 스잔나에게 마음이 쏠렸던 것이죠. 백작은

스잔나를 희롱하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백작부인의

음악 교사 바질리오로 하여금 여러 가지로 설득시켜

보았으나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죠. 이렇게

진행되면서 결혼식이 박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밤에는 어떻게 하든지 결판을 내야 할

생각이었죠. 스잔나는 이미 백작의 검은 뱃속을

알고 있었지만, 피가로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 기세였습니다. 그런

피가로에게 스잔나는 정신을 차리라고

주의를 시킵니다. 이 오페라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죠.

이 『피가로의 결혼』은 매력 있는 멜로디와

교묘한 앙상블 그리고 적절 다양한 오케스트레이션

등의 풍부한 음악으로 미루어 보아 지금까지의

오페라 중에서 최대의 걸작이라 할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의 황제 요제프 2세의

칙명으로서, 당시 파리의 연극계의 거장인

보마르셰(Beaumarchais, P. A. 1732∼1799)의

2부작 희극의 제 2부에 기인하며, 오스트리아 왕실

소속극시인으로 저명한 〈로렌쪼 다 폰테〉가 번안한

각본에 모짜르트가 작곡한 4막의 희가극입니다.

모차르트는 어느 분야보다도 오페라 창작에

중점을 두었다 합니다. 그는 10세 때부터 오페라를

작곡하기 시작하여 22곡의 오페라를 남겼는데요.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음악적인 면에서나 인간적으로

성숙한 20세 이후의 작품이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특히 이 『피가로의 결혼』은 그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최대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돈

지오반니』·『마적』과 함께 여러 나라에서

상연하고 있습니다.

모짜르트의 오페라가 성공한 이유의 하나는 다

폰테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일이며, 또한 그는『

피가로의 결혼』과 『돈 지오반니』·『코시판 투테』

등의 각본을 제공하였습니다. 그와 모짜르트는

좋은 콤비로서 창작활동을 계속하던 중에 모차르트가

죽자 그만 짝을 잃은 셈이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그를 보호해 주던 요제프 2세도 별세하였습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빈을 떠나 런던으로 갔다가 다시

뉴욕으로 갔죠. 그는 그곳에서 장사도 해보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만년에는 콜롬비아 대학에서

이탈리아어를 강의하였다고 합니다.

218.150.228.34 김형태: 모차르트의오페라”피가로의결혼”스잔나의이중창”쇼생크탈출”의배경음악 [10/09-10:28]
218.150.228.34 김형태: 모차르트의오페라”피가로의결혼”스잔나의이중창”쇼생크탈출”의배경음악 [10/09-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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