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다니엘 리는 장인의 깊이와 정교함을
갖춘 흔치 않은 대가라고 평가 받고 있다.
11살 때, 다니엘 리는 좀처럼 제자를 받아
들이지 않는 로스트로포비치의 제자가 된다.
그는 “차이코프스키의 로코코 변주를 연주하는
것이 내가 15살 때 연주하는 것 같다.”고
평하면서 다니엘 리를 그의 특별한 제자로
받아들인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제자가 된지
3년 후인 1994년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런던
데뷔 독주회를 갖은 다니엘 리를 본 데카의
매니저는 그의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고
다니엘 리를 데카의 유일한 전속 첼리스트로
픽업한다. 데카는 다니엘 리와 ‘충분히 성장하고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데뷔할 수 있도록 특별한 지원을 하기로
약속하고 아주 특별한 계약을 하게 된다. 이
계약에 따라 다니엘 리의 뛰어난 재능은
이미 많은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모국인 한국에서는 1998년 데뷔
리사이틀을 개최하여 크게 호평 받았으며
데뷔 리사이틀 시점에 맞춰 한국에서만
특별히 발매된 음반 역시 큰 호응을 얻었다.
어린 나이로 주목 받는 것보다 그 명성을
이어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거장 게오르그 솔티 경 또한
“18세가 되면 정식으로 데뷔하라”며 그의
특별한 재능에 찬사를 보내고, 대가로의
성장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듯
음악계의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아껴
마지않는 다니엘 리의 천부적인 재능은
이미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1990년 노스웨스트 챔버 오케스트라와의
데뷔 협연 이후, 다니엘 리는 거장 샤를르
뒤투와 지휘의 몬트리올 심포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시애틀
심포니 오케스트라, 뉴욕 챔버 심포니,
캘리포니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서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 런던의 뉴 퀸스홀 오케스트라,
KBS 심포니 오케스트라,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타이완 내셔널 심포니 세계
각지에서 솔리스트로서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세계의 언론들은 그의 뛰어난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의 런던
위그모어 홀 데뷔 공연데 대해 <스트라드>
지는“라흐마니노프 협주곡 같은 작품을
완전히 소화해내는 풍부한 성량과 뛰어난
조화력, 그리고 테크닉은 각 악구마다의
표현과 함께 전체를 조망하는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다.
분명, 주목해야 할 음악인이 여기 있다.”고
평했으며, 미국의 유명한 평론가인 로버트
콜린스는 “눈을 감고 그의 음악을 들어보아라.
그의 나이 따위는 잊어버려라. 그의 첼로는
그 이상을 노래하고 있다”고 평했으며
뉴욕 타임즈는 그의 뉴욕 데뷔에 대해
“성숙하고 호소력이 있다. 그의 연주는
처음부터 매우 독창적 이었으며 그의 소리는
매우 힘있고 풍부했다. 그가 연주한 카덴차
영혼을 울리며 동시에 예리했다.”고
극찬했다. 2000-2001 시즌 다니엘 리는
타이완 내셔널 심포니와 상트 페테르부르크
심포니와 협연했으며 링컨 센터에서 개최되는
리버 사이드 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과의 협연이 기다리고 있으며, 필라델피아를
포함한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커티스 음대를 졸업하고, 계속해서
뉴잉글랜드 음악원의 전문연주자 과정을
밟으면서 음악적 성숙을 기하고 있는 한편,
2001년에는 세계적인 권위의 에이버리피셔
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연주자의 길로
들어서 한층 물이 오른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한국 출신의 부모에서 태어난 다니엘 리는
리차드 아론을 사사하며 6살 때 처음으로
첼로를 시작하였다. 첼로를 시작한 지
겨우 2년 후 그는 1990년 노스웨스트
챔버 오케스트라가 주최하는 영 아티스트
첼로 콩쿠르와 1994년 필라델피아 콩쿠르
등에서 우승하며 관객들을 사로잡기 시작
하였다, 다니엘 리는 또한 그의
스승인 로스트로포비치처럼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한데 1991년 워싱턴주와
노스웨스트의 피아노 콩쿠르에서도
피아니스트로 우승하여 다방면의 재능을
과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