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사인이기에 금지를 면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V 사인이기에 금지를 면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C단조>를 우리들은 흔히 <운명 교향곡>이란 별칭으로 부른다. 그 곡명에 아무런 거부감 없이 사용하지만 사실 그 별칭은 일본인이 만들어 낸 것이다. 서구에서는 절대로 <운명 교향곡>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저 <교향곡 제5번> 혹은 <교향곡 제5번 C단조 작품 67>이라고만 부른다. 그 곡이 작곡되었을 때 작곡가 베토벤은 제자인 쉰틀러에게 처음에 나오는 ‘따.따.따.따-‘하는 유명한 모티프를 가리켜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드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이 전해 내려오면서 수식어를 즐기는 일본에 와서 그만 <운명 교향곡>으로 굳어 버린 것이다.
가혹한 운명과 거의 일생을 두고 싸운 베토벤의 생애와도 어느 정도 부합되기에 동양에서는 그 별칭이 무리없이 통용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1808년 12월 22일에 빈의 안 데어 빈 극장에서 열린 연주회에는 초연되는 베토벤의 교향곡이 두 곡 들어 있었다. <제5번 F장조>와 <제6번 C단조>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F장조가 <전원 교향곡>인즉, 오늘날의 넘버와는 거꾸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마 <전원>이 먼저 작곡되고 <운명>이 나중이었으리라 짐작되는데, 출판했을 때의 순서가 어느 때인가 오늘날의 넘버링으로 바뀐 것 같다.
전쟁중에는 어느 나라나 적성국의 음악 연주나 방송이 금지되는 것이 통례이다. 제2차 세계 대전중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독일, 일본, 이탈리아에서는 적국이었던 미국, 영국의 음악이 금지되었고, 반대로 연합국 쪽에서는 독,일, 이의 음악이 금지되었다. 독일인 작곡가인 베토벤의 음악도 연합국 측에서는 당연히 공연이나 방송이 되지 않았다. 다만 한 곡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운명 교향곡>이었다. 워낙 위대한 곡이므로 은원을 넘어섰기 때문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따.따.따.따-‘ 하는 운명의 모티프가 모오스 부호에서는 ‘ — ‘가 되어 ‘V’자를 나타내며 V’자는 ‘승리(Victory)’의 머릿글 즉 V사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결국 ‘승리’를 상징하는 곡이라고 하여 연합국 측에서도 널리 연주되었던 것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music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