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칼라스는 1923년 12월 뉴욕에서 그리스 이주민의
딸로 태어났다.그러나 1937년 부모의 이혼으로 인하여
어머니와 함께 그리스로 되돌아 왔으며 이듬해부터 아테네의
국립 콘서바토이에서 노래를 배우기 시작한다. 1945년까지
그리스에서 착실한 경력을 쌓아가다 정치적인 이유로 그리스가
소란스러워지다 다시 미국으로 아버지를 찾아 돌아온다.
이해 겨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오디션을 받지만 탈락하게
된다. 그후 힘들게 얻어낸 계약도 기획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또다시 좌절에 빠지지만 그 기획사의 멤버 이기도 했던 베이스
가수 레메니의 소개로 1947년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LA
Gioconda”를 부를 기회를 잡게 되어 6월에 다시 유럽 으로
돌아온다. 이때 부유한 이탈리아 사업가 지오반니 파티스타
메네기니를 알게된다.
8월2일 이탈리아 데뷰 공연을 세라핀의 지휘로갖게 된다.
공연은 성공적 이었음에도 별 인상을 남기지 못해서 추가
계약은 맺어지지 않았지만 그해 12월에 이탈리아어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졸데 역을 부르게 되고
푸치니의 “투란도트”중 타이틀롤로 재계약을 맺는데 성
공하게 된다.
1949년에는 이탈리아 벨칸토 레파토리를 부르는
소프라노로서의 중대한 전환점에 도달하게 되는데 지휘자
세라핀의 강력한 고집으로 마카레타 카로시오가 맡았던
“I Puritani”에서 엘비라역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해 4
월 21일에는 메네기니와 결혼하게되고 남편으로서그리고
매니저로서 메네기니의 도움을 받아 2년간 이탈리아와
유럽등지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결국 칼라스는 1951년
라 스칼라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은 시즌 개막공연을
시작으로 1958년 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맡게된다. 그녀는
곧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같은 벨칸토 레파토리로
옮기기 시작함으로써 수년동안 무시당했던 많은 오페라의
레파토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드디어 1952년
6월엔 EMI사와 전속 계약을 맺게되고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죠반니”중의 돈나안나의 아리아 “Non
mi dir”를 테스트로 녹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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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Callas 의 앨범 : Voice Within the Heart:Her Recordings 1952-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