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구원받을 때가 가까이 왔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예수님의 재림-
1. 말씀읽기:루카 21,20-28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다 (마태 24,15-28 ; 마르 13,14-23)
20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21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22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23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24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마태 24,29-31 ; 마르 13,24-27)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몸이 아프려고 하면 증상이 나타납니다. 한 친구가 배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배가 너무 아파서 잠이 오질 않는다고 하여 병원에 가서 내시경을 했습니다. 다행히도 위궤양이었습니다. 위가 탈이 났기에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오실 때는 그런 증상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 증상이 나타났으니 병원 가서 진찰하고 약을 먹고 낳은 것처럼 그런 증상들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가 바로 내가 구원 받을 때라는 것을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해 주십니다.
21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기원후 70년 해방절부터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포위하다가 마침내 같은 해 8월 29일 예루살렘 시내를 완전히 점령하였습니다.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라”(마르코 13,14).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 이 흉측한 우상은 다름 아닌 예루살렘을 포위한 로마군인들입니다.
22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본디 구원이 이룩된 장소였으나 70년에 복수의 심판을 받은 다음부터는 구원사적 위치를 상실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도시를 떠남으로써 그 운명을 모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허허벌판에 사는 사람들이 견고하게 구축된 그 도시로 피신하곤 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다면 산으로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역사가 에우세비우스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군대가 도시에 다가오자 예수님의 예언을 회상하고 성을 빠져 나와 요르단강 동쪽에 있는 펠라로 피난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도성이 멸망할 날이 온 다는 것은 인간적인 노력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들이 헛된 것들이라면 그것을 포기하고 예수님께서 의지하라고 말씀하신 것들로 향해야 할 것입니다.
22 그 때는 기록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는 보복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징벌과 보복의 때가 그 도시에 닥쳐오고 있었고, 은총의 때가 가버렸습니다. 예루살렘의 파멸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그 날이 나에게도 다가올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간다면 그날은 축복의 날이요, 영광의 날이 될 것입니다.
23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임신한 여인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인들. 이들은 피할 수도 없고, 힘도 없는 사람들 입니다. 이들이 짓밟히는 이유는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의지하던 도성, 그들이 의지하던 군대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의지하는 것이 과연 나를 지켜줄 수 있는가? 나의 영생을 보장하는가? 이것을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24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하느님의 노여움과 여러 가지 재앙의 결과를 세 가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칼날에 죽는 것, 포로가 되어 여러 나라에 끌려가는 것, 예루살렘이 이방인 손에 넘어가는 것. 요세푸스 플라비우스는 예루살렘에서 110만이 살해되고 9만 7천이 노예로 잡혀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무조건 벌만을 내리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예루살렘이 이방인에게 넘어간 기간의 한계를 하느님께서는 설정하십니다. 이방인들에게 부여된 기간이 끝나면 대대적인 심판이 있게 될 것이며, 하느님 나라가 결정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부여된 기간은 예루살렘 파괴부터 사람의 아들의 재림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 시기에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왔는데, 이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구원을 이방인들에게도 제공하시기 때문이고, 바로 지금이 그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무자비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분명 뭔가 표징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랜 전통의 배경을 지닌 표징들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표징들로 그날을 표현하십니다. 바다의 파도와 풍랑, 해와 달과 별들…,
지금이 바로 그 때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나를 준비시켜야 할 것입니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그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을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의 출현은 전통적인 표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사람 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고적부터 계신 이(하느님)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다.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되었다. 그의 주권은 스러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다니엘7,13-14). 사람의 아들은 구름을 타고 올 것입니다. 구름은 하느님의 전차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의 지상 생애를 특징지었던 “약함”중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현양의 위엄과 영광에 싸여 오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을 어떻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표현하시기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교회는 무거운 짐을 진 사람처럼 몸을 구부린 채 나아갑니다. 미움 받고 박해당하고 모든 영예를 거부당한 사람처럼 그의 머리를 떨어뜨린 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런 표징들이 나타나면 신자들은 용기를 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이들에게는 그것이 멸망의 표징이겠지만 신자들에게는 구원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하루 신앙생활 하면서 많은 어려움들이 우리에게 밀려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렇게 시름에 젖어서 고개를 떨어뜨릴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행동 하나 하나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보답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해 힘들어했던 그 모든 수고와 땀방울을 예수님께서는 구원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두려움을 자극하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말씀, 더 힘을 내어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은 종종 무거운 짐을 진 사람처럼 몸을 구부린 채 나아갑니다. 하느님 때문에 어떤 때는 미움 받고 박해 당하기에 마치 죄인처럼 머리를 떨어뜨린 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가 죽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불량배들에게 얻어맞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 두려움에 떨거나 기가 죽어서 때리는 대로 맞고 잇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태권도를 잘하는 친구나 삼촌이 내 앞에 나타났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다. 그래서 불량배들을 모조리 물리쳐 주었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즉 신앙인으로서 종말 사건에 앞설 표징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신자들은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억압받고 시련 당하고 기가 꺾인 교회이기를 그만두게 될 때는 오직 사람의 아들이 올 때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또한 그렇게 신앙생활 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하지만 주변의 눈치와 비난과 방해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학생인 경우, 다른 사람들은 다 학교가야 하는데 난 성당 간다고 할 때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나 부모님이 반대하는 경우도 있고, 내가 신자임을 드러내기 위해 학교에서 밥 먹을 때 친구들이 놀리거나 방해하는 경우도 있고, 비신자인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면 내가 신자임을 드러내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비신자인 부모님이나 냉담중인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경우, 아침저녁 기도하기도 힘들고, 식사 때 성호 긋고 밥 먹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기쁘고, 당당하게 신앙생활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내가 그런 것들을 당당히 이겨나갈 수 없다면 우리의 어깨는 처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어깨가 처진 우리에게, 기가 죽은 우리에게 힘을 내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힘을 내야 합니다. 힘을 내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신앙생활 하여야 하겠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신앙생활을 하면서 힘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예를 들면 주일을 지키는 것이라든가, 고백성사를 보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 기도하는 것 등에 대해서 내가 힘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2. 오늘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파괴와 재림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그것이 나에게 어떻게 구원으로 향하게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