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축제와 그 의미
고대인들은 날짜를 계산하는 데 그 당시 자연과 수리에 관한 온갖 지식을 이용하였다. 그들이 이처럼 날짜 계산에 신중과 정확성을 보인 까닭은 신들에게 바치는 각종 제사와 종교 축제를 자신들의 생업인 농사나 목축과 연결시키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다.
1. 성서에 나오는 순례 축제들은 무엇이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축제를 언제 그리고 무슨 뜻으로 지냈는가?
이스라엘의 종교 축제는 일상 생활과 역사적 사건을 반영하고 있다. 여러 축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축제로 셋을 들 수 있는데 해방절과 오순절과 초막절이다. 이 세 축제는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신명기 16장 16절에 의하면 이 축제 기간에는 모든 이스라엘 남정네들이 예물을 들고 예루살렘을 순례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세 축제를 ‘순례 축제들’이라고 부른다. “너희 가운데 남자는 누구든지 일 년에 세 번, 과월절과 추수절과 초막절에 너희 주 하느님께서 고르신 곳에 와서 그분의 얼굴을 뵈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빈손으로 주님의 얼굴을 뵈러 오면 안 된다. 모두들 너희 주 하느님께 복받은 만큼 예물을 들고 와야 한다.”(신명 16,16-17)
이 순례의 의무는 이스라엘이 나라를 빼앗기고 이방인들의 땅으로 흩어진(디아스포라) 뒤에는 자연히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다인들에게 적어도 일생에 한 번은 이 세 축제를 지내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것이 중요한 관습이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바오로가 오순절을 예루살렘에서 지내려고 여행을 단축시켰다고 보고한다. “바오로가 아시아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에페소에는 들르지 않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는 할 수만 있으면 오순절을 예루살렘에서 지내려고 서두르고 있었다.”(사도 20,16)
이 순례 축제들은 기쁨을 마음껏 드러내는 축제였다. 축제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우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제사를 드리면서 보통 때는 좀처럼 맛볼 수 없었던 최고급 음식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일상생활의 고생과 힘겨운 노동을 잠시 잊고 춤과 노래로 마음껏 축제의 흥을 돋우었다. 이 축제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성전에서는 온갖 극적이고 화려하고 장엄한 경신례를 통하여 축제에 참석하는 이들로 하여금 전통적인 유다교 신앙과 역사를 되새기도록 유도하였다. 우리네 명절인 설날과 추석에 모든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에게 제사를 바치고 조상의 덕을 기리며 풍성한 고기와 술과 떡을 나누어 먹는 풍습과 일맥상통한다.
이 축제들의 기원과 의미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이스라엘 최대 명절이요 그들의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토대라고 볼 수 있는 해방절 축제의 기원은 유목민 축제인 과월절(Passover)과 농경민 축제인 무교절(누룩 없는 빵의 축제; Unleavened Bread)에서 유래된다. 우선 과월절 축제는 모세 이전의 유목 생활에서 맏배로 태어난 양을 잡아 제사를 바치면서 양떼의 출산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동시에 그분께서 가축을 잘 보살펴 주시도록 청하던 축제였다. 과월절 축제 예식 중 후대에까지 잘 보존된 예식은 히쏩 가지로 양의 피를 적셔 사람들에게 뿌리고 문설주에 바르던 관습이었다. 이런 예식은 이집트인, 아테네인, 옛 게르만족 등에게서도 발견되는데 그들은 짐승의 피가 부정한 귀신이나 돌연한 재앙으로부터 집 안에 있는 가족들을 보호해 주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과월절이 부족의 축제로 확대되면서 한 해를 시작하는 이른봄 가축 떼의 풍요로운 출산을 기원하는 축제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무교절은 정착생활을 하던 농경민의 축제인데 추수를 시작할 때 거행되었다. 농민들은 누룩을 넣지 않고 새 옥수수 가루로 빵을 만들어 신들에게 바치면서 이 축제를 시작하였다. 이 축제 동안 다른 누룩 반죽을 발효시키기 위하여 떼어놓았던 묵은 누룩 조각을 집 안에 조금도 남겨 놓아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축제 기간이 끝나면서부터 사람들은 완전히 새롭게 빚은 누룩으로 빵을 구워 먹을 수 있게 된다. 출애굽 이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게 된 히브리인들도 그곳 농경민들의 무교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옛 히브리인들이 고대 근동인들에게서 받아들여 지켜오던 과월절과 무교절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준 출애굽 사건을 겪으면서 종교 축제로 변모되고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을 이루는 최대 축제인 해방절로 자리잡는다. 과월절 제물로 바치던 맏배로 태어난 양은, 이집트에서 빠져 나올 때 이스라엘의 맏자식들을 그 피로 구했던 새끼 양의 희생적 죽음에 연결된다. 다른 한편 무교절의 누룩 없는 빵은,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빠져 나오던 날 서둘러 누룩을 넣지 않고 바쁘게 구워 먹었던 빵과 연결된다.
과월절 양은 본디 첫째 달 10일에 골라 놓았다가 14일에 잡았다(출애 12; 레위 23,5; 민수 9,1-5; 28,16). 그런데 이 양을 살해하던 장소는 신명기에 의하면 시온산으로 되어 있고, 출애굽기 12장에 의하면 각 가정으로 되어 있다. 예수님 당시에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되어 있다가 성전이 파괴되고 난 후에는 살해 장소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온다.
과월절 축제는 니산달 곧 춘분이 낀 첫째 달 14․15일 저녁 해가 지고 난 뒤에 한 살배기 어린양을 잡는 예식으로 시작하여 성대한 만찬을 통해 이집트 탈출 과정을 기념하는 것으로 그 절정을 이룬다. 미쉬나 기록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 당시의 과월절 만찬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오후 3시경에 성전에서 양을 잡고 그 고기를 뼈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여 각 가정으로 운반하였다. 요한 복음 저자는 이것을 예수님의 십자가상 희생적 죽음과 연결시켰다(요한 13,1; 18,28; 19,14.31.36). 만찬에 참석할 사람들은 먼저 손을 깨끗이 씻고 식탁에 앉는다. 가장이 첫 번째 포도주 잔을 들어 축복한 다음 참석자들에게 돌리고(오늘날에는 각자가 자기 잔을 갖는다.) 쓴 나물을 먹는다. 이때 가장은 이집트에서의 탈출을 상기시키는 예식 본문을 읽는다. 그 다음 두 번째 잔을 돌리고 이어 시편 113편과 114편을 노래한다. 그러고 나서 가장의 식사전 기도를 시작으로 음식을 들게 되는데 그것은 구운 양고기, 쓴 나물,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으로 되어 있다. 만찬 후(1고린 11,25) 축복의 잔(1고린 10,16)으로 불리는 세 번째 잔을 돌리고 시편 115편과 118편을 노래한다. 118편 26절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를 노래할 때 네 번째 잔을 돌린다. 여기까지가 의무적으로 치러야 할 공통 예식이다. 각 가정은 필요한 음식과 그릇을 빠짐없이 준비해야 하고 만일 가난한 가정이나 사람들이 예식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지 못한 경우에는 공동체에서 준비한다. 이제 과월절 만찬의 밤은 시편 120편에서 137편까지를 노래한 후 다섯 번째 포도주 잔을 돌리는 것으로 끝난다. 이 과월절 만찬에 이어 유다인들은 7일 동안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을 먹었다. 과월절 기간에 피할 수 없는 사정으로, 곧 시체를 만져 부정하게 되거나 여행 중이어서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두 번째 달 14일에 제2과월절을 지낼 수 있게 하였다(민수 9,6-14; 2역대 30,1-22 참조).
이렇듯 과월절과 무교절은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념’이란 과거의 체험을 현재로 끌어들여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을 말한다. 나중에 조국에서 멀리 떠난 유다인들은 ‘내년에는 조국에서’라는 말로 과월절 예식을 끝맺었다. 기념을 통하여 오랜 종교적 전통을 보존하고 민족의 정기를 되찾으려는 그들의 열망을 이 말 속에서 엿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3대 순례 축제 가운데 두 번째 명절은 오순절이다. 오순절은 첫 보릿단을 수확할 때 지냈던 가나안 농경민들의 맥추절에서 비롯되었다. 히브리인들은 과월절 첫날부터 시작하여 7주간을 보내고, 시반달(춘분이 든 달부터 세 번째 달) 6일에 이 명절을 지냈다. “그로부터 칠 주간을 세어라. 밭에 서 있는 곡식에 처음 낫을 대던 그때로부터 시작하여 칠 주간이 지나거든, 너희 주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려 주신만큼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예물을 바치며, 너희 주 하느님께 추수절 축제를 올려라. 그리고 너희 주 하느님을 모시고 그 앞에서 즐겨라. 너희는 아들과 딸뿐 아니라 남종과 여종, 또 너희와 한 성문 안에서 사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 있는 떠돌이, 고아, 과부까지도 데리고 너희 주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고르신 곳에서 함께 즐겨라. 너희는 이집트에서 종노릇한 일을 잊지 말고 이 모든 규정을 성심껏 실천해야 한다. 너희는 타작마당과 포도즙을 짜는 술틀에서 소출을 거두어들일 때 이레 동안 초막절 축제를 올려라.”(신명 16,9-13) 여기서 일곱 주간을 지난날은 50일이기 때문에 50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 ‘펜테코스테(πεντεκοστη)’, 곧 오순절이라는 이름이 이 축제에 붙게 되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12사도를 대표하여 오순절 축제를 지내려고 예루살렘에 순례 온 디아스포라(이방인 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다인들에게 설교를 한다. 그 결과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다.
히브리인들은 이 축제를 가나안 사람들에게서 받아들여 우선 보리 추수 시작에서 밀 추수 끝으로 명절 날짜를 바꾸고, 보리 추수단 대신 새 밀로 밀가루를 반죽하여 만든 빵 두 개를 봉헌하였다(레위 23,15-21). 그리하여 맥추절의 본 의미인 맏물을 바쳐야 한다는 생각을 그대로 고수하였다. 곡식의 첫 열매는 뒤따라오는 추수 전체를 대표한다. 인간은 열심히 일을 하지만 씨앗을 자라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눈으로 측정할 수 없는 신비이다. 그래서 추수는 언제나 신성한 하느님의 업적이기에, 곧바로 우리의 음식으로 바뀌기 전에 먼저 곡식의 성장을 주관하신 하느님께 봉헌해야 한다. 이런 봉헌 정신은 구약성서 전편에 흐르고 있다.
순수한 농업 명절이었던 이 오순절은 신구약 중간 시대에 이르러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졌던 계약과 연결된다. 유다 묵시문학 중의 하나인 「희년사」(The Book of Jubilees; 기원전 153-150) 6,17에 의하면 이 명절이 하느님과 노아 사이에 맺어졌던 계약을 매년 갱신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책 1,1에 보면 시반달(입춘이 낀 달로부터 다섯째 달)에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십계를 받은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출애 19,1).
이렇듯 오순절은 처음에 가나안 농경민들의 명절이었던 맥추절이 후기 유다교 사상 안에서 노아와의 계약과 시나이산의 계약, 곧 이스라엘이 하느님한테서 율법을 받은 사실과 연결되면서 종교적인 명절로 바뀐 것이다.
곡식이나 열매의 첫 소출을 바치는 시기는 오순절을 시작으로 초막절로 끝난다. 이스라엘의 3대 순례 축제 가운데 이 초막절이 본격적인 순례 축제였다. 이 명절의 이름은 히브리말로 ‘수꼿’인데 ‘나뭇가지로 만든 안식처’라는 뜻이다. 추수를 끝낸 농부들은 이 안식처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추수절로 통하는 이 명절 역시 농경 문화에 그 뿌리를 두는데, 그들은 마지막 수확물인 포도와 올리브를 거둬들이는 시기에 이 축제를 지냈다. 가나안 주민들은 종교의식의 근본 목적을, 여러 신들을 인간의 힘으로 움직여 자연의 혜택을 얻어내는 데 두었다. 반면에 히브리인들은 하느님을, 자연을 통제하는 데에 인간의 간섭이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초월자로 인식하였고, 그들의 종교 예식을 통해서 이 하느님께 마땅한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렸다. 우리에게는 뚜렷한 이 구별이 가나안 농경 문화의 영향권 안에 살던 히브리인들에게는 가끔 불분명했다. 특별히 극심한 가뭄이 닥치거나 우박과 메뚜기 떼의 습격을 받을 때면, 좀더 구체적으로 그런 재앙에 대처하고 싶은 욕심에서 그들은 주 하느님을 떠나 가나안의 풍산신 숭배에 기울어졌다.
본디 농경 문화에 기원을 둔 초막절이 언제 어떤 경로를 밟아 유목민의 명절로 그 성격을 달리하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후대에 오면서 이 명절은 사막에서의 방랑과 천막생활을 회상시키는 명절로 바뀐다. “칠월(춘분이 낀 달로부터 일곱째 달) 십 오일, 땅의 소출을 거둬들일 때, 너희는 칠 일간 주님께 축제를 올려야 한다. 그 첫날을 철저하게 쉬어야 하고, 팔일째 되는 날에도 쉬어야 한다. 그 첫날 너희는 훌륭한 과일과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뭇가지와 개울버드나무를 꺾어 들고, 칠 일간 너희 주 하느님 앞에서 즐거워하여라. 해마다 이 날을 주님께 바치는 축제일로 지키도록 하여라.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길이 지킬 규정이다. 이것은 일곱째 달(공동 번역은 ‘칠월’)에 지킬 축제로 너희는 칠 일간 초막에서 살아야 한다. 이스라엘 국민은 누구나 초막에서 살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 초막에서 살게 했던 일을 후손 대대로 상기시켜 주려는 것이다. 주 내가 너희 하느님이다.”(레위 23,39-43; 예레 2,2 참조)
이 축제라 열리는 기간은 티쉬리달(일곱째 달) 15일부터 22일까지 8일 동안이다. 바빌론과 그밖에 먼 지방에서 이방인 가운데 흩어져 살던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제물을 들고 순례 행진을 해왔다. 예루살렘과 그 주변에 몰려든 순례객들은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로 초막을 짓고 주님 앞에서 피리 소리에 맞추어 노래와 춤으로 축제의 분위기를 흥겹게 돋우었다.
모든 민족(특히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려고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통해 초막절은 종말론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예루살렘에 쳐들어왔다가 살아 남은 백성은 모두 해마다 올라와서 초막절을 지키며 주님을 만군의 주로, 왕으로 받들어 예배하게 되리라. 세상의 어느 민족이든지 예루살렘에 올라와 주님을 만군의 주로, 왕으로 받들어 예배하지 않는 날에는 비를 구경도 못하게 될 것이다.”(즈가 14,16-17)
초막절의 종말론적인 성격은 신약성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타볼산에 올라가셔서 당신의 모습을 바꾸시고 종말에 나타나기로 된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대화하시는 모습을 보고 베드로는 특이한 제안을 한다. “랍비,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랍비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마르 9,5; 마태 17,1-8; 루가 9,28-36 참조) 베드로의 이 제안은 초막절에 부여된 종말론적인 성격을 잘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