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 중에서도 가장 인간에게 의존하는 동물은 양이라고 합니다.
개라면 야생으로 되돌아가 들개가 되기도 합니다만 양은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태어나는 데서부터 먹고 마시는 데에 이르기까지 안간의 보살핌 없이는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따라서 양은 양치기에게 완전히 의존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양이 많은 나라이어서 성서에는 양을 예로 들어 한 얘기가 적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대하여 인간이 신뢰하고 의지하는 마음의 상징으로 양이 자주 등장합니다.
양보다도 더 힘없는 것은 어린양입니다.
어린양을 동물중에서 가장 연약한 것으로 치는 것은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53장 7절에는 앞으로 오실 구세주의 고난의 모습을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복음서와 묵시록에도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해마다 과월절이면
에집트에서의 탈출을 기념하여 어린양을 잡듯이,
예수님이 우리들을 위하여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 대축일의 부속가(시편성가74쪽)는
이 내용을 “어린양이 어미 양을 살려냈으며” 라는 말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양인 우리들이 어린양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되었다는 뜻입니다.
나약함 그 자체인 어린양이 죄와 악마에 대하여 큰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묵시록에는 아래와 같은 멋진 장면이 나옵니다.
요한이 인류의 운명이 적혀 있는 두루마리를 펼쳐 보기에
마땅한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몹씨 울고 있었더니
원로들 가운데 하나가” 울지 마시오.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였으니
그분이 이 일곱 봉인을 떼시고 두루마리를 펴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합니다.(5,5).
유다의 사자란 물론 구세주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사자는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강력한 구세주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묵시록에 다시 보면 장면이 뒤바뀝니다.
“이미 죽임을 당한 것 같았던 그 어린양은— 앞으로 나와 옥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서
그 두루마리를 받아들었다”(5,6-7)고 하였으니, 결국 봉인을 뗀 것은 어린양입니다.
구약의 사자가 신약에서는 어린양으로 변했습니다.
적을 짓밟을 것으로 기대되던 사자 같은 메시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잡혀 죽는 어린양이 된 것입니다.
이기는 것이 지는 것이고 패함으로써 승리를 얻는다는 역설은 그대로 어린양에게 해당합니다.
약하디약한 어린양이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이 어린양의 모습에 그리스도교의 모든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즉 “나는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왔다”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미사 때 성체를 배령하기 전에 사제가 빵을 쪼개는 의식은
우리들을 위해 죽음을 맞으신 예수님의 몸이 부서짐을 뜻하는 상징입니다.
이때 노래하는”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이라는 평화의 찬가는
살해되신 한 생명을 함께 받아 모시는 인간의 더 무어라 할수 없는 탄원입니다.
사제가 영해 줄 성체를 가리키면서
“하느님의 어린양의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하면
우리들은”저희가 주님을 두고 또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하고 답하면서
어린양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습니다.
이처럼 우리들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주겠노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하면 신자가 “아멘” 하고 답하는 데는 바로 그러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