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티아누스
69년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직에 오르기 전부터 그의 작은 아들 도미티아누스는 로마에서 대권 장악의 꿈을 키워 왔다. 그러나 아버지가 펠레스티나에서 돌아와 황제로 추대되면서 제 2인자 자리로 밀리더니 티투스가 개선하여 로마로 들어오자 후계자 자리마저도 양보해야 했다. 아버지가 죽고 난 다음 티투스를 없애려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으나 당시 인기 절정에 있었던 그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81년 다행히 티투스의 통치가 짧고 아쉽게 끝나자 도미티아누스는 대권을 이어받았다. 권좌에 오른 그는 민심을 사로잡기 위하여 먼저 자기 선임자들에 대한 경의를 정중하게 표하였다. 자기 고향집을 성전으로 만들어 플라비우스 가문에 바치고 형 티투스의 개선문을 세웠다.
이런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도미티아누스의 치세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그는 원로원 의원들과 다른 지도층 인사들과 자주 충돌하였다. 수에토니우스는 특별히 도미티아누스가 유다인들에게 보인 적대적이고 모욕적인 정책을 보고한다. 황제는 유다인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세금 징수 대상자를 가려내기 위하여 할례 검사를 철저히 하였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