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및 교육

 

바울로의 생애의 정확한 연대에 관하여는 그의 편지에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단지 사도행전에서 두 사건의 연대만 추정, 확증할 수 있을 뿐이다. ①사도 12,20-23; 헤로데 아그리빠의 죽음을 전하는데 그때는 기원 후 44년이다.  ② 사도 18,12-17; 바울로가 고린토에서 선교하다가 잡혀 아카이아의 총독 갈리오 앞에서 법정 재판을 받은 사실을 전한다. 갈리오는 51/52년 또는 52/53년경 아카이아 지방의 총독으로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바울로는 50년 말 또는 51년 초에 고린토에 도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1. 출생 및 교육




출생 년도 ; +5-10년


       근거; 사도 7,58 스테파노의 순교(35-36년) “젊은이”(νεαιος)


             필레 1, 9 “노인”(πρεσβυτης)


출생 장소 ; 길리기아주의 수도 다르소


       B.C 333년 알렉산더가 치드로스강에서 목욕하고 사망한 곳


성장 배경 ; 그의 아버지가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로마 시민권을 획득했기 때문에 바울로는 태생 로마 시민이었다. 그래서 그는 후에도 로마제국의 혜택을 톡톡히 입었으며 따라서 로마제국에 대해서 비판적이기 보다는 우호적이었다.


       다르소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이민와서 정착했고, 동서교육의 요충지로서 번창한 상업도시였으며 동방과 희랍과 로마 문화가 혼합된 도시였다. 오늘날의 대학과도 같은 학교가 있는 교육도시였으며 희랍철학이 매우 성행하였고, 종교적으로도 희랍, 로마의 여러 종교가 뒤섞여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 자란 바울로는 자연스럽게 헬라어와 셈족어, 헬라문화와 셈족문화를 익힐 수 있었고, 희랍의 철학, 사상, 종교 등이 그에게 영향을 주었고, 동시에 로마제국의 지리적․정치적 요소를 익히게 되었다.


       이와같이 유대의 종교, 희랍의 문화, 로마의 정치등의 배경은 그의 성장과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바탕이 없었다면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 독실한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나고 교육을 받았으며 철저한 바리사이로 처신했다 (갈라 1,13-14; 필립 3,5-6; 로마 11,1).


       예루살렘에 유학하여 힐렐 율사의 손자이며 당대 최고의 율사였던 가믈리엘 아래서 공부하였다.


     ; 그는 벤야민 지파에 속하였고(필립 3,5), 유대풍습대로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사울와의 이름을 따서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당시의 해외거주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라 ‘바울로’라는 희랍이름도 가지고 있었다.


       사도행전에서는 13,7까지 ‘사울로’(‘사울’을 그리스어로 음역한 것임)라고 하다가, 13,9에서 ‘사울로, 일명 바울로’라고 한뒤 계속해서 바울로라고만 한다 (그러나 개종기에서는 ‘사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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