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장, 베드로 사도의 치유기적과 설교

 

사도행전 해설(4)


믿음을 가진 사람이 못할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사도들에게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과 병자를 치유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과 소명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이 능력은 더 크게 발휘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믿음의 힘으로 불구자를 치유합니다.




3. 베드로 사도의 치유와 설교


1) 베드로가 ‘아름다운 문’에서 불구자를 고치다(사도3,1-10)


① 자선을 청하는 불구자(사도3,1-3)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매일 아침 열시와 오후 세시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바쳤습니다(다니9,21;유딧9,1). 베드로와 요한은 오후 세시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사람들에 의해 들려 왔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들어다 놓았던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문’이란 명칭은 오직 여기에서만 나오기에 그 문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1) 


 그 불구자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불쌍한 불구자(앉은뱅이)의 처지는 ‘아름다운 문’이라는 성전 문에 의해 더욱 초라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② 베드로 사도의 치유(사도3,4-10)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불구자는 무엇인가를 얻으리라고 기대하면서 사도들을 쳐다보았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3,6)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태초에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너무도 놀라운 일들이 눈앞에 벌어졌습니다. 온 백성은 불구자였던 그가 걷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는 것을 보고, 또 그가 성전의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자선을 청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였습니다.


우리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대할 수 있음은 내가 말씀 안에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상대방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음 또한 내가 예수님 안에 머물고, 예수님께서 내 안에 머물러야 가능한 것입니다.




2) 베드로가 솔로몬 주랑에서 설교하다(사도3,11-26)


치유 받은 그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있던 백성들은 크게 경탄하며 ‘솔로몬 주랑’이라고 하는 곳에 있는 그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솔로몬의 주랑은 성전마당 동쪽에 남북으로 쭉 뻗은 주랑으로서, 기둥들로 지붕을 떠받혔기 때문에 통풍이 잘되고 그늘이 져서 성전 참배객들이 휴식을 취하기에 좋았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백성을 보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또 우리의 힘이나 신심으로 이 사람을 걷게 만들기나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유심히 바라봅니까?”(사도3,12).


베드로 사도는 너무도 겸손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말을 합니다. 앉은뱅이를 치유한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힙니다. 자랑할 만도 하고, 교만할 만도 할 텐데 베드로 사도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이렇게 설교를 합니다.




①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사도3,13).




   베드로 사도는 지금 앉은뱅이의 치유를 목격한 유다인들이 바로 거룩하고 의로우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했던 것을 기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유다인들은 가슴이 뜨끔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이 베드로 사도의 입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종이라고 부른 까닭은 예수님의 일생이 제2이사야서(이사40-55장)에 나오는 하느님의 종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대신 속죄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이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입니다.




②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사도3,15).




   생명의 영도자는 죽은 이들의 부활에 있어서 첫째 되시는 예수님께서 다른 이들을 영생에로 인도하는 분이시기에 생명의 영도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나가는 길이요, 진리시기에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다는 것과, 하지만 그분께서는 부활하셨고, 자신들이 바로 그 부활의 증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③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또 아는 이 사람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사도3,16).




  베드로 사도는 자신들이 바로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앉은뱅이의 치유도 바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 때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여든 유다인들을 형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유가 바로 무지한 탓에서 그렇게 하였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알았다면 유다인들은 그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무딘 마음이, 회심 없는 마음이 예수님을 못 알아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 사도도 유다인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다는 것을 알려 주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그러면 다시 생기를 찾을 때가 주님에게서 올 것이며,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정하신 메시아 곧 예수님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물론 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예로부터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만물이 복원될 때까지 하늘에 계셔야 합니다(사도3,19-21).



  베드로 사도는 회개를 말합니다.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죄를 용서받으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기를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선 사람과 회개하지 않고 하느님께 등을 돌린 사람의 삶은 모습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1편에서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다르듯이, 살기를 원한다면 메마른 땅에 뿌리를 내릴 것이 아니라, 시냇가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는 잎이 시들지 아니하고, 제때에 열매를 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물로 생기를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매를 맺으면서 준비되어 있을 때, 예수님께서 오실 것입니다(재림). 예수님께서 아직 재림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믿음을 드려야 하는 이유를 모세의 입을 통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⑤모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야 한다. 누구든지 그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백성에게서 잘려 나갈 것이다(사도3,22-23).




  이 말씀은 신명기 18장 15-18절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15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18 나는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동족 가운데에서 너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일러 줄 것이다(신명기18,15.18).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인성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이십니다. 이 신명기의 말씀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18장 19절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내 이름으로 이르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직접 추궁할 것이다”(신명기18,19).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결국 영원한 생명에서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무엘을 비롯하여 그 뒤를 이어 말씀을 전한 모든 예언자도 지금의 이때를 예고하였다고 말하면서 계약의 자손임을 기억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그 예언자들의 자손이고, 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희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하시며 여러분의 조상들과 맺어 주신 계약의 자손입니다(사도3,25).




 베드로 사도는 유다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을 해 주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하느님의 선택받은 백성이고, 하느님께서는 조상들과 맺으신 계약을 성실히 지키시며, 자손 대대로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시어 먼저 유다인들 하나하나를 악에서 돌아서도록 하여 복을 주시려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비록 어리석음 때문에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그 복을 받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① 앉은뱅이를 치유하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고백하듯이 자신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한 모든 일 안에서 나는 예수님을 보여 드려야 하고, 겸손하게 예수님께 영광을 드릴 수도 있어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예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②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유다인들에게 증거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예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증거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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