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묻고 답하기의 첫 질문자가 되신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보내주신 질문의 뜻을 두 가지로 답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성서로 인정하는 책 또는 저서 또는 작품의 숫자가 다릅니다. 개신교에서는 66권의 작품을 성서로 인정하고 가톨릭에서는 73권의 작품을 성서로 인정합니다. 이 숫자상의 차이는 구약성서에만 해당합니다. 신약성서는 개신교와 가톨릭이 모두 27권의 저서 또는 작품들로 성립한다고 인정합니다. 가톨릭은 개신교에서도 인정하는 -구약과 신약을 합해- 모두 66권 이외에 토비트, 유딧, 마카베오 1+2, 지혜서, 집회서, 바룩(+ 예레미야의 편지) 등 7권을 추가해서 구약성서로 인정합니다. 앞의 66권은 제1 경전서라 하고 뒤의 7권은 제2 경전서라고 합니다. 그밖에 에스델 및 다니엘의 그리스 번역본 중에 히브리 원문에 없는 부분도 경전으로 인정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가 쓴 졸저 “성서와 그 주변 이야기”(바오로 딸, 2000년 재인쇄), 쪽 43 이하를 참고하세요.
구약성서의 경전 목록을 확립하는 과정은 유다교와 그리스도교가 달랐습니다. 유다교에서는 기원후 약 100년경 이 목록을 확정했는데 모두 히브리어로 된 작품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성서라고도 부릅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리스말로 번역된 소위 “70인역” 구약성서를 성서로 읽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 70인역에는 히브리 성서에 없는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저서들도 매우 경건하게 읽고 받아들이다가 마침내 경전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루터 이후 히브리 성서의 경전만을 구약성서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가톨리과 개신교는 구약성서의 경전에 차이가 생긴 것입니다.
성서의 원문은 하나라고 하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전해진 성서는 이 원문을 싣고 있는 원본이 아니라 이 원본을 수백 년 때로는 천년도 넘게 긴 세월에 걸쳐 손으로 일일히 베껴서 전해준 사본뿐 입니다. 그래서 원본은 사라지고 이렇게 손으로 베낀 복사본들 -손으로 베꼈으니 필사본들이라고 해야겠지요-만 일부 남게 ㅔ되었고 그러는 동안 시대와 지방에 따라 각각 조금씩 다르게 전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 입니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된 원문을 베끼는 가운데 여러 가지 착오가 생길 수 있었고 이 원문을 옛날 언어인 그리스어, 라틴어, 시리아어, 이디오피아어, 아르메니아어 등등 여러 언어로 번역하는 가운데 번역의 차이가 생기고 이런 번역에 대본으로 사용된 성서의 필사본들이 서로 조금씩 달랐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성서의 본문이라는 것은 대부분 원본의 원문과 같겠지만 완전히 일치한다고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원본의 원문에 가장 가까운 본문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또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런 분야에 기울이는 학문적인 노력을 본문 비판학이라고 합니다. 문헌학의 한 분야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비록 상대적이지만 원문에 가장 가까울 것으로 평가되는 성서 본문을 번역한 것이 우리가 손에 들고 읽는 번역판 성서입니다. 원어 성서의 본문이 같다고 해도 그 번역은 다를 수 있고 이것은 극히 정상적입니다. 왜냐하면 본문을 직역하는 수도 있지만 뜻이 통하도록 의역을 해야 할 경우 그 본문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으므로 그 번역 또한 달라지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언어로 번역하더라도 시대가 바뀌고 언어 감각이 달라지므로 새로 번역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용도에 따라 번역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미사 전례 때 봉독하는 성서를 성서학 강의나 연구 논문과 저서에 사용하기에는 다소 미흡할 때가 있으며 반대로 너무 전문적인 번역이어서는 대중성이 없어 일반의 이해를 위해서는 많은 설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극단을 피하고 학문적인 철저함과 엄격성을 지키면서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번역할 수 있으면 가장 바람직하겠지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다 함께 노력합시다. 감사합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