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 이야기 2
우리는 지난 시간에 리브가와 야곱이 이사악을 속여 축복을 가로챈 부분을 공부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리브가를 욕할 수 없음을 고백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기를 바라면서 “저주까지도 받아들였던 믿음의 여인 리브가” 우리는 오늘 그 축복을 가로챈 야곱의 뒤를 따라가게 됩니다. 자 함께 하란으로 출발합시다.
6)28,1-22: 막가파 에사오와 도망가는 야곱
야곱은 외삼촌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출발한다. 하지만 하란까지의 여정은 그 당시 보통 일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 북부 지역을 거쳐 시리아를 통과한 뒤 메소포타미아까지 가야 하는 837km 나 되는 긴 여정이었던 것이다. 이 여정은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다음 걸었던 순례 여정을 거꾸로 걷는 여정이었다. 선택받은 아브라함이 걸었던 그 길을 그의 손자 야곱이 거슬러 걷게 된다. 영적으로 선택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망각한 채 인간적으로 선택받은 자가 되려 집착했기 때문이다.
① 야곱에게 축복과 당부를 하는 이사악
이사악은 하란으로 피해야 하는 아들 야곱에게 처음으로 축복을 해 준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복을 빌어준다. 그리고 에사오가 이방인 여인들과 혼인하는 것과는 달리 야곱에게는 친척과 혼인할 것을 당부한다. 야곱은 라반의 딸들을 아내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➁ 막가파 에사오
에사오는 아버지 이사악이 야곱에게 말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동생 야곱이 떠난 것을 보았다. 에사오는 아버지가 싫어하는 혼인을 하게 된다. 부모의 갈등이 결국 자녀를 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③ 베델1)에서 꿈을 꾸는 야곱 – 천사들의 사닥다리2)
형을 피해 하란으로 도망가던 야곱은 베델에서 노숙을 하게 된다. 야곱이 인근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광야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증오심에 떨고 있는 에사오가 야곱을 찾아 마을을 뒤질지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 야곱의 비열한 행위가 장자권을 중시하던 당대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두루 퍼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머물만한 곳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좌우지간 야곱은 노숙을 하게 되었고, 돌 하나 가져다 베개를 삼아서 누워 잠을 자게 된다. 항상 집 안에 있던 야곱에게는 큰 시련이 아닐 수 없다. 장자권 때문에 아버지를 속였건만 정작 물려받은 유산은 하나도 없고, 방랑자가 된 야곱. 형에 대한 죄의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함, 라반이 자신을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민 등이 야곱 안에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야곱은 꿈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까지 닿아있는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고,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리셨던 축복을 야곱에게 내리신다고 말씀하시는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창세28,15)는 다짐을 하느님께로부터 받게 된다.
천사들의 사닥다리는 메소포타미아 신전들의 계단을 연상시킨다. 에집트에서는 죽은 이들이 사닥다리를 통해서 신들에게 간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계단 또는 사닥다리는 하느님의 초월성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하늘과 땅이 연결되어 있음을 확실하게 해 준다.
잠에서 깬 야곱은 그곳이 바로 하느님의 집임을 알고 머리에 베었던 돌을 가져다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붓고 그곳을 베델이라고 하였다. 베델은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을 지녔고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중요한 성소다. 야곱이 기둥을 세우는데 이 기둥은 하느님의 보호를 기념한다. 야곱의 돌베개는 야곱이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잤을 수도 있지만, 머리맡에 놓았던 돌은 짐승들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④ 은총이란 무엇인가?
야곱은 하느님께로부터 땅과 후손을 약속받고, 하느님께서 늘 그와 함께 할 것이며, 야곱이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리라는 축복을 받는다. 야곱이 이렇게 축복을 받는 것은착하게 살았거나 훌륭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축복을 내리신다. 이것이 바로 은총이다. 은총이란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만큼 이미 사랑하고 계심을 가리킨다.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내가 그분을 외면해도, 내가 그분을 무시해도, 내가 그분을 거절해도, 내가 반항해도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하느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⑤ 야곱의 두려움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여기가 바로 하느님의 집이요, 하늘문이로구나!”(창세 28,17)
야곱이 자기가 잠든 자리가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자리임을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야곱은 잠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경외감 때문에 감히 잠들 수 없었을 것이다. 유다 전통은 성소에서 잠자는 것을 신성모독의 행위로 간주한다. 나아가 유다 전통은 회당에서 잠자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성당에서 하는 행동은 어떠한가? 깨어있지 않음은 잠을 자는 것이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지 않음은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요, 성전을 자주 찾지 않음 또한 성전을 모독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어떠한가?
또한 야곱은 자신이 누웠던 자리가 원래는 “루즈”였는데 이제 베델이라고 부른다. 베델은 하느님의집이란 뜻이다. 야곱이 하느님의 집이라고 언급하는 곳은 웅장한 성전이 지어진 곳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집은 외형에서 오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늘 나와 함께 계신다. 그렇다면 지금 나와 함께 계신 하느님을 느낀다면, 지금 이 자리가 바로 하느님의 집이 되는 것이다. 바로 내가 살아가는 자리가 베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갖고,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야곱은 자기 머리맡에 두었던 돌을 세워 제단을 삼고, 거기에 기름을 붓는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였을 것이다. 야곱은 딱딱하고 거친 돌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돌을 영적이며 성스러운 제단으로 만든다. 내 삶 역시 비록 보잘 것 없지만 내 삶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나를 하느님을 경배하는 성스러운 제단으로 만들 수 있다. 그 기름은 바로 신앙이요, 활동이요, 사랑이요, 나눔이다.
⑥ 야곱의 서원3)
꿈에서 깨어난 야곱은 하느님께 서원을 하였다. 성서에 기록된 첫 번째 서원기도이다.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주시고, 저에게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며,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주님께서는 저의 하느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되고, 저는 당신께서 주시는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창세29,20-22)
야곱은 더 이상 죄의식과 두려움 속에서 살지 않고 꿈에서 들은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힘차게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이 서원은 마치 야곱이 하느님과 거래와 흥정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느님께서는 야곱의 허물에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그를 보호해 주시고 사랑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은총). 그렇다면 야곱도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응답하여 하느님을 자신의 하느님으로 섬겨야 하는데 야곱의 서원기도는 조건적이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하느님의 약속을 재확인하면서 그 약속대로 성취시켜 줄 경우 하느님을 자신의 하느님으로 삼고, 십일조를 바치겠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야곱이 하느님의 축복을 얻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놀라운 선물과 은총에 감사드리면 된다. 그러나 야곱은 무조건적인 축복을 조건적인 축복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야곱의 서원은 하느님의 약속을 자기 입으로 되풀이하면서 자기 내면 깊이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성모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귀한 영적 체험을 했을 때 언제나 그 체험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곰곰이 생각하신 분이셨습니다. 천사의 말을 들었을 때도(루가 1,29), 목동들의 말을 들었을 때도(루가2,19), 예수님을 두고 성전에서 하는 말을 들었을 때도(루가2,51)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서원은 값싼 서원이 결코 아닙니다. 의식적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나는 필연적으로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끊임없이 반응하면서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야곱은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신 말씀에 집중하면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⑦ 꿈을 통해 변화된 야곱
이제 야곱은 더 이상 목적 없이 떠돌아다니는 방랑자가 아니다. 그는 에사오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해서, 동족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서 하란 땅으로 향했지만 이제 그는 소명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란을 향한다. 이제 그는 힘없는 도망자가 아니라 힘을 내야만 하는 성소자이다. 야곱의 꿈은 그에게 힘을 준 것이다.
1 열왕기 3장의 말씀을 읽어보자.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을 때 그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나타나셔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청하라고 말씀하셨다. 솔로몬은 백성을 잘 통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청한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의 청이 마음에 들어서 지혜는 물론이요, 부와 명예까지 주신다. 그런데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었다”(1열왕 3,15)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에게 꿈을 통해서 놀라운 선물을 주신 것이다. 솔로몬은 꿈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나 또한 주님께 매달린다면 꿈을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을까?
⑧ 생각해 봅시다: 야곱이 머물렀던 자리와 야곱이 정말로 머물렀던 자리
야곱이 베델 체험은 “야곱이 머물렀던 자리”와 “야곱이 정말로 머물렀던 자리”를 구분하게 한다. 야곱이 머물렀던 자리는 비참하고 불안한 자리였다. 모든 것을 잃고, 도망자가 되어 하란으로 향하던 야곱의 절망의 자리였다. 하지만 야곱이 정말로 머무르고 있던 자리는 하느님의 천사들로 붐비는 거룩하고 신적인 자리였다. 그 자리는 하느님께서 계시와 약속을 통해 돌보아 주시는 자리였다.
내가 처해 있는 삶의 자리도 마찬가지이다. 눈앞에 펼쳐진 내 삶의 자리가 힘들고 고단할 지라도 나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삶을 살아가기에,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기에 하느님과 함께 머물고, 하느님의 은총이 내려지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더욱 거룩하고 충실하게 보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늘 나와 함께 계신다.
6)29,1-35: 야곱의 연인 라헬과 라반
이제 야곱은 하란에서 라헬을 만나고 라반을 만나게 됩니다. 라헬과 혼인하기 위해 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데 함께 야곱의 뒤를 따라가 봅시다. 야곱은 이제 숙부에게 속음으로써 과거 자기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① 야곱과 라헬의 만남
야곱은 하란에 도착하자마자 우물가로 간다. 고대사회에서 우물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중요했다. 사람과 짐승이 목을 축이는 자리요, 유목민에게 있어서는 생명의 원천이요, 친분관계를 형성시키는 자리요, 삶의 고뇌를 함께 하는 자리였고 위로받는 자리였다. 야곱은 그곳에서 라헬을 만났다.
①-1: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성서는 여러 차례 우물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 약혼, 결혼 이야기를 보도하고 있다. 우물가 만남의 장면을 분석해 보면 보통 5개의 구조로 되어 있다.
1. 미래의 신랑이나 대리자가 낯선 땅 우물가에 도착한다.
2.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처녀들이 우물가에 물을 길러 온다.
3. 미래의 신랑이나 대리자는 한 처녀에게 접근하여 물을 청하거나 아니면 그 처녀를 위해 물을 길러 준다.
4. 그 처녀는 자기 집으로 달려가 우물가에서 만난 나그네에 대해 가족들에게 이야기한다.
5. 나그네는 처녀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고 그 자리에서 혼담이 이루어진다.
위의 구조에 따라 약혼과 결혼에 이른 우물가 만남은 이사악의 약혼 이야기(창세 24,10-61), 야곱의 약혼 이야기(창세29,1-20), 모세의 약혼 이야기(출애2,15-21)가 있다. 신약에 나오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우물가 만남도 어느 정도는 구약에 나오는 우물가 만남의 구조를 따라간다.
고대사회의 우물이 군대에서는 쓰레기 소각장이었던 것 같다. 군대에서 점호를 취하기 전에 청소를 하는데 쓰레기통은 제일 졸병이 버리고 온다. 그러면 소각장에 각 내무반의 졸병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며 신세 한탄을 하고 들어온다. 그래서 고참들은 졸병이 쓰레기를 버리고 늦게 들어와도 너그럽게 봐준다. 왜냐하면 그도 그랬기에…,
좌우지간 야곱은 하란 땅 우물가에 이르러 라반의 딸 라헬을 만나게 된다. 야곱은 라헬를 보는 순간 마음이 빼앗긴 것 같다. 그래서 우물가에 있는 목동들을 보내려고, 그래서 둘만 있으려고 이런 말을 한다. “아직 한낮이라 짐승들을 모아들일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어서 가서 풀을 뜯기셔야지요.”(창세29,8) 아주 속이 보인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야곱은 자기 어머니 리브가의 운명이 하란 땅 우물가에서 이루어졌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우물이 바로 그 우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운명이다. 운명적인 만남.
야곱은 라헬이 양떼를 몰고 오자 우물에서 돌을 굴려내고 물을 먹게 해 준다(사랑하는 여인 앞에 서면 힘이 솟아나는가 보다). 그리고 라헬을 붙들고 목 놓아 운다. 야곱은 배우자를 찾아 가나안에서 하란까지 무려 837km를 걸어왔는데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사촌 라헬이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가 얼마나 감격하고 흥분하고 있었는지 대뜸 라헬을 껴안아 입 맞추는 행위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라헬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② 라헬
야곱을 사로잡은 라헬. “몸매도 아름답고 욤모도 예쁜”처녀(창세29,17)였다. 또 라헬은 육체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정신적 아름다움도 갖춘 여인이었다. 그녀는 야곱에게서 특별한 사랑을 받아 마땅할 만큼 정신적 고결함을 갖춘 여인이었다.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경우는 이사악에게서 청혼을 받았을 때 이미 아브라함의 종에게서 온갖 좋은 선물을 받고 난 다음이었다.(창세24,23)
하지만 라헬의 경우 그녀가 야곱에게서 청혼 받았을 때 받은 선물이 아무것도 없었다. 야곱이 라헬에게 줄 것이라고는 사랑밖에는 없었다. 자발적 봉사와 항구한 사랑만이 야곱이 라헬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었다. 라헬은 야곱이 자기를 위해 즉시 우물 뚜껑을 열고 양떼에게 물을 먹이는 모습을 보면서 몸으로 표현된 소박한 사랑을 순백한 마음으로 받아들인 여성이었다.
③ 야곱의 장인 라반
“라반”하면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속물적이고 교활한 인물, 탐욕스런 인물로 떠오른다. 그는 나그네에게 조건 없이 친절을 베풀 만큼 선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친절을 베푼다면 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라반은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찾아왔을 때, 그 종이 갖고 온 선물부터 점검한 사람이다. “라반은 코고리와 누이동생 팔에 끼어져 있는 팔찌를 보고, 또 리브가가 하는 말을 듣고 달려 나온 것이다.”(창세24,30) 라반은 아브라함의 종에게 “왜 밖에 서계십니까? 제가 집을 치워 놓았고 낙타들을 둘 곳도 마련하였습니다.”(창세24,31) 라반이 베푼 친절과 환대는 다 이해타산에서 나온 위선적 행동이었다.
그런데 부잣집으로 시집간 누이의 아들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흥분했을까? 라반은 즉시 뛰어 나와 입을 맞춘다(창세29,13). 그런데 선물을 들고 온 것이 아니라 거지 차림이니 라반이 반가워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야곱의 이야기를 다 들은 다음에 라반은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 라반은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속임수로 따낸 사기꾼임을 확인하고, 자기와 같은 부류임을 외치는 것이다.“너야말로 내 골육임에 틀림없다”(창세29,14)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날 라반은 야곱에게 말했다. “네가 내 골육이라고 해서 내 일을 거저 해서야 되겠느냐? 품삯을 얼마나 주면 좋겠는지 말해 보아라.”(창세29,15)
야곱은 당황했을 것이다. 야곱이 이곳에 온 이유는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혼을 하기 위해서이다. 야곱이 원하는 것은 결혼 날짜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라반은 교활하고 잔인한 인간이다. 야곱이 자신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있고, 또 자기 딸 라헬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이를 애용해 야곱의 노동력을 착취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제안도 하지 않고 야곱의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라반이 야곱을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이기심과 탐욕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큰딸 레아를 시집보내고, 긴 세월 동안 야곱의 노동력을 착취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야곱은 칠 년 동안 라반 일을 해 줄 테니 라헬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런데 라반은 애매하게 대답을 한다. “그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보다 너에게 주는 것이 낫겠다.”(창세29,19) 즉 레아인지 라헬인지를 말하지 않고 그 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칠년이라는 시간 뒤에 밝혀질 것이다. 라반의 음모가…,
③ 그로부터 칠년이 지난 어느 날 – 야곱의 결혼식4)
야곱은 라헬에게 장가들 생각으로 일을 열심히 했는데 칠년이라는 세월도 며칠밖에 안되듯 지나갔다. 그만큼 그는 라헬을 좋아했던 것이다.(창세29,18-20 참조) 칠년이라는 세월은 아무리 아름다운 신부의 몸값이라지만 상당한 기간이었다. 그런데 왜 칠년인가? 그것은 야곱의 집념을 나타내는 것이다. 라반이 거절할 수 없는 기간으로 칠년을 제시한 것이다. 야곱은 그렇게 라헬에게 장가들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창세기 31,40절에서 야곱은 이렇게 말한다. “저로 말하면 낮에는 더위에 허덕였고 밤에는 추위에 떨면서 제대로 눈도 붙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라헬을 생각하면서 이겨냈던 것이다.
도로시 뎉니브에 의하면, 아무리 천생연분인 부부라 해도, 결혼한 지 평균 2년이 지나면 상대에 대한 설레이는 감정이 식으면서 상대의 벌거벗은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안아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코넬 대학교 신디 하잔 교수가 연구했는데, 애정이란 대뇌에서 옥시토신, 도파민, 페니레시라민 등 3가지 화학물질이 분비되어 형성되는 일종의 정신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사귄 지 2년 쯤 지나면 대뇌에 항체가 생겨 애정 효과가 사라지며, 특히 아이를 낳고나면 애정 화학물질은 더 이상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야곱의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식어버리는 그러한 열병이 아니라 지속적 참사랑, 성서가 보여주는 헌신적 사랑, 순결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야곱은 라헬을 사별하고 나서 어떤 여자도 옆에 두지 않는다. 그래서 참 사랑의 타오르는 불길은 아무도 끄지 못하는 거센 불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칠년을 보내고 이제 라헬을 달라고 야곱은 라반에게 말했다. 라반은 야곱에게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고 즉시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다. 그리고 밤에 라헬 대신 레아를 신혼방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것도 모르고 야곱은 레아와 한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야곱은 자기 옆에 누워 있는 신부가 라헬이 아니라 레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뜨거운 정열과 사랑을 나눈 여인이 엉뚱하게도 레아였다. 눈먼 아버지를 속여 장자 상속권을 가로챈 그가 밤사이에 자기 옆에 누워 있는 신부가 누군지도 모르는 눈먼 자가 되어 속임수에 당한 것이다. 이사악이 당했듯이 그렇게…,
아마도 야곱은 술에 취해 있어서 레아인지 라헬인지를 구분 못했을 것이다. 포도주와 어두움에 의해서 분별력을 잃었던 것이다. 사실 술을 많이 마시면 감각이 둔해지고, 그 결과 지난 밤에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는 경우가 있다. 성서에서도 구체적 사례를 제공한다. 창세기 29장 30-38절에 보면 소돔의 멸망 후 롯의 두 딸이 집안의 씨가 마를지 모른다는 걱정에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한 다음 아버지와 성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이 언제 들어왔다가 언제 일어나 나갔는지 통 몰랐다.”(창세19,33)
또한 리브가가 야곱에게 눈먼 이사악 앞에서 에사오처럼 행동하라고 지시한 것처럼 라반도 레아에게 라헬처럼 행동하라고 했을 것이다.
야곱은 라반에게 항의하였다. 그런데 이 능구렁이 같은 라반은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면서 지극히 사무적인 목소리로 응답할 뿐이다.“우리 고장에서는 작은 딸을 큰딸보다 먼저 시집보내는 법이 없네.”(창세29,27) 이 말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속았지롱!”
사기결혼을 시킨 라반, 사기를 당한 야곱. 이것은 칠년 전부터 계획된 라반의 음모였다. 라반은 또 다른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초례 기간 한 주일만 채워 주면 작은 딸도 주지. 그 대신 또 칠 년 동안 내 일을 해 주어야 하네.”(창세29,27) 내가 야곱이라면 “미치고 팔짝 뛰었을 것이다.” 우리는 라반 같은 사람들을 향해서 이런 말을 한다. “나쁜 놈”
④ 사기당한 야곱
야곱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칠년을 일하게 된다. 그는 자기 분수를 안 것이다. 장자권의 질서를 파괴하면서 속임수로 장자권을 따낸 야곱에게 라반은 비웃으면서 우리 고장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조롱하는 것이다. 라반은 인심을 쓰는 척하면서 “초례 기간 한 주일만 채워주면 작은딸도 주지. 그 대신 또 7년 도안 내 일을 해주어야 하네.”(창세29,27)라고 말한다. 라반은 고의적으로 라헬이라고 말하지 않고 “작은딸”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야곱을 라헬을 사랑했다. 야곱이 라헬을 향한 집념을 바라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사랑이 무엇이며, 사랑을 위한 희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있으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가깝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이제 야곱은 또 칠년을 일하게 될 것이다. 머슴으로…,
오늘은 요기까쥐..담 시간에는 레아와 라헬의 경쟁적인 삶을 살펴보겠습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