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 이야기 3
우리는 지난 시간에 야곱이 라헬과 혼인하기 위해 칠년을 일했지만 라반은 야곱을 속여 레아와 혼인하게 한 사기극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라반의 속임수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시 칠년을 일하게 됩니다. 그렇게 라헬을 향한 야곱의 사랑은 변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두 자매를 아내로 맞이한 야곱도 어려웠겠지만 두 자매는 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내가 만일 레아나 라헬이었다면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또한 이제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간교한 라반이 그냥 놔줄 리가 없습니다. 라반이 어떻게 나올지, 그리고 고향에서 만나게 될 형 에사오는 어떻게 야곱을 맞이할지 야곱의 뒤를 따라가 봅시다.
8)30,1-24: 한 남편 야곱과 두 아내 라헬과 레아
라반에 의해 라헬인줄 알고 첫날밤을 보낸 야곱은 몹시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더욱 당황한 것은 라헬이었을 것입니다. 우물가에서 처음 야곱을 만났을 때부터, 비록 가난뱅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라헬도 야곱과 똑같이 설레는 마음을 갖고서 7년의 날수가 채워지기를 고대해 왔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에 아버지한테 속은 것입니다. 아버지 라반은 신방을 바꿔치기해서 엉뚱하게도 언니 레아가 자신이 들어가야 할 신방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언니 레아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야곱에 대한 속상함. 아마도 하느님께서 라헬을 붙들어주시지 않았다면 미쳐버렸을 것입니다. 성서에서는 라헬의 상처받은 마음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레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라헬 대신 레아가 신방으로 들어간 것은 아버지 라반의 명령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레아의 동의가 있어야 만이 가능한 사기극이었습니다. 아마도 레아는 야곱을 짝사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라반은 그런 레아를 부추겼을 것입니다. “어차피 네 동생 라헬도 야곱에게 시집보낼 것인데 단지 네가 먼저 가는 것뿐이다. 너는 네가 좋아 하는 사람과 혼인해서 좋고, 나는 야곱에게 두 딸을 시집보내서 좋고. 그러니 아무 말 말고 이 아비 말을 따르거라!”아마도 이렇게 라반은 레아를 설득했을 것입니다.
라헬인줄 알고 함께 밤을 보낸 야곱에게 레아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얼마나 동생에게 미안했을까요?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 이제 레아는 라헬과 경쟁을 하게 됩니다. 야곱의 사랑을 받으려고 경쟁을 하게 됩니다.
①라헬과 레아의 경쟁적인 삶
유목민 사회에서 남자들이 생존을 위해 다른 부족의 유목민들과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동안 여자들은 일부다처제 가정 안에서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신들의 지위를 확보하기위해 온갖 지혜화 힘을 동원하여 투쟁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남편에게 아들을 많이 낳아 주는 일이었다.
라헬은 남편의 아이를 낳지 못해서 레아를 시기하고,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라헬을 질투했다. 그리고 이 시기와 질투는 자식들 사이에서도 대를 이어가며 계속되었다.
②아이들의 이름에 나타나는 레아의 마음
보다(르우벤) – 듣다(시므온)- 매이다(레위)- 유다(찬양하다)
레아는 야곱과의 결혼이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늘 괴로워했다. 레아에게 있어서 달콤한 신혼은 없었다. 야곱이 그녀와 신혼살림을 차린 지 8일째 되는 날 라헬을 새롭게 아내로 맞이하면서 레아를 멀리했기 때문이다. 레아가 유일하게 희망을 건 것은 “혹시, 남편에게 아들을 낳아주면 남편이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었다. 레아는 맏아들을 낳자 그를 르우벤이라 부르면서 “야훼께서 나의 억울한 심정을 살펴 주셨구나. 이제는 남편이 나를 사랑해 주겠지”(창세29,32)하고 말했다. 레아는 야곱을 통해서 야훼 하느님을 받아들였다. “르우벤”이라는 이름은 “보라, 아들이다!”를 뜻함으로써, “주님께서 레아의 괴로움을 보셨다”는 것을 말한다. 즉, 레아는 자신의 처지를 야훼 하느님께 고백하였고, 야훼 하느님께서는 그런 레아를 보시고 축복을 주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곱은 레아를 사랑해 주지 않은 것 같다.
둘째 아들 시므온을 낳은 뒤에는 “내가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신음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시고 나에게 이 아들을 주셨구나”(창세29,33)라고 외친다. “시므온”이라는 이름은 “듣다”라는 동사로 풀이된다. 둘째 아들을 낳고 외친 레아의 말 속에서 우리는 레아가 서러움에 북받친 기도, 괴로움으로 얼룩진 기도를 하느님께 드렸음을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 레아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시므온을 주신 것이다.
레아는 셋째 아들을 낳고 “이제는 남편이 나에게 매이겠지”(창세29,34)라고 말하면서 그 이름을 레위라고 지었다.
그리고 또 아이를 낳고, “이제야말로 내가 주님을 찬양하리라”하고 말하면서 아이 이름을 “유다”라고 지었다.
레아는 야곱에게 많은 아이를 안겨 주었지만 사랑은 받지 못한 것 같다. 사실 사랑이라는 것이 요구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니, 레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레아는 아이들의 이름을 통해서 야곱에게 사랑을 요구했지만 야곱의 마음은 늘 라헬에게 가 있었다.
③ 괴로워하는 라헬
언니 레아와는 달리 라헬은 아이를 낳지 못하였다. 레아가 넷째 아이를 낳자 라헬은 야곱에게 말한다. “나도 아이를 갖게 해주셔요. 그렇지 않으면 죽어버리겠어요”(창세30,1). 그 당시 자식이 없는 여인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사실 부부 사이에 아이가 없을 때 겪게 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야 그런 고민을 하지 않겠지만, 아이 없는 이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낙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낙태는 살인이다. 한 인간은 수정된 순간부터 인격으로 대접을 받아야 한다. 힘이 있던 없던 간에, 건강하던 건강하지 못하던 간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던 표현하지 못하던 간에 인격적으로 대접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야곱도 방법이 없다. “내가 당신에게 소생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이요?”라고 야곱은 말한다. 하느님이 아닌 이상 어떻게 인간이 자식을 만들어 줄 수 있겠는가? 야곱 또한 라헬에게서 얻는 자식을 바라고 있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알고 야곱은 좌절하게 된다.
이제 라헬은 인간적인 방법을 써서 아이를 얻으려 한다. “보셔요. 내 몸종 빌하가 있잖아요. 그 아이와 한자리에 드셔요. 빌하가 아기를 낳아 내 무릎에 안겨준다면, 그의 몸을 빌려서나마 나도 아들을 얻을 수 있겠지요.”(창세30,3) 라헬은 빌하를 통해서 아이를 입양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기를 낳아 내 무릎에 안겨준다”는 것은 일종의 입양 의식으로서, 입양되는 아이는 입양하는 이의 무릎 위에 놓였다.
부부들은 서로 어려울 때 서로 격려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많은 부부들이 서로 어려울 때 갈라선다. 남편이 실직했을 때,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힘든 일이 발생했을 때 부부들은 서로에게 힘이 되기 보다는 다투고, 그러다가 헤어지게 된다. 야곱과 라헬도 어려운 처지에 있다. 사실 야곱은 라헬을 위로해줬어야 했다. 한나의 남편이 한나에게 했던 것처럼 “왜 울기만 하오? 왜 먹지도 않고 슬퍼만 하오? 내가 당신한테는 아들 열보다도 낫지 않소?”(1사무1,8) 하면서 위로해 주어야 한다. 야곱은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라헬은 빌하를 통해 아들 둘을 얻게 되는데 아이 이름을 “단”과 “납달리”라고 부른다. “단”은 “내 권리를 되찾아 주셨구나”라는 말로 풀이되는데 라헬은 “하느님께서 내 권리를 되찾아 주셨구나. 그분께서는 내 호소도 들으셔서 나에게 아들을 주셨다네1)”(창세30,6)하며 환호하였다. 그리고 둘째 아이는 “내가 언니와 죽도록 싸워서 이겼다” 하면서 이름을 “납달리”라고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라헬의 근본적인 아픔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라헬은 자신이 직접 아이를 낳고 싶어 했다. 그래서 라헬이 드디어 아들을 낳았을 그는 외쳤다. “하느님께서 나의 수치를 치워주셨구나.”(창세30,23)
④ 자귀나무(합환채) 사건
밀을 거두어들일 때,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밖에 나갔다가 들에서 합환채(자귀나무)를 발견하고 자기 어머니에게 갖다 드린 일이 있었다. 지중해변에서 자라는 이 풀은 줄기가 없고 넓은 잎에서는 냄새가 나며 누런 열매를 맺는다. 그 뿌리가 사람 모습을 하고 있어 통속적으로는 임신 촉진제로 쓰였다. 고대시대 합환채(자귀나무)는 성적 욕구를 자극시키는 나무로 알려져 있거나 아니면 불임여성이 임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료제 성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르우벤은 합환채(자귀나무)가 왜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다. 자기 어머니를 비롯하여 이모 라헬과 두명의 첩들이 아버지 하나를 두고 아옹다옹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라헬은 합환채(자귀나무)를 보자 탐을 내어 언니에게 나눠 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레아는 “내 남편을 가로챈 것으로는 모자라, 내 아들의 합환채까지 가로채려느냐?”(창세30,15)하면서 거절한다. 하지만 라헬은 남편 야곱을 하루저녁 양보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즉 이 말을 통해서 야곱은 라헬의 천막에만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합환채(자귀나무)의 도움을 얻어 임신을 하려고 했던 사람은 라헬이었는데, 오히려 임신한 것은 양보한 레아였다.2) 즉 합환채(자귀나무)에 대한 믿음은 쓸데없는 것이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라헬이 아들을 낳는 것은 합환채(자귀나무)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⑤ 야곱의 마음은 라헬에게로
야곱은 왜 라헬만을 사랑했을까? 그 이유는 첫째, 야곱이 원한 아내는 라헬이었다. 7년간 일했고, 또 사기를 당해 7년을 더 일한 것은 오로지 라헬을 얻기 위해서였다.
둘째, 야곱은 레아를 볼 때마다 자신이 아버지 이사악에게 한 행동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레아를 바라볼 때 마다 자신의 죄가 드러나니 몸만 형식적으로 남편으로서 라헬에게 향했던 것이다. 셋째, 야곱과 라헬의 사랑은 처음부터 상호간에 깊은 열정을 담은 배타적인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부부관계에서는 제3자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야곱은 거의 대부분의 밤을 라헬이 머무는 천막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야곱은 라헬이 죽었을 때 그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야곱은 4명의 여자와 함께 하게 되는데 행복했을까? 행복만큼 그만큼 고통도 컸을 것이다. 걱정과 신경 써야 할 일이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이다. 삼각관계도 어려운데 오각관계니…, 하지만 야곱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네 후손이 땅의 티끌만큼 불어나서 동서남북으로 퍼질 것이다.”(창세28,14)라는 축복이 가시적으로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된다. 좌우지간 하느님께서는 그를 통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형성한 것이다.
⑥ 요셉의 탄생, 그리고 만족 과 욕심 사이…,
하느님께서는 라헬의 청을 들어 주셔서 라헬이 임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의 이름을 요셉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요셉을 낳고 라헬은 “하느님께서 나의 수치를 치워주셨구나”하고 말 한 후, “주님께서 나에게 아들 하나를 더 보태주셨으면”이라고 말한다.3) 라헬은 레아와의 계속되는 갈등으로 인하여 늘 부족함을 갖고 있었기에 만족하거나 감사하기보다는 더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다.
만족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비교를 하면 안 된다.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행복 끝 불행 시작”이 된다. 시기 질투란 자신과 남을 비교하면서 자신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이를 미워하거나지지 않으려는 심성을 가리킨다. 인간적 차원에서 보면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남이 나보다 우월하면 시기 질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 같겠지만, 이 자연스런 반응을 멈추지 않는 한 불행은 계속된다. 잠언에서는 “시기는 뼈를 썩게 한다.”(잠언14,30)라고 전해주고 있다.
시기심은 궁극적으로 나보다 나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미워하는 것이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보면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여 두 배로 늘려 놓는다. 하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땅에 묻어 둔다. 주인은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지고 온 사람에게 벌을 내리신다. 주인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맡겼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냥 그대로” 가지고 왔다. 아마 그는 “왜 나에게는 한 달란트인가? 주인님은 나를 무시하시는 것인가? 내가 저들보다 못한 것이 무엇인가?”하면서 주인에 대한 반항으로 땅에 묻어 두었다가 가져온 것이다.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시기 질투한다는 것은 그에게 좋은 것을 허락하신 하느님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허락해 주신 달란트만큼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어느 누가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다면 그만큼 크게 봉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누가 적은 능력과 자질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다면 그만큼 소박하게 봉사하라는 것이다. 능력의 정도에 상관없이 주어진 능력만큼 최선을 다해서 일한다면, 다른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늘 함께 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고, 옆에서 채워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복을 향한 지름길은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과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모두 다 하느님의 창조적 선물로 인식하고 감사드리는 행위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소중한 존재이다. 나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기 때문이다.
9)창세기 30,25-43: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야곱과 사기꾼 라반
라헬이 요셉을 낳자 야곱이 라반에게 말한다. “제 고장, 제 고향으로 가게 저를 보내주십시오.”(창세30,25) 드디어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서 아들을 얻은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 아들 요셉은 라반의 음모만 없었더라도 야곱에게 있어서는 맏아들이 된다. 야곱은 맏아들 요셉이 태어나자 고향을 기억한 것이다. 20년이나 하란 땅에서 살고 있지만 이곳을 고향으로 여길 수는 없었다. 비록 가나안 고향 땅에는 야곱을 반겨 줄 사람이 없지만,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돌아가서 에사오와 화해를 하고 계약 백성의 우두머리로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과거의 상처에 대한 화해 없이 미래는 창조적으로 바뀔 수가 없다.
① 야곱은 라반에게 엉뚱한 품삯을 요구하는데.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빈털터리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간악한 장인이 재산을 나눠 줄 리도 없다. 그래서 라반에게 떠난다고 할 때 일방적 통보를 하지 않는다. 대신에 떠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한다. “제 고장, 제 고향으로 가게 저를 보내주십시오.”(창세30,25) 상의하는 방식을 통해서 재산 모을 기회를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라반은 자신이 야곱 때문에 하느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아 부유해 졌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창세30,27). 하지만 라반은 자신의 재산을 야곱과 나눌 마음은 전혀 없었다. 라반은 야곱 같은 훌륭한 일꾼을 잃고 싶어 하지 않았다. 라반은 야곱에게 “내가 자네에게 주어야 할 품삯을 정해 보게. 그대로 주겠네.”(창세30,28) 라고 말한다. 이 말에 야곱은 즉시 응답하지 않고, 자신 덕분에 라반이 부자가 되었음을 상기시킨다(창세30,30). 그렇게 기선을 제압한 야곱은 엉뚱한 제안을 한다. “아무것도 안주셔도 좋습니다. 다만 이것만 해주신다면, 장인어른의 양과 염소를 제가 다시 먹이며 돌보겠습니다. 오늘 제가 장인어른의 양과 염소 사이를 두루 다니면서, 얼룩지고 점 박힌 양들 모두와, 새끼 양들 가운데서 검은 것들 모두를, 그리고 염소들 가운데서 점 박히고 얼룩진 것들을 가려내겠습니다. 이것들이 저의 품삯이 되게 해주십시오.“(창세30,32)
정상적인 경우라면 대부분의 양들은 하얗고 대부분의 염소들은 검은 법인데, 야곱이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예외적인 것들을 품삯으로 요구하고 있으니 라반은 속으로 좋아할 수밖에 없다. “좋네. 자네 말대로 함세.”(창세30,34) 그런데 그렇게 응답하고는 얼룩무니가 있는 모든 것들을 가려서 자기 아들들에게 맡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향하여 이렇게 말한다.
“정말 나쁜 놈”
그런데 야곱이 제안한 이 방법은 하느님의 섭리에 뿌리를 둔 제안이다. 하느님께서는 야곱에게 어떻게 하면 검은 양과 얼룩진 염소가 태어날 수 있는지를 알려 주셨던 것이다. 야곱은 양들에게 흰 줄무늬가 난 가지들을 계속 보여주면서 세뇌교육을 시켰다. 양들이 물을 먹는 구유 밑바닥에 그리고 교미하는 자리에 줄무늬 가지를 깔아 놓았다(창세30,38). 그런데 야곱은 아무 양에게나 줄무늬 가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튼튼한 양들에게만 그렇게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종자자 튼튼한 양 새끼만 얼룩무늬 양으로 태어나게 하였다. “이렇게 새서 야곱은 대단한 부자가 되어, 수많은 양과 염소뿐만 아니라, 여종과 남종, 낙타와 나귀 들을 거느리게 되었다.”(창세30,43)
10)31,1-54: 떠나는 야곱과 계약을 맺는 라반
야곱이 부자가 되었다 해서 즉시 고향으로 떠난 것은 아니다. 고향을 향한 시기는 하느님 뜻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야곱이 많은 부를 축적하자, 라반과 그의 아들들이 모함을 했다. “야곱이 우리 아버지 것을 모조리 가로채고, 우리 아버지 것으로 그 모든 재산을 이루었다”(창세31,1) 사기꾼 라반도 욕심 많은 그의 아들들도 야곱을 미워했다. 어느 정도로 야곱을 미워했는지는 양털 깎는 자리에 야곱을 초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양털 깎는 일은 한 해의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이 일은 친인척들이 모두 모여서 짧게는 하 주일, 길게는 두 주일을 함께하는 공동체적 행사였고, 이 행사 중에 큰 잔치가 벌어졌다.(2사무13,23-27 참조). 이런 행사에 야곱과 그의 아내들이 초대받지 못한 것이다.
① 떠나는 야곱
이렇게 되자 하느님께서는 야곱에게 “네 조상들의 땅으로, 네 친족에게 돌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창세31,2)라고 말씀하신다.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 약속에 얼마나 충실한 분이신지를 알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20년 전에 그에게 나타나시어 위로하시고, 언제나 그와 함께 할 것이며, 많은 후손을 줄 것이며, 언젠가는 고향으로 꼭 데려오겠다고 약속하셨다(창세28,13-15절). 이 모든 약속을 하느님께서는 이제 완성하려 하시는 것이다.
야곱은 두 아내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기 가축 떼가 있는 들로 불러내고 그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린다. 누가 뭐래도 아버지와 딸들이니 의견을 물어야 하고, 남편의 아내이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야곱의 이런 면을 바라보면서 가정의 남편이나 아내들도 자신의 배우자와 중요한 것들은 상의를 했으면 좋겠다.
야곱은 구구절절 하느님과 자신과의 관계, 라반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한다. 하지만 신혼 첫날밤 라반이 했던 것은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옛 상처를 건드림으로써 레아의 반대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기 결혼의 당사자요, 결혼 생활 내내 야곱에게서 애정을 얻지 못해 불행해하던 레아가 떠나는 것을 반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아내는 야곱을 따라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런데 그 주도권은 라헬이 갖고 있다. 라헬이 입을 열어 말하고 레아는 침묵으로 동의한다.
“아버지의 집에서 우리가 얻을 몫과 유산이 또 있기나 합니까? 우리는 아버지에게 이방인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버지는 우리를 팔아넘기시고, 우리에게 올 돈도 다 써버리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아버지에게서 거두신 재물은 모두 우리와 우리 아들들의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하느님께서 당신께 분부하신 대로 다 하십시오.”(창세31,14-16)
메소포타미아 북부지방에서는, 약혼자가 장인에게 준 신부 몸값의 일부가 혼인 후에는 신부에게 넘겨졌다. 그런데 라반은 야곱에게서 14년이라는 노력 봉사로 신부 몸값을 받아 부유하게 되었지만, 딸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라반은 딸들을 통해 장사를 한 것이다.
이제 라헬과 레아는 경쟁상대가 아니다. “우리”가 되었다. 이제 두 자매는 야곱과 함께 아버지의 집과 우상숭배 지역을 떠나 야훼 하느님께서 지시하는 새로운 땅으로 떠난다. 라헬과 레아가 구원역사안에서 갖는 중요성은 그들이 단순히 야곱의 아내요 이스라엘 열두 부족의 족장들을 낳아주어서가 아니다. 서로 합심해서 야곱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올바른 결정을 내려준 협력자들이라는 점에 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 불리는 것은, 그래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형제요 자매라고 불리는 것은 내가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자녀로서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기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오늘은 여기까쥐…도망가는 야곱과 추격하는 라반 이야기가 다음주에 이어집니다.
이헬레나: 성서가 이렇게 재마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TV연속극만 재미있는 줄알았는데 …..
다음 주가 기대가 됩니다
많은 분들이 보고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수 있으면하는 아쉬움이 있습니
다
사이버성당에 홍보부장 뽑으세요 그래야 ^^ 수고하셨습니다 예고편은
언제? [11/09-1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