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세겜에서의 비극적 사건 34,1-31:
야곱은 가나안 땅에 있는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천막을 쳤다. 그리고 자기가 천막을 친 땅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돈 백 닢 을 주고 샀다. 그리고 그곳에 제단을 세우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 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하느님 엘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야곱은 아직 하느님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야곱은 하느님께 자기를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오게 해주신다면 베델에 세웠던 석상을 하느님의 집으로 삼겠다고 서원했지만 하느님께 제단을 바친 곳은 베델이 아니라 세겜이었기 때문이다. 땅을 산 것으로 보아 야곱은 그곳에 완전히 정착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야곱은 아직도 세속적 이해관계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것 같다. 세겜은 당시 상업적으로 발전된 도시오, 그 주변에 좋은 목초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야곱이 세겜에 세워 바친 제단을 기쁘게 받아들일 리가 없다. 그리하여 비극적인 사건이 생긴 뒤에 하느님께서는 야곱에게 강력하게 지시하신다. “일어나 베델로 올라가 그곳에서 살아라. 그곳에, 네가 너의 형 에사오를 피해 달아날 때 너에게 나타난 그 하느님에게 제단을 만들어 바쳐라.”(창세35,1)
야곱이 세속의 도시 세겜에서 세월을 보내는 동안 비극적인 일이 발생한다. 레아에게서 난 딸 디나가 그 고장 여자들을 보러 나갔다가 그 지방 군주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서 폭행을 당한 것이다.
① 디나가 폭행을 당하다.
하몰의 아들 세겜은 디나에게 완전히 반했다. “그는 그 소녀에게 다정하게 이야기하였다”(창세34,3)는 것은 단순히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위로하고 안심시키고 격려해 주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순서가 잘못되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일방적인 폭행인 것이다. 고대 근동에서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에 대한 성폭행은 우선적으로 그 처녀의 아버지를 모독하는 범죄행위였다. 야곱은 분노해야 하지만 아들들이 돌아올 때 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생존에 대한 현실적 염려 때문이다. 남의 땅에 얹혀사는 입장에서 또 힘도 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들에 있는 아들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연락을 했다면 들판에서부터 열 받아서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들은 돌아와서 듣게 된다. 아마도 야곱은 디나를 요셉만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인 듯 하다.
하몰은 자기 아들이 디나에게 푹 빠졌다고 말하며 결혼을 사정한다. 신부 몸값으로는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야곱은 침묵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낯선 땅에서 정착할 수 있는 권리와 재산의 증가에 대해서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가문의 명예와 체면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야곱이 이렇게 신중하게 저울질을 하고 있을 때, 야곱의 아들들은 하몰에게 거짓으로 대답을 한다. “할례 받지 않은 남자에게 우리 누이를 주는 그러한 일을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수치스러운 일입니다.”(창세34,14) 이렇게 말하고 그들은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받을 것을 요구한다. “다만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아 우리처럼 된다는 조건이라면, 여러분의 청을 받아들이겠습니다.”(창세34,15) 야곱의 아들들은 벌써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고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하몰과 하몰의 아들 세겜은 야곱 아들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민들을 설득하였다. “할례를 받으면 야곱 가문의 재산이 결국 우리 것이 되지 않겠는가”라면서 주민들을 설득하고, 주민들은 눈 앞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모두 할례를 받게 된다. 그런데 하몰과 세겜은 야곱에게도 주민들에게도 사기를 쳤다. 야곱에게는 디나와 혼인할 수 있게만 해 주면 어디든지 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말하고, 주민들에게는 할례를 받아 야곱의 가문을 받아들이면 야곱 가문의 재산이 그들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저 혼인에만 눈이 멀어서 그것을 위해 앞 뒤를 가리지 않고 좋은 말만을 하고 있는 하몰과 세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혹시 내 모습이 그런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② 야곱 아들들(시므온과 레위)의 복수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받고 아직 아파하고 있을 때, 야곱의 두 아들, 곧 디나의 오빠인 시므온과 레위가 성읍으로 들어가 남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리고 세겜의 집에서 디나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은 칼에 맞아 쓰러진 자들에게 달려들어(시체에 달려들어서) 재산이 될 만한 것들을 끄집어내고 성읍을 약탈하였다. 그들은 양과 염소, 소와 당나귀, 성안에 있는 것과 바깥들에 있는 것들을 가져갔다. 모든 재산을 빼앗고, 어린아이들 모두와 아낙네들을 잡아가고, 집 안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약탈하였다. 시므온과 레위는 누이동생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살상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다른 형제들은 시체들까지도 달려들어 전리품을 챙기는데 이런 행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성격들이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배웠을 것이다. 젊은 시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영예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던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아들들은 자연스레 배웠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일 수밖에 없다. 나는 어떤 부모인지, 나는 부모님에게서 어떤 것을 배웠는지, 배우려고 안했지만 배운 것은 무엇인지 야곱의 아들들의 모습을 통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③야곱의 반응
아들들이 잔인한 복수 앞에서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를 꾸짖는다. “너희는 이 땅에 사는 가나안족과 브리즈족에게 나를 흉측한 인간으로 만들어, 나를 불행에 빠뜨리는구나. 나에게는 사람들이 얼마 없는데, 그들이 합세하여 나를 치면, 나도 내 집안도 몰살당할 수밖에 없다.”(창세34,30) 물론 사람을 죽인 것은 시므온과 레위이지만 더욱 잔인했던 것은 다른 아들들이었다. 야곱이 아들들을 꾸짖는 이유는 자신의 안위 때문이다. 아들들의 행동에 대해서 꾸짖어야 하지만 야곱은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그러자 시므온과 레위는 야곱에게 반발을 한다. “우리 누이가 창녀처럼 다루어져도 좋다는 말씀입니까?”(창세35,31) 이 말 안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이 보여 진다.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우리 누이라고 한 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즉 세겜 사람들과의 혼인에 저울질을 했던 야곱을 시므온과 레위가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야곱은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아마도 야곱은 두 아들의 반항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임종 직전에 다른 아들들은 하나씩 축복해 주면서 시므온과 레위는 한꺼번에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내린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 그들의 칼은 폭행의 도구. 나는 그들의 모의에 끼지 않고 그들의 모임에 자리하지 않으리라. 그들이 격분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멋대로 소들을 못 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포악한 그들의 격분, 잔악한 그들의 분노는 저주를 받으라. 나 그들을 야곱에 갈라놓으리라. 그들을 이스라엘에 흩어버리리라.”(창세49,5-6) 세겜 학살의 주동자요, 야곱의 마음을 아프게 한 두 아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것이다. 시므온 지파의 성읍들은 유다 지판 안에 포함되었다(여호수아 19,1-9 참조). 레위지파도 자기 영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가 야곱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13) 베델로 향하는 야곱과 라헬의 죽음(창세기 35,1-29)
세겜에서의 잔인한 살인극이 있은 후, 야곱은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일어나 베델로 올라가 그곳에서 살아라. 그곳에, 네가 네 형 에사오를 피해 달아날 때 너에게 나타난 그 하느님에게 제단을 만들어 바쳐라.”(창세35,1)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된 야곱은 즉시 떠날 준비를 한다. 물론 하느님의 음성을 들어서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빨리 떠났는지도 모른다. 보통 신앙인들이 그러 듯이 들어도 못들은 체 하다가 어느 날, 급하게 되면 살려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가? 그런데 떠나기 전에 야곱은 몸과 마음의 정결을 강조한다. 첫째, 우상을 버릴 것이며, 둘째,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어라.
야곱은 그렇게 30년 만에 다시 베델에 가게 된다. 베델에 도착한 야곱은 거기에 제단을 쌓고 돌로 된 기념 기둥에 술을 붓고 또 기름을 부었다. 즉 기름부음을 통해서 그 돌을 축성한 것이다. 이제 베델은 야곱에게 있어서 축복의 자리가 될 것이다.
① 베냐민의 탄생과 라헬의 죽음
요셉을 낳은 라헬은 아이를 더 낳기를 원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하나 더 낳게 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그렇게 바라던 둘째 아들을 낳고서 죽게 된다. 그런데 라헬은 아기에게 벤-오니라고 이름을 붙였다. 벤-오니는 고통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야곱은 아들의 이름을 바꾼다. 베냐민으로.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 또는 오른쪽의 아들을 뜻한다. 오른쪽은 축복이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야곱은 흉조를 길조로 바꾸는 것이다. 베냐민은 야곱이 가나안에서 난 유일한 아들이며, 유일하게 아버지에 의해 이름 붙여진 아들이다.
라헬은 그렇게 죽어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가에 묻혔다. 라헬은 성서에서 아기를 낳다가 죽은 첫 번째 여인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아기를 낳지 못해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던 여인이었다. 라헬이 묻힌 곳이 베들레헴 근처이네 그녀가 죽고 나서 1000년 뒤에 같은 장소에서 한 여인이 아들을 낳으니 그녀가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