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이야기 1
요셉 이야기는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후손이 어떤 경로로 이집트에 집단 이주하게 되었는가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야곱이 겪은 이유 없는 수많은 고난이 오히려 야곱이 속해 있는 가문 전체를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해 내기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야곱의 편애와 하느님으로부터 미래가 약속된 꿈을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열일곱 살 때 이복형제들에 의해 에집트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다.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경호대장 집에 팔려간 요셉은 마침내 주인의 신임을 얻어 집안의 모든 일을 관리하는 청지기가 된다. 하지만 경호대장의 부인을 겁탈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무기수가 되어 다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러다가 감옥에서 파라오 신하들의 꿈을 해몽해 주고, 그 계기로 파라오의 꿈을 해몽해 준 대가로 결국 에집트의 총리가 된다. 그때 그의 나이가 서른이었다. 열일곱에 시작된 고통스런 삶이 13년 동안 계속되었지만 결국에는 하느님의 축복으로 요셉의 가족도 구하고 아버지 야곱과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요셉의 삶에서 특이점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단 한번도 요셉 앞에 가시적으로 나타나신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버지 야곱에게는 꿈을 통해서도, 그리고 씨름을 통해서도 하느님을 뵈었지만 요셉은 그런 체험이 전혀 없다. 요셉의 꿈 어디에도 하느님께서는 나타나시지 않는다. 하지만 요셉은 하느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자! 그럼 요셉의 뒤를 따라가 보자. 그래서 요셉과 같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어 보자.
1. 요셉과 그 형제들(창세37,1-36)
1) 아버지의 편애와 형들의 미움을 사는 요셉(창세37,1-4)
열일곱 살 난 요셉은 형들과 함께 양을 치는 목자였는데, 다른 형제들의 심부름을 해 주면서 지냈다. 야곱은 자신이 사랑하는 라헬로부터 얻은 이 아들을 애지중지 하였다. 그래서 요셉에게는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이것은 발목까지 이르는 소매 달린 긴 옷으로, 각기 다른 색깔로 되어 있는 여러 천으로 만들어진 호화스러운 옷이다. 양치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지만 요셉은 그것을 즐겨 입었던 것 같고, 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기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형제들은 그런 모습을 무척 싫어했다. 그리고 고대사회에서 화려한 옷은 사회적 지위를 알리는 표시였다. 야곱이 요셉에게만 화려한 옷을 입힌 것은 “너는 네 형제들과는 다르니 그렇게 거친 일을 할 필요가 없단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형제들은 아버지의 편애가 결국 언젠가는 요셉이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게 될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결국 없애버리려고까지 했을 것이다. 사실 야곱은 엄청난 부자였다. 형 에사오에게 무려 550마리의 가축을 선물했는데 그것이 요셉 재산의 11조라고 생각해 본다면 엄청난 재산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아버지의 편애가 아들들을 갈라놓은 것이다. 이사악이 에사오와 야곱을 편애해서 그렇게 된 것처럼, 야곱 또한 그런 모습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요셉은 형제들의 나쁜 행동을 아버지 야곱에게 일러바치곤 하였기에 더더욱 형제들에게 미움을 당했다.1) 요셉이 형들의 범죄 사실을 아버지에게 전했다는 것은 평소에도 형들이 나쁜 짓을 했음을 전제하고 있다. 세겜 사건을 보아서 알 수 있듯이 형들은 잔인할 정도의 범죄자였던 것이다. 아마도 어릴 때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아들들이라 그렇게 삐뚫어 졌는지도 모른다.
또한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야뽁강을 건널 때 누구를 앞세우고 누구를 제일 뒤에 세웠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요셉을 제일 뒤에 세웠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형제들은 야뽁강을 건널 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형! 우리 이렇게 큰아버지 에사오한테 맞아 죽는거야! 형 나 무서워”
“그런데 야곱은 제일 뒤에 있어 형!”
“누구는 죽어도 되는 아들이고, 누구는 죽으면 절대로 안 되는 아들이라 이거지. 저주받은 동생들아! 우리 죽으러 가자.”
좌우지간 형제들이 얼마나 요셉을 미워했는지 요셉에게 정답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한마디로 형제들에게 있어서는 “왕따”였던 것이다.
①장자권
37장 2절에서 “야곱의 역사는 이러하다. 열일곱 살 난 요셉은….” 이것은 야곱의 장자권이 요셉에게 넘어갔음을 알리는 구약성서적 표현이다. 맏아들은 레아에게서 난 르우벤이었으나 라헬에게서 난 첫 아들 요셉에게 장자권이 넘어간 것이다.
1역대5,1-2에서는 르우벤이 아버지의 소실을 범한 죄로 장자권이 요셉에게 넘어 갔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렇다면 둘째인 시므온에게 넘어가야 하는데 요셉에게 넘어갔다. 이것은 미리 결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야곱이 라헬과 먼저 혼인만 했다면 요셉이 당연히 장자였다. 그리고 원래 야곱은 라헬과 혼인하기로 하였으므로 장자는 요셉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14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 아내로 맞이한 라헬의 아이였고, 요셉을 보면 라헬이 생각났을 테니 요셉을 예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다른 아들들은 모두 골치 덩어리인데 요셉만큼은 언제나 바른생활 어린이였으니 부모된 입장으로서 더욱 사랑을 주지 않았을까?
요셉이 장자권을 물려 받았음은 야곱이 운명할 때 다시 한번 입증된다. 유다 관습에 따르면 운명하는 아버지의 눈을 감겨 드리는 책임은 장남에게 있었는데, 요셉이 야곱의 눈을 감겨 드렸던 것이다.
신약성서에서도 요셉이 야곱의 장자권을 물려받았음을 드러내고 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가시다가 시카르에 이르렀는데 이 마을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요한4,5-6)이라고 전해주고 있다. 요셉이 실제로 그곳에서 산 것은 유년기와 청소년기뿐이었다. 열일곱에 에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후 그는 그곳에서 살다가 죽었다. 그런데도 요셉이 땅을 물려받았다는 것은 그가 맏아들로서 아버지 야곱의 재산을 상속받았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② 요셉의 옷 – 3벌의 의미
요셉의 옷은 요셉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주는 재료가 된다. 먼저 야곱이 요셉에게 입혀준 화려한 옷은 형제들과 갈등을 일으켰고, 형제들의 음모로 요셉의 옷은 짐승에게 물어뜯긴 옷이 된다. 그렇게 에집트에 종으로 팔려갔지만 그곳에서 청지기 옷을 받아 생활하다가 그 옷을 보발디의 아내에 의해 음모에 엮여서 빼앗기고 강간미수범이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파라오의 꿈을 해몽하여 에집트 재상들이 입는 고운 모시옷을 선사받게 되는데 이때부터 그의 옷은 더 이상 찢기거나 빼앗기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사랑받는 아들로서의 옷, 주인과 종의로서의 옷, 임금과 신하로서의 옷을 요셉이 입게 되는 것이다.
2) 요셉의 두 번의 꿈 이야기
요셉에게 있어서 꿈은 중요한 것이다. 꿈 때문에 더더욱 형제들에게 미움을 당하게 되었고, 그리고 또 꿈 때문에 에집트의 재상까지 지내게 되었다. 사실 요셉은 어려서 그랬는지 신중하지는 못했다. 그는 화려한 옷을 입고 다녔는데 그것을 아무 때나 입고 다니는 것은 정말 철없는 행동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옷을 세겜에 형들을 찾으러 갈 때도 입고 갔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임을 드러내며 으스댔던 것이다.
게다가 아무 생각없이 자신이 꾼 꿈을 형들에게 이야기 했다.
“내가 꾼 이 꿈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우리가 밭 한가운데서 곡식단을 묶고 있었어요. 그런데 내 곡식단이 일어나 우뚝 서고, 형들의 곡식단들은 빙 둘러서서 내 곡식단에게 큰절을 하였답니다.”(창세37,6-7)
아무리 자기가 꾼 꿈이 멋진 꿈이라 할지라도 가득이나 감정이 좋지 않은 형들에게 이러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요셉은 그것을 판단하지 못했다(판단력 부족. 철 없음). 이 꿈의 내용은 누가 들어도 언젠가는 요셉이 형들 위에 군림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지금도 그러고 있는데 그런 꿈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 좋은 형제들이 누가 있겠는가?
철 없던 요셉의 행동은 13년이라는 혹독한 시련의 기간이 요셉을 성숙한 인격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요셉은 그 후에 또 꿈 이야기를 한다.
“내가 또 꿈을 꾸었는데,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큰절을 하더군요.”(창세37,9)
두 번째 꿈 이야기도 어느 누구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더 나아가 아버지 야곱마저도 요셉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한다. “네가 꾸었다는 그 꿈이 대체 무엇이냐? 그래, 나와 네 어머니2)와 네 형들이 너에게 나아가 땅에 엎드려 큰절을 해야 한단 말이나?”(창세37,10) 하지만 야곱은 이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야곱은 꿈에서 하느님을 뵌 적이 있었다.3) 그래서 그 꿈이 하느님께서 요셉을 선택하시고 그에게 위대한 미래를 약속해 주셨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일을 마음에 간직했던 것이다.
꿈에서 별은 높은 지위를 상징하는 것처럼, 형제들도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이 세상을 비추는 이스라엘 가문의 우두머리들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형제들은 질투심 때문에 그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다.
“절한다”는 표현이 핵심 주제로 등장한다. 여기서 누군가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게 복종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도 그렇지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하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절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요셉은 두 번의 꿈을 꾸는데 반복해서 꿈을 꾼다는 것은 그 꿈이 분명히 설취될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꿈은 요셉의 미래와 함께 형제들의 미래도 예시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창세기 끝 부분에서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형제들의 마음에는 “저놈은 있어서는 안 될 놈”이라는 생각이 더욱 깊게 자리하게 된다. 자신들의 미래도 밝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직 요셉이 높여 진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니 요셉을 질투4)할 수밖에 없다. 이제 그들은 기회를 엿보게 될 것이다. 세겜 사람들을 몰살시킬 때처럼 그렇게 기회를 찾을 것이다.
3) 에집트로 팔려가는 요셉
요셉의 성실성5)은 그의 일생을 통해 일관되게 보여 진다. 열일곱 살 때 아버지가 요셉에게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는 형들이 잘 있는지 보고 오라고 명령하자 그는 즉시 세겜으로 떠났다. 이틀 후 세겜에 도착했지만 그곳에 형제들이 없는 것을 알고 그는 그냥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형들을 찾아 도단까지 가게 된다.
그런데 세겜은 수년 전에 야곱의 아들들이 디나의 불미스러운 일을 계기로 살인과 약탈을 한 곳이다. 야곱은 주변 가나안 백성들의 침입을 두려워했는데 세겜에서 양을 치게 한 것은 세겜이 풀과 물이 많아서 양을 치기에 정당한 장소였고, 그동안 하느님께서 돌보셔서 아무런 사고가 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심하면서 그곳에서 양을 치게 했던 것이다. 그래도 불안했던 야곱은 형제들이 잘 이는지, 양들이 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져서 요셉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야곱과 요셉은 이별을 했는데 22년 동안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된다.
도단은 세겜에서 북쪽으로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요셉을 형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요셉을 보자 그동안 쌓였던 감정들이 폭발하게 된다. 이제 그들에게 기회가 왔다.
① 그런데 야곱은 아들들이 요셉을 미워한다는 것을 몰랐을까?
야곱이 알고 있었다면 요셉을 형들에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야곱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즉 야곱의 아들들은 야곱 앞에서는 위선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성서 어디에도 “아버지! 왜 요셉만 예뻐하고 저희들은 관심 없으십니까?”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야곱이 요셉을 편애했지만 아들들은 어떤 반발도 야곱 앞에서 보이지 않는다. 고대사회에서는 자녀들이 아버지를 표면적으로 미워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질투의 대상인 동생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②또한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을 몰랐을까?
요셉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위험을 무릅쓰고 형들에게 간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과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존중 때문이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니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은 그저 따를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말하면 아무리 어려운 부탁이라 할지라도 그대로 따라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브라함도 하느님께서 아들 이사악을 바치라고 말씀하셨을 때, 가슴속에 흐르는 눈물을 참으면서 아들을 바치려고 했다. 요셉은 헤브론에서 세겜까지 약 80킬로미터를 갔고, 그리고 세겜에서 도단까지 약 30킬로미터를 더 갔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아버지 말씀에 대한 순명이다.
③ 은전 스무 닢에 팔리는 요셉
이런 요셉을 형들은 음모를 꾸몄다. 요셉이 도단에 이르렀을 때, 형들은 화려한 옷을 입은 요셉을 멀리서도 알아본다. 형제들은 요셉이 가까이 오기 전에 음모를 꾸몄다.
“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놓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창세37,20)
얼마나 미웠으면 그 먼 길을 달려오는 동생을 향해 처음 뱉은 말이 그러하겠는가? 요셉의 옷을 멀리서도 알아본다는 것은 그만큼 그 옷에 관심이 있었고, 그 옷에 질투와 분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덩이에 던질 때도 먼저 옷을 벗기고 던져 넣었던 것이다. 형제들이 요셉의 옷을 벗긴 것은 애초부터 그 옷에 짐승의 피를 묻혀 아버지를 속이고자 한 것이 아니다.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었던 아버지 사랑의 증거물인 그 옷을 질투심에서 벗겨 버린 것이다.
그런데 아무 구덩이에나 처넣는다는 것은 죽이고도 제대로 묻어 주지 않겠다는 심보이다. 이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하긴 이들의 잔인함은 세겜에서 잘 드러났다. 이들은 요셉이 오기를 웃으면서 기다린다. 이 웃음이 바로 살인미소6)인 것이다.
요셉을 죽이려 한 그들의 계획은 요셉이 꾼 꿈과 직결된다. 형제들이 요셉을 지칭할 때, “고자질 쟁이”, “아버지의 편애를 받는 놈”이라고 부르지 않고 ‘꿈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형제들이 분노를 일으킨 것은 화려한 옷 때문이었지만, 살의를 품게 된 것은 요셉의 꿈 때문인 것 같다. 가득이나 열받아있는 자신들이 아버지의 사랑도 못받고 있는데 나중에는 그런 동생에게 절을 하게 될 것이라는, 동생을 섬길 것이라는 말을 듣고서 더는 못 참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죽이고 나서 그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고 말한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형제들이다. “위험한 가족”의 원작은 야곱의 가족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하느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통하여 두 번 계시하셨다면 요셉을 선택하셨다는 것인데, 이 형제들은 요셉을 제거하고 하느님의 섭리가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하느님께 대한 도전이요 반역인 것이다. 즉 그들은 하느님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맏형 르우벤이 나서서 “피만은 흘리지 말아라. 그 아이를 여기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 버리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말아라”7)(창세37,22)라고 말한다. 맏형으로서 동생들에게 명령한 것이다. 르우벤은 동생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내어 아버지께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르우벤의 이 행동은 어찌된 일일까? 아무리 미워도 혈육이니 죽이면 안 된다는 장남으로서의 책임의식이 발동해서 일수도 있고,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한 일 때문에 아버지가 더 이상 장남으로 대우해 주지 않으니 요셉을 살려 보냄으로써 아버지와의 관계를 개선시키고 다시 장남으로 인정받기를 원해서 일수도 있다.
이윽고 요셉이 형들에게 다다르자, 그들은 요셉의 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져버린다. 그 구덩이는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 그들의 계획대로라면 요셉은 그 구덩이 속에서 굶어 죽거나 해충이나 독충 등에 의해 물려 죽게 될 것이다. 요셉은 형들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잔인한 이 형제들은 요셉의 절규를 외면했다. 형제들은 요셉을 던져 놓고 빵을 먹었다. 아마 요셉은 형들에게 올 때 음식을 준비해 왔을 수도 있다. 양을 치느라고 밖에서 생활하던 형들이 변변치 못한 음식으로 지낼 것을 생각하고 음식을 준비해 왔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빵은 요셉이 준비해 온 음식일 수 있다. 형제들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들 마음에선 이미 요셉을 죽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 잔인한 형제들은 이스마엘 상인들을 보게 된다. 이때 유다는 요셉을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버리자고 제안한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8), 우리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냐? 자, 그 아이를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가 우리 아우요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창세37,26-27)
그런데 유다는 요셉을 위하는 척 하지만 유다의 제안은 엄청난 죄를 범행하자고 하는 것이다. 성서는 혈육을 나눈 형제는 물론이고 같은 동족도 종으로 파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을 부려먹거나 팔 생각으로 유괴한 자가 있거든 그를 죽여 버려라.”(신명 24,7)
이때, 그곳을 지나가던 미디안 상인들이 요셉의 절규를 듣고서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었다. 이스마엘 상인과 미디안 상인이 같이 등장해서 혼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판관기 8장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판관기 8장에서 이스마엘 사람들과 미디안 사람들은 서로 동일시되어 나오고 있다(판관8,22.24)
그들은 요셉을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 넘겼다. 그리고 이스마엘 상인들은 요셉을 에집트로 데리고 갔다. 훗날 이스라엘 율법에서는 20세 이하 젊은 노예 몸값을 20세겔로 정하고 있는데(레위27,4-5) 요셉이 열일곱에 은 20세겔에 노예로 팔린 것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9)
그런데 요셉이 팔릴 때 르우벤은 그 자리에 없었다. 르우벤이 빈 구덩이를 발견하고 자기 옷을 찢으며 말한다. “그 애가 없어졌다. 난, 나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창세37,30) 르우벤은 절망했다. 아버지에게 점수를 딸 기회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마치 도둑이 다른 사람에게서 당첨된 로또복원을 훔쳤는데 그 복권이 사라져 버린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 복권이 없으면 은행에서 돈을 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르우벤의 마음이 그러지 않았을까? 동생의 생사에는 관계없이…,
④ 아버지 야곱을 속이는 형제들
요셉을 팔아먹은 형제들은 요셉의 저고리를 가져다 숫염소 한 마리를 잡아 그 피를 적셨다. 그리고 그 옷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가서 말하였다.
“저희가 이것을 주웠습니다. 이것이 아버지 아들의 저고린지 아닌지 살펴보십시오.”(창세37,32)
야곱이 아버지 이사악을 속일 때처럼 그렇게 야곱의 아들들은 야곱을 속인다. 야곱은 염소고기 요리로 아버지 이사악을 속였지만 아들들에게서 염소피로 속임을 당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죄를 지은 사람은 언젠가는 그 방식으로 그대로 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아들”의 저고린지 살펴보라고 말한다. 즉 감정이 섞인 표현이다. 제 동생이라고 말하지 않고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당신의 아들”로서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요셉의 옷이 맞는지 보라는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사람들이다.
아들들은 자신들의 범행 사실을 숨기고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결론짓도록 만든다. 아들들이 요셉이 들짐승에게 잡혀먹었다고 보고하지도 않고, 우리가 팔아먹었다고 보고하지도 않고 옷에 피를 묻혀서 그냥 보여주기만 한 것이다. 대단히 놀라운 사기기술이다.
야곱은 “내 아들의 저고리다.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구나.”(창세37,33) 야곱의 아들들이 예상한 대로 야곱은 요셉이 짐승에게 잡혀 먹었다고 생각한다. 야곱은 옷을 찢고 허리에 자루 옷을 걸친 뒤, 자기 아들의 죽음을 오랫동안 슬퍼하였다. 다른 자녀들이 위로하여도 “아니다. 나는 슬퍼하며 저승으로 내 아들에게 내려가련다.”(창세37,35)
성서에서 야곱이 울었다는 얘기는 두 차례 나온다. 한 번은 젊은 날 그가 하란 땅 우물가에서라헬을 만났을 때와, 그리고 요셉의 피 묻은 옷을 발견하고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이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부모가 다 그렇듯이 야곱은 요셉의 죽었다고 생각한 날부터 살아 있어도 죽은 것처럼 산다. 창세기 45,27절에 “요셉이 자기를 데려오라고 보낸 수레들을 보자, 아버지 야곱의 얼이 되살아났다”라고 전해 주고 있다. 즉 그동안 야곱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비록 우리 눈에는 안보이지만 언젠가는 주님의 축복으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니, 내 삶도 슬퍼함보다는 지금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한편 미디안 상인들은 에집트로 가서 파라오의 대신인 경호대장 보디발10)에게 요셉을 팔아 넘겼다. 이렇게 노예로 팔려 가는 요셉. 어느 누가 형제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려다가 노예로 팔려가게 된 요셉을 아버지의 총애를 받던 귀한 아들이라고 생각해 주겠는가? 어느 누가 쇠사슬에 묶여 노예시장으로 끌려가고 있는 요셉을 하느님께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적 관점에서 보면 요셉의 인생은 이제 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하느님 편에서는 이제 시작이니…, 하느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하시면서 시련을 통하여 요셉을 단련시키실 것이다.
유다 전승에 따르면 에집트로 끌려가던 요셉은 어머니 라헬이 묻혀 있는 에브랏(지금의 베들레헴)을 지날 때, 어머니의 무덤을 보면서 이렇게 통곡했다고 한다. “오 어머니. 나를 낳으신 어머니. 제발 일어나소서. 일어나서 나를 보소서. 당신 아들이 지금 노예로 팔려가고 있습니다. 어머니, 제발 일어나시어 잔인한 형들에 의해 아버지에게서 떨어져 나가 노예로 팔려가는 나를 굽어보소서.” 이렇게 요셉이어머니 무덤을 바라보며 울부짖고 있은데 갑자기 지하 깊은 곳에서 눈물어린 라헬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고 한다.
“요셉아, 나의 아들아. 나의 아들아, 내가 네 울음소리를 들었다. 내가 네 눈물을 보았다. 내가 네 신음소리를 들었다. 내 아들아, 주님을 굳게 믿으렴. 그리고 그분을 기다려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주님이너와 함께 계신다. 그가 너를 모든 악에서 구해 줄 것이다. 에집트로 내려 가거라, 내 아들아. 다시 말하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내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오늘은 요기까쥐….다음주에 요셉의 시련에 대해서 계속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