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탈출기(출애굽기) 들어가기
1. 탈출기란?
탈출기는 창세기에 이어 구약성서에 두 번째로 나오는 성서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을 구원하셔서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시는 야훼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분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 담겨 있다. 모세오경과 구약성서 전체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성서로 ‘구원의 책’이라 불리기도 한다.
2. 출애굽의 배경
나일강 유역 곡창지대에 정착한 히브리 민족은 인구증가로 이집트 민족의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게 된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의 갓 난 사내 아기를 죽여 없애는 정책과 여러 가지 잡역과 부역에 시달려 결국 이집트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상황 속에 있었고,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셔서 당신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
3. 출애굽의 시기
성조들이 이집트로 이주해 온 때가 아메노피스 4세(BC 1364-1347)때다. 그리고 출애굽의 시기는 이집트 제 19왕조 람세의 2세와 그의 후계자 메르넵타 시기로 추정한다. 메르넵타 비문은 BC 1229년(혹은 1225년)에 세워진 것으로 자신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적들을 쳐 이기고 거둔 여러 승전을 나열한다. 마지막에 팔레스티나 지방에 대한 승전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이스라엘을 격파하였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비문의 제작연도를 감안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나안 이주가 적어도 1229년 전에 실행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1)
4. 출애굽의 인원
출애굽에 가담한 인원은 장정만 60만이라고 보도된다. 성서가 다윗 시대에 기록되었다고 추정할 때, 그 당시 장정(군인)의 숫자만 60만을 상징적 숫자로 소급해서, 이스라엘백성이라면 누구나 다 출애굽 사건에 참여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해 60만이라고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창세기 전승에 의하면 부족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손길,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느끼는 것을 목표로 하여 성서가 쓰여 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서 전승은 판관기 말기, 또는 왕정시대 초기에 와서 이 부족들의 체험이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체험으로 확대해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 이 사건들을 압축하여 실제로는 복잡한 사건을 단순하게 정리하여 전했다고 추정한다.2)
5. 출애굽의 경로
고센-수꼿-쓴물호수(갈대바다)-엘람-바알스본-마라-엘림-리비림-시나이산(호렙산)-하세롯-카데스-호르산(아론이 죽은 곳)-느보산(모세가 죽은 곳)-요르단강 건넘(여호수아가 인도)-길갈-예리고-아이(남, 북으로 갈라짐. 남(예루살렘), 북(베텔,실로)).
6. 가나안 점령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 점령하기까지의 싸움들(민수기 20,14-20,21,21-31)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싸움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지역을 평화로이 지나가는 것을 그 지역 사람들이 거절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사실 유목민들은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 자기의 종족, 가축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이것만 보장된다면 남을 공격하는 일은 별로 없다. 이스라엘 민족도 평화로운 이주와 정복이 병행되었을 것이다.
7.탈출기의 구성
1. 하느님의 구원 행위(탈출기 1-14장)
– 파라오의 억압과 모세의 소명
– 유월절과 출애굽, 광야 행군
2. 인간의 찬양응답(탈출기 15,1-21)
– 미리암의 노래: 성서에 보존된 노래 중 가장 오래된 찬양의 노래
3. 하느님의 행위(탈출기 15,22-18,27)
– 인간실존의 기본적 욕구에 직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갈증, 배고픔, 절망)
4. 인간의 응답(탈출기 19-31장)
– 율법과 계약(하느님의 현현, 십계명, 계약 체결)
5. 범죄와 계약 갱신(탈출기 32-40장)
– 우상숭배, 새 계약
8. 탈출기란 성서 이름
책의 제목은 각 성서 첫 단어들이나 첫 부분에 나오는 단어들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하였다.
1. 창세기 – 한 처음, 태초에(브레쉬트)
2. 탈출기-그리고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워엘레 쓰모트)
3. 레위기-그리고 부르셨다(와이크라)
4. 민수기-그리고 말씀하셨다(와여다벨), 광야에서(브미르바르)
5. 신명기-말씀은 이러하다(엘레 하드바림)
그런데 그리스말로 구약성서를 옮긴 70인 역의 성서 분류에서는 성서의 이름을 탈출(엑소도스)로 정했다. 중국어 성서는 70인 역의 이름을 따르되,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어디로부터의 탈출인가에 초점을 맞춰 출애급기(出埃及記) 라 이름 지었다. 애급은 이집트를 가리키니 이집트 탈출기라고 말 할 수 있다. 가톨릭에서는 출애굽기라고 이름 지었다가 새 번역이 나오면서 “탈출기”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1. 창세기- 게네시스 -시작과 기원(우주와 인류 및 이스라엘의 기원)
2. 탈출기-엑소도스 – 탈출(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에서의 탈출)
3. 레위기 -레위티콘 – 사제단에 속하는 레위지파의 법
4. 민수기 – 아리트모이 – 수, 셈, 인구(시나이 광야에서 남자에 대한 여러번의 인구조사에서 기원)
5. 신명기 -데오테로노미온 – 두 번째 법(앞 책에서 수록된 법에 대한 두 번째 법 또는 법의 반복)
라틴어 성서에서의 모세오경의 각 성경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1. 창세기 – Genesis
2. 탈출기 – Exodus
3. 레위기 – Leviticus
4. 민수기 – Numeri
5. 신명기 – Deuteronomium
Deutero 는 두 번째 라는 뜻이고, Nomium 은 법이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9. 저자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오랫동안 모세가 탈출기를 썼다고 믿어 왔다. 모세가 한 일이 탈출기의 주요 내용이니 말이다. 하지만 성서학자들이 자세히 살펴본 결과, 탈출기에 서로 겹치거나 부분적으로 엇갈리는 내용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즉 탈출기는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사람이 기록하고 여러 차례 편집되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탈출기는 많은 사람의 공동작품인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이를 성령께서 비추어 주셨으니 원 저자는 하느님이시다.
10. 쓰인 연대와 목적
성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역사하신 내용들이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오다가, 기원전 10세기 경에 이르러서야 부분적인 기록이 이루어졌고, 그 다음에 다른 저자가 이 내용을 또 기록했다. 이런 기록들이 모아져 편집되고 최종적으로 오경이 이루어진 때는 기원전 400년경이다.
기원전 13세기 경에 있었던 탈출기가 기록된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전해 주려는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 만난 야훼 하느님이 참 하느님이시며, 인간의 자유와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고,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려는 것이다. 즉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것이고, 후대의 우리에게도 그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내가 출애굽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매 순간 내 삶 안에서 하느님께서 나를 구원하심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1. 히브리인들을 박해하는 파라오(탈출기1,1-22)
하느님께서는 요셉을 이끄시어 당신의 백성을 기근에서 구원하셨다. 야곱은 모든 가족을 이끌고 요셉이 있는 이집트로 이주하였다. 야곱과 함께 저마다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들어간 이스라엘의 아들들 이름은 이러하다. 르우벤, 시메온, 레위, 유다, 이사카르, 즈불룬, 벤야민, 단, 납탈리, 가드, 아세르이다. 야곱의 몸에서 난 이들은 모두 일흔 명이었다. 그 뒤 요셉과 그의 형제들과 그 세대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식을 많이 낳고 늘어만 갔다. 그들은 번성하고 더욱더 강해졌다. 그리하여 그 땅이 이스라엘 자손들로 가득 찼다(탈출기1,7).
그러나 7절의 말씀에서 보여주듯이 이스라엘 백성은 늘어만 갔다. 하지만 이집트인들이 보기에 히브리인들의 급속한 증가는 불안으로 다가왔다. 적군이 쳐들어온다면 히브리인들이 적군과 함께 이집트를 공격할 수 도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을 박해하게 된다. 그들을 종으로 부리고, 태어나는 남자아이들을 죽이게 한다. 하지만 그 박해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을 서서히 펼치신다.
1) 히브리인들의 종살이
요셉의 치적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요셉의 가족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요셉을 모르는 파라오는 요셉 가문에 대한 고마움은 없고, 오직 두려움과 근심거리로만 생각하였다.
그런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었다. 그가 자기 백성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보다 더 많고 강해졌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을 지혜롭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더욱 번성할 것이고,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그들은 우리 원수들 편에 붙어 우리에게 맞서 싸우다 이 땅에서 떠나가 버릴 것이다.” (탈출기1,8-10)
“요셉의 사적을 모르고,”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힌 탈출기 1장 8절의‘새 왕’은 권력을 잃은 마지막 힉소스가 이집트를 쫓겨난 뒤에 정권을 잡은 이집트 출신의 어느 파라오일 것이라는 것이다. 힉소스족은 아라비아, 가나안, 시리아 등 중동 지방에서 살던 셈족의 연합이었다고 한다. 기원전 1720년경에 말이 끄는 병거 등 최신 군사 무기를 가진 힉소스족이 북부 이집트에서 권력을 잡고, 나일 강 삼각주에 있던 모든 군소 국가들을 병합하여 새로운 왕조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나일 강 삼각주의 북동 지역, 즉 아시아와 이집트와 국경 지역의 아바리스 성을 구축하고 왕도로 삼아 이집트를 약 150년 동안 통치하였다. 즉 제14왕조부터 제16왕조(기원전 1720-1570년)까지의 왕들은 힉소스족이었다고 한다.
이집트 문헌에 보면 이집트인들은 그들을 외부에서 침입한 약탈자(Shasou)라고 하였고, 그 약탈자의 두목(Hik~Shasou)이라는 말에서 힉소스(Hyksos), 즉 “외국에서 온 통치자”라는 부족 명칭이 생겨났다고 한다.
힉소스족이 이집트의 통치자가 됨에 따라 같은 셈족인 요셉이 왕의 호의로 재상이 되었고, 그 덕분에 야곱의 후손들이 나일 강 삼각주의 동부 비옥한 땅인 고센지역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때가 기원전 1710년경 또는 1680년경이라고 한다.
제19왕조(BC 1317-1301년)와 그의 아들 람세스 2세(BC 1301-1234년)가 셈족을 노예로 삼아 혹사시키고 히브리인들의 증가를 억제하였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을 강제 노동으로 억압하려고 그들 위에 부역 감독들을 세웠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파라오의 양식을 저장하는 성읍, 곧 피톰과 라메세스를 짓게 되었다.
요셉을 신임하였던 힉소스족의 왕조는 제18왕조에 의해 무너졌다. 150여 년간의 힉소스족의 왕조 시대 역사를 잘 아는 이집트의 제 18왕조는 북쪽의 히타이트족의 위협과 가나안족의 반란에 맞서는 대비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리고 이집트에 남아 있는 셈족은 새 왕조를 위협하는 정치적 불안정의 원인이기도 했다. 더구나 히브리인들이 거주하는 고센 땅은 이집트와 아시아의 국경 지대였고, 그곳을 경유하여 북방의 히타이트족이 침범할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을 이집트 왕국의 노예로 전락시켜 그 세력을 꺾는 동시에 그들을 방어진지 겸 병참 도시 건설에 혹사시킴으로써 이중의 효과를 얻으려고 했다. 그리하여 파라오는 공사 감독들을 두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제 노동을 시켜 나일강 삼각주 동북부에 곡식을 저장해 둘 도성으로 사용될 성읍(피톰과 라메세스)을 짓게 하였던 것이다.
현대의 고고학자들이 이 유적지들을 발굴한 결과 파라오의 군사 보급 기지였던 이 두 도시는 기원전 13세기에 건설되었거나 재건된 것임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박해한 파라오는 제19왕조의 세티 1세와 그의 아들 람세스 2세3)였다는 것 또한 확실하다.
2)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여인들(산파)
그러나 그들은 억압을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더욱 널리 퍼져 나갔다.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더욱 혹독하게 부렸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너는 큰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고 거듭 다짐하셨는데 그 약속이 실현된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약속의 실현이 이집트인들에게는 불안으로 다가왔다. 내몰자니 다시 덤빌 수도 있고, 또 노동력을 확보하는데 있어서 가장 편하고, 그렇다고 함께 살자니 두렵고…,
파라오는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경우에 이스라엘 백성이 적들의 편에 붙어서 자신들을 공격할까봐 두려워한 나머지 온갖 고된 일을 시키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다. 진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고된 일과 온갖 들일 등, 모든 일을 혹독하게 시켜 그들의 삶을 쓰디쓰게 만들었다.
① 남아살해
파라오는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하자 산아 제한 정책을 실행하였다. 그래서 이집트인 산파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였다.
“너희는 히브리 여자들이 해산하는 것을 도와줄 때, 밑을 보고 아들이거든 죽여 버리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 (탈출기1,15)
이집트 임금이 히브리 산파들에게 말하였다. 그들 가운데 한 여자의 이름은 시프라였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푸아였다. 성서는 친히 그 의로운 여인들의 이름을 알려 준다. “시프라와 푸아”, 이 여인들은 히브리 여인들의 산파들이다. 이들은 이집트인들이다. 만일 그들이 히브리인이었다면 “히브리 여인이 해산하는 것을 도와줄 때, 아들이거든 죽여 버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히브리인이었다면 절대로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이집트인이었기에 더욱 그들의 행동이 빛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이집트 임금이 그들에게 분부한 대로 하지 않고 사내아이들을 살려 주었다“(탈출기1,17).
이집트 여인이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순명하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인간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요, 또한 그들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이 여인들이 더욱 돋보이게 된다.
파라오는 이 여인들을 불러 왜 사내아이들을 살려 주고 있는지를 물었다.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사람이 왕 앞에 섰을 때, 얼마나 두려움과 죄의식이 있었을까? 그런데 이 여인들은 무엇이 옳은 일인지, 무엇이 그른 일인지를 알고 있고, 자신들의 임무가 무엇인지도 알 고 있었다. 산파의 역할은 갓 난 아이의 성별을 구별하여 살리고 죽이는 역할이 아니라 산모가 아이를 잘 낳도록 도와주고, 아이가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이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파라오는 자신의 욕심으로 산파들에게 다른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산파들과 파라오와의 관계에서 예수님과 율법학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무딘 마음을 질책하신다.
하지만 이 여인들은 파라오를 질책할 수 없다. 이 여인들은 이렇게 핑계를 댔다.
“히브리 여자들은 이집트 여자들과는 달리 기운이 좋아, 산파가 가기도 전에 아기를 낳아 버립니다.” (탈출기1,19)
이 이집트 산파들은 히브리 백성을 선택하여 계약을 맺어 주신 하느님을 알지 못하였지만, 하느님께서 세상의 주인이심을 알았고, 그 하느님을 파라오보다 더 경외하고 두려워하여 하느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핑계를 댔던 것이다. 이 말도 그들 스스로 생각해서 했다기 보다는 그들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을까? 예수님께서도 박해자들에게 붙잡혔을 때,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말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산파들을 잘 돌보아 주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파들의 모습 안에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는 말이 결국 유혹이라는 것,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산파들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파라오의 명령이니 죽일 수밖에…,”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위험이 닥쳐 올 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나 또한 산파들이 유혹을 이겨낸 것처럼, 그렇게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하느님 두려운 줄 알아야 한다. 즉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되자 파라오가 온 백성에게 명령하였다.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고, 딸은 모두 살려 두어라.”(탈출기1,22)
이제 출애굽의 주인공 모세가 태어나게 되는데, 모세는 어떻게 될까요? 2장에서 계속 됩니다.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만일 파라오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정치를 했을까?
2. 내가 파라오의 명령을 받은 산파였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파라오의 명령에 따랐을까요? 아니면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와 하느님 말씀을 따랐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