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기 2장 – 모세의 탄생, 동족으로부터의 배신, 하느님의 섭리

 

탈출기 강의 2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의롭고 용기 있는 여인들을 만났습니다.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의 남자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말했지만, 산파들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기에, 힘 있는 사람의 말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모세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이끄시어 당신의 도구로 쓰시려 하시는데, 오늘 말씀에서는 모세가 극적으로 파라오의 딸의 양자가 되는 내용과, 동족을 위하다가 결국 동족에게 배신을 당하고 도망자가 되어야 하는 모세를 만날 수 가 있습니다. 함께 만나 봅시다.




2. 모세의 탄생과 하느님의 계획(탈출기2,1-25)


하느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는 소명을 부여받은 모세.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당신의 특별한 섭리로 이끄신다. 그래서 죽을 운명에서 파라오 딸의 양자가 되어 이집트의 세련된 교육을 받게 된다.




1) 모세의 탄생과 부모


레위의 후손인 모세의 아버지는 아므람이고, 어머니는 요케벳이다(탈출6,20). 모세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으므로 그 부모가 보기에 참으로 비범하고 잘생긴 귀여운 아이였다. 이것은 모세가 장차 하느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을 징표이기도 하다.


     레위 집안의 어떤 남자가 레위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기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겨 길렀다.(탈출기2,1-2)


더구나 모세의 부모는 아들에 대한 본성적 애정 뿐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믿음도 두터웠으므로 파라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였다. 그래서 왕의 부당한 명령을 용감하게 어기고 아기를 강에 던지지 않고 석 달 동안 숨겨 키우게 된다.




2) 지혜로운 미르얌


모세의 어머니의 모성애로부터 비롯된 그 용감한 행위는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법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양심적 저항이었다. 아기를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요케벳은 궁리한 끝에 왕골 상자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역청과(아스팔트) 송진을 바르고 그 속에 모세를 넣어서 강가 갈대숲 속에 놓았다.1)


      그러나 더 숨겨 둘 수가 없게 되자, 왕골 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아기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아기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탈출기2,3-4)




 동생을 왕골 상자에 넣어서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는데, 이는 파라오의 딸이 자신의 동생을 발견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누이 미르얌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파라오의 딸은 모세를 발견하고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된다. 분명 그 아이가 히브리인들의 사내아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파라오의 딸의 마음을 움직이셨던 것이다.


       마침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강으로 내려왔다. 시녀들은 강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공주가 갈대 사이에 있는 상자를 보고, 여종 하나를 보내어 그것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것을 열어 보니 아기가 울고 있었다. 공주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며, “이 아기는 히브리인들의 아이 가운데 하나로구나.” 하였다.(탈출기2,5-6)



숨어서 지켜보던 미르얌이 나서서 파라오의 딸에게 말했다.


        “제가 가서, 공주님 대신 아기에게 젖을 먹일 히브리인 유모를 하나 불러다 드릴까요?”(탈출기2,7)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그는 제 동생인데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당신께로 흘러오게 했답니다. 지금 제 어머니가 동생에게 젖을 못 먹여서 젖이 퉁퉁 불어 있거든요. 빨리 어머니께 아이를 데려 가야겠어요”


 이렇게 해서 미르얌은 어머니로 하여금 동생 모세의 유모가 되어 친히 아들을 기를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모세의 어머니는 아들 모세에게 직접 젖을 먹이게 되었고, 하느님을 알게 하고, 히브리의 지도자가 지녀야 할 정신을 매일매일 심어 주며, 모세를 키울 수 있었다.



 자신의 동생이 이집트의 왕실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세심한 계획을 세운 미르얌. 그녀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또 한번 등장한다. 홍해에 이르렀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물에 뛰어드는 것을 겁내고 주저했지만, 선두에서 그들을 이끌고 간 영웅적인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모세의 누이였다.




 그리고 성서 말씀은 이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언자이며 아론의 누이인 미르얌이 손북을 들자, 여자들이 모두 그 뒤를 따라 손북을 들고 춤을 추었다. 미르얌이 그들에게 노래를 메겼다. “주님께 노래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네.” (탈출기 15,20-21)


그런데 이처럼 하느님의 총애를 받아 크게 일했던 미르얌도 하느님의 일꾼인 모세를 심하게 미워한 나머지, 하느님의 벌을 받아 문둥병 환자가 되기도 한다(민수12,1-16).


 물론, 그녀가 모세를 미워함에 있어서 정당한 구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사십 년의 광야생활에서 지치고 헐벗고 굶주리는 백성을 이끌어야 할 모세가, 그 고난 속에서 이방인의 딸을 아내로 택하는 것을 보고, 미르얌은 그 일이 지도자의 영성에 흠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세를 나무랐던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녀에게 벌을 주셨다. 미르얌이 민족의 지도자이며 모세의 조언자였던 것을 통해 볼 때, 질투나 증오, 비판은 당연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고 할지라도, 오직 하느님께 그 심판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3) 공주


그녀는 파라오의 딸로서 목욕을 하러 강으로 나왔다가 모세를 만나게 된다. 아니 하느님께서 미르얌을 통해서 모세를 구원하려는 섭리에 마주하게 되고, 그 섭리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녀는 아기가 히브리인의 아기인 줄 짐작하면서도 불쌍한 마음이 들어 그를 양자로 삼기로 결심하였다. 유다교 랍비 전통에 의하면 그녀는 나병환자였는데, 이 갸륵한  자비심의 덕택으로 왕골 상자에 손을 대었을 때, 그녀의 나병이 치유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모세의 누이 미르얌이 “제가 가서, 공주님 대신 아기에게 젖을 먹일 히브리인 유모를 하나 불러다 드릴까요?”(탈출기2,7) 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유모를 데려올 것을 허락하였고, 미르얌이 자신의 어머니를 모셔왔을 때 그녀는 아기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기를 데려다 나 대신 젖을 먹여 주게. 내가 직접 그대에게 삯을 주겠네.”(탈출기2,9)




 어쩌면 공주는 아이의 어머니와 누이의 계획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목욕하는 시간에 자연스럽게 다가온 왕골 상자와 그리고 아이를 보자마자 “유모를 구해 드릴까요?” 하는 미르얌. 누가 봐도 너무도 계획적인 상황이 펼쳐지니 공주는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파라오는 히브리인의 사내아이는 모두 죽이라고 명령이 있었지만, 차마 어린 생명을 죽일 수 없었던 공주는 결국 모세의 어머니를 데려오게 하고 그녀에게 아이를 키우게 한다.


 공주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누이 미르얌의 마음을 헤아렸을 수도 있다. 파라오의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핏줄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린아이에게 자비를 베푼 것은 아닐까?




4) 아기 이름은 모세


 아이가 자라자 모세의 어머니는 아이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려갔다.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가 젖을 떼는  세 살이 되었을 때 아이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려갔다. 공주는 그 아이를 아들로 삼고,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 하면서 그 이름을 모세라 하였다.2)



        1. 공주의 양자


세티 1세의 장녀요 람세스 2세의 누나였던 공주는 파라오의 첫아이로서 다음번 왕관의 정통 상속자였으나 여성이기에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 대신에 그녀는 “파라오의 딸”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집트인들의 관습에 따라서 그녀의 맏아들에게 왕권이 물려지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녀에게는 친아들이 없어서 모세가 그 왕권의 상속자로 예정 되었고, 그 권리는 파라오의 아들들을 제치고 왕권을 계승하는 것이었다는 전승이 있다.




        2. 왕자교육


 파라오의 궁전에서 지낸 모세의 청소년기와 성년초기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구약성경에는 이에 관하여 아무것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첫 순교자 스테파노는 “모세는 이집트 사람의 모든 학문을 배워 마로가 행동이 뛰어나게 되었다”라고 증언하였다(사도7,22). 모세의 업적을 살펴보면 종교,사회,행정, 군사 문제에 관해 교육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모세는 이집트 왕족의 모든 지혜를 배웠다. 국가 행정 조직이 잘 정비된 대제국의 정치적 지혜, 당대의 여러 계층을 조화롭게 활용하는 사회적 구조와 여러 종족들과 무역을 하는 경제적 지혜, 피라미드를 위시하여 거대한 신전과 건물을 짓는 건축 기술, 나일 강 범람을 적절히 활용한 토목기술의 지혜 등을 배웠을 것이다. 그는 확실히 왕자로 교육을 받았을 것이며, 배울 권리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당시 이집트는  영토가 상당히 넓은 강대국이었다. 당시 이집트는 가나안과 시리아 남부를 지배했고 소아시아와 근동과 주동 지역의 여러 민족들과 접촉했으므로, 궁중에서는 틀림없이 여러 나라 말을 통역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했을 것이고, 모세 또한 이런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모세는 이집트의 종교의식을 배웠고, 그 시대에 여러 나라의 법전들도 배웠을 것이다. 이것 역시 하느님의 섭리로 그 지식이 나중에 모세가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중개자로서 이스라엘 율법과 종교 제도를 제정하는데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3. 모세의 인품


모세는 어머니 품 안에 안겨서 젖을 먹었던 3년 동안에는 주님께 대한 열렬한 신앙과 히브리인에 대한 동포애가 넘쳤던 어머니로부터 그 정신을 이어갈 인물이 되도록 길러졌을 것이다. 그리고 세 살 이후부터 사십 세까지 왕궁에서 장래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동안 이집트이 모든 학문을 교수 받고 말과 행동에 있어 뛰어난 인물이 되었다(사도7,22 참조).


 노예 신분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평생 노예로 사는 히브리인들은 “자유”를 몰랐지만, 모세는 히브리인으로 태어났으나 노예의 운명에서 벗어나 왕궁에서 문화의 혜택을 누리면서 자유인으로 살았다. 노예를 해방시키려는 지도자는 당연히 자유를 체험해야 했다.


하지만 동족의 비참한 처지를 바라볼 때마다 자기 생활의 안일만을 추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동족을 위해 이집트인을 죽이기까지 한다.




5) 청년모세


당대 세계에서 “이집트 사람들의 지혜”는 위대한 지혜, 그 평판이 널리 알려진 지혜, 가장 오래된 지혜였고, 그래서 희랍인들은 이집트인들의 지혜와 그들의 비밀을 익히고자 이집트인들에게로 가서 배울 지경이었다. 조직이 잘 정비된 대제국의 정치적 지혜, 당대 사회적 구조와 상업적 기틀이 방대한 경제적 지혜, 기술적 지혜(피라밋을 세우고, 거창한 건물과 엄청난 신전들을 세울 만한 건축 기술), 호화로운 생활과과 세련된 생활을 영위하던 문화적 지혜가 있었다. 모세는 인간 문화의 이 모든 것들을 배웠던 것이다. 그리고 이 지혜는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고, 조직을 정비할 수 있는 바탕이 되도록 하느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다.



        1. 모세의 동포애


 성년이 된 모세는 늘 자신의 동족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 그는 동포들이 강제 노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슴아파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이집트인 공사 감독이 히브리인을 사정없이 때리는 모습을 보고 그를 죽이게 된다. 아마 모세가 그를 죽이지 않았다면 이 히브리인은 이집트인 공사 감독에 의해서 맞아 죽었을 것이다.


         어느 날, 그는 자기 동포들이 있는 데로 나갔다가, 그들이 강제 노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그는 이집트 사람 하나가 자기 동포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이리저리 살펴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그 이집트인을 때려죽이고서 모래 속에 묻어 감추었다(탈출기2,11-12).




마흔이 된 모세. 아마도 그는 자기 동족인 히브리인들을 돌봐주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이집트의 왕자임에도 불구하고 동족이 일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던 모세. 그랬기에 이집트인을 죽여서 동족을 구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모세는 평소에 자신의 동족을 구하기 위해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 같다.




        2. 동족의 배반


모세가 이튿날 다시 나가서 보니, 히브리 사람 둘이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잘못한 사람에게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시오?”(탈출기2,13) 하고 말하였다. 한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싸우는 모습에 모세는 너무도 가슴아파했을 것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으니(종살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더욱 많은 배려를 해 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싸우는 동족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모세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모세의 마음을 몰라주고 오히려 동족을 괴롭히던 사람이 모세의 가슴에 못을 박아 버린다.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당신은 이집트인을 죽였듯이 나도 죽일 작정이오?”(탈출기2,14)


 모세는 이집트인을 죽일 때,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알고 있었다. 아마도 모세로부터 구원을 받은 그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세의 일을 동족들에게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역시! 모세가 히브리인이니 당연히 동족을 생각해 주겠지. 그래도 히브리인 중에 이집트의 왕자가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야!”라고 말하면서 모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힘들어하는 히브리 사람은 자신은 그렇게 노예로 살아가는데 “누구는 왕자”라는 사실을 배 아프게 생각하여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모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집트 고위관료들이 그런 히브리인을 매수하여 모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 일이 정말 탄로나고야 말았구나.”(탈출기2,14)


모세는 동족들을 위해 좋은 취지로 살인까지 했지만 그를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모세의 행동을 이집트인들에게 일러바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파라오까지 그 일을 알게 되었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파라오는 모세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모세는 높은 지위에서 떨어지고 이집트 궁정의 특권과 안락한 생활을 빼앗기는 등 자신에게 닥쳐올 재앙을 피하기 위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히브리인 노예들의 편을 든 모세가 파라오의 여토 안에 있으면서 안전할 수는 없다. 왕권을 향해 나아가던 그가 이제는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가나안은 이집트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모세가 가나안으로 피신하게 되면 체포될 위험이 컸다. 그래서 친족 관계에 있는 같은 셈족인 미디안 족이 있는 곳으로, 시나이 반도의 동쪽으로 도망치게 된다.




모세는 그렇게 동족에게서 배반을 당하고 도방자요, 방랑의 길에 들어선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모세는 끊임없이 동족들에게 배반을 당한다. 예수님께서 동족들에게 배반을 당하시고, 함께 했던 제자에게 배반을 당하시는 것처럼, 모세도 그런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예수님도, 모세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일을 하셨다. 누가 알아줘서가 아니라, 누가 보답해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일을 하셨던 것이다.




 신앙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내가 본당에서 봉사를 할 때,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누가 보답해 주기를 바라면서 봉사를 한다면 그것은 참된 봉사가 될 수 없다. 누가 나에게 상처를 줬다하여 등을 돌리는 것도 참된 봉사자 될 수 없다. 모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동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듯이, 나 또한 어떤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6) 미디안으로 달아나는 모세


 동족에 대한 사랑이 결국 배반으로 이어진 모세의 삶은 그렇게 끝나 가는 것 같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부르셔서 당신의 일을 하실 때,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예수님께서 사도 바오로를 부르셔서 곧바로 선교일선으로 투입시키지 않고, 10년을 기다리게 하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내 열성이 헛 열성으로 잠시 타올랐다가 꺼져 버리고 마는 그런 열성이 아니라, 한번 타오르면 끊임없이 타오르는 열성을 가질 수 있도록 당신의 도구로 만드신다. 모세도 그렇게 단련을 받을 것이다.




        1. 미디안의 사제의 딸들과 모세


마침내 모세는 이집트 왕국의 영향권인 시나이 반도를 동쪽으로 횡단하여 아카바 만까지 도망쳤다. 미디안족3)은 아카바 만을 사이에 두고 그 양편 해안에 살고 있었다. 모세는 파라오를 피하여 도망치다가 어떤 우물가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광야에서 우물은 여행객들에게는 휴식처이고, 유목민들에게는 집합 처이며, 가끔 목동들의 싸움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모세는 여기서 자신의 짝을 만나게 된다. 미디안의 사제에게는 딸이 일곱이었는데 그들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이려 하였다. 그런데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아내고 자신들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려 하였다. 이때 등장한 정의 사도 모세.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모세. 건장한 체격에 몸에는 이집트 왕자로서 무술실력까지 갖추고 있는 모세에게 목자들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목자들은 미디안의 사제의 딸들을 우습게 여겨서 횡포를 부렸다가 그 값을 톡톡히 치르게 된 것이다.


힘없는 처녀 목동들! 그들이 광야의 목자들에게 위협받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난 이집트인. 건장한 체격과 수려한 용모. 그리고 자신의 양떼에게 물을 먹여주는 모세에게 분명 좋은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여인들이 외간 남자를 자신의 집으로 끌어 들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집에 평소보다 일찍 돌아오자 아버지는 그 이유를 물었고, 딸들은 사실대로 말하였다.


그러자 아버지 르우엘은 딸들에게 말하였다.


     “그가 어디 있느냐? 어째서 그 사람을 내버려 두었느냐? 그를 불러다 음식을 대접하여라.”(탈출기2,20)



        2. 모세의 장인 르우엘


르우엘은4) 모세를 초대하였고, 모세는 르우엘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르우엘은 끈질기게 모세를 붙잡았을 것이다. 갈 곳도 없고, 쫓기는 몸이니 양을 치며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모세를 설득했을 것이다. 또한 르우엘에게는 아들이 없었으므로 딸들이 양을 치면서 목자들에게 많은 설움을 당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모세를 잡으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모세의 장인 르우엘과 야곱의 장인 라반은 전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둘 다 우물가에서 데려와 사위로 삼았지만 라반은 사위를 머슴으로 부린 나쁜 사람이었고, 모세의 장인 르우엘은 모세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르우엘은 자기 딸 치포라를 모세에게 주었다. 모세는 이제 이집트 왕궁의 어떤 귀족의 딸과 혼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양을 치던 양치기 소녀와 혼인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느님 백성을 이끌기 위한 수련과정이라는 것을 아직 모세는 모를 것이다.


모세는 치포라가 아들을 낳자 “내가 낯선 땅에서 이방인이 되었구나.”(탈출기2,22) 하면서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였다.




7)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생각하시다


히브리인들은 430여 년 동안 이집트에 정작하면서 그렇게 타성에 젖어서 생활하면서 이집트인들에 의해서 길들여지고, 그들의 우상숭배를 거부감 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히브리인들 중에는 하느님을 떠나고 조상들에게 약속되었던 가나안 땅에 돌아갈 희망마저 잃어버린 이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모세를 배반한 히브리인들도 그런 류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이집트 임금이 죽었다. 이집트 주변의 여러 종족들에게도 BC 1290 년경에 세티 1세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데 보통 어떤 왕국에게 종속되어 식민지생활을 하던 민족들은 그들을 지배하던 국왕이 죽으면 그것을 기회로 반란을 일으켜 독립을 꿈꾼다. 이집트의 지배를 받던 근동 지방의 여러 민족들도 그러했다. 따라서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로 고생하던 히브리인들도 기회가 왔다고 여겼을 것이다. 게다가 세티 1세의 아들인 람세스 2세는 그의 선친보다 한층 더 정력적으로 건설 사업을 추진하였고, 이 때문에 히브리인들은 더 큰 시련을 겪에 되었다.




        1. 백성들의 탄식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역에 짓눌려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을 편한하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모두 강물에 버리도록 엄명하였으나, 산파들의 비협조로 큰 효과가 없자 그들을 가혹하게 혹사시켜 쓰러져 죽도록 비인도적으로 강제 노역을 시켰다.


 히브리인들은 파라오의 박해로 인하여 자신들이 이집트인들의 노예 상태에 있음을 깨닫고 이집트의 풍습을 혐오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에 새롭게 눈이 뜨게 되었고, 참 하느님을 다시 찾으며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였다. 히브리인들은 더 잇아 견딜 수 없어 마지막 희망인 하느님의 도우심만을 바라게 되었다. 그러자 고역에 짓눌려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소리가 하느님께 올라갔다. 이 부르짖음은 새로운 시대 상황에 대한 열망이었다.




        2. 주님의 응답


 당신 백성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맺으신 그 계약을 성취시키고자 하신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살펴보시고 그 처지를 알게 되셨다.(탈출기 2,24-25)


 나자렛에서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던 이유는 하실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원하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치유받기를 원했던 사람은 모두 치유를 받았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신다. “신음 소리”는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는 소리이며, 이제 하느님만이 나를 구원해 주실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비록 기도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이 신음 소리는 그들이 할 수 있는 탄원이요, 기도요, 바램인 것이다. 이제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서 당신께서 직접 개입해 주실 것이다.




8)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동족에게 배신당한 모세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서, 혹시 나는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일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적은 없는지 생각해 보고, 나 또한 그렇게 신자들로부터 상처를 받았는지, 받았으면 어떻게 처신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2. 고된 노예 살이를 통해 신음하는 히브리 백성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서, 나는 어려울 때 주님을 찾고 있는지, 어떻게 기도하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그리고 어떻게 응답 받았는지도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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