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느님의 계시 – 하느님의 이름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모세는 이렇게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의 이름을 하느님께 묻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이름을 계시하신다.
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탈출기3,14)
야훼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친히 일러주신 이름이다. 야훼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고 살아있는, 움직이는 분이다. 사실 야훼란 단어는 ‘있다’,‘존재하다’(hyh)라는 동사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어쨌든 이스라엘인들은 야훼께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이름을 두려워하여 감히 부르지도 못했다. 또 야훼란 이 단어는 4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진 글자였기에 발음하기도 어려웠다.
고대의 셈족은 어떤 사람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이름을 가진 사람에 대하여 권력을 가진다고 여겼다. 그러니까 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권력을 다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이름을 알려주기를 거부하신다. 본디 하느님은 고유한 이름이 없다. 그런데도 모세가 백성의 인정을 받기가 쉽지 않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신분을 밝히는 이름과 칭호를 모세에게 계시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모세를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심으로써 하느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인간과 인격적으로 항상 함께 현존하시는 분이심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탈출기 6장 3절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이렇게 계시하신다.
2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나는 야훼다. 3 나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전능한 하느님’으로 나타났으나, ‘야훼’라는 내 이름으로 나를 그들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탈출기6,3)
히브리어 “야훼”를 우리말로 옮기면 “나는 곧 나다” 또는 “나는 있는 나다” 또는 나다“이다. 하느님의 이름이 하느님의 본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권위와 능력을 나타내는 ”야훼“라는 이름은 존경의 대상이다. 예언자들은 야훼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할 때(예언할 때-말씀을 전할 때) 신적 권위를 부여받았다(신명18,19). 그래서 야훼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면 안 되고(탈출20,7),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주님의 기도).
➀ 하느님의 이름: 엘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에게 알려진 하느님의 이름은 “엘”이였다.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 238번 나온다. 셈족은 BC 3000년경에 그들의 하느님을 ”엘“이라고 불렀다. 모든 셈족이 이 단어를 공통적으로 썼다. 그러나 확실한 어원은 아직 모른다.1)
“위대한”,“강한”,“위엄 있는”등을 뜻하는 단수형인 “엘(EL)”은 하느님의 유일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고, 복수형인 “엘로힘(Elohim)”은 본디 다신교적인 이방 민족의 신들에게 쓰였다. 그런데 ”엘“의 복수형인 ”엘로힘“이라는 말이 ”위대하고 또 위해한“, ”강하고 강한“, ”가장 위엄 이는“등을 뜻하기 때문에 이 또한 하느님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을 표현하는 경우에 “엘”이라는 단수형과 엘로힘이라는 북수형이 같은 의미의 동의어로 사용되었고, 엘로힘이 통상적으로 더욱 자주 사용되었다.2)
구약성경에서 “엘”이라는 말이 사용된 예는 다음과 같다.
✴ 엘-샷다이(El Shaddai) – 전능하신 하느님“이라는 뜻(창세기17,1; 탈출기6,3)
✴ 엘-로이(EL Roi)- 나를 돌보시는 하느님(창세16,13)
✴ 엘-올람(EL Olam)- 영원하신 하느님(창세21,33)
✴ 엘-엘욘(El Elyon)-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창세14,18-20)
✴ 엘 엘로헤 이스라엘- 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다(창세33,20)
✴ 임마누엘- 예수님의 호칭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라는 뜻(마태1,23)
그런데 “엘” 또는 “엘로힘”으로 알려져 있던 그 하느님이 모세에게 “나의 이름은 야훼다. 앞으로는 이 이름으로만 불러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모세 이후”“야훼”라는 말과 “엘”이라는 말이 온전히 혼용되었다. “야훼”라는 말은 “엘”이라는 말이 발전된 개념이다.
➁ “나는 있는 나다”
모세가 하느님께 하느님의 이름을 묻자 하느님은 히브리말로 “에흐 예 아셰르 에흐예”라고 대답하셨다.3) 이것을 직역하면 “나는 내가 있는 그대로 있다”, “나는 있는 나다” 혹은 “나는 곧 나다”라고 옮길 수 있다. 야훼라는 말은 “존재하게 하는 자” 즉 “없었던 것을 존재하도록 창조하는 자”라는 뜻이다.
“나는 있는 나다.” 또는 “나는 곧 나다”, 즉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름은 이해하기도 매우 어렵고 번역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하느님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 또한 “야훼”라는 이름이다. 그 외에 어떻게 하느님을 설명할 수 있을까?
➂ 야훼와 여호와
원래 고대 히브리어 글자는 자음만 있고, 모음은 없었다. 그래서 히브리어 구약성경도 본디 자음만으로 쓰여 있었다. 옛날 히브리인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내용의 의미에 따라 모음을 붙여서 읽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하느님의 이름 “야훼”가 네 개의 자음으로만 즉 요드,헤,와우,헤(로마자로 쓰면 YHWH,הוהי) 라고만 적혀 있다. 그래서 그리스어에는 “네 글자”라는 단어가 생겼다.
한편 유다 사회에서는 주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는 사형을 받았다(레위24,16). 그런데 “모독한다”라는 히브리어에는 “분명하게 발음한다”는 뜻도 있다. 그래서 바빌론 유배시대 이후의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이름인 “야훼”를 발음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기원전 4세기부터는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송구하고 불경스럽고 또한 계명에 어긋나므로 성경을 읽다가 “야훼(הוהי)라는 단어가 나오면 아도나이(나의 주님), 또는 엘로힘(하느님)이라고 읽는 습관이 생겨났다.
기원전 3세기에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칠십인역 성경에서는 “야훼”라는 단어를 “주님”이라고 번역하였다.
12세기경에 이러한 유다인 성경학자들의 배려를 모르는 유럽 성경학자들 중 일부가 하느님의 이름이 야훼(הוהי)의 자음과 “주님”의 모음을 합친 “여호와”로 잘못 알고, 이것을 전파하였다. 그 결과 일반인들은 하느님의 이름이 “여호와”인 줄로 믿게 되었다.
그리고 야훼(הוהי)가 여호와로 발음되는 줄 알고 지내오던 중 20세기의 학자들이 야훼(הוהי)의 올바른 발음은 여호와가 아닌 ‘야훼’란 사실을 밝혀냈다.
현재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여호와의 증인이나 그 영향을 받은 한국이 많은 개신교에서는 ‘여호와’라 부르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개신교를 비롯한 카톨릭 등 모든 성서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야훼’로 호칭하고 있다. 잘못된 것을 수정하는 것이 진실된 믿음의 자세라 생각한다. 구약시대엔 야훼의 이름을 감히 부를 수 없었으나 야훼께서 사람이 되셨으니 신약에 와선 야훼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④ 마소라 성경4)
한편 성경의 전승을 순수하고 정확하게 지키려는 학자들이 히브리어 성경에 기록된 자음의 옆이나 위나 아래에 작은 점의 형태로 모음을 덧붙이고 주를 달아서 성경 본문의 의미를 고정시켰다. 이러한 편찬 작업이 기원후 7세기부터 시작되어 10세기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이러한 편찬 작업을 이룩한 학자들을 마소라 학자라고 부르고, 모음과 주석이 덧붙어진 성경을 “마소라 성경”이라고 한다. “마소라(Masora)”는 히브리어로 ”전통 또는 전승“을 뜻한다.
⑤ 약속을 지키시는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시면서 당신이 바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계시하신 그 이름으로 불릴 것임을 말씀하신다.
15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탈출기3,15)
그런데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주심으로서 세상은 참 하느님은 한 분 밖에 안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경배를 드리게 될 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게 됨을 통해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신 것이고, 그 사랑은 백성들로부터 찬미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5) 모세의 소명에 관한 지침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구체적인 사명을 부여하신다. 모세는 먼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서 이스라엘 원로들을 보아놓고 그들에게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전하라고 하신말씀을 전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전하도록 명하신다.
‘나는 너희를 찾아가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일을 살펴보았다. 17 그리하여 이집트에서 겪는 고난에서 너희를 끌어내어, 가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 18 그러면 그들이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함께 이집트 임금에게 가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저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 주 저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여라.(탈출기3,16-18)
① 하느님께서는 먼저 모세에게 백성의 장로들에게 가서 하느님의 계획을 알리라고 말씀을 하신다. 백성들의 탄원을 들으시고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구원자가 되시기로 하셨다는 사실을 알리라고 하신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전하라고 하신다. ②그래서 백성의 원로들과 함께 파라오에게 가서 광야로 사흘 길을 가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하니 허락해 달라고 청하라고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하느님의 이 말씀을 들은 모세는 걱정이 앞설 것이다. 물론 하느님께서 가라 하시니 가야 하겠지만 가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동족을 구하려다가 동족에게 버림을 받은 모세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하면서 “이 기쁜 소식”을 전했을 때, 과연 받아들일 만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리고 자신이 말한다고 해서 듣겠는가?
또한 자신은 도망자 신세인데 파라오 앞에 나설 수 있겠으며, 그렇게 청했다 하더라도 파라오가 보내 줄 것인가? 파라오는 보내 줄 리가 없다는 것을 모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마음을 읽으셨는지 또 말씀하신다.
19 그러나 강한 손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한, 이집트 임금은 너희를 내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20 그러므로 나는 손을 내뻗어 이집트에서 온갖 이적을 일으켜 그 나라를 치겠다. 그런 뒤에야 그가 너희를 내보낼 것이다. 21 나는 또 이 백성이 이집트인들에게 호감을 사도록 하여, 너희가 떠날 때 빈손으로 떠나지 않게 하겠다. 22 여인들은 저마다 이웃 여자와 자기 집에 함께 사는 여자에게 은붙이와 금붙이와 옷가지를 요구할 것이고, 너희는 그것들을 너희 아들딸들에게 지울 것이다. 이렇게 너희는 이집트를 털 것이다.” (탈출기3,19-22)
하느님께서는 파라오가 그냥 내 보내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모세와 마찬가지로 잘 알고 계신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파라오가 항복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파라오는 하느님의 백성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날 것이고, 결국 파라오는 하느님께 항복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올 때는 빈손으로 그곳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신다. 당연한 일이지만 노예로 살던 이들에게 당연한 것은 없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모세에게 말씀하시는데, 모세는 더더욱 어렵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이제 모세는 하느님께 자신이 걱정하는 것들을 말씀 드릴 것이다.
5) 함께 생각해 봅시다.
① 하느님의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나는 하느님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 이야기 해 봅시다.
② 내가 모세라면 하느님께 어떤 말씀을 드릴까? 하느님께서 이런 엄청난 계획을 말씀하시는데 나는 과연 뭐라고 말씀 드릴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