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론을 대변인으로 세우시다.
모세는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고, 손이 문둥병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고, 그래도 믿지 않으면 나일 강 물이 피가 될 것임을 알려 주었지만 다시 한 번 변명을 한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입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러하였고, 주님께서 이 종에게 말씀하시는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탈출기4,10)
그런데 모세의 변명을 들으면서 우리가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은, “과연 모세가 그렇게도 말 주변이 없는 것일까?”라는 것이다. 파라오의 궁전에서 왕자교육을 받았고, 외국어와 정치 경제에 대한 모든 교육을 받았는데, 그렇게 말주변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모세는 말보다는 행동이 앞선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집트인 감독이 히브리인을 학대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해 감독을 쳐 죽였던 일이나, 미디안 땅으로 도망치던 중 우물가에서 곤란을 겪고 있던 이트로의 딸들을 위해 남자 목동들을 물리쳤던 것 등을 생각해 본다면 그동안의 모세는 말보다는 행동이 앞선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모세의 변명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가 사람에게 입을 주었느냐? 누가 사람을 말 못하게 하고 귀먹게 하며, 보게도 하고 눈멀게도 하느냐? 나 주님이 아니냐? 12 그러니 이제 가거라. 네가 말할 때 내가 너를 도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겠다.” (탈출기4,11-12)
모든 것은 주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해 주신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루카 21,13-15)
말하는 이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성령이시라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저 하느님의 도구라는 것을 명심하면 되는 것이다.
① 탈무드에 의하면1)
파라오의 딸이 데려다 양자로 키운 모세는 왕실에서 권력의 경쟁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파라오의 요술사나 주술사는 물론, 파라오와 왕자들도 경계를 했을 것이다.
파라오가 어느 날 뜨겁게 달군 금 구술을 모세에게 주었다고 한다. 만일 모세가 똑똑하고 사리판단을 할 줄 알아서 그 뜨거운 것을 안 만지면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모세가 덥석 받아가지고 입에 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혀가 탔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 파라오가 모세를 그냥 내버려두어도 별 문제가 없을 멍청이로 여기고 살려두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모세가 그 뜨거운 것을 입에 넣지 않으려 하였지만 천사가 모세의 손을 움직여서 입에 넣어주었다고 한다. 파라오의 음흉한 속셈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모세를 살려두기 위해서 그렇게 안배하셨다는 것이다.
유다 사회에서 “질문도 할줄 모르는 놈”이라는 말이 바보를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유다인 아이들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궁금하면 서슴지 않고 어른들에게 계속 묻는다고 한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모세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 교육할 때, “살다 보면 어렵고, 힘든 일들이 생기지만 더 큰 계획과 더 큰 사명을 위해서 미리 준비하신 하느님의 손길일 수도 있으니까 잘 받아들이고, 항상 감사하며 살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하지만 모세는 아직도 자신이 없어 감히 이렇게 말씀 드린다.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주님께서 보내실 만한 이를 보내십시오.”(탈출기4,13)
겸손은 지나치면 자기 비하가 되고, 어른이 말씀하신 것을 너무도 거부하면 그것 또한 불경이 된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계속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②대변인 아론
계속 거부하는 모세에게 이제 하느님께서는 화를 내시며 말씀하신다.
“레위인인 너의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탈출기4,14).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을 말씀하신다. 지금 아론이 모세를 만나러 이쪽으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론의 입에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는 말을 담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모세가 말을 할 때나, 아론이 말을 할 때 반드시 함께 하시면서 도와주실 것임을 약속하신다. 무엇을 해야 할 지 가르쳐 주겠노라고 약속해주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확신을 주신다. 늘 함께 해 주실 것임을 약속해 주신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것은 아론이 하게 될 것임을 말씀해 주신다. 아론이 모세의 입이 될 것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즉 안심하라는 것이다. 즉 모세는 아론을 통해서 말을 하게 되고, 백성들을 이끌게 될 것이고, 그리고 아론은 모세를 따르게 될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는 너의 입이 되고, 너는 그의 하느님이 되어 줄 것이다(탈출기4,16).
③ 권위를 주시는 하느님
지팡이는 권위를 상징한다. 이제 모세는 하느님께서 부여해 주신 그 권위로 표징들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그 표징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구해낼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제 그 지팡이를 잡으라고 말씀하신다.
17 그리고 이 지팡이를 손에 잡아라. 너는 그것으로 표징들을 일으킬 것이다.”(탈출기4,17)
이제 모세는 그 지팡이로 하느님의 일을 하게 될 것이다.
3) 모세가 미디안을 떠나 이집트로 돌아가다
모세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이트로에게 이제 떠날 것임을 알린다.
“저는 이제 떠나야겠습니다. 이집트에 있는 친척들에게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도 살아 있는지 보아야겠습니다.”(탈출기4,18)
모세는 주님의 뜻을 받들기로 하고 이제 미디안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장인 이트로에게는 친척들이 살아있는지 보아야겠다고 말을 한다. 아마 모세가 하느님의 소명을 받았다고 한다면 이트로는 모세를 붙잡았을지도 모른다. 누가 보나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트로는 모세에게 “평안히 가게.”(탈출기4,18) 라면서 축복을 빌어준다. 그런데 모세의 앞날을 내다볼 수 있다면 모세는 결코 자신의 딸과 손자들을 그렇게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세는 또 하느님께로부터 힘이 나는 말씀을 듣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집트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시면서 모세의 목숨을 위협하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음을 알려 주신다. 모세는 아내와 아들들을 데리고 이집트 땅으로 돌아간다. 이제 모세의 손에는 하느님의 지팡이가 들려 있다. 모세는 그 지팡이로 기적을 일으키고, 백성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이집트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쥐어 준 그 모든 기적을 명심하여 파라오 앞에서 일으켜라. 그러나 나는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내 백성을 내보내지 않게 하겠다. 22 그러면 너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파라오에게 말하여라.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23 내가 너에게 내 아들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말하였건만, 너는 거부하며 그를 내보내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내가 너의 맏아들을 죽이겠다.’” (탈출기4,21-23)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맏아들로 여기신다. 그런 맏아들을 괴롭히는 파라오를 어찌 그냥 놔둘 수 있겠는가? 이 말씀 안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얼마나 사랑 하시는가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마음을 완고하게 하다”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시고, 인간 또한 자유 의지 대로 선과 악을 선택한다. 파라오가 그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한다면 그는 되돌아오기 어려운 위치에 머물게 되고, 그의 마음은 완고하게 된다. 굳어지게 된다. 이런 일이 생길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고 뻣뻣하게 하고, 완고하게 만드셨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그의 완고함을 보고 계시다는 뜻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잘 되기를 바라시지 멸망하기를 바라시지 않는다. 아무리 파라오라 할지라도 그가 멸망하기를 바라시지는 않으신다. 그러므로 “그를 완고하게 만들다”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그를 알고 계신다는 뜻이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한 것은 파라오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주권을 행사하셨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절대 권력을 지닌 파라오의 마음이 완고해졌음은 그의 이성과 지성, 판단력이 마비되어 사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불합리성에 빠져 있음을 가리킨다. 가장 소중한 자신의 아들을 잃고서야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그것을 잘 드러낸다. 결국 파라오는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사태에 끌려가게 되는데 이것은 태양신의 아들이요, 절대 권력을 지닌 파라오가 하느님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하다는 것을 드러내며, 야훼 하느님께서 참 하느님이심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맏아들이라는 표현은 선택받은 특별한 관계를 나타낸다.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 하느님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런데 파라오가 이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바로 야훼 하느님께 대한 도전인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선택받은 맏아들을 해방하기 위해 파라오의 맏아들을 죽이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고, 이 말씀은 열 번째 재앙으로 실현된다(탈출기12,29-34).
4)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받다.
모세의 아들이 하례를 받게 되는데 그 할례의 피로써 모세 일가는 죽임에서 건져진다. 이 말씀의 초점은 “피를 통한 구원”에 있다. 즉 이집트의 맏아들들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24 모세가 길을 가다 어떤 곳에서 밤을 지내는데, 주님께서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죽이려 하셨다. 25 그러자 치포라가 날카로운 차돌을 가져다 제 아들의 포피를 자르고서는, 모세의 발에 대고 “나에게 당신은 피의 신랑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26 그러자 그분께서 그를 놓아주셨다. 그때 치포라는 할례를 두고 ‘피의 신랑’이라고 말한 것이다(탈출기4,24-26).
그리고 장차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과월절 사건에서 어린 양의 피로써 구원될 것임을 미리 입증해 준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할례 또는 과월절 의식이 구원사건과 연결됨으로써 후에 그 의식은 한층 강조되고 주요시되었다. 할례는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표지로서 자신의 몸에 행하는 결단의 표시로 여겨졌다(여호수아5,2-3 참조).
5) 모세와 아론이 백성 앞에 서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형 아론을 대변자로 세워 주셨다. 그리고 아론에게는 모세를 만나러 광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해서 형제가 만나게 되는 것이다. 모세가 세 살 때 파라오의 딸의 양자가 되어 왕궁으로 들어갔으니 그리 만날 시간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집트인 공사 감독을 죽이게 되어 미디안 땅으로 도망치게 되었고, 40년을 도피 생활을 했으니 모세와 아로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다면 길을 가다가도 서로 모르는 체 그렇게 지나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7 주님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를 만나러 광야로 가거라.” 그래서 아론은 길을 떠나 하느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나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탈출기 4,27)
형제의 만남. 모세는 팔십 세, 아론은 팔십삼 세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만난 형제는 무슨 말을 했을까? 성경은 짤막하게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라고 전해주고 있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것과, 자신을 보내면서 하신 모든 말씀과 자기에게 일으키라고 명령하신 모든 표징을 아론에게 알려 주었다.
① 이스라엘 원로들과 만나는 모세와 아론
모세와 아론은 광야에서 만나 하느님의 말씀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이집트로 돌아왔다. 이집트로 돌아와서 먼저 한 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원로들을 모두 불러 모으는 일이었다.
29 모세와 아론은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원로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30 아론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들려주고, 백성이 보는 앞에서 표징들을 일으켰다.(탈출기4,29-30)
아론은 모세의 대변인 역할을 행한다. 그리고 모세는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표징을 일으켰다. 지팡이를 던져 뱀을 만들고, 다시 꼬리를 잡아 지팡이로 만드는 표징, 손을 문둥병이 걸리게 했다가 낫게 하는 표징, 그리고 나일강물을 피로 바꾸는 표징 등을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보는 앞에서 일으켰다. 그러자 그들이 믿게 되었다. 또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오시어 그들이 당하는 괴로움을 살펴주셨다는 아론의 설명을 듣고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고, 무릎을 꿇어 하느님께 경배하였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간이 지나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찾아 오셨을 때, 모세보다도 더 큰 표징을 보여주셨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작은 것 안에서도 하느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음은 그만큼 마음이 열렸기 때문이요, 큰 것을 보고도 믿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마음이 닫혀 있다는 증거이다.
내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의 일을 볼 수 가 없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볼 수가 없으며, 하느님의 사람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6) 함께 생각해 봅시다.
①모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거절을 하려고 합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내가 능력이 없다하여 하느님께서 내게 맡기시고자 하는 일을 거부한 적은 없습니까?
②백성들 앞에 선 모세의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백성들 앞에 섰는데, 백성들이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일 백성의 원로 중의 하나였다면 모세의 말을 받아들였을까요? 그리고 내가 만일 모세였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