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에 대해서(12절~16절)

 

12절


   그러나 너희는 나지르인에게 술을 먹이고 예언자에게 입을 다물라고 명령하였다.


   。예언자에 대해서 입을 막게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가 되느냐하는 것은 나중에 9, 11-12에 나오는데, 이것은 모든 벌 중에서 최고의 벌인 것이다.  “양식이 없어 배고픈 것이 아니라 야훼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 굶주린 것이다.” “야훼의 말씀을 찾아도 들을 수 없는 세상이 온다” 즉 이스라엘이 잘못한 것이 단순히 입을 다물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데까지 가는데에 있다. 예언자는 전승적으로 보아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보는 사람,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사람이 있다. 예언자에게 입을 다물라고 할 때의 예언자는 선포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쓰인 것이다. 입을 다물라고 하는 것을 달리 말하면 하느님이 이끌어 오신 길을 역류시키는 것이다. 단순히 말이 듣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야훼의 역사를 거부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13절


   보아라, 내가 너희를 무거운 짐을 싣고 뭉그적거리는 송아지 꼴로 만들리라.


   。지금까지의 역사를 심판의 역사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흔들린다’ 또는 ‘제 중심을 잡지 못한다는 얘기이다(뭉그적거리는 송아지꼴로 만들 것이다).’




14절


  아무리 걸음이 빨라도 달아나지 못하고 아무리 장사라도 목숨을 건지지 못하리라.  


  。이 뒤에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저항할 수 없다는 것.  즉 그 당시의 사회적인 제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던 모든 조치들, 그들이 믿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사회의 근간, 제도등을 다 믿을 수 없이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13절에 나오는 흔들리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그 앞에서 보았듯이 아모리족을 쳐부순 분이 야훼인데, 너희들이 인간적인 것을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쓸데없다라는 것을 드러내며 전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얘기는 6절에 나오는 사회의 여러가지 악들이 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이끌어간다.




16절


   그 날이 오면, 아무리 용감한 장사라도 맨몸으로 도망치리라.  – 야훼의 말씀이시다.   


   。‘그날이 오면’ – 야훼의 심판이 날이 오면


   。백성들과 유다인들에 대한 단죄를 신학적으로 정리한다면,  모두 같이 생각해야 하는데 8,6에 가면 ‘미투리 한 켤레 값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모스의 사회 비판은 여러 형태로 이어진다.  가난한 자에 대해서 가진자가 어떠한 처분을 했는가에 대해서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우선 크게 보아서 이민족에 대해서는 전쟁,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대내적인 문제를 통해서 단죄의 이유를 드러낸다.  단죄의 이유 가운데에는 가난한 자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에 대해서 그 사회가 눈을 감고 지나가는 것이 강조된다.  이민족에 대해서는 주로 전쟁의 테마를 부각시키는데 이 두 문제를 보면 아모스 예언자는 역사의 절대 주인은 야훼 하느님뿐이라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전쟁을 통해서 이런 이야기를 함으로서 인간의 폭력을 대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이스라엘의 대내적인 문제도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미래에 대해서 아모스 예언자는 살아갈 길이 있는데 그 살아갈 길에 대해서 「물론 5,7이하에 나오는 ‘ט꘱ꚉꗬ(mishpat)’와 ‘הꙌꕇꙃ(tsedakah-질서와 정의-)’를 쓰는데 바로 1-2장에 걸쳐서 나오는 대외.대내적인 이러한 폭력도 결국은 야훼의 길을 걸어가지 않기 대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줄여서 얘기한다.  ‘ט꘱ꚉꗬ(mishpat)’하면 특별히 질서를 유지하는 어떤 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제공되는 규칙을 가리킨다면 ‘הꙌꕇꙃ(tsedakah)’는 윤리적인 차원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공동체에 어떻게 이바지 하는가’가 기준이 되는 의미에서의 정의이다. 그래서 의로운 사람을 못살게 군다는 것은 공동체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길을 막는 것이다.  ‘הꙌꕇꙃ(tsedakah)’라고 할 때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개인적으로 잘했냐 못했냐가 아니라 공동체에 어떻게 같이 살 수 있게 하느냐 못하느냐에 기준을 두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1.2장이 이미 심판의 내용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결국 전쟁이나 이스라엘에 대내적으로 나타나는 잘못등은 다른 모든 것은 공개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살수 있는 이것을 파괴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1.2장의 심판의 목적은 외적인 제도에 의하여 나타나는 질서라 할지라도 공동체의 공존을 위해서 공개된 질서가 파괴될 때에는 그런 외적인 형태는 거짓이라는 것이다. 그럼 그렇게 공개된 질서의 근본은 어디 있느냐 하면 결국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가 되어야 하며 그러한 사회가 되도록 하느님이 모범으로 보여준 것이 2.3장에 나오는 것이다.  그것에 반대해서 계속 잘못하는 것이 11절(예언자나 나지르인에대한 이스라엘의 태도)에 나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심판에 대한 정의에서 본다면 야훼가 이스라엘을 이끌어온 드러난 역사를, 끊임없이 감추어 지는 역사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를 되돌리는 것이다. 감추어진 역사에 상응해서 그만큼 억압이나 억제가 횡횡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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