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절 정리
전체적으로 신학을 정리한다면 3-8절까지의 목적은 첫째, 사마리아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그 안주함과, 편안하게 잘 된다고 믿는 것을 피하고 벗어나도록 자극을 주는 것이다. 그 자극을 주기 위해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그런 일상적인 체험에 근거를 둔 수사적 표현을 쓴다. 당시의 사마리아 사람들은 외적인 풍요 때문에 하느님께 대한 신뢰보다는 자신에 대한 신뢰, 자만심에 빠져있었다.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 시도하는 것은 아주 대조적으로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아모스의 말씀을 듣는 청취자들은 그 말씀이 전혀 설득력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모스는 수사적인 방법을 통해서 흔들어 놓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말씀이 받아들여지도록 하기 위해서 쓴 방법은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체험을 근거로 함으로써 그 말씀이 포괄적인 성격을 띄도록 한다. ‘자연적인 차원에서 봐도 이것은 결정적인 것이다. 인위적인 차원에서 봐도 결정적인 것이다. 그것의 정점으로는 야훼가 개입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벌은, 희망이 없음은 피할 수 없는 결정적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 이런 야훼의 개입을 통해 3,1절에서 얘기하는 말씀이 그냥 단순한 말이 아니라 심판, 단순한 심판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온 민족으로부터 구별해낸 그 백성들에게 얘기하는 심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야훼가 그렇게 하려는 까닭은 야훼가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규정을 일러주셨기 때문이다. 그 규정을 일러주는 배경은 에집트로부터의 해방이고, 그 해방을 가리키기 위해 ‘הꗚꘝ(‘alah)’라는 동사를 쓰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규정에서 어긋나고, 야훼와의 관계가 뒤틀린 것은 단순히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야훼가 이스라엘에게 부과해준 목적으로의 ‘불리움’자체를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야훼가 준 목적을 망각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야훼의 말씀, 심판이란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를 잃어버린, 역사를 생각하지 않는, 즉 야훼가 이스라엘에게 한 것을 잊어버리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앞으로 이어나갈 과업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통해서 윤리적인 희망이 아니라 역사적인 희망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 ‘야훼가 결정적으로 심판하신다’는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야훼하고 상관이 없는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을 근거로 생각을 한다면 하느님이 백성에게 현재 하신 일에 대해서 제대로 보고, 듣고 할때에 비로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 ‘그렇지 않느냐’ 하고는 그쪽으로 얘기를 끌어가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8절에서 보는 바와 마찬가지로 아모스의 예언자로의 정당성은 야훼가 말씀하시는 데 있다. 그런데 그런 수사적인 표현을 통해서 ‘누구든지 예언을 해야한다’는 질문을 던져놓고는 ‘그런데 너희들은 예언을 하지 않으면서 나만이 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 그들과의 대조를 나타내며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에 주목을 하라는 아모스의 말씀이 정당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정당성의 결과는 이렇게 예언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의 결과는 틀림없다’라는 것이다.
7절을 볼때 야훼께서 속을 드러내신다는 것은 하느님의 계획을 드러내신다는 것인데, 신명기 신학의 차원에서는 하느님이 선포하신 말씀은 야훼의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전제한다. 그러므로 7절을 근거로 해서 아모스가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더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다. 그 ‘종’의 위치란 ‘야훼의 계획을 아는 사람’, ‘그 야훼의 계획을 통해서 야훼와 연관된 사람’이며 그것은 8절에 가서 ‘그러므로 아모스는 정당하다’는 것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것을 현대에 적용한다면 ‘야훼와의 관계가 어느쪽으로 가느냐’하는 것이 제대로 되지 않을때 바로 죄가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