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에 대해서(9절~15절 개관)

 

9-15절 개관


   3,9이하를 보면 이런 점을 볼 수 있다.


꠆ꠏ10절 : 야훼의 말씀이시다.


ꠐ 11절 : 야훼가 선언한다.


ꠐ 12절 : 야훼가 선고한다.


ꠐ 13절 : 주 만군의 하느님 야훼의 말씀이시다.


ꠌꠏ15절 : 야훼의 말씀이시다.


           야훼의 말씀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말한다.


꠆ꠏ10, 15절 : 너움 야훼


ꠌꠏ11, 12, 13절 : 아마르 야훼


   9-15절을 볼 때 시작과 마지막을 ‘야훼의 말씀’으로 구성함으로써 체계성을 보여준다.  ‘야훼의 말씀’을 여러번 말했다는 것은 9-15절이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즉 처음부터 똑같은 저자에 의해, 똑같은 시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기 보다는 아모스 예언자가 이스라엘이 받을 벌을 선포하는 가운데 여러 말마디를 지금과 같은 형태로 모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11-13절은 독립적으로 있었던 심판의 말씀을 지금과 같이 모아 놓은 것이다.  독립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야훼가 선언한다’라는 말을 뺄 수가 없었던 것이다.


   9-11절은 한 단락으로 본다.  왜냐하면 9.10절이 잘못에 대한 증거이고 11절이 ‘그러므로’라는 히브리어의 결론을 유도하는 조사를 사용함으로써 심판을 선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예언서에 있어서 심판의 말씀이 잘못에 대한 증명, 그에 대한 벌의 선포가 일반적인 형태이다.  따라서 쟝르상으로 보아 9-11절은 한 단락이라 할 수 있다.


   12절은 심판의 말이라기 보다는 앞으로 있을 이스라엘의 운명을 말한다.  앞절과 같은 잘못에 대한 벌은 아니다.


   13절 “이 말을 듣고 야곱 가문에게 똑똑히 일러라“


‘야곱 가문을 거스려서 증거를 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예언자에 대한 위탁을 말한다. 9절에서도 ‘말을 전하여라’라는 구절이 있듯이 이것은 특사를 보내면서 전하는 말씀의 위탁이다.


   13절은 앞절과 같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 않다.  따라서 ① 9-11절, ② 12절, ③ 13절 이하로 단락 구분을 할 수 있다.




9-11절 개관


   전체적으로 보아 아모스가 보냄을 받은자가 아니라 아모스 자신이 누구를 보내서 이렇게 말을 하라는 것을 나타낸다.  ‘야훼의 말씀이시다.’, ‘야훼가 선언한다’는 것을 보아서는 아모스가 예언자로서 야훼로부터 이스라엘을 심판할 말씀을 분명히 받았다는 권위를 말하고 있다.  사마리아에 대한 심판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전하게 한다는 것은 이 죄가 다른 사람이 객관적으로 보아도 틀림이 없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표현하기 위한것이다.




9절  


   아시리아의 궁궐에 말을 전하여라.  에집트의 궁궐에 말을 전하여라.  ‘모두들 사마리아 언덕에 올라 와 보게.  그 안에 억울한 일들 뿐 온통 뒤죽박죽일세.


   。‘에집트의 궁궐에 말을 전하여라’ – §원문 해석 : ‘누구를 거스려서 듣도록 하여라’라는 뜻이며 예레 4,5; 31,7; 41,14; 50,2 등에서 ‘누구를 보내서 듣도록 하라’는 표현이 나옴을 볼 수 있다.


   。‘아시리아 궁궐에 말을 전하여라’ – 여기에서 아시리아를 ‘דוֹדּꚉאַ(’ashdod)’으로 고쳐야 한다.  이것은 아시리아가 아니라 필리스틴의 도시 ‘ashdod을 의미한다.


   。시대배경 : 여로보암 2세때에는 아직 앗시리아의 영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시리아는 아모스 활동시기에 위협적인 권력으로(주체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 당시 많은 관계를 맺었던 것은 오히려 에집트 ‘ashdod이며 ‘ashdod은 해변국가로서 상당한 문화가 발전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ashdod은 에집트에서 가나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이므로 일찍부터 도시가 형성되었다.  또한 여기에서의 궁궐이란 상류계층을 의미한다.  ‘말을 전하여 듣게 하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이는 전령을 어느 일정한 장소에 보내어 윗사람이 무엇을 위탁하는 것을 상기시킨다.  단순히 ‘말하여라’하는 것은 일정한 대상, 수신자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를 거스려서 듣도록 하라’는 것은 수신자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듣도록 하는 것이다.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이 같이 나타난다.


   。명령의 내용 “뒤죽박죽”이라는 단어 הꗪוּהꗱ (mehumah) – 이 단어는 야훼가 전쟁들을 통해 벌을 내림으로써 도시나 공동체가 혼돈상태에 빠지는 것을 나타냄(1사무 5,6; 14,20; 이사 22,5; 즈가 14,13; 신명 28,20 참조).  이것은 평화(샬롬)가 파괴되는 것을 말한다.  내용적으로 어떤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불법적 테러등으로 사회가 어수선해 지는 것을 말한다.  본문에서는 이 단어를 복수로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일이 빈도에 있어서 자주 일어나고 깊이에 있어서도 굉장한 밀도를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온통’이란 굉장한 밀도를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ashdod과 에집트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보도록 하는 것.’ – 이스라엘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 아모스이 말씀의 의미는 외국인들이 와서 검증을 해 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마리아의 죄가 크고 분명하고 제3자를 통해서 검증을 해도 틀림이 없다는 아모스의 확신을 나타낸다.   못 즉, 사마리아가 외적으로는 번창하더라도 사람이 살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런 점에서 아모스의 예언은 외적인 평화와는 정반대되는 내용을 말함으로써 한편으로는 확신성을 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쪽에서 볼 때 아모스가 자기 개인의 정치적 의견을 피력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심을 받게 하는 대목이다.  모두들 외적으로 잘사는데, 거기에다 굉장히 많은 혼란이 있다고 단언을 하므로 이스라엘 쪽에서 볼 때 아모스는 의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모스는 3,3-8에서 자신의 말씀이 야훼로부터 귄위를 받은 것이라고 자신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10절  


   바른 일 하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  – 야훼의 말씀이시다.  궁궐에는 권력으로 남을 등쳐먹는 자들뿐이다.’ 


   。‘바른 일 하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 – 바른 일(ꕘꗌꗺ, nakoha)에 대한 것은 잠언 24,26; 집회 11,21; 이사 26,10등에 나오는 단어인데 이것은 모세오경이나 예언서에 나오는 정의, 공의 보다는 교육, 교훈을 배경으로 해서 나오는 단어이다.  이 구절은 ‘ashdod이나 에집트 사람이 와서 볼 때에도, 그들의 기준으로 봐서도 공동체의 삶이나 개인적인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교훈, 교육을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사마리아의 부패란 일반적인 인간의 지혜를 통해서 보아도 분명하다는 것이다.  또한 에집트에서 들어온 지혜 문학의 관점에서 보아도 잘못이 많다는 것과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원문 번역 : ‘그들은 폭력(סꗪꖎ)과 강도질(דꚇ)을 도우는 사람이다.’ – 여기에서 나오는 ‘סꗪꖎ(hamas)’와 ‘דꚇ(shod)’은 ‘ט꘱ꚉꗬ(mishpat)’와 ‘הꙌꕇꙃ(tsedakah)’와 반대되는 용어로서 예레20,8; 6,7; 7,8; 이사 60,18; 에제 45,19; 하바꾹 1,2; 2,17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סꗪꖎ(hamas)’는 제관계의 홍수 설화에도 나온다.  여기서 폭력의 근본은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데 있다.  인간의 생명을 뺏고, 손해를 끼치고, 공격하면서도 그로 인해 당연히 나오는 반응인 소리지르는 것마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또 ‘סꗪꖎ(hamas)’는 피와 연관되어 나타난다(예레 52,35; 에제 7,13 참조).  강도질을 의미하는 ‘דꚇ(shod)’은 물건등을 강제로 빼앗는 것을 말한다(호세 9,6절을 참조).




11절


   그러므로, 나 야훼가 선언한다.  적이 사방에서 이 땅에 몰아쳐 와 축성들을 허물고 궁궐들을 약탈하리라.


   。이러한 결과로 그들이 믿고 있는 권력, 제도 등 외적인 보호책을 적들이 와서 모두 없앨 것이라는 것이 10,11절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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